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3화
233화
‘Epilogue’ 음원은 뮤직비디오의 공개와 더불어 순식간에 차트 순위권으로 빠르게 치고 올라갔다.
곧바로 1위를 달성하지는 못했는데, 현재 1위 곡이 토트윈의 저번 달 곡 ‘Parados’였기 때문이다.
“와! 동시에 1, 2위를 하고 있어여.”
안단테는 무사히 고열과 싸워 이겨 냈고, 이틀간 죽과 약을 복용한 결과 지금은 완벽하게 컨디션을 회복한 상태였다.
에르제가 준 생명력 덕분에 오히려 전보다 더 쌩쌩해진 느낌이다.
‘Epilogue’의 첫 음악 방송 무대를 마치고 잠시 대기실로 돌아온 토트윈은 신나서 여러 음원 차트를 들락날락거리며 연신 시시덕댔다.
‘무사해서 다행이네.’
에르제는 우와우와, 하고 있는 안단테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아마 이번 일 때문에 소속사에서도 당분간은 무리한 일정을 잡지는 않을 것이다.
가뜩이나 마이너스의 손이라며 욕을 먹고 있는데, 이대로 다른 멤버가 또 쓰러진다고 생각해 봐라.
이제 자신이 생명력을 나누어 주는 것도 서은우의 몸 탈취 때문에 조심해야 하기에 모두를 케어할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필히 병원에 입원하는 멤버들도 생길지 모르고, 분명 그렇게 되면 구설수도 날 터.
현재 토트윈의 인기는 웬만한 톱급 아이돌 수준이기 때문에, 만일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소속사는 상당한 여파와 악성 댓글에 시달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팬덤도 거대해져서…….’
공식 팬카페의 숫자도 그새 엄청나게 늘어났고, 최근에는 회원제 홈페이지까지 만든다 어쩐다 하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 마음먹고 매를 들기 시작하면 아마 장 대표는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 거다.
‘그러니 알아서 스케줄을 조정해 주겠지.’
이왕이면 연말에 있을 시상식, 루비다이아와의 일정이 취소되면 정말 좋겠다.
춤은 추지 않는다고 했지만, 하얀을 또 보게 되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우니 말이다.
‘그나저나 내 스케줄은 왜 줄어드는 기분이 안 들지.’
에르제는 한숨을 푹 내쉬며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일족들이 보내온 보고 코코아톡이 잔뜩 쌓여 있었는데, 그것들 대부분은 ‘악기’가 모여 있는 곳을 찾아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1장로가 숨어 있는 곳을 발견했다는 내용은 없었으므로, 그저 지도 위에 따로 표시만 해 두고 있는 실정이었다.
‘부디 이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갈 수 있기를.’
에르제는 즐거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토트윈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슬슬 가자. 라하임 매니저님이 기다리겠다.”
그러고 있으니, 윤치우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멤버들을 이끌었다.
“그렇지 않아도 데리러 왔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문이 열리며 라하임이 들어왔다.
“가시죠.”
라하임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오라고 말했고, 멤버들은 “앗, 네!”라고 대답하고 우르르 대기실 밖으로 나왔다.
원래 토트윈을 전담하고 있던 이윤은 치프 매니저가 되어 다른 걸그룹까지 맡게 되었고, 따라서 대부분의 자잘한 토트윈 일정은 라하임이 맡고 있는 실정이었다.
어느덧 멤버들과 라하임은 굉장히 많이 친해진 뒤였다.
“하임이 형! 중간에 카페 들러도 돼요?”
“뭐 드시고 싶으신 게 있습니까?”
그리고 그건 이윤보다 잔소리가 현저히 적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안 돼’ 잔소리 봇 이윤보다는 저렇게 몰래몰래 챙겨 주는 라하임에게 마음이 더 가는 모양이다.
에르제는 멤버들을 스스럼없이 대하는 라하임을 보며 감개무량한 기분이 들었다.
‘일족들과 관련된 일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찾겠다고 하더니.’
그게 정말 매니저로서 일을 하는 거였을까.
여태 자신의 그림자로…… 그리고 자신의 일을 보조하는 비서로서 매니저와 비슷한 일을 카테이아 대륙에서부터 계속해 왔었을 텐데.
그게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매니저 일도 천직이라 여기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자신이 토트윈에 있기 때문인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인간들 사이에 섞여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사실은 퍽 기쁜 일이었으나, 왠지 씁쓸한 기분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현재 집단의 외곽에서 경호를 하며 걷는 플랑도 마찬가지였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계속 이렇게 그들과 일을 같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만, 자신 때문에 이들이 묶여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미안함.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하면 물심양면 지원을 해 줄 텐데.’
에르제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가장 끄트머리에서 걸음을 휘적휘적 옮겼다.
* * *
이후로 음악 방송을 두 번 더 출연한 시점.
오늘은 토트윈이 오지 않기를 원했던 날이다. 물론 에르제는 다른 멤버들보다 더욱 간절히 오지 않기를 바랐던 날이고.
“안녕하세요!!”
“와!! 저희 저번에 복도에서 보고 엄청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
바로 루비다이아와의 시상식 무대를 준비하는 첫날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하얀이 슬그머니 에르제 쪽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퀸님.”
그러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긴 멤버들도 같이 있는 자리예요. 제발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에르제가 난색을 표하며 말하자, 하얀은 배시시 웃는다.
“어차피 들어도 무슨 뜻인지 모를 걸요!”
“그래도…….”
“흐응.”
하얀은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인지 콧소리를 냈다.
“저번에 같이 춤 출 때의 퀸님은 도대체 어디로 가셨담?”
“…….”
그건 서은우였는데요.
하지만 곧이곧대로 설명할 수도 없어서 에르제는 그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렇게 토트윈과 루비다이아 멤버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가벼운 인사가 끝나고, 곧바로 내부 회의에 돌입하게 되었다.
“어쿠스틱 편곡이 정말 맞을까여?”
“저는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안단테 씨는 별로인가요?”
“그러기에는…….”
안단테의 시선이 에르제와 하얀에게 머물렀다가 다시 떨어졌다.
“원곡이 워낙 섹시 콘셉트에 충실했기 때문에 팬들이 어쿠스틱 편곡을 정말 원할까 싶어서여.”
“그래도…… 양쪽 소속사에서 그렇게 정했다고 하니…….”
“설득은 할 수 있으니까여.”
“음, 그건 그렇죠.”
루비다이아 쪽에서도 편곡이나 작곡 쪽을 담당하고 있는 멤버가 있는지 대부분의 대화를 이 둘이 주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섹시 콘셉트를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어요. 사실 하얀이가 워낙 우겨서 가능했던 거지, 원래는 양쪽 팬들 입장에서는 싫어할 가능성이 아주 높았던 도박이었거든요.”
그녀의 말에 에르제가 쓴웃음을 지었다.
방금 얘기에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얀을 보니 음…….
‘혹시 대표한테 매료를 쓴 건 아니겠지.’
저번에 이야기를 듣기로는 저쪽 회사 대표가 장 대표한테 하자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고 하던데.
만약 매료로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면 말이 되기는 한다.
‘설마 이번에도…….’
아니겠지.
에르제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우며 다시 안단테와 루비다이아의 멤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둘을 포함한 양측 멤버들의 의견이 실시간으로 교환되고 있는 중이었다.
“원곡의 강렬한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가면서 춤을 추지는 않을 만한…….”
“신나는 분위기면 좋겠는데요.”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에르제는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최근 보았던 음악 프로그램에서 나온 장르였는데, 그거라면 강렬함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남사스러운 춤은 출 필요가 없었다.
‘그거라면 오히려…… 그런 춤은 어색할 테니까.’
에르제는 조심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록으로 편곡하면 어떨까요?”
“록?”
“록이요?”
“네. 원곡의 강렬한 사운드를 그대로 가져가면서 춤은 간단한 동작만으로 힘찬 느낌을 내주면 좋을 것 같은데요.”
에르제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양 그룹의 멤버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거 괜찮을 것 같은데요?”
“역시, 아뱅 은우 형!”
“원래 은우 씨가 토트윈 아이디어 담당이었어요?”
순식간에 분위기가 풀어지고 화기애애해졌다.
다행히 자신이 낸 의견이 괜찮았던 모양이다.
‘휴.’
혹시나 막막하다고 여긴 멤버들이 원곡으로 그냥 가자고 할까 봐 몹시 두려웠는데, 다행이었다.
“쳇.”
옆에서 아쉽다는 듯한 하얀의 말이 들린 것 같았는데, 기분 탓이겠지.
에르제는 매료를 쓸까 말까 고민하는 하얀에게 가만히 고개를 저어 주었다.
어쿠스틱에서 록으로.
모두가 만족스러운 의견으로 결정되고 난 이후, 두 그룹은 회의를 끝내고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애초에 오늘은 연습을 하기 위해 모인 날이 아니었고, 무대와 관련한 의논을 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각자 편곡을 해 보고, 더 좋은 쪽으로 가거나 부분부분 괜찮은 요소들을 조합하는 쪽으로 가여.”
오늘 회의의 결론이었다.
각 팀에서 하나씩 편곡 본을 교환하고 그중 하나를 선정해 그걸로 가자는 것.
다시 만나서 교환하는 것은 아니고, 그 전에 코코아톡으로 파일을 주고받기로 한 모양이다.
‘하긴 그래야 연습해 갈 시간이 있을 테니까.’
안단테와 저쪽 루비다이아의 작곡 편곡 전담 멤버 하나가 강렬한 눈빛을 교환하는 것을 보니, 아마 조금 자존심 싸움으로 번진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선의의 경쟁이니 괜찮을 거다.
“다음 주에 봐요!”
오늘은 루비다이아의 회사로 왔으나, 다음 주에는 루비다이아가 모카 엔터테인먼트로 오기로 했다.
‘또 봐요, 퀸님!’
하얀이 입 모양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에르제는 무시하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크으, 우리 은우가 한 건 했네.”
“생각해 보면 은우가 내는 아이디어들이 은근 다 좋아.”
“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여. 저 작곡 시작했을 때 은우 형이 준 악보들이 엄청 도움이 되었거든여.”
“아, 나한테 저번에 말해 준 그거?”
가는 내내, 에르제는 칭찬 세례를 받았다. 부끄러울 정도였다.
“예전에 LAK랑 붙은 예능에서도 은우가 낸 의견이 좋았잖아. 솔직히 제이가 심사를 공정하게 할까 싶었는데, 결국 패배를 인정했지.”
“솔직히 그건 좀 어이없긴 했어여. 제이가 심사위원인데 LAK를 부른다는 게 사실 말이 되여? 공정성은 진짜 개판.”
“돈으로 움직이는 곳이잖아.”
안단테의 말에 촌철살인으로 대답하며 윤치우가 쓰게 웃었다.
어쩌다 보니 에르제의 칭찬으로 시작한 대화가 연예계의 스캔들로 이어졌다.
“이번에 마약 사범으로 잡힌 ‘김현동’ 얘기 들었어?”
“아, 그 어디더라? 장진규 배우가 만든 회사의 소속 연예인 아니야?”
“응. 완전히 약에 취해 가지고 교통사고까지 냈잖아.”
“근데 그거 마약이 아니라 완전 처음 보는 약이라고 하던데여?”
그 말에 에르제의 귀가 쫑긋했다.
장진규? 뱀파이어 장진규?
지금 그 녀석은 자신의 산하로 들어와 소속 없는 뱀파이어들을 찾고 있는 중이었는데…….
“아, 나도 그 얘기 들었어. 마약 한 사람보다는 무슨 좀비 같았다고 하던데? 막 목을 물어뜯으려 그러고.”
“뭐?”
에르제는 태현우가 한 마지막 말에 강하게 반응했다.
뒤따라 걷던 에르제는 앞에 있던 태현우의 어깨를 꽉 잡았다.
“다시 말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