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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31화 (231/307)

제231화

231화

다행히 안단테의 열이 좀 떨어졌고 호흡도 많이 안정되었기에 구급차까지 부르는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굉장히 심각해 보였으나, 지금은 감기에 걸린 사람 정도.

깊은 잠에 빠져 새근새근 잠든 안단테를 차에서 내려 숙소까지 업고 온 뒤, 에르제는 그를 방 침대에 눕혔다.

살짝 열린 입술 사이로 열이 들뜬 숨결이 섞여 있긴 했지만, 에르제의 생명력을 받아서인지 확실히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온 듯했다.

‘이제는 신체가 완전히 역전한 것 같네.’

자신의 생명력을 받아 면역 체계가 활발히 활동하는 모양이다.

에르제가 방문을 닫고 나오자, 멤버들은 걱정되는 얼굴로 안절부절못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괜찮은 거 맞지?”

“아까 보니까 열도 나던데, 진짜 병원으로 안 데리고 가도 되는 거야?”

“병원은 가야지.”

에르제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아직 병원 문을 안 닫은 곳이 있을지도 몰라. 일단은 감기 걸렸다고 얘기하고 약만 받아오면 될 것 같은데, 정 안 되면 약국이라도.”

“내가! 내가 빨리 갔다 올게!”

그 말을 하고 현관으로 급히 뛰어간 태현우가 재빨리 신발을 구겨 신었다.

에르제는 소파에 올려져 있는 야구 모자를 그에게 던졌다.

“태현우, 이거 쓰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병원이 바로 앞이기는 한데, 누가 알아보면…….”

“응! 땡큐!!”

그렇게 바람처럼 태현우가 사라지고, 숙소 안은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자신의 정체를 아는 녀석과 아주 조금 알고 있는 녀석, 그렇게 둘.

이 둘은 자신의 말을 어느 정도 신뢰할 것이다.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깊이 잠들었으니까 방 안에는 들어가지 않는 게 좋겠어.”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에 가서 털썩 앉았다.

앉았다기보다는 거의 주저앉는 느낌이었다.

민주혁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작게 중얼거렸다.

“나 때문이야. 내가 연습하자고 너무 닦달해서…….”

“그게 어떻게 너 때문이야!”

그 말에 윤치우는 버럭 화를 냈다.

“연습은 각자의 의지로 하는 거지, 단테가 네가 시켜서 무리하게 연습한 거 아니라고. 왜 쓸데없이 죄책감을 가져.”

“그래도…… 내가 좀 더 멤버들의 몸 상태를 파악하고 틈틈이 쉬자고 이야기도 하고 그랬어야 했는데…….”

“야, 민주혁!”

윤치우가 그의 어깨를 꾹 잡았다.

“그건 리더인 내가 해야 할 일이야. 그 책임을 네가 왜 져? 잘못을 했어도 내가 한 거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아니.”

그 말에 에르제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굳이 따지면 회사한테 따져야 하는 일이지. 매니저는 그래서 있는 거니까.”

“…….”

“…….”

에르제의 말에 둘은 고개를 숙이며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가 거실에 맴돌았다.

“후.”

에르제도 밭은 숨을 뱉어 내며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했다.

안단테에게 생명력을 나누어 준 것 때문에 조금 지쳐 있었다.

그러고 있으니, 얼마 있다가 현관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섰다.

아까 회사에 있었을 때, 에르제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라하임이었다.

“어, 라하임 매니저님.”

윤치우가 그를 알아보고 아는 체를 했다.

이곳까지 운전해서 온 것은 이윤이었고, 라하임은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윤치우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묻어 있었다.

“윤이 형은요?”

“아, 이윤 매니저님은 밑에서 태현우 씨를 만나 같이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아아.”

조급하게 나가서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이윤이 같이 갔다면 괜찮겠군.

윤치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를 흘긋 바라본 라하임은 에르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멤버 중 하나가 많이 아프다고 들었습니다.”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말했다.

“잠시, 얘기 좀.”

“네.”

에르제는 라하임을 끌고 빈 방으로 들어왔다.

에르제는 닫힌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단테가 좀 아파.”

“그렇습니까?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아니, 그쪽으로 네가 할 일은 따로 없어. 내가 생명력을 나누어 줬거든.”

“……!”

라하임이 빠르게 가까이 붙었다.

“로드, 생명력은 귀중한 자원입니다. 인간을 흡혈하지 않으면 회복되는 속도도 느린데…….”

“괜찮아.”

에르제는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내가 이런 소리나 듣자고 널 부른 게 아니야.”

“하지만…….”

그 말에도 라하임은 죄송하다고 하지 않았다.

아마도 계속해서 에르제에게 잔소리를 퍼붓고 싶은 걸 꾹 참는 모양이다.

“그럼, 적어도 제 생명력이라도 로드께 드리는 편이…….”

이를 눈치챈 에르제는 빠르게 다른 화제로 이야기의 물꼬를 틀었다.

“됐어. 지금 나보다 네가 밖에서 움직여야 할 일이 더 많은데, 나한테 생명력을 줘서 뭐하게?”

에르제는 다시 열리기 시작하는 라하임의 입을 막기 위해 빠르게 말을 이어 갔다.

“그보다 지서후 쪽은 어떻게 됐어?”

“아!”

라하임이 손가락을 튕기며 웃었다.

“지서후는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지금 드라마 사전 제작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라고 투덜거리기는 했지만요.”

바쁘긴. 인간들보다 체력이 수십 배나 좋은 녀석이.

그리고 어차피 본인이 아니라 그 밑의 늑대인간들을 움직이게 할 거 아닌가.

“하여간 생색은.”

혀를 찬 에르제는 라하임에게 물었다.

“그럼 이왕 부탁하는 김에 그것도 같이하자.”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악기(惡氣) 조사하는 일.”

그 말에 라하임의 눈썹이 살짝 떨렸다.

“로드, 현재 악기에 관한 것은 뱀파이어 본부에서 책임지고 진행하는 일입니다. 지서후를 비롯한 늑대인간들은 1장로의 위치를 찾는 데만 해도 꽤나 많은 인력이…….”

“아니, 그래서 그래.”

에르제는 라하임의 말을 끊었다.

“1장로도 에이리스의 계획을 알고 있을 테니까 악기가 모여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을 거야.”

“그 말씀은…….”

“1장로가 서은우의 부모를 데려간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1장로는 대악마를 지구에 강림시킬 생각이 없어.”

“!”

라하임도 무언가 눈치챈 듯 고개를 휙 들었다.

“그러니까 1장로도 악기가 뭉쳐 있는 곳을 조사하고 있을 거야. 이미 몇 군데는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럼…… 그곳을 비집고 나오는 악마들을 처리하는…….”

“그것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악마들을 회유하고 있을지 처리하고 있을지는 1장로 본인의 마음이니까.”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라하임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악기가 뭉쳐 있는 곳을 조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1장로와 접촉하게 될 것이다.

현재 1장로를 믿고 따르는 뱀파리스들도 있을 테고, 그들은 1장로의 명령에 따라 악기를 조사하고 있는 중일 거다.

“그럼 지서후에게 그 이야기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불평을 들어야 하나 걱정하는, 조금 불편한 표정이 라하임의 얼굴에 떠올랐다.

그 모습에 픽 웃은 에르제는 이번에는 방금 대화와 무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럼 그건 그렇게 하고, 사실 오늘 너를 여기 부른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야.”

“다른 이유라면.”

“너, 예전에 뱀파리스 쪽에 있을 때 기억해?”

“링크가 걸려서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할 때 말씀이시군요. 당연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의 일로 하나 물어볼 게 있어서.”

에르제는 얼굴을 굳히며 라하임에게 물었다.

“혹시, 서은우가 나라는 사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이달그마 때부터입니다.”

라하임의 대답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곧바로 나왔다.

“당시 로드께서 이곳에 오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우연히 그 장면을 보게 되었지요.”

“우연히?”

“예. 뱀파리스 내에서도 아이돌을 좋아하는 녀석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걸그룹이기는 했지만, 그들이 스마트폰으로 음악 방송을 보고 있었던 걸 옆에서 본 게 행운이었습니다.”

“그러면.”

에르제는 살짝 심호흡을 하며 거듭 질문했다.

“혹시 음악 방송 무대를 보다가 내가 아니라고 느꼈던 적은 없어?”

“……음.”

이번에는 조금 어려운 질문이었는지 라하임의 미간이 좁아졌다.

대략 5분 정도 생각에 잠겨 있던 라하임은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었다.

“말씀드리기 불경한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한 번 있었습니다.”

“HaLLo 무대?”

“그럼…… 로드께서도 알고 계신 겁니까?”

“짐작만 하고 있어서. 그래서 너도 그렇게 느꼈는지 물어보려고 한 거야.”

“그럼, 그때 제가 느낀 건…….”

“하얀 때, 기억하지.”

“예, 로드.”

대답하는 라하임의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그때도 혹시 서은우가 내 몸을 차지했던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중인데.”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던 라하임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확실히…… 뭔가 비슷한 감이 있습니다. 제가 춤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 두 무대 모두…… 뭔가 느낌이 비슷합니다.”

역시 그랬나.

자신은 그 두 번 다 기억이 없었다.

에르제 또한 영상으로 보기는 했지만, 제3자의 눈으로 봤을 때 다르다는 말이 더 확실할 거라고 생각했다.

“혹시 그때도 악마와 계약…….”

“아니.”

에르제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는 윤치우한테 생명력을 과도하게 나눠 주고 나도 쓰러졌을 때야.”

축복을 받기도 전이었기 때문에 서은우의 신체로는 떨어진 생명력을 제대로 버텨 내지 못했다. 그래서 기절까지 했던 거고.

“……로드께서 최근에 몸을 빼앗겼을 때는 ‘누구라도 좋으니까 대신해 줬으면’ 한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그러셨죠?”

“응, 그랬지.”

“그리고 윤치우에게 생명력을 과도하게 나누어 주었을 때도 몸을 뺏겼고요.”

라하임은 손가락을 두들기며 그렇게 말했다.

“두 번 다 로드께서 서은우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잃거나 포기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

에르제는 그 말에 놀라 움직임을 멈추었다.

조금만 차분하게 생각했으면 자신도 알아챘을 부분이었다. 안단테의 상태를 걱정하다 보니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번에 하급 악마를 통해 나와의 연결점을 찾은 건 몸을 차지하기 위해 새로운 발판을 마련했던 것뿐이야.’

서은우는 ‘HaLLo’ 무대에서 이미 본인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거였다.

그 이후로는 자신이 통제권을 잃지 않으니, 하급 악마를 이용한 새로운 방법을 찾은 것뿐.

‘……어쩌면.’

에르제의 동공이 잘게 떨렸다.

서은우는 지구에 대악마로서 강림하려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몸을 되찾으려고 하는 건 아닐까?

어차피 지구에 강림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그런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서은우도 마찬가지였어.’

서은우의 영혼이 라하임에 의해 의식을 잃고 난 뒤, 다시 자신이 이 몸의 주도권을 가져오지 않았나.

“허.”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제이도, 1장로도 아닌…….

지금껏 제물로 노려지고 있던 것은 에르제, 바로 자신의 영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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