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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34화 (234/307)
  • 제234화

    234화

    ‘목을 막 물어뜯으려고 했다던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에르제는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여태껏 1장로의 거처를 찾지 못하는 이유가 만약 그래서였다면?

    “다시 말해 봐.”

    에르제는 태현우의 어깨를 붙잡은 채 그렇게 말했고,

    “어? 그…… 김현동이 마약을 했다고 한 거?”

    “아니, 그 뒤에 했던 말.”

    “목을 물어뜯으려고 했다는 거 말이야?”

    태현우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대답하다가 에르제의 손을 툭툭 두들겼다.

    “아파.”

    “아, 미안.”

    에르제는 황급히 그의 어깨에서 손을 떼며 표정을 수습했다.

    “괜찮아.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어.”

    태현우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고, 그런 에르제를 윤치우가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에르제는 한 발 떨어져서 걸어가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 장진규가 머물고 있는 곳이 어디였지?’

    장진규는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자 배우로 활동하고 있었고, 그동안 새로운 뱀파이어들을 영입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대부분은 곳곳에 흩어져 있는 뱀파이어들을 찾아내는 것이 전부였으나, 저번에 한 번은 잃어버렸던 일족을 찾아오기도 했다.

    ‘그래서 계속 그 역할을 맡기고 있었는데.’

    때문에 장진규는 뱀파이어 본부가 아닌 외부에서 머무는 기간이 훨씬 길었다.

    보고도 스마트폰으로 하고 있었으니, 굳이 뱀파이어 본부까지 올 이유도 없었고 말이다.

    에르제는 미간을 좁혔다.

    ‘장진규가 보고하던 대상은…… 바란이었겠지.’

    아마 당시 뱀파이어 본부의 책임자로 있었던 게 바란이었으니 그랬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바란은 이번에 끄나풀임이 확인돼 제거했고, 그에 따라 장진규는 보고할 대상이 사라졌겠지.’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바란의 배신을 일족들이나 뱀파이어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심지어 외부에 있는 장진규가 그 사실을 알 리 없었고.

    괜히 분란을 키우기 싫어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을 제외하고는 숨기고 있던 사실이었는데…….

    ‘장진규는 바란이 없어졌는데도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어.’

    적어도 라하임에게라도 연락했었어야 했다.

    바란과 연락이 안 된다고 보고하거나 직접 본부로 찾아오거나.

    그러나 장진규는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에르제의 표정이 점차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장진규의 신변마저 확실하지 않다는 것.

    ‘우혈충을 다시 심어 둘 걸 그랬어.’

    예전에 장진규에게 심었던 우혈충을 제이가 가사 상태에 빠뜨렸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이렇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애초에 장진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곤 생각도 못 했고.’

    솔직히 말하자면, 일족들을 찾은 이후로는 관심의 대상에서 아예 벗어나 있었다.

    에르제는 차에 타는 멤버들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하필 제일 바쁠 때에…….’

    그러나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 봐야 한다.

    1장로가 장진규를 붙잡고 있는 건지, 아니면 장진규가 바란처럼 뱀파리스 쪽에 붙은 건지 확인해야 하니까.

    ‘……인간을 물어뜯을 정도로 망가진 뱀파이어는 뱀파리스일 확률이 높으니까.’

    후, 숨을 뱉어낸 에르제가 차에 올라탔다.

    * * *

    “X발, 내가, 조심, 하라, 했지!”

    “죄, 죄송…….”

    1장로는 뱀파리스 하나를 계속해서 발로 밟고 있었다.

    에이리스를 치기 위해 그에게 힘을 보태러 따라온 뱀파리스 중 하나였으나, 이번 일만큼은 쉬이 용서해 줄 사안이 아니었다.

    “경찰이, 먼저! 잡았잖아! 멍청한 X끼야!!”

    퍽! 퍼억!!

    무자비한 발길질이 몇 번이나 더 이어지고 난 뒤에야 1장로는 씩씩거리며 겨우 분노를 가라앉혔다.

    “흐으, 끄으으으…….”

    다행히 목숨이 끊어지지는 않았는지 신음을 뱉어내는 소리가 들렸다.

    1장로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다시 차분해진 말투로 말했다.

    “수습해. 김현동, 그놈 내 앞에 데려다 놔.”

    1장로의 말에 양옆에 부복해 있던 뱀파리스들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움직여! 빨리 움직여!”

    서둘러 움직이는 뱀파리스들.

    그들 중 하나가 쓰러져 있는 뱀파리스까지 둘러업고 나간 뒤에야, 1장로는 한숨을 뱉어내며 눈을 꾹 감았다.

    “꼬였네.”

    웬만하면 이곳에 더 머무르고 싶었는데, 빌어먹을 부하 하나 때문에 일이 단단히 꼬여 버렸다.

    “도대체 멀쩡한 인간을 왜 그렇게까지 피를 빨아서…….”

    1장로는 옆에 놓여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 인간의 피를 빤 것까지는 뭐라고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걸 멍청하게 도망치도록 놔두었다니.

    ‘물론 본인은 죽였다고 생각했겠지만.’

    인간의 생명력이란 생각보다 끈질긴 법이거늘.

    덕분에 광기에 물든 상태가 되어 다른 사람의 목까지 물어뜯으려 했다고 한다.

    아주 동네방네 소문이 다 날 정도로 이야기도 퍼진 모양이고.

    ‘그 정도면 에르제도 눈치챘겠지.’

    1장로는 눈두덩을 꾹꾹 눌렀다.

    에르제의 판단 능력은 탁월하다. 힘이 아니라 두뇌로 일족들을 이끌었다는 평이 있을 정도니까.

    아마 조만간 이곳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올 것이다.

    ‘또 옮겨야 할까.’

    이곳만큼은 안전하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1장로는 입술을 씹으며 옆에 피투성이가 되어 널브러져 있는 뱀파이어 하나를 바라보았다.

    현재 그들이 숨어 있는 건물의 대표, 장진규였다.

    녀석이 보고를 하고 있던 대상이 바란 하나뿐이라 바란이 에르제에게 제거된 이후 장진규는 중간에 붕 뜨게 되었다.

    그래서 장진규로부터 소식이 끊겨도 에르제가 눈치챌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는데, 멍청한 부하를 둔 상사의 죄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1장로는 의자에서 일어나 장진규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하얀 손으로 그의 턱을 들어 올렸다.

    “흐…… 으.”

    조금 전에 실려 나갔던 뱀파리스 녀석보다 더욱 처참한 몰골이었다.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고, 온몸에는 더디게 회복되고 있는 멍투성이였다.

    장진규는 맞아서 퉁퉁 부은 눈을 힘겹게 뜨고 1장로를 바라보았다.

    녀석의 목소리는 한껏 떨려 나왔다.

    “도대체…… 왜…….”

    가쁜 숨소리에 원망이 잔뜩 섞여 있었다.

    “같은…… 같은 뱀파이어인데…… 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하긴, 장진규는 카테이아 대륙에서부터 같이 있던 뱀파이어가 아니니 그렇게 받아들일 만하지.

    장진규가 1장로를 의심 없이 안에 들였던 것도 그래서였으니까.

    “왜긴.”

    1장로는 손을 들어 그대로 장진규의 얼굴에 내리쳤다.

    퍼어억!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에르제가 내 적이니까.”

    에이리스도 마찬가지고.

    뒷말을 삼킨 1장로는 피 묻은 손을 벽에 대충 닦아 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죽이고 자리를 뜰까, 아니면 이대로 남겨 둘까.’

    어느 쪽이 이득인지 따져 보면 둘 다 별 소득이 없어서 동률이었다.

    죽이나 살리나, 자신의 계획에는 딱히 지장이 없으니까.

    하지만 어느 쪽이 손해인지를 따져 보면 죽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어차피 자신은 이곳을 떠서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겨야 할 판이다.

    에르제가 녀석을 회복시키면 보잘것없어도 전력이 하나 늘어나는 꼴이 된다.

    생각을 마친 1장로는 쯧, 하고 혀를 차곤 송곳니를 드러냈다.

    “네 힘은 내가 유용하게 써 주마.”

    “제……발.”

    1장로의 송곳니가 장진규의 목덜미를 깊이 파고들어 갔다.

    * * *

    ‘한발 늦었나.’

    에르제는 아무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곳을 노려보며 입술을 씹었다.

    “아무도 없는 듯합니다.”

    옆에 있던 라하임도 그렇게 느낀 모양이다.

    “직접 확인해 보겠다.”

    플랑이 건물 창고의 문을 부수고 들어갔고, 에르제와 라하임 그리고 같이 따라온 뱀파이어 몇도 안으로 들어섰다.

    1장로와의 전투가 벌어질 것을 염두에 두고 데려온 이들이었는데, 이미 1장로는 눈치를 채고 떠난 뒤였다.

    “아무도 없…….”

    말을 하던 플랑은 구석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지는 않다. 시체이지만.”

    플랑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미라처럼 변한 몸이 하나 보였다.

    “장진규.”

    에르제는 그의 이름을 씹듯이 뱉어내며 빠르게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역시…… 죽었구나.’

    에르제는 며칠 전 대마녀에게서 온 메시지를 떠올리며 이마를 찌푸렸다.

    [ 1장로에게 있는 혈석의 힘이 조금 강해졌어. ]

    설마 장진규를 흡혈했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그랬던 모양이다.

    에르제는 눈도 채 감지 못하고 죽은 장진규의 눈을 감겨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진규는 뱀파이어 본부로 보내서 관에 눕히도록 해. 제일 좋은 관으로.”

    “알겠습니다.”

    같이 따라온 뱀파이어들이 명을 받들었다.

    밖으로 옮겨지는 장진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라하임이 에르제에게 물었다.

    “1장로는 어디로 갔을까요?”

    “……남아 있는 흔적으로는 추측이 좀 어려운데.”

    에르제는 주변을 빠르게 살폈으나, 그들이 향한 곳까지 예측하기는 힘들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없었던 것처럼 흔적이 사라졌으니까.

    “플랑.”

    에르제는 정승처럼 서 있는 녀석의 이름을 부르며 물었다.

    “세리나는 아직 그곳에 있나?”

    “그렇다. 악기를 조사하는 중인데, 아직 특별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곳이 지금까지 발견된 곳들 중 악기가 제일 많이 모여 있다고 했지?”

    플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곳은 일단 계속 감시하에 두는 것이 맞다.

    에이리스의 계획, 그러니까 악기의 틈에서 기어 나오는 악마들을 처리해야 하니까.

    ‘하지만 세리나 혼자 두기에는 불안하니 플랑을 다시 붙여 놓는 게 좋겠어.’

    세리나는 아이돌 에르제에게는 든든한 힘이 되어 주는 홈마이지만, 뱀파이어 세계에서는 무력이 약한 아이다.

    오늘 플랑이 이곳까지 온 건 1장로와의 전투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뿐.

    “플랑, 너는 일단 세리나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도록 해.”

    “알겠다.”

    군말 없이 발길을 돌린 플랑은 곧바로 박쥐로 변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시선을 다시 앞으로 돌린 에르제는 다시 한번 창고 내부를 훑었다.

    ‘1장로는 서은우의 부모도 계속 데리고 다니고 있을까?’

    안전하리라고 여겼던 아지트가 들킨 뒤였다.

    지금까지는 그랬을지 몰라도, 앞으로는 그러지 못할 가능성이 꽤 컸다.

    ‘1장로의 거처를 찾겠다고 호언장담하더니.’

    에르제가 대마녀와 지서후의 일 처리에 살짝 불만을 표하고 있을 때였다.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때마침 대마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 속마음을 읽고 있는 건 아니겠지……?’

    괜한 걱정을 하면서 에르제는 그녀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 서은우의 부모, 찾았다. ]

    그 내용은 에르제가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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