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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38화 (238/307)

제238화

238화

퀴즈의 난이도는 ‘극악’이었다.

얼마나 토트윈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를 묻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운이라고 해야 할까.

나름대로 형평성을 고려한 것이었다.

가장 먼저 문제를 낸 것은 윤치우였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치킨 부위는 어디일까요?”

그가 문제를 낸 순간, 채팅창은 순간 렉이라도 걸린 듯 버벅거렸다.

자신들이 모르는 문제가 나올까 전전긍긍하던 이브들은 곧바로 토트윈의 의도를 깨달은 것이다.

‘운빨이다!’

그런 생각이 팽배해지며 이내 온갖 치킨 부위가 채팅창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 닭가슴살.

― 다리.

― 낡!!

좀 미안한 일이긴 했지만, 정답자를 찾기 위해 고생하는 건 토트윈이 할 일이 아니었다.

실시간으로 채팅창을 주시하고 있는 모카 엔터테인먼트의 직원들이 곧바로 정답자의 아이디를 종이 위에 적어 보여 주었다.

“정답은 목이었습니다, 하하.”

윤치우가 밝게 웃으며 정답자를 발표했다.

다만…….

“정답자는 러블리더…… 치…… 우 님입니다……!”

종이를 바라보던 윤치우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다가 이내 은근슬쩍 딴청을 피우며 정답자의 이름을 불렀다.

― ㅋㅋㅋㅋㅋㅋ 부끄러워한닼ㅋㅋㅋ

― 러블리더치우~! 러블리더치우~!

―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앜ㅋㅋㅋ

― 아, 정답. ㅠㅠㅠ 나도 ‘목’ 했는데. 늦었어. ㅠㅠㅠ

윤치우의 볼이 살짝 상기되어서인지 팬들은 금세 알아채고 채팅으로 놀리기 시작했다.

“크흠, 다, 다음 문제는 주혁이가 할 거예요.”

윤치우가 옆에 앉아 있는 민주혁에게 재빨리 배턴을 넘겼다.

그리고 민주혁은 알다시피 이런 쪽에 가장 취약한 멤버였다.

‘주혁이 벌써 불안해햌ㅋㅋ’ 등의 채팅이 올라오는 걸 보니 팬들도 알고 있는 모양.

목이 탔는지 민주혁은 옆에 놓여 있던 물을 꿀꺽꿀꺽 들이켰다.

― 나는 이세계의 마왕! 지옥의 업화를 두르고, 하늘에 어둠을 뿌리는 자!

“푸웁!!”

예전 일을 상기시키는 채팅에 민주혁은 그대로 물을 뿜고 말았다.

다행히 곧바로 고개를 뒤로 돌려서 대참사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푸하하하!!”

“아, 민주혁!! 뭐 해!”

“X부기에여?”

“아, 맞네. 주혁이 예전에 더빙할 때 거북이였잖아. 큭큭.”

토트윈도 놀리는데 합세하며 박장대소가 터졌다.

민주혁의 얼굴은 이미 빨개질 대로 빨개져서 누가 보면 홍익마왕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사. 레. 가. 들. 려. 서. 얼. 굴. 이. 빨. 개. 졌. 네.”

민주혁은 손등으로 입술 쪽에 묻은 물을 닦아 내며 기계처럼 중얼거렸다.

“……너는 연기하면 안 되겠다.”

에르제는 그의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 주었다.

난리가 난 채팅창을 보며 민주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

그는 채팅창에 간간이 보이는 ‘마왕’ 등의 단어를 무시하고, 최대한 침착한 말투로 문제를 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이번 민주혁의 문제는 운의 요소가 강하긴 했지만, 그래도 공식 계정에 올라왔던 그의 사진을 유심히 봤던 사람이라면 알아맞힐 수 있는 문제이기도 했다.

‘민주혁이 자주 들고 다녀서 여러 번 사진에 찍혔던 것 같은데.’

물론 대부분의 팬들은 아직도 민주혁이 책을 좋아한다는 게 소속사에서 시킨 콘셉트인 줄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 민주혁은 책 읽는 시간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했다.

‘이번에 나한테 책 선물을 하기도 했고.’

악령 사건 이후로 친밀해진 민주혁이 준 선물 말이다.

뭐, 어쨌든.

용케 정답을 맞힌 이가 나왔다.

그 많은 책들 중에 아무거나 말해서는 정답을 맞힐 확률이 낮으니, 공식 계정에 올라온 사진을 뒤졌을 확률이 높았다.

에르제는 그렇게 생각하며 정답자의 닉네임을 확인했다.

아쉽게도,

“아……! 이번 정답자는 은우 님입니다.”

이번 정답자의 닉네임은 에르제의 인간 이름이었다.

아까 물을 뿜었으니 이 정도로 봐주자.

그렇게 에르제를 포함한 시즌 그리팅 특별 퀴즈쇼는 기나긴 대기시간 덕분에 무사히 진행되었다.

각 멤버당 4문제씩 총 20개의 상품.

퀴즈쇼의 끝에는 각각의 상품에 정답자의 닉네임이 붙었다.

윤치우는 상자를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퀴즈쇼 1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 헉, 벌써?

― ㅠㅠㅠㅠㅠ 라이브 끝나요?

등의 채팅이 올라온다.

그러나 윤치우는 박수를 짝! 하고 치며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이제 라이브 방송은 종료될 예정이지만, 그 전에! 특별한 소식 하나를 여러분께 전하려고 합니다!”

이번 특별한 소식은 모카 엔터테인먼트에서 라이브 때 말해 달라고 부탁한 내용이었다.

현재까지 공식 팬카페로만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 다른 아이돌 그룹의 행보를 따르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의 발표는 에르제가 맡았다.

“현재 저희가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는 리버스 플랫폼에서 공식 가입이 가능해졌습니다.”

에르제는 미소를 띠며 말을 이어 갔다.

“자세한 내용은 공식 계정에 올릴 예정이므로, 조금 이따 확인해 보시면 될 거예요.”

― 헐, 멤버십??

― 그럼 비하인드랑 그런 거 리버스에 올라오는 건가?

― 멤버십 카드도 주나요??

리버스 플랫폼 공식 가입.

멤버십 가입은 유료로 진행된다. 솔직히 말해서 팬들에게는 부담이 되는 일이라 토트윈 멤버들은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장 대표를 만나서 설득했었다.

처음 장 대표가 원한 멤버십 가입의 형태가 기간제였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6개월마다 갱신해야 하는 멤버십, 그리고 가입하는 날짜도 정해진 형태였다.

‘실시간으로 가입하지 못하는 방식이었지.’

나름 그것만의 장점도 있을 수 있겠지만, 토트윈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상시 가입이 가능하도록 하고, 기간제를 철폐하자고 주장했다. 그리고 장 대표는 오랜 논의 끝에 허락했고 말이다.

‘가끔 보면 장 대표님은 옛날 사람 같아여.’

회의실을 나온 안단테가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무료로 가입이 가능하게 만들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그것까진 불가능한 일이었다.

“멤버십 가입은 상시 가능하고, 한번 구매하면 영구히 유지됩니다.”

에르제의 말에 채팅창에서는 다행이라는 반응의 채팅이 올라왔다가 사라졌다.

“자세한 내용은 리더의 말대로 공식 계정에 올라올 예정이니 한번 확인해 보시면 될 거예요.”

에르제는 준비된 마지막 대사를 읊고 난 뒤에 토트윈 멤버들과 함께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럼 다음에 뵈어요!!”

“조만간 또 라이브 방송할게요!”

아직 퀴즈쇼 2부가 남아 있다. 토트윈이 준비한 시즌 그리팅 굿즈들도 많이 남아 있었고.

그리고 돈이 따로 들어가지 않는 상품들도 준비를 해 뒀기에 앞으로 라이브 방송을 몇 번 더 해야 한다.

― ㅠㅠㅠㅠㅠ 이따 TV로 볼게요.

― 오늘 가요제전 끝나고 밤에 라이브 해 주면 안 돼?

― 요구 금지입니다

― 나는 이세계의 마왕……!!

― 안녀어어엉~~

― 에필로그 1위 축하해!!

“안녕!”

토트윈의 마지막 인사와 함께 라이브 방송이 종료되었다.

“…….”

“…….”

라이브가 완전히 꺼질 때까지 손을 흔들던 멤버들은 이내 녹초가 되어 소파에 쓰러졌다.

“흐어, 무대 올라가기 전에 진이 다 빠진 것 같아여.”

“그러게. 꽤 오래 방송한 것 같은데, 아직도 대기시간이 남았어.”

“2부에서도 후반에 편성되어서 그렇지 뭐.”

요즘에는 시청률도 별로 나오지 않는 3사의 가요제전.

이곳에 출연하는 게 얼마나 이득일지는 모르겠지만, 토트윈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괜히 출연을 고사했다가 방송국의 미움을 살 수도 있으니까.

슬슬 오랜 대기시간에 지쳐서 불만이 쌓여 갈 때쯤.

“토트윈, 대기하겠습니다!”

대기실에 들어온 스태프의 말에 토트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드디어!”

“은우야, 일어나.”

에르제는 잠시 눈을 붙이고 있다가 민주혁이 깨워서 소파에서 일어났다.

침대는 많이 익숙해졌으나, 소파는 아직 불편했다.

‘어깨랑 목이 좀 뻐근한 것 같은데.’

에르제는 손으로 뒷목과 어깨를 주물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준비한 거 까먹은 사람 없지?”

백스테이지에 도착한 후 윤치우가 한 말이었다.

“까먹을 수 없지 않나?”

태현우가 픽 웃으며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가요제전에서 뭘 ‘준비’하기는 했는데, 거창한 것을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시상식 무대와 12월에 발표한 디지털 싱글 ‘Epilogue’의 스케줄 때문이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는 가요제전의 준비를 가장 소홀할 수밖에 없었고, 편곡 등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준비한 것은 메들리 형태의 짧은 무대.

총 3곡을 엮은 메들리는 가장 최근의 곡들이었다.

태현우가 한 말의 의미는 그 부분을 지적한 것이었고 말이다.

“좋아. 춤만 포인트 잘 살려서 마무리 잘하자.”

윤치우가 손등을 앞으로 뻗었다.

아직까지도 무대에 오르기 전에 늘 하는 일.

나머지 멤버들의 손이 그 위를 차례차례 덮었다.

“셋, 둘, 하나!”

“아즈아아!”

윤치우의 구령에 맞추어 멤버들의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곧 토트윈 앞에 있던 가수의 무대가 끝나 가고 있었다.

최근 음악 방송 무대에 계속 서고 있었기 때문일까.

에르제는 더 이상 무대에 오르는 일이 낯설지 않았다.

두근거린다거나 긴장이 되지 않았다. 그저 익숙하게 하던 대로 할 뿐.

뭐랄까.

뱀파이어가 좋아하는 권태로움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더 완숙해진 느낌.

무대에 오르기 전, 쓸데없는 것들을 하나씩 버리는 작업이었다.

무대에서 팬들에게 최선의 무대를 보여 주기 위해 필요 없고 방해되는 감정들을 거세하는 작업.

그리고 없어진 감정들의 자리를 다른 것들이 비집고 들어와서 채우기 시작했다.

수많은 경험들.

이제까지 에르제가 무대에서 보고, 느끼고, 얻었던 수많은 경험들이 각자 하나의 파츠가 되어 모여들었다.

쿠웅.

에르제가 무대 모드로 변화하는 사이, 그들이 타고 있던 리프트가 서서히 위로 올라갔다.

점점 팬들이 지르는 함성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

“?”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토트윈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이번 가요제전 무대의 스테이지는 총 3개.

당연히 팬들(이브)이 있는 곳으로 토트윈의 무대를 배치할 줄 알았는데…….

토트윈은 오른쪽 무대, 팬들은 왼쪽 무대 앞에 있었다.

“왜 반대편에 계셔?”

“착오 아니야?”

리프트를 타고 올라온 토트윈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전 녹화가 아닌 생방송이다.

카메라에 이런 모습을 잡혀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앞에 봐. 티 내지 말고.”

복화술 수준의 민주혁의 말 덕분에 다들 정신을 차리고 카메라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뭔가 불안한데.’

그리고 에르제는 흘러나오는 MR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왠지 모르게 불길하다.

그리고 그런 에르제의 예상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이번 가요제전의 토트윈 무대는 굿즈 퀴즈쇼와는 다른 의미로 최악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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