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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37화 (237/307)
  • 제237화

    237화

    [ 에이리스에게 1장로의 위치를 전했어. ]

    대마녀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한 에르제는 굳은 얼굴로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시상식은 이제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고, 현재 1장로가 숨어 있는 산으로 간 것은 플랑을 포함한 일족들.

    판을 깔아 놓은 무대에 슬슬 배우들이 한곳에 모이고 있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한동안 토트윈의 활동이 잦아드는 그때.

    배우들은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연기를 펼칠 것이다.

    ‘슬슬…… 이것도 끝이 나겠어.’

    물론 당장은 에이리스가 1장로를 잡기 위해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1장로에게 서은우의 부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테니까.

    그녀의 목적은 1장로를 제물로 바쳐 서은우를 일단 지구에 강림시키는 것. 그리고 그 이후 서은우가 몸을 되찾는 것을 돕는 일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1장로에게 서은우의 부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들이 나, 에르제의 보호 아래 있다는 사실도 유추할 수 있을 터.

    그러면 서은우가 내 몸을 차지하기 어려워질 테니, 에이리스도 쉽사리 움직이기 어려울 거란 말이다.

    ‘무엇보다 1장로를 제물로 바치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야.’

    그래야 계획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황을 흘러가게 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은 에이리스를 1장로가 있는 곳으로 불러내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되었다.

    곧 에르제는 생각을 정리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 끝에는 한창 시상식 때 할 합동 공연 준비를 하고 있는 토트윈과 루비다이아의 멤버들이 보였다.

    “은우야! 여기 화음 한번 맞춰 보자!”

    “응. 알았어.”

    에르제는 태현우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무리에 합류했다.

    그러니 지금은 그들과의 악연을 끝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토트윈의 일에 집중해도 된다는 거다.

    “어딘데?”

    에르제는 태현우의 옆에 서서 그가 말한 부분이 어디인지 물었다.

    “여기.”

    태현우가 말한 부분은 곡 ‘Chaser’의 중요 파트였다.

    “도망갈 수 없게, 붙잡을 수 있게.”

    그는 직접 노래를 부르며, 포인트를 집었다.

    “나는 Chaser, 우린 Closer-.”

    그리고 뒷부분을 화음 버전으로 불러 주었다.

    “Chaser랑 Closer 여기 부분에서 화음이 들어가면 어떨까 싶어서.”

    “흐음.”

    에르제는 진지하게 고민하여 대답했다.

    “근데 록 버전으로 바꾼 건데, 화음이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

    “록이라고 해도 우리가 하드록이나 메탈을 하는 건 아니잖아. 사실 따지고 보면 원곡의 분위기를 섹시가 아니라 신나는 것으로 바꾼 것뿐이고.”

    “그건 그렇지.”

    “사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해. 완전히 록으로 편곡한 게 아니니까 록에서 느낄 수 있는 강렬함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거든.”

    “음.”

    “그래서 생각한 게 화음이야. 너랑 나만 화음을 넣는 게 아니고, 최소 4명 이상이 이 부분에서 화음을 넣는 거지.”

    “아하, 웅장한 느낌을 주겠다?”

    “바로 그거야!”

    태현우가 씩 웃으며 둘째손가락으로 에르제를 가리켰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성가대와 같은 웅장한 느낌은 힘들겠지만, 그래도 최소 4인 이상이 쌓을 화음은 듣는 이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안겨 주기에 충분하리라.

    “애매하게 신나는 것보다 아예 보컬로 승부수를 띄우겠다는 얘기네.”

    “맞아. 어쨌든 록 편곡이긴 하니까 드럼 소리를 뚫고 나오려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나는.”

    “괜찮은 것 같네. 그럼 나머지 둘은 루비다이아 멤버에서 차출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미 그렇게 이야기해 뒀어.”

    빠른 일 처리로군.

    에르제는 피식 웃으며 태현우가 불러 주었던 음정을 따라 화음을 쌓았다.

    어느덧 둘의 목소리가 연습실에 울려 퍼지고, 그사이 가까이 다가온 루비다이아 멤버 둘도 화음을 쌓았다.

    그들도 메인과 리드 보컬인 만큼, 노래 실력이 뛰어나 태현우와 에르제를 잘 따라왔다.

    동시에 안단테가 재생한 편곡 버전 MR까지 틀자, 확실히 태현우가 말한 느낌이 잘 살았다.

    강렬하게 들어오는 드럼의 비트와 일렉기타 소리, 그리고 그 위로 입혀지는 4명의 화음.

    ‘이건…….’

    확실히 괜찮았다.

    에르제는 찌르르 올라오는 소름을 느끼며 의견을 덧붙였다.

    “확실히 해 보니까 네 말이 무슨 뜻인지 더 잘 와 닿네.”

    “그래? 다행이다!”

    “대신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쓰는 것보다는 아예 포인트를 확 주는 게 좋겠는데? 킬링 포인트로.”

    “오!”

    태현우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 완전 동의!”

    “저도 좋아요.”

    루비다이아의 두 멤버도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다.

    “그럼 킬링 포인트를 어디에 줄지 골라 볼까요?”

    에르제는 악보를 꺼내 주르륵 펼쳤다.

    그리고 4명의 손가락은 일제히 같은 곳을 가리켰다.

    * * *

    루비다이아 멤버들과의 연습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중간중간에 하얀의 과한 접근이 있긴 했지만, 에르제는 다행히 주변 이들에게 티 나지 않게 적절히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 오늘도 빛이 나는 서은우 님의 외모! ]

    물론 같이 사진을 찍는 것은 거절하지 못해서 단톡방에 가끔 올라오는 하얀의 코코아톡까지 막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12월의 마지막, 시상식이 끼어 있는 주가 다가왔다.

    “시상식 무대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 전에 가요제전 무대도 중요해.”

    그리고 장 대표와 이윤의 말에 따라 토트윈은 가요제전 무대도 착실히 준비했다.

    시상식보다 앞서서 방송되는 가요제전은 3사에서 동시에 방송되었는데, 토트윈은 이번에도 작년과 같은 방송사에 나가게 되었다.

    “솔직히 요즘 가요제전은 시청률도 별로 안 나오지 않나?”

    방송국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이, 멤버들밖에 없을 때 태현우가 투덜댔다. 의상과 헤어, 메이크업은 이미 마친 상태였다.

    “솔직히 가요제전 무대를 준비할 시간에 시상식 무대를 준비하는 게 더 좋을 텐데.”

    “그래서 이번에는 팬들을 위한 이벤트를 열잖아.”

    민주혁이 피식 웃으며 태현우의 말에 대답했다.

    그 말대로였다.

    요즘에는 팬들이 아니면 거의 보지도 않는 가요제전의 특성을 활용한 이벤트, 그리고 이것을 기획한 것은 토트윈 멤버들이었다.

    “슬슬 시작할 거니까 그만 투덜대고 준비해.”

    그들이 가요제전에 나오는 것은 2부 후반이어서 대기시간이 한없이 길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오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 토트윈은 대기실에서 깜짝 라이브 방송을 할 예정이었다. 이벤트도 함께.

    [ 시즌 그리팅! 토트윈의 깜짝 라이브 방송! ]

    곧 공식 계정에 알림이 올라오면서 토트윈이 켠 라이브 앱으로 팬들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 헉! 무슨 일이야!!

    ― 가요제전 대기실인가?? 근데 여기서 방송해도 되는 거예요?

    ― 현우야!! 누나가 왔다아아앜!!

    ― 깜짝 라이브라니……. 미리 공지 좀 올리지. ㅠㅠ

    토트윈은 빠르게 올라오는 채팅에 답해 주었다.

    “안녕하세요! Trick or Treat! 토트윈입니다!”

    “방송국 허락을 맡아서 괜찮아요!”

    “누나, 안녕하세요~!”

    “미리 공지를 올리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마지막 대답은 윤치우였다.

    윤치우는 하하, 웃으며 오늘 라이브 방송을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여러분 혹시 연말과 관련해서 소속사에서 아무런 말이 없는 게 좀 이상하지 않으셨나요?”

    라이브 방송 제목에도 적혀 있듯 ‘시즌 그리팅’과 관련해서 올해 모카 엔터테인먼트는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원래는 연말 인사를 뜻하는 ‘시즌 그리팅’은 아이돌 세계에서는 변질되어 ‘굿즈’ 등을 판매하는 마케팅의 형태가 되었는데.

    올해는 그것과 관련된 어떠한 떡밥도 나오지 않아서 팬들은 의아해하던 참이었다.

    개중에는 또 패야 하냐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는데…….

    ― 설마, 오늘 시즌 그리팅 관련 라이브야??

    ― 대박! 혹시 몰라서 돈 안 쓰고 있었는데!!

    ― 허류ㅠㅠㅠ 왜 이렇게 늦어.

    ― 떡밥이 이제야……!!

    이브들은 뒤늦은 시즌 그리팅 소식에 기뻐하면서도 동시에 슬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는 모두 토트윈의 예상 범위 안에 있었다.

    “하하하.”

    밝은 웃음을 터뜨린 윤치우가 멤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사실 저희가 시즌 그리팅이라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저희가 준비한 건 선물이에요.”

    “저희가 무대에 나올 때까지 계속 기다리기 지루하실 것 같아서 일부러 지금 타이밍을 잡은 점 양해 바랍니다.”

    민주혁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고, 곧 멤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 한 아름 무언가를 안고 화면에 다시 등장했다.

    슬슬 토트윈이 말한 의미를 파악한 팬들이 채팅창에서 느낌표와 물음표를 번갈아 쓰고 있었다.

    “저희가 손이 모자라서 다 보여 드리지는 못하는데, 지금 들고 온 건 시즌 그리팅으로 판매하려는 굿즈들이에요.”

    “하지만 그걸 저희가 어떻게 했다?!”

    태현우가 배턴을 안단테에게 넘겼고.

    “모두 샀어여!”

    그는 히히 웃으며 대답했다.

    “전부는 아니고 일부만 저희가 구매했습니다.”

    물론 민주혁이 그의 말을 빠르게 정정했지만, 그렇다고 토트윈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할 이브들이 아니었다.

    ― 헐……. 설마?

    이런 채팅들이 우르르 올라오기 시작했다.

    씩 웃은 윤치우가 멘트를 정리했다.

    “오늘 저희가 이벤트를 통해서 여러분들께 저희 사비로 산 굿즈들을 선물하려고 해요. 조금 전에 주혁이가 말했듯이 굿즈 전부를 구매한 건 아니지만요.”

    “와아아! 박수!!”

    태현우의 호응 유도에 나머지 토트윈 멤버들과 이브들이 짝짝짝 박수를 쳤다.

    물론 이브들의 박수는 손바닥 이모티콘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토트윈이 준비한 이벤트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들의 사비로 준비한 것과, 장 대표가 무료로 푸는 것들. 한 마디로 이브들이 돈을 쓰지 않아도 굿즈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기존에 구매하려고 하셨던 분들도 충분히 구매하실 수 있도록 물량은 충분하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윤치우는 혹시 모를 일까지 미연에 방지하고자 이런 말까지 언급하고, 테이블 위에 놓인 하얀 박스를 집어 들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없도록 포장된 상자였다.

    “랜덤으로만 이벤트 대상자를 뽑는 건 너무 진부하니까 오늘은 라이브 기념으로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할까 합니다.”

    윤치우는 능숙하게 MC의 역할을 수행하며 이브들의 궁금증을 더욱 부추겼다.

    “그건 바로……!”

    에르제가 미리 준비해서 가지고 온 플래카드가 윤치우의 뒤로 등장했다.

    개판 글씨와 함께 만듦새가 조악한 플래카드에 이브들이 채팅창에 ‘ㅋㅋ’을 도배했다.

    하지만 그들이 플래카드의 내용을 알아보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 토트윈 배 제1회 퀴즈쇼! >

    “저희가 준비한 첫 이벤트는 토트윈 퀴즈쇼입니다. 총 20문제가 나갈 예정인데, 당연히 멤버별로 4개의 문제가 나갈 거예요.”

    윤치우가 멤버들 앞에 놓인 상자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퀴즈의 정답을 맞히는 분께 각 멤버가 구매한 굿즈를 선물로 드립니다!”

    윤치우는 왠지 모르게 긴장한 멤버들을 보며, 그의 앞에 놓인 상품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가 가져온 상자들 중에서 가장 큰 상자였다.

    “우선은 제 질문부터 시작하도록 할게요.”

    그의 말과 함께 순식간에 채팅창이 조용해졌다.

    아마도 화면 밖의 이브들은 엄지를 자판 위에 올려 둔 채 대기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한 문제가 아니지.’

    에르제는 입을 떼는 윤치우를 보며 웃음을 삼켰다.

    이번에 그들이 준비해 온 문제의 난이도는 ‘극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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