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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32화 (232/307)

제232화

232화

안단테가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가운데, 시간은 착실하게 흘러갔다.

“약을 사 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태현우의 소리 없는 아우성에 윤치우가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자고 있잖아. 일어나서 밥 먹이고 약 주면 돼.”

“그래도……!”

급하게 병원에 달려갔다 온 것이 억울한 모양인데, 애초에 병원 문 닫는 시간이 가까워져서 급했던 거지 안단테에게 빠르게 약을 먹이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땀나서 샤워도 다시 했는데!”

물론 태현우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으므로 아마도 본인의 공로에 대해 좀 더 어필하고 싶은 것일 거다.

멤버 막내가 아픈데 왜 그러나 싶기는 했지만, 에르제는 태현우가 그러는 이유를 눈치챘다.

안단테에 대한 걱정을 저런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뿐이다. 칙칙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바꾸어 보려고 하는 의도도 숨어 있을 테고.

‘하여간, 저렇게 속내를 꽁꽁 숨기니 속없다는 소리를 듣지.’

겉으로는 솔직한 개그 캐릭터였지만, 그 정반대의 심리가 태현우의 마음속에서 굳게 자물쇠로 채워져 있다.

그래도 태현우와 많이 가까워졌기 때문일까, 이제 그의 생각이 어느 정도는 읽혔다. 지금처럼.

에르제는 속으로 픽,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벽면에 걸린 시계를 보니, 곧 뮤직비디오가 공개될 시점이 다가왔다.

“아무래도 단테랑 같이 모니터링 하는 건 힘들 것 같네.”

민주혁이 그렇게 말하며 책을 덮었다.

코끝까지 내려온 안경을 손으로 올려 쓰며 민주혁은 윤치우에게 물었다.

“그건 못 하겠지?”

“그거?”

고개를 갸웃하던 윤치우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쉬운 감정이 잠깐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금세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단테가 없으니까.”

보통 토트윈 멤버들은 뮤직비디오가 공개되는 날, 그 리액션 영상을 찍어 올리곤 했다.

영상을 찍을 여건이 안 될 때는 사진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은 안단테가 없으니 포기하는 건가?’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윤치우의 생각을 존중했다.

다같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면 그 의미가 퇴색될 테니까.

데뷔 초의 윤치우였다면 하자고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도 많이 성장했으니.

에르제는 닫혀 있는 방문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안단테는 내일 오전쯤 숙면을 취하고 일어날 것이다.

자신의 생명력을 받았으니 과로로 인해 생긴 병마와 싸울 힘을 얻었을 테니까.

‘문제는 난데.’

에르제는 조금 전 라하임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제물로 노려지는 것이 자신의 영혼일지도 모른다는 것.

직접적으로 서은우를 강림시키는 제물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서은우는 본래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듯했다.

‘그건…… 싫은데.’

에르제는 토트윈 멤버들을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예전에 윤치우가 소원권으로 서은우를 만나게 해 줄 수 있냐고 했던 말. 그때도 자신은 꽤 화가 났었다.

여태 그들과 함께해 온 것은 에르제 자신이었는데, 어째서 서은우를 찾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말이다.

하지만 당시 화가 났던 것은 단순히 윤치우의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멤버들이 만약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아니 서은우가 아닌 에르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윤치우와 똑같은 반응을 보일까 봐, 같은 말을 꺼낼까 봐 불안했기에 나온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서은우가 이 몸으로 다시 돌아와…… 에르제가 아닌 진짜 서은우가 된다면.

그들은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아쉬워할까, 아니면 본래 알고 있던 서은우의 모습이라며 좋아할까?

‘……그러니까 더욱 내줄 수 없어.’

서은우가 이 몸에 들어왔을 때 자신의 영혼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는 에르제의 관심 밖이었다.

지금 에르제의 눈은 온전히 멤버들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감추어 둔 비수를 더욱 날카롭게 벼려야 했다.

“아! 시작한다!”

태현우의 목소리에 날카롭게 변해 있던 에르제의 눈매가 둥그렇게 풀렸다.

그리고 파란 맑은 하늘 위에 구름처럼 하얀 글씨로 쓰이는 ‘Epilogue’라는 글자를 바라보았다.

유심히, 그리고 희망을 담아.

종장.

어쩌면 서은우와 그의 관계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르지 않았을까 싶어서.

* * *

리드미컬하게 깔리는 박자와 전체적으로 화사한 톤의 분위기.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하늘 아래, 샌드위치를 베어 무는 윤치우가 보인다.

붉은색 기운이 그의 주변에서 비눗방울처럼 퍼져 있었는데, 천천히 하나씩 터져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어갔을까?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옆에 자전거가 하나 와서 선다.

모자를 푹 눌러쓴 민주혁이 자전거에 올라탄 채 윤치우를 보며 씩 웃는다.

그리고 오, 하는 표정을 지으며 자전거 뒤에 올라타는 윤치우.

‘간다.’

민주혁의 입 모양이 그렇게 말하고, 페달을 밟는 것과 동시에 자전거가 앞으로 쭉 나간다.

화면은 그들을 따라가지 않고 점차 멀어져 가는 투샷을 보여 준다.

그런 후 마치 종이 만화처럼 펄럭이더니 화면이 우하단에서부터 넘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에르제였다.

꽤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서 있음에도 유독 눈에 띄는 외모다.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고, 둘러멘 크로스백을 흔들거리며 걸어간다.

― 그냥 즐겨.

마지막이라 생각해도 좋아.

그저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려 온 것처럼.

― 고된 날들은

한달음에 내달려 벗어던져.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아.

이제는 ooh, ooh―!

내가 가는 길이

곧 내 세상일 테니.

그 순간, 에르제의 긴 다리와 하얀 운동화가 클로즈업이 된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

그리고 운동화의 바닥 부분이 보이는 순간, 발 주인이 바뀌었다.

통통 튀듯 스텝을 밟으며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사람은 귀여운 매력을 한껏 살린 안단테였다.

― 그냥 웃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있어.

어제, 내일

지금은 그사이에 낀 오늘.

― 마지막을 향해

한달음에 내달려 힘껏 뛰어.

내 마음은 이미 정해졌으니까.

Ooh, ooh―!

닫힌 문을 향한

시선을 돌려 고개를 들어.

이번에는 브릿지 없이 곧바로 Cavi로 넘어간다.

모든 멤버들이 한곳에서 만나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 모여든다.

끼익! 하고 멈춘 자전거에서는 윤치우와 민주혁이.

길에서 만났는지 안단테와 에르제가 그 반대편에서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다.

왼쪽에서 둘, 오른쪽에서 둘.

계단을 오르고 무대 위에 선다.

그리고 화면 중앙에 등장하는 등.

꽉 채우던 등이 멀어지며 그 윤곽을 잡았다.

― Jump to the last!

신나고 경쾌한 멜로디.

태현우가 가운데에서 무대 위로 폴짝 뛰어오르며 대형이 완성되었다.

빙글 제자리에서 발끝으로 돌아선 태현우가 정면을 보며 씨익 웃는다.

― 우리가 써 내려 갈

마지막 페이지.

Epilogue, 그 뒤는

끝일까?

멤버들이 무대 위에서 바닥을 콩콩 찍으며 군무를 맞춰 갔다.

― 그 뒤에 펼쳐질 백지.

돌아가는 건 쉽지만,

어쩌면 꿈은 빛을 잃지.

그러니, 계속해서

우리 발자국을 천지에 남겨.

이번 ‘Epilogue’의 안무는 따라 하기 쉽게 만든 것도, 중독성을 노리고 만든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보다는 좀 더 날이 선, 데뷔곡 ‘HaLLo’에서 보였던 모습에 가까웠다.

마치 처음 문을 열고 이 세계로 넘어왔던 그때와 같았다.

춤뿐만이 아니었다.

곡의 구성과 멜로디,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토트윈의 모습도.

모두 행복에 겨운 얼굴들이었다.

노래를 할 수 있어서, 춤을 출 수 있어서 그리고 팬들을 만날 수 있어서.

전체적으로 경쾌하고 신나는 분위기가 강세였지만, 처음부터 그들과 함께해 왔던……. 그리고 그들의 역사를 찾아보았던 이브들은.

지금 왠지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로드!!’

세리나는 뮤비가 끝나자마자 눈물을 글썽였다.

토트윈은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겠다. 끝까지 팬들과 함께 이곳에 남겠다……. 그렇게 선포하고 있었다.

이번 ‘Epilogue’는 가사와 그들이 드러내는 감정을 통해 그렇게 말했다.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로드.”

세리나는 뮤직비디오가 끝났음에도, 다음 재생 목록을 띄우는 무튜브 화면을 보며 손끝에 힘을 꾹 주었다.

서은우가 에르제여서가 아니라, 그냥…….

알 수 없는 감격과 감동을 한꺼번에 느끼는 세리나였다.

‘이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세리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댓글을 봐야 해.”라고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그녀와 같이 ‘ㅠㅠㅠ’로 도배된 댓글을 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역시 이브들은 토트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눈치 빠르게 캐치했다.

세계관에 기대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남겠다고 말하는 토트윈의 마음을 말이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해체하지 않을 거다, 끝까지 할 수 있는 한 토트윈으로 남아 있겠다, 계속해서 좋은 노래와 춤, 무대를 보여 주겠다.

그들은 뮤직비디오임에도 그 메시지를 솔직하게 전달한 것이다.

‘이 정도면 2번째 팬송이라고 봐도…… 되지 않나?’

세리나는 히죽히죽 웃으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그녀가 계속해서 그럴 것 같았는지, 세리나의 모습을 아까부터 지켜보던 이가 무뚝뚝한 음성으로 말을 걸었다.

“세리나.”

플랑은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지금은 로드께서 내린 명령을 이행하는 중이다. 일하는 중에 놀지 마라.”

“아니……! 이게 노는 걸로 보여요!?”

세리나가 대번에 화를 버럭 냈다.

“이것도 엄연한 일이에요! 로드께서 요즘 가장 애착을 가지고 계신 부분인데, 당연히 일족 된 도리로 책임지고 모니터링하고 댓글 관리도 해야 하는 법!”

“……당최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군.”

플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그것보다는 저 앞에 저것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나?”

그의 말에 세리나도 스마트폰을 내리고, 플랑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

세리나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악기예요?”

“그렇다.”

현재 ‘세리나와 플랑’은 따로 둘이 팀을 이루어 악기가 모이는 곳을 조사하는 중이었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외진 곳을 헤매고 다닌 지 벌써 며칠째.

그런 와중에 토트윈의 뮤비를 봐야 한다며 부득부득 우겨서 찾은 곳은 근방에서 유일하게 전파가 터지는 자리.

그곳에,

“……상당히 틈이 많이 벌어졌네요.”

불길한 기운이 주변의 공기를 갉아먹으며 그 크기를 더욱 키워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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