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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25화 (225/307)

제225화

225화

1장로는 현재 뱀파리스 본부에 있지 않았다.

한동안 집무실에 기거하며 에이리스의 눈치를 보고 있던 그는 그녀가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왔다.

‘에이리스는 내가 혈석을 가지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군.’

처음에는 소꿉친구의 등에 칼을 꽂아 넣는 게 좀 찜찜한 기분이었지만, 어느새 그런 감정은 많이 희석된 상태였다.

‘대악마를 여기에 불러오겠다고?’

그런 정신 나간 짓을 또 하려는 에이리스에 대한 불만만 켜켜이 쌓여 갈 뿐이었다.

과거 카테이아 대륙에 있었을 때, 대악마에 의한 피해는 상당히 컸다.

그게 온전히 뱀파리스들의 이득이 되었다면 모를까, 그냥 파괴밖에 모르는 미친 악마들은 피아 구분도 없이 마구 날뛰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그냥 그것뿐이었으면, 잠자코 있었을지도 모르지.’

서은우가 대악마라고 하니까 어쩌면 단순히 대악마를 강림시킨다는 이야기는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서은우는 지구 사람이었으니 그가 지구를 파괴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애초에 서은우에게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에이리스와 서은우. 둘이 무슨 이유로 함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를 먼저 배신하고 제물로 바치려는 건 너야.’

1장로는 입술을 씹으며 얼굴을 구겼다.

그러니까, 이쪽도 죽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거라고.

에이리스와 서은우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든 동상이몽이든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게 좋다.

자신을 제물로 바치려는 에이리스의 흉포한 생각을 막고, 대악마의 강림도 저지시키는 것.

‘그러고 나서 에이리스에게서 로드의 힘을 빼앗는다.’

죽이지는 않을게. 그렇게 중얼거린 1장로는 눈앞의 별장을 바라보았다.

저곳에 이 모든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패가 있다.

1장로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내부의 삼엄한 경계 상태를 확인했다.

‘여기가 맞는 것 같은데.’

1장로는 이곳까지 자신을 믿고 따라온 뱀파리스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총 여덟 명의 뱀파리스의 눈이 흉흉하게 빛나고 있다.

이를 퍽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1장로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곧 올 때가 됐는데.’

그의 지원군이자 처음부터 그를 따르던 충직한 부하.

뱀파이어 내부에 도플갱어를 심었을 때도 많은 도움을 줬던 녀석이었다.

2장로를 죽였을 때에도, 녀석이 자신을 도망치게 도와 줬었고 말이다.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대기하라는 신호를 보낸 1장로는 손목에 찬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1분 지났어.’

자신이 뱀파리스 본부에 없다는 것을 확인한 에이리스가 언제 움직일지 모른다.

‘한시가 급한데.’

그러나 그 뒤로 1분, 2분……. 10분이 지나도록 녀석은 이곳에 오지 않았다.

‘……이 정도로 늦는다면 뭔가 연락이라도 줬을 텐데.’

1장로는 미간을 좁히며 생각했지만, 지금 여기까지 온 이상 더 지체할 수는 없었다.

‘녀석에게 무슨 일이 생겼더라도 지금 일은 진행해야 한다.’

녀석이 이곳에 도와주러 오면, 일 처리가 한결 더 쉬워졌을 텐데.

아쉬운 듯 한숨을 내뱉은 1장로는 이내 굽혔던 무릎을 펴고 일어났다.

나뭇잎 몇 개가 그의 어깨에 닿아 아래로 팔랑거리며 떨어져 내렸다.

“도와주기로 한 녀석이 오지 않았다. 필시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지만, 그쪽을 도와줄 여력은 없어. 우리는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만 생각한다.”

여덟 명의 뱀파리스가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붙잡히게 되면.”

1장로는 품에서 약병 8개를 꺼내어 그들에게 하나씩 던져 주었다.

“치아 사이에 이것을 끼워 두고, 붙잡혔을 때 씹어라. 대의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도록. 물론.”

1장로는 가장 먼저 손수 이에 빨갛고 동그란 물체를 끼워 넣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리할 거다.”

결연한 눈빛을 빛내며 1장로가 말하자, 나머지들도 고개를 푹 숙이고 치아에 그것들을 끼워 넣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쇼였다.

저 정도의 경계 상태면 자신이 붙잡힐 일은 없어 보였고, 실제로 붙잡혀도 자신은 자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도플갱어 능력이 있으면, 계획에 실패하더라도 자신의 몸 하나 건사하는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붙잡히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너희들이 나 대신 죽어 줘야겠다.’

속으로 웃음을 삼킨 1장로는 그들의 충성심을 마지막으로 자극했다.

“그리고 누군가 붙잡히게 되면 최대한 시간을 끌 수 있도록, 다른 이들이 무사히 도망칠 수 있도록 그 목숨을 최대한 활용해라.”

1장로는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쿵쿵 두들겼다.

“오늘 계획에 모든 뱀파리스와 이 세계의 운명이 결정지어진다.”

다시 한번 쿵쿵 가슴을 두들기며 1장로가 입꼬리를 축 늘어뜨렸다.

“나 또한 너희들을 위해 마땅히 그리할 것이다.”

착―!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그의 말에 여덟 뱀파리스는 고개를 숙이고 팔을 자신의 앞에 가져갔다.

“저희도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고맙다.”

1장로는 그들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려 다시 별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곧 그의 입에서 진입 명령이 떨어졌다.

“들어가자.”

* * *

“침입자다!!”

“여기! 이쪽으로!!”

별장을 지키고 있던 뱀파리스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우왕좌왕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에이리스는 그들에게 ‘이곳은 절대 들키지 않을 것이니 평소의 경계 상태만 유지하라.’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삼엄해 보이던 경계였는데, 허울뿐이었던 모양이다.

“X바아알!! 절대 안 들킨다면서!!”

“같은……! 우리 같은 뱀파리스잖아!!”

온갖 혼란스러운 소음이 별장 안을 가득 메웠다.

별장에 경계를 서고 있던 뱀파리스들의 숫자는 총 40명으로 9대 40의 싸움이었지만, 기습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초반 5분에서 10분 정도만 그랬고, 그들도 훈련 받은 뱀파리스들인 만큼 곧 체계를 갖춰 반격해 오기 시작했다.

‘잘하면 쉽게쉽게 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1장로는 호흡을 가라앉히며, 자신의 손에 명을 달리한 뱀파리스를 바라보았다.

슬슬 반격이 거세지고 있었다.

숫자가 많은 것을 이용해 최소 3대 1의 구도로 국지적인 전투가 벌어진다.

‘목표물은 어디에 있지?’

1장로는 재빨리 별장 내부를 훑었다.

말이 별장이지, 40명이나 거주하고 있을 만큼 굉장히 커다란 건물이었다.

높이도 3층이나 되는 수준이었고 말이다.

‘에이리스라면 어디에 숨겨 뒀을까?’

입술을 한 번 씹은 1장로는 이내 무언가를 발견하고 씩 웃었다.

‘페이크구나.’

3층 높이는 진짜를 숨기기 위한 위장이었다.

그 증거로 모든 뱀파리스가 1층까지 내려와 혼신의 힘을 다해 막고 있지 않은가.

‘2층이나 3층에 숨겨 뒀으면 이렇게 죄다 내려왔을 리가 없다.’

농성을 하더라도 인질이 있는 곳에서 농성을 하겠지.

그러니까.

‘아래다.’

1장로는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지하실로 통하는 곳이 있을 거다.’

“죽어!!”

1장로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뱀파리스 하나를 혈석의 힘을 끌어내 그대로 베었다.

두 동강이 난 뱀파리스를 뒤로하고, 1장로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는 싸우고 있는 뱀파리스들의 시선을 확인했다.

전투 중에도 그들은 한 지점을 계속 흘긋흘긋 쳐다보고 있었다.

‘지켜야 할 게 있으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지.’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모이고 있는 곳은 별장 정문의 반대편 지점.

1장로는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크게 외쳤다.

“버텨 내라!! 3층까지 뚫어라! 3층에 있을 것이다!!”

훌륭한 미끼가 되어 줘라. 너희들이 바친 목숨은 안타깝게 여겨 주마.

1장로는 경계병을 피해 빠르게 정문 반대편 지점을 향해 달려갔다.

‘역시!’

그리고 평범한 벽을 지키고 있는 다섯의 뱀파리스들을 보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

‘녀석이 세력을 이끌고 같이 와 줬으면 좋았을 텐데.’

가장 마지막 구역을 지키고 있는 뱀파리스라면 5대 1의 전투가 쉽지는 않을 듯했다.

1장로는 후! 하고 숨을 뱉어 내며 그대로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어! 어어! 막아!!”

“여기는 못 지나간다!!”

뻔한 대사를 읊긴 하지만, 꽤나 체계적인 진형을 갖추고 있다.

‘……혈석이 소모되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쉽지 않겠다고 판단한 1장로는 채워지지 않는 힘까지 혈석에서 끌어올렸다.

“원래는 에이리스를 상대하기 위해 남겨 둬야 하지만.”

소량이면 크게 차이는 없겠지.

피의 기둥이 휘몰아치기 시작하고, 1장로는 양손에 혈기를 끌어모은 채 진형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중심축부터 파괴해 나가려는 생각이었다.

이빨로 물어뜯고, 손톱으로 그어 내고, 피를 쏘아 내 구멍을 낸다.

“아아악!!”

“흐읍!”

경계병들은 1장로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버텨 내지 못하고 하나씩 쓰러져 갔다.

“하악, 하악.”

확실히 녀석들은 강했다.

에이리스가 엄선해 보초를 세운 놈들다웠다.

‘그만큼 이 안에 있는 이들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지.’

1장로는 명을 달리한 다섯의 뱀파리스들을 보며 웃음을 삼켜 냈다.

“후욱, 후욱.”

가빠진 호흡을 가라앉히며 1장로는 벽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섰다.

예상대로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그곳에 있었다.

“……하하.”

드디어 에이리스와 서은우, 둘의 멱살을 틀어쥘 수 있는 순간이 눈앞으로 다가온 기분이었다.

오늘의 싸움으로 인해 에이리스는 자신이 배신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겠지만.

‘뭐 어쩔 건데?’

그때가 되면 이미 늦었을 텐데 말이야.

히죽 웃은 1장로는 터벅터벅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등불 하나 밝혀져 있지 않았지만, 1장로의 눈에는 보였다.

이 길의 끝에 마지막 문 하나가 남아 있는 것이.

‘깊게도 파 놨네.’

1장로는 깊이 심호흡을 하고는 이윽고 다다른 문 앞에 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끼이익―.

불쾌한 소리와 함께 열린 문. 그는 문 안에 있는 두 뱀파이어를 보며 히죽 웃었다.

역시 에이리스가 꽁꽁 숨겨 두고 있던 이들이 맞았다.

‘네 최후의 패는 내가 가져간다.’

그렇게 생각하며 1장로는 안으로 저벅저벅 들어갔다.

“허, 헉.”

“누구세요……!!?”

피 칠갑을 한 그를 보고, 두 뱀파이어는 겁을 집어먹고 반대편 벽으로 슬금슬금 움직였다.

그러나 1장로는 개의치 않고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랑 가시죠.”

그의 눈동자에는 서은우와 퍽 닮은,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이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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