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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51화 (251/307)
  • 제251화

    251화

    대악마를 지구에 강림시킨 수단이자 그가 이 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힘을 공급하는 원천, 혈석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독은 그야말로 치명적이었다.

    웬만한 종족의 수장급이 달려들어도 꿈쩍도 하지 않을 힘을 가진 대악마가, 이토록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역시, 대악마는 대악마였다.

    서은우는 심장이 뚫린 와중에도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 크…… 흐으……. ]

    신음 소리를 내뱉는 그의 심장이 빠른 속도로 복구를 시도하고 있었다.

    독으로 인해 그 속도는 더뎠지만 이대로 둔다면 언젠가는 상처를 회복하는 것도 문제가 없을 정도.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검은색의 기운이 서은우의 몸에서 뭉게뭉게 풍겨져 나왔다. 동시에 에르제 또한 로드의 힘을 전신에서 뿜어냈다.

    두 검은색의 기운이 두 인외의 존재 사이를 가득 메웠다.

    첨예하게 부딪히는 기세, 그 누구도 둘 사이의 기운에 끼어들지 못하고 엉거주춤 섰다.

    유일하게 에이리스만이 당황했던 기색에서 벗어나 서은우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에르제와 에이리스, 둘이 나누어 가진 로드의 힘이 균형을 이루었고. 그 사이 서은우는 망가진 심장을 부여잡은 채로, 에르제가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도록 방어적인 태세를 취했다.

    ‘쯧.’

    에르제는 속으로 혀를 차며 양팔에 로드의 힘을 둘러쳤다.

    당연히 혈석이 심장에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게 실수였다.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노려야 할 것은 머리.

    혈석은, 인간으로 치자면 피와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 그렇기에 손이나 발 등의 말단이나, 다른 기관에 위치해 있을 리가 없었다.

    심장 혹은 머리.

    가장 중요한 심장은 아니었으니 그렇다면 다음으로 중요한 머리에 위치해 있을 확률이 90퍼센트 이상이다.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부수면 돼.’

    에르제는 호흡을 가라앉히며 무릎을 살짝 굽혔다. 언제든지 앞으로 튀어 나갈 자세를 한 그를 보며, 에이리스도 비슷한 자세를 취했다.

    서은우를 사이에 두고, 두 로드는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돌았다.

    공격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에르제 하나, 때문에 에이리스의 신경은 오로지 그의 움직임만을 주목하고 있었다.

    파르만은 카얀과의 싸움으로 인해 힘을 꽤 소진한 상태, 지금은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혼자 해내야 해.’

    라하임이나 플랑 또한, 이 싸움에 끼어들었다가는 고래 싸움에 터지는 새우 꼴이 될 것이다.

    에르제는 꾸욱, 발가락 끝에 힘을 주어 밀었다.

    순간적으로 잔상을 남기고 서은우를 향해 짓쳐 들어가는 에르제를,

    “어림없어.”

    에이리스가 곧바로 따라붙으며 저지했다.

    하지만 그녀 또한 파르만과 마찬가지로 카얀과의 싸움에서 힘을 많이 소진한 상태.

    힘을 비축하고 때를 기다린 에르제의 힘을 온전히 받아내지는 못했다.

    카가각, 에이리스의 발이 뒤로 밀려나며 흙바닥을 긁었다.

    ‘역시, 힘이 떨어져 있구나.’

    에르제는 곧바로 상황을 판단한 이후 에이리스를 몰아붙이는 자세 그대로 입을 열었다.

    “붉은 꽃잎이 휘날리는 자리에 가라앉은 달빛이여…….”

    카테이아 대륙의 마법사들이 대규모 전쟁에서 사용하는 ‘익스플로전’과 비슷한 효과의 술법, 그 주문이 에르제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미친.”

    이렇게 딱 붙어서, 자폭 공격을 시도하겠다고?!

    에이리스의 눈이 놀라서 커졌다.

    그러나 그녀의 뒤에는 아직 서은우가 힘을 회복 중이었다. 이대로 그녀가 물러난다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

    에이리스는 혈기를 에르제와 자신, 둘의 겉에 원형으로 방패처럼 두르기 시작했다.

    거대한 폭발을 그녀가 둘러친 혈기의 방패 속에서 이루어지게끔 하려는 의도.

    “버틸 수 있을까?”

    에르제는 겹겹이 쌓이는 혈막을 보며 피식 웃었다.

    “보아하니 1장로 녀석과 싸우느라 로드의 힘도 바닥을 보이는 것 같던데.”

    “참견은.”

    한때 남매였던 둘의 시선이 교차했다.

    곧 술법을 마친 에르제의 양 손바닥에서 거대한 혈기의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았던 혈구가, 점점 그 크기를 키워 갔다.

    카가가가각, 에이리스가 둘러친 혈막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읏……!!”

    에이리스의 잇새로 짧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곧, 다시금 그녀의 입가에 주르륵 피가 흘렀다.

    ‘폭혈’, 술법을 사용한 시전자에게도 폭발의 충격을 안겨 주는 말 그대로 자폭 수법.

    보다 체력이 여유로운 에르제가 선택한 것은, 그토록 극단적인 수법이었다.

    에이리스의 눈빛이 흔들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후회와, 연민, 안타까움이 담긴 복잡한 시선에 에이리스 그녀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그날, 그 일이 없었다면.”

    에르제는 붉은 피가 폭풍처럼 날뛰는 속에서 고요히 말했다.

    “이런 결말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텐데.”

    “…….”

    에이리스는 본인의 몸보다 혈막에 로드의 힘을 더욱 불어넣으며 버텼다. 저 소리에 대답할 여유는 이제 없었다.

    바람 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그리고, 곧.

    콰아아앙!!!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에이리스가 친 혈막이 깨어지며 두 존재가 바깥으로 튕겨 나왔다.

    하나는 만신창이가 된 에르제였고, 다른 하나는 완전히 기절해 버린 에이리스였다.

    “……진짜 버텼을 줄이야.”

    에르제는 그 거대한 폭발을, 기어코 혈막 안에서 막아낸 에이리스를 보며 혀를 찼다.

    “괜찮으십니까, 로드!”

    라하임이 곧바로 그에게 달려와 부축했다.

    “괜찮아.”

    에르제는 그의 손을 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마무리해야 해. 끼어들지 마.”

    그러고는 단호하게 경고를 내렸다.

    “하지만…….”

    “네 싸움이 아니야.”

    라하임이 침통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났다.

    이제는 정말, 서은우와 에르제 둘만이 전장에 남았다.

    에르제와 같은 길을 걷는 이들이 원으로 둘러싸고 있었지만, 둘의 시선은 오롯이 서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 내 몸을 빼앗아 간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나를 죽이겠다? ]

    어느덧 산산조각 난 심장을 반쯤 회복한 서은우가 이를 갈며 말했다.

    “……내가 네 몸을 빼앗으려고 했다고?”

    그리고 에르제는 헛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의식을 한 건 너였고, 네 몸으로 나를 불러들인 것은 너였어. 착각하지 마.”

    [ 그 의식은 가짜였다. 뱀파이어인 너의 힘만을 가져오는 의식이 아니었단 말이다! ]

    하지만 무엇이 그리 억울했던 것일까. 점점 서은우의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기운이 짙어졌다.

    [ 네가 지금 누리는 그 모든 것들……!! 아이돌도, 로드의 자리도, 나와 친했던 이들과의 관계도……!! 모두 내 것이었어야 했다!! ]

    그는 거의 악을 쓰며 한 발자국씩 에르제에게로 향했다.

    “……도대체, 무엇이 너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서은우가 하는 모든 말들이 억지였지만, 그럼에도 그가 느낀 비통함이 절절하게 전해졌다.

    그가 겪은 일들을, 자신은 겪지 못했으니까.

    아마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

    그러나 그렇다고 네게 죽어 주지는 않을 거다. 나도, 이제는 지켜야 할 것들이 더욱 많아졌으니까. 같은 후회를 또 반복할 수는 없다.

    에르제는 완전히 의식을 잃은 에이리스를 슬쩍 바라보고는, 다시 서은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둘 사이의 거리가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상태.

    [ 내 몸을 내놔라. ]

    그의 집착 어린 광기가 진득하게 달라붙었다.

    이제는 네 몸이 아니야, 그런 말이 목젖까지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이 사태가 벌어진 것에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말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결국 로드를 살리기 위해 의식용 문서를 만든 것은 라하임이었고, 에이리스가 변하게 된 것에 자신의 책임 또한 있다.

    해서 에르제는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밖에 없었다.

    “미안해.”

    [ 내놔라. ]

    서은우는 이미 이성을 놓아 버린 듯, 같은 말을 반복하며 달려들었다.

    아마도, 남아 있는 힘을 쥐어짜 자신을 제압하려는 모양이었다.

    퍼억, 서은우가 휘두른 팔을 막은 에르제의 몸이 멀리 날아가 나무에 처박혔다.

    “으윽…….”

    아직도 이만한 힘이 남아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에이리스를 상대하기 위해 몸을 희생한 여파도 아직 남아 있는 상황.

    ‘이성을 상실해 주어서 다행인가.’

    에르제는 빠르게 몸을 숙여 옆으로 굴렀다.

    서은우의 주먹이 그대로 커다란 나무의 절반을 부수어 버렸다.

    ‘머리만 노린다.’

    에르제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이어서 들어오는 서은우의 공격을 피해 냈다.

    체계 없이 오로지 파괴력만 믿고 들어오는 공격, 그것을 피해 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누구의 체력이 더 빨리 떨어지느냐가 문제.

    겉으로 보기에 둘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지 오래였다.

    마구잡이로 들어오는 공격, 에르제는 최대한의 힘으로 이를 막아냈다. 조금씩, 에르제의 발이 뒤로 밀려났다.

    [ 크하하하하!! ]

    광소를 터뜨리는 서은우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반쯤 뒤집힌 눈으로, 혈석의 힘을 한계까지 끌어다 쓰는 중인 듯했다.

    “후욱, 후욱.”

    에르제의 호흡이 보다 거칠어졌다.

    그래도 조금씩, 틈이 벌어지고 있었다.

    녀석의 체력이 자신보다 빨리 떨어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공격과 공격 사이, 인터벌이 늘어나고 있었다. 앞으로 5번, 그것만 버텨 내면 서은우의 머리를 충분히 노릴 수 있다.

    ‘독에 걸린 와중에도…….’

    이렇게까지 수세에 몰리게 될 줄이야.

    모든 악마들 위에 군림하는 대악마의 힘을 여실히 느끼며 에르제는 이를 악물었다.

    ‘세 번, 두 번.’

    그리고 마지막 한 번.

    휘청거리는 서은우의 다리, 동시에 그의 상체가 앞으로 기울었다.

    ‘지금!’

    에르제는 빙글 몸을 돌려 앞으로 쏟아지는 서은우의 옆으로 비켜섰다.

    그리고 그대로 서은우의 머리를 오른손으로 붙잡았다.

    “끝이야.”

    [ 잠깐……!! ]

    서은우가 기겁하며 몸을 뒤로 빼려 했으나, 이미 그의 손아귀에 꽉 잡힌 뒤였다.

    지금을 위해 남겨 둔 로드의 힘 모두를, 에르제가 오른손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동시에, 서은우의 오른손이 에르제의 심장에 닿았다. 뚫기 위한 움직임이 아니라, 살포시 손바닥을 얹는 형태로.

    에르제 또한 방어를 도외시한 마지막 공격이었으므로, 서은우의 마지막 발악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한쪽은 머리를, 다른 한쪽은 심장을.

    그리고 다행히, 빨랐던 쪽은 에르제였다.

    순식간에 서은우의 머리를 헤집어 놓은 에르제가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제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동시에 통제권을 완전히 잃어버린 서은우 또한 바닥에 그대로 엎어졌다. 그는 더 이상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진짜로, 끝났구나.”

    에르제는 후련하지도, 개운하지도 않은 표정으로 쓰러진 서은우를 바라보았다.

    분명 대마녀의 독이 아니었다면, 죽는 것은 자신이었을 것이다.

    “…….”

    끝났구나.

    조금 멀리, 전투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지서후가, 의식을 잃은 에이리스를 제압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 끝났어. 드디어.

    몇 달간 이어져 온 계획이, 드디어 끝이 났다.

    온몸의 긴장이 한 번에 풀리면서 바닥난 로드의 힘이 뱃속에서 아우성을 쳤다.

    에르제는 마지막, 서은우의 손이 닿았던 심장 부근을 어루만지다.

    풀썩, 그대로 뒤로 쓰러진 채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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