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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35화 (235/307)

제235화

235화

에르제의 예상대로 1장로는 서은우의 부모를 최대한 들키지 않을 곳에 숨겨 두었다.

안전하다고 여긴 아지트가 들킨 뒤였기에 1장로와 그 무리들은 계속 이동을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서은우의 부모님을 데리고 다니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판단했을 터였다.

하지만 반대로 그 의미는.

‘그만큼 1장로의 움직임이 빠르다는 이야기야.’

대마녀와 지서후의 합작이겠지만, 그래도 서은우의 부모를 찾은 시점이 예상보다 빨랐으니.

1장로도 이곳을 뜬 지 꽤 오래되었을 거란 의미였다.

‘그날 바로 왔더라도 늦었겠어.’

태현우, 그러니까 일반 인간들이 김현동에 관한 소식을 들었을 정도라면…… 1장로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시점은 그보다 훨씬 이전이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내 정보 수집이 느렸기 때문이야.’

에르제는 주먹을 꾹 쥐었다. 손톱이 살갗을 약하게 파고들었다.

“로드, 아까운 피가…….”

라하임이 만류했지만, 에르제는 고개를 저었다.

“내 불찰이야. 1장로를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까드득, 이를 악무는 에르제를 보며 라하임이 소곤소곤 이야기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면, 로드 밑의 모두가 책임이 있는 겁니다.”

“…….”

“어쨌든 1장로를 굴 밖으로 나오게 만들었으니, 이제 흩어져서 숲속을 뒤지기만 하면 됩니다. 이곳처럼 1장로를 완전히 숨겨 줄 곳은 없으니까요.”

그 말에 에르제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라하임의 말이 맞다.

더 이상 1장로가 갈 곳도, 안전하게 지낼 곳도 없다.

딱 하나, 1장로가 에이리스에게로 돌아가는 길도 있긴 했지만, 그것만큼은 절대로 선택하지 않을 테니까.

‘본인의 목숨을 건사하기 위해 이러고 있는 녀석이 제 발로 자기 생명을 가져다 바치지는 않겠지.’

에르제는 고개를 돌려 라하임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이제 괜찮아.”

에르제는 그의 어깨를 두들기고는 걸음을 옮겨 창고 밖으로 향했다.

그의 뒤를 따라 걷는 라하임의 발소리가 들렸다.

“연말까지 내가 이렇게 움직일 시간이 거의 없을 거야. 멤버들의 눈을 피해서 돌아다니는 것도 힘들고.”

“예.”

“그리고 우리 로드 매니저로 뛰고 있는 너도 마찬가지일 거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네 명령을 대신 수행해 주던 바란이라는 녀석도 없지.”

“……새로 구할까요? 하지만 믿음직스러운 뱀파이어가 딱히…….”

라하임의 말은 사실이었다.

바란을 의심하면서도 계속 쓰고 있었던 이유는, 그를 대체할 만한 뱀파이어가 마땅히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업무 수행 능력을 따지면 그와 비슷한 수준이야 구하려면 구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이들 역시 바란과 마찬가지로 썩 믿음직스럽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다고 일족들 중에 고르자니, 그들은 이미 이런저런 일들을 맡아서 하고 있는 상태.

에르제와 라하임, 두 뱀파이어가 모두 자리를 지킬 수 없으니 발생하는 문제였다.

“라하임, 지금이라도 매니저는 그만두는 편이…….”

“로드.”

그러나 라하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로드께서 분명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각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면 좋겠다고.”

“……그건 에이리스와의 일이 끝난 뒤에…….”

“제 발로 퇴사했다가 다시 모카 엔터의 매니저로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불확실성이 너무 높다고 생각합니다만.”

“…….”

에르제가 침묵하자, 고민하던 라하임이 대안을 내놓았다.

“차라리 세리나를 본부로 다시 불러들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현재 악기를 조사하는 일은 일족이 아닌 뱀파이어들 중 하나에게 맡겨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 플랑이 함께하고 있으니, 배신에 대한 대처도 쉬울 듯하고요.”

“그럴 수도 있겠네.”

세리나라…….

어느 작은 마을의 어린 뱀파이어 녀석은 지구에 온 이후로 자신과 함께 있으면서 크게 성장했다.

자신의 피를 받아 직계급의 뱀파이어가 되어 전보다 더 강한 힘을 얻기도 했고.

‘제 한 몸 지킬 힘은 있을 테니까.’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여 승낙했다.

“세리나에게 네가 전달해 줘.”

“예, 로드.”

대답하는 라하임이 미소를 지었다.

“영민하신 판단입니다.”

“내 생각이 아니라 네 생각이잖아.”

왜 모든 공을 자꾸 자신에게만 돌리려고 하는 것인지.

에르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회사 차에 올라탔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에르제는 1장로의 소식이 전혀 엉뚱한 곳에서 들려오리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 * *

‘Epilogue’의 음원 순위가 각종 차트에서 1위에 안착하기 시작했다.

― 명실상부 토트윈은 1군이다, 이제!

┖ LAK 요즘 활동 안 하던데. ㅋㅋ 밀어낼 때 됐지.

― 이번 시상식 무대 정말 기대된다.

┖ ㅇㅈ 작년에도 콜라보 되게 괜찮았는데, 역시 춤이랑 노래 다 잘해야 덕질 할 맛 난다.

┖ 저격 자제 좀;;

┖ 어디 팬이시길래 저격 타령임. ㅋㅋㅋ 그냥 톹윈 칭찬하는 얘긴데 괜히 혼자 찔림. ㅋㅋㅋ

┖ ㅅㅂㅋㅋㅋ 오랜만에 웃겼다. ㅋㅋㅋ

― 근데 우리 애들 건강 걱정된다. ㅠㅠㅠ 저번 무대 할 때 단태 안색 엄청 안 좋던데…….

┖ 병약돌……. 오히려 좋아.

┖ ㅇㄷ ㄲㅈ 그러다가 진짜 쓰러진다고.

┖ 이 와중에 취향 찾네;;

┖ 근데 보글보글에 올라오는 애들 일상 이야기 보면 딱히 먹는 거나 일정이 그렇게 무리인 건 아닌 듯?

┖ 속사정은 모르는 거야. 원래 거기에 그런 얘기 쓰겠냐?

― 이번 에필로그 가사 진짜 감동임. ㅠㅠ 집에서 혼자 듣다가 울컥함.

┖ ㅇㅈ……. 이 정도면 팬송 아니냐고.

┖ 솔직히 토트윈 팬은 아닌데, 이번 노래는 좋더라. ㅎㅎ

┖ ……할 거면 제대로 해. 티 나잖아(속닥속닥).

에르제는 다양한 커뮤니티를 들여다보다가 예전보다 악플이 많이 줄어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쪽으로는 신경이 무딘 편인데도 ‘이건 좀’ 하는 글들이 많이 보였는데, 이제는 그런 글들이 조금 덜 보이게 되었다고 할까?

여전히 비슷한 빈도로 올라오지만 이브들이 죽창 들고 패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토트윈을 싫어하던 이들이 줄어든 것인지 모르겠지만.

‘후자였으면 좋겠는데.’

에르제가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옆에서 메이크업을 받던 민주혁이 눈동자만 굴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기만 했는데도 에르제가 뭘 봤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냥 건드릴 수 없게 된 거야.”

“응?”

“팬덤 크기가 커져서 타 팬들이 더 이상 우리한테 뭐라 하지 못하는 거라고. 역풍 맞을까 봐.”

“……아하.”

자신의 표정이 그렇게 티가 났던 건가.

생각을 읽히는 건 오랜만이라 꽤 떨떠름하면서도 어색한 기분이었다.

그것도 인간에게 말이다.

하지만 이어진 민주혁의 말에 에르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일 있어?”

“……? 갑자기 그건 왜?”

“요즘 너 계속 정신이 다른 데 팔려 있는 사람 같아서. 혹시…….”

민주혁이 주변에 있는 다른 멤버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작게 속삭였다.

본인 옆에 메이크업 선생님이 있다는 건 깜빡한 모양이다.

“악귀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는 거야?”

삐끗, 민주혁의 뜬금없는 소리에 붓이 길을 잃었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아직도 아이돌 짬바가 이렇게 모자라서야.’

에르제는 속으로 쯧쯧 혀를 차고는 화제를 돌렸다. 역시 토트윈에 자신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냥. 우리 활동과 관련해서 계속 생각이 많아서 그래.”

“흠, 그래?”

“응. 오늘도 음방 무대 잘해야 하잖아. 라이브이기도 하고.”

그 말에 민주혁이 피식 웃었다.

“우리가 라이브 걱정을 하기에는 여태 너무 잘해 오지 않았나? 무대 소품 문제만 아니라면, 우리가 춤이랑 노래를 하다가 실수하지는 않을 거 같은데.”

자신감 넘치는 말이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그동안의 연습량과 들인 노력을 생각하면 말이다.

‘오죽하면 안단테가 쓰러지기까지 했겠어.’

그렇게 하고도 제대로 못 한다면, 그냥 타고난 재능과 실력 탓일 거다.

그리고 그게 모자랐다면 토트윈이 지금의 위치에는 못 섰을 테고.

이번에는 메이크업 선생님도 당황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인정하고 있다고 봐도 되겠지 뭐.

에르제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메이크업은 이미 혼신의 힘을 다한 메이크업 선생님에 의해 완성된 상태였다.

‘지서후랑 통화를 좀 하고 와야겠어.’

아직까지도 1장로를 찾지 못해서 초조하니.

뭐라도 진행 사항을 들어 두어야 무대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

“어? 어, 알았어.”

에르제는 산뜻하게 미소를 지어 준 뒤에 대기실을 나왔다.

다른 멤버들은 자투리 대기시간을 이용해 짧은 수면에 빠진 상태였기에 통화할 여유는 지금밖에 없었다.

에르제는 복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지서후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링, 띠리링.

통화 연결음이 들리더니 지서후가 전화를 받았다.

[ 어, 왜. ]

“1장로랑 악기에 관해서 진행 상황 좀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

[ 똑같지 뭐. 이 X끼, 진짜 흔적 지우는 데 완전 전문가야. 찾을 만하면 사라지고 아주 미치겠다, 진짜. 우리 부족 애들도 열받아서 죽으려고 해. ]

“……그렇다고 보자마자 사지 찢어서 죽이면 안 돼.”

[ 당연하지. 그랬다간 곧바로 대악마 강림 시나리오 아니냐. 그 정도 사리 분별은 해, 자식아. ]

격의 없는 말에 에르제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무튼 악기 많은 곳 위주로 계속 조사하다 보면, 카얀(1장로) 녀석이나 부하 놈들이랑 마주칠 거야. 그놈도 무조건 악기가 필요할 테니까.”

[ 어어. 알았다. 발견하면 곧바로 연락 줄게. ]

“응. 고생해.”

고생하라는 말로는 부족하겠지만, 지금 당장 에르제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다행히 서은우의 부모는 뱀파이어 본부로 모시고 와서 안전하게 보호 중이었으나, 1장로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즉, 에이리스를 쳤을 때처럼 뱀파이어 본부를 습격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는 뜻.

최대로 경계 태세를 펼치고 있지만, 녀석의 능력인 도플갱어가 문제였다.

‘그것 때문에 최대한 빨리 1장로의 소재를 찾아서 감시 아래 둬야 하는데.’

대기실로 다시 돌아온 에르제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

지서후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

방금 전에 통화했는데, 그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에르제가 전화를 받자, 당황스러운 듯한 지서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 ……음, 이거 내가 너한테 연락을 하는 게 맞나 싶기는 한데. ]

“뭔데? 1장로에 관한 일이야?”

[ 그것도 잘 모르겠어. 그냥 널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만 하는데. ]

“……누군데?”

[ 이름은 밝히지 않아서 모르겠고, 이렇게 전해 달래. ‘에르제와 다담을 나누었던 친우’라는데? ]

다담(茶談)?

자신이 누군가와 다담을 나누었던가?

아주 오래전에 제이가 숙소까지 찾아왔을 때 우롱차를 마시던 걸 제외하면……. 딱히 기억나는 이가 없는데.

에르제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니, 지서후의 말이 이어졌다.

[ 아, 그러고 보니 종족이 드워프야. 지구에 드워프가 있었나? ]

지서후의 말에 에르제의 기억도 빠르게 되살아났다.

‘드워프.’

예전 알바 몬스터 촬영으로 대장장이 알바를 하러 갔을 때 만났던 그 드워프다.

파르만.

그러나 그가 자신을 만나려 하는 이유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때 했던 홍보 덕분에 토트윈의 팬이라도 된 건가?

에르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지서후에게 말했다.

“서울로 데려올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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