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9화
239화
“아, 젠장!”
대학생은 토트윈 퀴즈쇼를 모두 실패한 흔한 이브들 중 한 명이었다.
누군가가 두 개씩 상품을 타 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럼에도 당첨된 팬이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학생 신분인 그녀는 알바를 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서 쓰는 학생이었다.
그러니 시즌 그리팅 떡밥에 기뻐하면서도 지출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에휴.”
대학생은 종료된 라이브 방송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좋은 소식이 있다면 드디어 토트윈에게도 멤버십이 생겼다는 것.
그것 또한 엔터테인먼트나 플랫폼의 상술이겠지만, 그래도 사실 다른 아이돌 그룹을 부러워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곧 토트윈 공식 계정에 멤버십 관련 공지가 올라왔다.
서은우가 말한 대로 한번 가입하면 영구적인 멤버십 혜택을 받을 수 있었고, 가격도 다른 1군 아이돌에 비하면 최소 만 원은 저렴했다.
“혜잔데……?”
대학생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멤버십 말고 다른 상품도 확인했다.
따로 키트를 구매할 수 있는 상품과, 1년에 4번 다양한 굿즈를 배송받을 수 있는 프리미엄 멤버십까지.
물론 가격은 15만 원에 배송비는 팬들이 부담해야 하는 구조라서 따지면 1년에 12,000원의 추가 지출이 발생하기는 한다.
대학생은 아쉽지만 프리미엄 멤버십에서는 눈을 돌리고, 일반 멤버십 혜택만 확인했다.
혜택은 다른 아이돌과 큰 차이는 없었다.
팬 미팅, 콘서트, 비하인드 등.
기본적인 혜택들이 나열돼 있었고, 뭔가 특별한 점은 없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첫 멤버십 가입 시, 멤버 카드를 포함한 특별 상품을 준다는 것 정도.
“흐음.”
일주일 뒤에 멤버십 가입을 할 수 있다고 하니, 그때까지 조금 더 고민을 해 봐야겠다.
프리미엄은 무리고, 조금 더 돈을 써서 키트까지 구매할까 말까 하는 고민을 말이다.
“아직도 20분은 남았네.”
대학생은 토트윈이 가요제전 무대에 나올 시간을 대충 계산하며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는 그녀의 오빠가 멍하니 TV를 보고 있었다.
현재 TV에 나오고 있는 것은 루비다이아로, 걸그룹 중에서도 인기가 굉장히 많은 그룹이었다.
“좋냐?”
대학생은 오빠 옆에 털썩 앉으며 물었고.
“하얀은 진짜 예쁘다.”
그녀의 오빠는 거의 감격한 수준으로 대답했다.
“그건 그래.”
대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루비다이아의 멤버인 하얀은 루비다이아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에르제와 마찬가지로 비주얼 센터를 맡고 있는 그녀는 외모와 표정, 이 두 가지 무기로 팬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부르는 가사와 함께 찰떡처럼 변하는 다양한 표정,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는 미친 외모.
계속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어 그녀만 쳐다보게 만드는 것이다.
“…….”
오빠와 똑같이 하얀을 멍하니 바라보던 대학생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으, 하얀만 보면 왠지 정신을 지배당하는 기분이야.”
“너 토트윈 좋아하잖아. 다른 그룹 관심은 끄시지.”
“그러는 자기는.”
대학생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언제부터였더라.
대학생의 오빠 또한 토트윈을 좋아한다. 그 희귀한 남팬이 같은 집에 살고 있는 것이다.
토트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자신 때문이겠지만, 대학생은 확신하고 있었다.
아이돌 자체에 관심이 없던 오빠를 끌어당긴 것은 토트윈이 가진 힘 때문이라고.
뛰어난 실력에 훌륭한 인성, 멤버 간의 불화도 없고, 콘셉트도 확실하다.
가끔 콘셉트가 과하다, 콘셉트에 잡아먹혔다는 등 시비를 거는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토트윈의 무대를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 따위는 저 멀리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그들은 시선을 뺏는 법에 아주 능했다.
‘어떻게 보면 하얀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대학생은 서은우의 얼굴을 떠올리다가 이내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까…….”
“?”
“요즘 은우가 정상이야.”
“뭔 소리야.”
토트윈 얘기에 대학생의 오빠도 은근한 관심을 보였다.
“최근에 사고 친 적이 없어.”
“……?”
“왜 인터뷰도 하고, 음악 방송에서 가끔씩 하는 대기실 깜짝 방문 라이브도 그렇고……. 요즘 은우가 정상이야!”
“그게 뭐 놀랄 일이라고.”
대학생의 오빠가 코웃음을 쳤다.
“처음에는 어그로 끌려고 소속사에서 시켰겠지. 그 뭐냐, 민주혁도 예전에 시상식 가서 마왕 뭐시기 플래카드 들고 그랬잖아. 오늘도 그 얘기 듣고 부끄러워 죽으려고 하던데.”
“……아니야. 너는 아직 잘 몰라서 그래.”
대학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은우는 찐 광기였다고. 그리고 어느 소속사에서 애한테 중2병 콘셉트를 줘. 팬들 오그라들어서 다 떠나게.”
“그런가?”
대학생의 오빠는 어깨를 으쓱했다.
“덕질은 네 전문이니까 네가 맞겠지 뭐. 아무튼 사고 안 치면 좋은 거 아님?”
“좋기는 하지.”
하지만 뭘까, 이 허전함은.
자신 또한 서은우의 이상행동을 보면서 분명 오글오글했었지만……. 막상 한동안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그게 또 보고 싶어진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더니.’
그러니까 가끔씩 예전 서은우의 모습을 보여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녀 말고도 같은 생각을 하는 이브들이 있지 않을까?
……아니면 말고.
코 밑을 스윽 훔치던 대학생은 이내 그녀의 오빠가 했던 말 중 이상한 부분을 캐치했다.
‘오늘도 그 얘기를 듣고 부끄러워 죽으려 했다……?’
그 말인즉슨.
대학생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 아까 라이브 봤냐?”
“……! 어? 아니?”
그녀의 오빠가 고개를 슬쩍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내가 무슨 라이브라고 말도 안 했는데, 찰떡같이 알아듣네?”
“그…… 야 당연히, 네가 라이브 볼 게 토트윈 말고 누가 있어?”
“흐음~, 그건 그렇긴 하네.”
대학생은 씨익 웃으며 함정을 팠다. 그녀는 짐짓 모르는 척하며 말을 이었다.
“아! 맞다, 나 상품 당첨됐는데. 은우 거.”
오빠의 토트윈 최애의 이름을 언급하니 곧바로 반응이 왔다. 아마 저도 자신이 그랬다는 것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을 거다.
“진짜로!? 대박! 채팅창 난리도 아니었는데, 그걸 뚫고 받았어? 와씨……. 저번 티켓팅도 그렇고, 우리 집이 당첨 운이 엄청 좋은갑다.”
“호오!”
대학생은 턱을 괴며 입꼬리를 올렸다.
“……아.”
그녀의 오빠 또한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이내 성질을 부렸다.
“아, 왜! 봤다! 뭐 어쩌라고!”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왜 혼자 발끈하실까. 부끄러워?”
“그런 거 아니거든.”
“왜 부끄러워하고 그래. 나도 똑같은 이브인데, 남매가 같이 이브면 좋지. 다음에 팬싸 같이 갈까? 응?”
대학생이 낄낄 웃으며 말했다.
“팬싸는 뭐 가고 싶다고 다 가냐? 그것도 앨범 사서 응모해야 한다며?”
“오올~, 그런 것도 공부했어?”
그녀의 오빠는 기존에 여자 아이돌 덕질도 해 보지 않은 사람이었다. 기본이긴 해도 저런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는 뜻이다.
“토트윈이 대단하긴 하네.”
대학생은 왠지 뿌듯한 감정을 느끼며 다시 TV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때마침 토트윈의 차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야, 한다.”
대학생은 어깨로 툭툭 쳐 알려 주었고, 부끄러워하던 그녀의 오빠 또한 TV로 시선을 돌렸다.
화면 너머로 리프트를 타고 올라오는 토트윈이 보였다.
“……? 팬들이 왜 저기 있지?”
송출되는 화면을 보며 대학생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이번에는 갑자기 조명이 암전되었다.
“……?”
일부러 이렇게 연출하는 건가 싶어서 기다렸지만, 놀랍게도 암전된 상태에서 MR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조명 사고인가?”
대학생은 어휴,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방송국 놈들 제대로 일 처리를 하는 법이 없어요.”
어떻게 매번 가요제전에서 문제를 만드는 건지.
“빡치네.”
그리고 그 대상이 하필 토트윈이라는 사실은 매우 화가 나는 일이었다.
“게시판 테러 나겠네.”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으니, 다행히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는지 다시 조명이 들어왔다.
그 와중에 계속 흘러나오던 MR 때문에 토트윈은 꺼졌다 켜지는 조명에도 불구하고 노래와 춤을 이어 가고 있었다.
대학생은 암전 상황에 정신이 팔려 어느덧 하이라이트 구간까지 왔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열 받은 마음을 누그러뜨리며 대학생은 다시 무대에 집중했다.
‘이번 무대는 프롤로그로 하는 건가?’
― Cause I’m―.
가사나 MR을 보니 맞는 것 같은데.
‘시상식 무대 준비 때문에 여기는 평범하게 가는 건가.’
차라리 잘됐다.
무대를 보는 팬의 입장에서는 아쉽지만, 무대 관리를 저런 식으로 하는 방송국에서 실력 발휘를 할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헉.”
언제 또 편곡을 준비해서 온 건지, 미묘하게 멜로디가 바뀌며 인스트로먼트의 변화도 서서히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덧, ‘Prologue’였던 곡이 ‘Parados’로 바뀌어 있었다.
“대박.”
마치 한 곡처럼 변한 곡을 들으며 대학생은 입을 딱 벌렸다.
― Para Para dos.
몽환적인 서은우의 목소리가 개판이 난 음향을 뚫고 나왔다.
그의 목소리는 어두운 하늘에 수놓아진 별 같았다.
시선을 잡아끄는 목소리는 하염없이 그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서은우의 파트가 끝나자마자 펼쳐지는 군무.
‘Parados’의 가장 큰 매력인 난이도 높은 군무가 무대 위에서 화려하게 펼쳐진다.
딱딱 맞아떨어지는 군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쾌감과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기쁨은 딱 거기까지.
“아, X발.”
“제정신인가?”
대학생과 그녀의 오빠는 동시에 그 말을 내뱉었다.
MR이 사방팔방으로 튀기 시작한 것이다.
몇 초 뒤로 갔다가 앞으로 왔다가 혹은 전혀 다른 부분이 나온다.
순간 얼음이 되어 버린 토트윈의 모습이 보였다.
“게시판 어디 있어!! 장난해, 진짜?!”
잔뜩 흥분한 대학생이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방송국 게시판에 온갖 욕을 작성하려고 할 때였다.
“야……. 잠깐만.”
그녀의 오빠가 입을 딱 벌린 채 TV를 보면서 동시에 대학생의 소매를 잡아끌고 있었다.
“왜? 뭔ㄷ…….”
짜증스럽게 TV 쪽으로 고개를 든 대학생은 곧 그녀 옆에 있는 오빠와 같은 표정이 되었다.
“미친.”
아마 이보다 정확한 표현은 없을 듯했다.
토트윈은 대략 5~10초마다 튀는 MR에 맞춰서 군무를 추고 있었다.
마치 모 예능의 랜덤 댄스 플레이처럼 그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당황하며 흔들리던 카메라가 정신을 차렸는지 토트윈의 모습을 클로즈업했다.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를 기행이다.
툭.
스마트폰이 바닥에 떨어졌다.
“우리 애들은 천재밖에 없어.”
대학생이 저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화면에 비친 서은우의 눈은 새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