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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52화 (252/307)
  • 제252화

    252화

    걱정스러움이 가득한 뱀파이어 본부의 한 방 안.

    모두가 에르제가 깨어나길 기다리며 초조한 기색을 보이는 때, 색색거리는 숨을 뱉는 그는 생각보다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현재 자신이 있는 곳이 꿈인지 현실인지도 모르는, 그런 공간에서 말이다.

    * * *

    영겁의 시간이 흐르고 뒤섞이는 시공간의 축, 에르제는 서은우가 되어 그의 삶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그가 마지막에 뻗었던 손, 심장에 닿았던 손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처음은 들어갈 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서은우와, 미래의 자신인 미친 황제와의 만남.

    그리고 그 이후 저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 버린 시공간의 축.

    그곳에서 서은우의 정신은 극한으로 마모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각을, 이후로 청각 후각…… 오감을 모두 잃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곳에서, 서은우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생각밖에 없었다.

    왜 자신이 이곳에 와 있는가, 어째서 이런 일을 겪고 있어야 하는가,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자신은 죽지 않는 것인가.

    의문이 가득했던 생각은 어느덧 시간이 흐를수록 변해 갔다.

    절망에서 최종적으로는 분노로.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분노가, 이성을 상실하지 않도록 도왔다.

    주변에 떠다니는 영체들이 사라지고 먼지가 되어도, 그는 분노라는 감정 하나로 그 모든 것을 버텨 내고 형체를 유지했다.

    자신의 부모에 대한 원망과 분노, 자신의 몸을 빼앗은 빌어먹을 뱀파이어에 대한 분노…….

    그것은 점차 변질되어 갔고, 종래에는 모든 종족들에 대한 혐오와 분노로 점철되었다.

    애초부터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이 없었다면,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증오를 한가득 담은 채 서은우는 기어코, 시공간의 축의 가장 밑바닥에 닿았다.

    “으…….”

    서은우는 눈을 떴다.

    바닥을 짚는 손가락, 처음으로 촉각이 느껴졌다.

    그 감각이 너무나도 생경해서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히익.”

    서은우는 황급히 손을 떼어 냈다가 그대로 온몸을 바닥에 처박았다.

    메마른 흙이 입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야 비로소 미각을 느꼈다.

    “퉤……!”

    서은우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두 발을 딛고 서자, 후우웅, 하는 바람 소리가 귀로 들려왔다.

    드디어 육체가 생긴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떴을 때, 서은우의 눈앞에 보인 곳은 그야말로 황무지였다.

    붉은색만이 가득한 땅과, 황사처럼 몰아치는 모래 폭풍들.

    ‘보이는’ 것이 어색해 몇 번이나 눈을 끔뻑거리며 서은우는 천천히 발을 옮겼다.

    갓 태어난 새끼 양처럼, 걷는 법이 익숙하지 않아 몇 번이나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어갔을까.

    그의 앞에,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물이 나타났다.

    푸른 물이 아닌, 붉은색의 물.

    마치 피 같은 형상에 뒷걸음치던 서은우는, 결국 갈증을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붉은 물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헉…….”

    이내 그곳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회색 몸체에 양쪽 머리에 달린 뿔, 기괴하게 튀어나온 송곳니와 손톱들.

    흔히 영화에서나 보던 악마의 모습이, 넘실거리는 붉은 액체 위에 재현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인간조차 될 수 없는 거야?”

    서은우는 멍한 얼굴로, 맥이 탁 풀린 채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주저앉았다.

    아무런 해결책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서은우는, 붉은 액체에는 입도 대지 않은 상태로 3일을 보냈다.

    그렇게 다음날인 4일 차.

    “…….”

    말하는 법을 잊은 듯 쭈그리고 앉아 있는 서은우의 뒤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

    놀라서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검은색 철갑을 겉에 두른 전갈이 꼬리를 세우고 있었다.

    “잠ㄲ……!!”

    뭐라 대답할 틈도 없었다.

    악마라곤 하지만 최하급 악마의 수준이었는지 그의 몸 상태와 힘은 비루할 뿐.

    곧 전갈의 꼬리가 그대로 서은우의 몸을 관통했다.

    그리고 그대로, 그는 거대 전갈의 먹이가 되었다.

    [ 영혼 전이가 발생하였습니다. ]

    그러나 완전히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그의 눈앞에 이상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뜨는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그는, 이제 거대 전갈이 되었다.

    * * *

    [ 영혼 전이가 발생하였습니다. ]

    [ 영혼 전이가 발생하였습니다. ]

    죽으면, 자신을 죽인 대상의 몸으로 영혼 전이가 발생하는 상황.

    서은우는, 그것을 깨닫자마자 적극적으로 활용을 했다.

    이곳이 어디인지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지는, 점점 더 강한 개체로 옮겨갈수록 알게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분노의 마왕, 서은우.

    몇백 년이 흐른 어느 때, 그는 자신을 죽인 마왕이 되어 있었다.

    ‘마계, 그리고 한참 전의 과거로 돌아와 있다.’

    마치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에 서은우는 실소를 지었다.

    계속해서 몸을 옮기고 그들의 기억을 받아들이면서, 그의 감정은 더욱더 심연으로 꺼져 들었다.

    이제 그의 목표는 이 지긋지긋한 마계를 벗어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마계에서 자신을 소환해 줄 ‘강림’이 필요했다.

    ‘카테이아 대륙에 있는 것들에게 접촉할 방법이 없으니…….’

    계속해서 이대로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심지어 강림을 하더라도, 어떤 마왕이 뽑혀 가게 될지는 미지수였다.

    바쳐지는 제물의 종족이나 특성, 그리고 의식을 진행하는 이가 누구인지에 따라 강림하게 될 마왕이 매번 달라졌으니까.

    ‘……변수를 없애기 위해서는, 하나밖에 없군.’

    서은우는 대마왕이라는 존재가 없는 마계에서,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기를 계획했다.

    그는 휘하의 악마들과 크리처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전쟁을 시작한다.”

    그리고 마계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마왕들을 공격해 나갔다.

    이겨도, 져도 되는 싸움.

    그는 가장 최전선에 서서 싸웠고,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계속해서 이득을 보았다.

    [ 영혼 전이가 발생하였습니다. ]

    그야말로 사기적인 특성을 등에 업고, 서은우는 계속해서 모든 마왕들을 처리해 나갔다.

    오랫동안 마계에 군림하던 666개체의 마왕들은, 서은우의 손에 죽거나 혹은 그들 손으로 서은우를 죽였다.

    하지만, 끝까지 살아남은 것은 딱 하나.

    그는 마계의 유일한 마왕이자, 대마왕이 되었다.

    앞으로 탄생하게 될 마왕들은 격이 낮아, 강림에는 응하지 못할 터.

    ‘바깥 세계로 나가서, 모든 종족들을 죽이겠다.’

    지구로 가는 방법은 아직도 아득하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내제되어 있는 분노만큼은 풀어내야 했다.

    그것은 여전히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어 주고 있었으니까.

    이후로 120년, 무료한 시간을 더 보내고 나서야.

    에이리스라는 뱀파리스가, 서은우, 대마왕을 카테이아 대륙에 강림시켰다.

    * * *

    이후의 상황은 순조로웠다.

    그 무엇도, 대악마의 힘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카테이아 대륙의 위기를 느낀 수많은 종족들이 힘을 합쳤지만, 그의 힘 앞에서는 무력했다.

    뱀파이어 로드 에르제, 용족들, 늑대인간 등등…….

    서로 경원시하던 이들까지도 힘을 합쳐 대적하는 꼬락서니란, 그저 웃음이 나올 뿐.

    하지만 ‘시간’은 여전히 그의 편이 아니었다.

    모든 종족들을 없애지도 못했는데, 어느덧 강림의 제한 시간에 다다른 것이다.

    [ 젠장……! ]

    서은우는 대상 없는 원망을 하며 이를 악물었다.

    “대악마시여, 제가 다시 혈석의 힘을 모아 조만간 이 세계에 강림을…….”

    에이리스가 뜻을 전했으나 서은우의 귀에 닿지는 못했다.

    [ 잠시 나갔다 오겠다. ]

    그는 그렇게 말을 남기고,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몰두했다.

    어떻게 해야, 이 세계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다른 마왕들은 어째서 늘 강림의 제한 시간이 끝나면 마계로 돌아와야만 했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서은우는, 이내 도박을 하기로 결정했다.

    대악마의 힘을 잃을 수도 있는 방법이지만, 적어도 중간계에 남아있을 수 있는 도박을.

    [ 제국의 황자구나. ]

    서은우는 우연히 마주친 어린 인간을 보며 씩 웃었다.

    카테이아 대륙, 인간들의 세계를 통치하는 제국 황제의 아들.

    [ 나를, 죽여라. 그러면 내 힘은 네 것이 될 것이다. ]

    서은우는 훗날 미친 황제라 불리게 될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 그는 대악마의 힘을 온존한 채 인간의 몸에 들어왔다.

    이후의 일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아버지인 황제가 죽고, 그가 다음 황제에 등극한 뒤.

    본격적으로 모든 종족들을 섬멸하겠다, 그리 공표하고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정말로.

    모든 종족들은 강림 제한 시간이 없는 인간 대악마에게, 속절없이 무너졌다.

    드워프도, 늑대인간도, 용도…… 그리고 뱀파이어도.

    같은 날.

    뱀파이어 로드 에르제는 죽었고.

    영체가 된 지구의 서은우는 미래의 자신, 미친 황제를 동굴 입구에서 발견하였으며.

    정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미친 황제는, 모든 종족을 멸하겠다는 분노 아래, 이 모든 시간의 순환을 연결하는 마침표를 찍었다.

    …….

    …….

    [ 영혼 전이가 발생하였습니다. ]

    * * *

    “으음…….”

    서은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밝은 백열등 때문에 눈이 부셔, 손등을 이마 위에 얹으며 낮은 신음을 뱉었다.

    “로드! 괜찮으십니까!”

    계속 간호를 하고 있었던 것인지, 라하임이 곧바로 달려오며 물었다.

    “……괜찮아.”

    서은우는 그렇게 대답하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천천히 손을 내려다보았다.

    ‘……드디어.’

    계약이 아니라, 정말로 이 안에 들어왔구나.

    내가, 다시 내 몸을 찾았구나.

    짜릿한 희열이 전신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마지막 에르제와의 싸움에서 그에게 죽임을 당하고 발생한 사기적인 ‘영혼 전이’의 특성.

    그 덕분에, 서은우는 자신이 계획한 일의 마침표를 찍어 냈다.

    ‘에르제가 겪었던 모든 기억들까지도, 온전해.’

    서은우는 하하,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옅은 미소를 띠었다.

    시공간의 축에서 끝없는 시간을 버티고 육체를 얻었을 때처럼, 모든 것들이 그저 어색하기만 했다.

    ‘대악마의 힘은 사라졌지만…… 더 이상 필요 없겠지.’

    서은우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내뱉었다.

    ‘남은 건, 에이리스를 정리하는 일인가.’

    그렇게 되면 완전 범죄는 성립이었다.

    에르제의 기억도 있으니, 그의 일족들에게도 의심을 살 구석은 없을 터.

    서은우는 침상에서 완전히 몸을 일으킨 뒤, 조심스럽게 자신을 부축하는 라하임에게 물었다.

    “에이리스는, 죽었어?”

    “현재 힘을 봉인해 둔 채 가둬 둔 상태입니다. 처우는 로드께서 일어나시는 대로 정하기 위해…….”

    서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네. 잠시 에이리스와 둘만 있게 해 줄 수 있지?”

    “아…… 네.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서은우는 앞서가는 라하임의 뒤를 따르며, ‘로드의 힘’을 미리 몸 구석구석에 퍼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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