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30화 (230/307)

제230화

230화

이번 디지털 싱글 3연타의 마지막 곡인 ‘Epilogue’는 스토리의 마지막을 알리는 곡이었다.

‘Prologue’에서는 ‘대학생 새내기’라는 콘셉트를 이용해 지구에서 보내는 토트윈의 첫 일상을 담아냈고.

‘Parados’에서는 그 이후 이어지는 토트윈의 감정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었다.

간격도 일부러 한 달로 설정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한 번에 풀어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토트윈을 볼 수 없었기에 이번 프로젝트에서 보여 주려고 하는 서사에 몰입과 공감이 어려울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때문에 이번 프로젝트의 마지막인 ‘Epilogue’의 성공은 모카 엔터테인먼트와 토트윈에게 굉장히 중요했다.

정규 앨범이 아닌 싱글로 큰 스토리를 풀어내는 일은 처음이었고, 그것이 통하는지는 이번 결과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이다.

다만…….

“죽을 것 같아.”

“으어…….”

무려 3개월, 그것도 한 달마다 다른 음원으로 활동해야 했던 토트윈은 상당히 지쳐 있었다.

이어지는 연습과 음악 방송 무대.

솔직히 이번 3개월로 딱 끝내고 그 뒤로 길게 휴식할 수 있다면…… 그런 희망으로 버텨 낼 수 있겠지만.

그 뒤에도 가요제전과 시상식 등 추가적인 스케줄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끝이 나질 않아……!”

연습실에 엎어진 태현우가 더는 못 하겠다며 아예 드러누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인간들 중에서는 꽤 강한 체력의 소유자인 민주혁도 누워서 쉴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번만 지나면 뒤에 남은 스케줄은 그렇게 빡세게 준비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조금만 힘내 보자.”

“……치우 형, 그렇게 말해도 설득력이 별로 없어.”

윤치우가 말로 독려를 하긴 했지만, 그의 상태도 다른 멤버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이럴 때 혈기를 좀 나누어 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유일하게 멀쩡한 에르제는 멤버들을 보며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태현우가 “으어어어!” 하고 비명을 지르며 말했다.

“쟤는 왜 맨날 안 지치는 거야?”

“평소에 운동을 꾸준히 해서?”

“거짓말하지 마. 자식아.”

태현우가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며 우우, 소리를 내었다.

에르제가 피식 웃으니, 언제 일어났는지 민주혁이 박수를 치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 한 번만 더 맞춰 보고 숙소로 돌아가자. 오늘 뮤비 공개하는 날이니까.”

“……끄응.”

그의 말에 조금 전까지 불평하던 모습들은 사라지고, 곧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좀비 4마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에르제도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대형의 앞에 섰다.

“단테, 괜찮아?”

윤치우가 안색이 좋지 않은 안단테에게 물었으나,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웃었다.

“네. 괜찮아여.”

“힘들면 쉬고 있어도 돼.”

“아니에여. 할 수 있어여.”

“……그래.”

윤치우가 안단테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들겼다.

‘……안색이 진짜 안 좋아 보이기는 하네.’

에르제는 그런 안단테를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연습이야 소속사에서 강제로 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들 자체적으로 하는 거였다.

워낙 연습 벌레들만 모여 있는 그룹이어서 특별히 소속사에서 푸시를 할 이유가 없어서였다.

하지만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소속사에서 휴식할 수 있게 적절히 커트해 주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으니까.

‘그것도 이렇게 일정이 빡빡할 때는 말이지.’

그나마 장 대표와 이윤도 그렇게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닌지 평소보다 먹는 것은 자유롭게 풀어 주었다.

그들이 아무리 많이 먹는다고 해도 현재 토트윈의 연습량이면 알아서 체중 관리는 될 거라고 판단한 것일 터였다.

“스읍, 후우. 해여!”

가쁜 숨을 고르던 안단테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하자, 민주혁은 “알았어.”라고 대답한 후 MR을 재생했다.

통통 튀는 비트와 연달아 반복되는 세 개의 음, 시작부터 강한 중독성이 느껴지는 도입부였다.

토트윈은 음악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 음으로 길게 이어지는 부분에서 시계 방향으로 대형을 돌았다.

끼긱, 끼긱.

노래는 따로 부르지 않았고, 안무를 다듬는 중이었기에 연습실 바닥에 운동화가 끌리는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끼기긱.

그렇게 1절이 끝이 나고.

“?”

“……?”

2절의 시작과 함께 앞으로 나와야 할 안단테가 나오지 않았다.

원래 안무는 가장 뒤에 있던 안단테가 멤버들이 열어 준 길로 미끄러지듯이 나와야 하는데…….

멤버들에게 가려져 거울에서도 보이지 않아서 그들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 안단테를 확인했다.

그리고.

“단테야!! 안단테!”

“괜찮아?!”

바닥에 쓰러져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안단테를 발견했다.

“!”

에르제 또한 빠르게 안단테에게 달려와 이마를 짚었다.

“열이…… 심한데?”

열뿐만이 아니었다.

너무 과하게 연습을 했던 게 문제였을까, 생명력도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이대로라면…….’

지금 펄펄 끓고 있는 열을 안단테의 몸이 버텨 낼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목숨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잠깐 쉰다고 회복될 수준도 아니었다.

‘일단 나가자.’

병원이든 숙소든 연습실에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에르제는 안단테를 번쩍 안아 들었다.

윤치우는 당황한 와중에도 침착하게 이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윤이 형! 단테가, 지금 단테가 많이 아파요. 어떻게 하죠? 구급차를 부를까요?”

태현우와 민주혁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안단테의 이마에 손을 대기도 하고,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뜨리기도 하면서 계속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침착해.”

에르제는 빠르게 복도를 걸어가며 그들에게 말했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거 없어.”

냉정한 말이지만, 태현우와 민주혁이 동요하는 모습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에르제는 빠르게 입을 열었다.

“일단 이윤이나 라하임 매니저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고 민주혁, 너는 수건 하나 구해서 찬물에 적셔 와 줘.”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빨리 갔다 올게.”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이고 적당한 방을 찾아 들어갔다.

침대는 없었지만, 그래도 푹신한 회색 소파가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에르제는 안단테를 보며 잠시 고민했다.

지금 이 상태에서 안단테를 치료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전화를 끊고 이곳으로 따라 들어온 윤치우는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태현우와 민주혁은 현재 자리를 비운 상태.

‘그건 어렵지 않은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쓰러진 안단테가 갑자기 멀쩡하게 일어나면 그게 더 이상해 보일 테니까.

‘……뒤의 일정이 조금 어그러지더라도 일단은 내가 의심받지 않는 편이 더 나아.’

결론을 내린 에르제는 윤치우를 보며 말했다.

“망 좀 봐 줘.”

“……!”

그의 말뜻을 알아들은 윤치우의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에르제는 그가 오해하지 않도록 말을 덧붙였다.

“지금은 위험한 상태니까 스스로 회복할 수 있을 정도로만 만들려고.”

“아……. 그래야 되겠네.”

윤치우는 납득하며 방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망을 봤다.

복도 중간에 있는 방이라 코너에서 멤버들의 모습이 보이면 바로 알려 줄 것이다.

“후우.”

에르제는 어깨를 돌려 풀고는 안단테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홧홧한 기운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열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

단순히 기운만 전달해서는 안 될 듯했다.

생명력 자체가 필요했다.

에르제는 왼손의 손톱을 날카롭게 세워 반대편 손바닥에 상처를 냈다.

붉은 피가 상처를 따라 길게 스며 나왔다.

에르제는 주먹을 쥐어 손바닥 아래쪽으로 피가 떨어지도록 만들고는 그 안에 자신의 생명력을 담았다.

‘예전에…… 윤치우도 생명력을 줘서 치료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를 떠올리던 에르제는 안단테의 이마에 피를 한 방울씩 떨어뜨렸다.

톡, 톡, 톡.

생명력을 머금은 핏방울은 그대로 안단테의 피부에 흡수되듯이 사라졌다.

이마에 닿음과 동시에 그대로 사라지는 듯 보였으나, 생명력은 온전히 안단테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비틀―.

완전히 회복시키려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버텨 낼 힘만 주려고 했는데도.

에르제의 몸이 살짝 휘청거렸다.

‘……생명력이 엄청 떨어져 있었어.’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포함해서…… 안단테를 제외한 멤버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이 다였다.

하지만 안단테는 그 와중에 이번 3개의 곡을 모두 직접 작곡했다.

자신은 아주 예전에 음유시인으로서 작곡했던 소스만 넘겨줬을 뿐.

방에 틀어박혀서 작곡했던 것은 안단테 본인이었다.

게다가 다른 멤버들보다 체구도 작다.

한 살 어리기 때문에 다른 멤버들보다 생명력이 조금 더 넘치기는 했으나, 그건 작은 체구로 인해 그 효과는 상쇄가 된다.

‘……스케줄이 너무 빡세기는 했어.’

어쩌면 그동안 장 대표가 원하는 일정에 맞추어 토트윈이 잘 해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조만간 보이콧이라도 해야 하나.’

에르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안단테에게 생명력을 나누어 주다가.

“새액, 새액.”

안단테의 호흡이 조금 정상적으로 돌아온 듯하자, 손을 치웠다.

그러고는 이마에 왼손을 올려 열을 쟀다.

아까보다 확실히 떨어졌다.

‘이 정도면 가벼운 감기 정도네.’

생명력을 나누어 주긴 했지만, 아직도 건강한 사람에 비해 생명력이 떨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가벼운 감기라고 해도 딱 스스로 이겨 낼 수 있을 정도는 될 터였다.

에르제는 안단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끝났어.”

“……타이밍이 딱 좋았네.”

윤치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윤이 형이랑 다 오고 있어.”

“그래?”

“응. 어때? 좀 괜찮아진 거야?”

“며칠 누워 있긴 할 텐데, 가벼운 감기에 걸린 정도로 생각하면 될 거야.”

“……그렇구나.”

윤치우는 안도하는 낯빛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도…… 나한테 이렇게 한 거지?”

“그때?”

“우리 첫 음방 무대 할 때, 나 화장실에서 쓰러졌잖아.”

“아아.”

윤치우도 기억하고 있었군.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기억나? 그때 너도 쓰러졌었잖아.”

“그…… 랬지.”

에르제는 그날을 떠올리며 미간을 좁혔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그날 윤치우에게 생명력을 전해 주고 자신도 그대로 기절한 모양이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차 안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때 자신은 무대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없었다.

다행히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는데…….

‘하얀과 무대를 했을 때도…… 비슷하지 않았나.’

두 경우 모두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유사했다.

에르제의 입술이 꾹 다물어졌다.

‘설마?’

그럼 그때도…….

‘서은우가 내 몸을 차지했던 건가?’

에르제는 가만히 안단테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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