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2화
222화
에르제는 제이에게 온 연락을 받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음악 방송 무대가 끝나고 숙소로 온 뒤의 일이었다.
‘서은우의 부모가…… 에이리스 쪽에 있다고?’
제이가 기억을 잃은 와중에도 양심에 찔려 자신에게 이런 연락을 해 준 것은 기특했으나, 그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도대체…….’
에이리스가 그들을 데리고 뭘 하려고 하는지까지 적혀 있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자신이 일족을 포함한 뱀파이어 세력을 흡수할 때, 그곳에 없던 서은우의 부모는 에이리스에게로 향했다는 것.
정확한 인과관계는 알 수 없다.
에이리스가 그들을 포섭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제 발로 에이리스를 찾아간 것인지는.
‘……일단 확률적으로는 에이리스가 데려갔다고 보는 게 맞겠지.’
서은우의 부모가 서은우를 알아보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 안에 든 것이 서은우가 아닌 자신이라는 사실까지 알아봤을 수도 있고.
‘만약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가 날 찾아오지 못하게 막았다는 뜻일 수도.’
부모가 되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심정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어려웠다.
어차피 지금 중요한 것은 서은우의 부모가 왜 에이리스와 함께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에이리스는 서은우가 대악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를 지구에 강림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고.
그렇다면…… 서은우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고, 그를 만나게 해 주겠다는 말로 그들을 꾀였을까?
하지만.
‘그게 무슨 이득이 있다고?’
서은우의 부모는 이해가 간다. 아들을 만나게 해 주겠다는데, 거절했을 리가 없겠지.
그들이 만나고 싶은 것은 서은우의 껍데기가 아니라 그 안에 있었던 영혼일 테니까.
사죄라도 할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에이리스는?’
에르제는 허벅지를 두들기며 미간을 좁혔다.
도대체 무슨 이득이 있어서 그런 짓을 벌였을까.
솔직히 서은우의 부모를 자신과 만나게 하는 게 그녀로서는 더 큰 이득일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에이리스는 자신의 성격을 알고 있었으니까.
‘서은우의 부모가 내게 족쇄가 되는 편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지.’
그럼에도 서은우의 부모를 데리고 갔다는 건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에르제는 눈을 꼭 감았다가 떴다.
‘몸을 차지한 서은우가 에이리스를 찾아간 걸 보면, 둘이 주기적으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야.’
만약 그랬다고 한다면, 서은우가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에이리스를 찾아갔을 리가 없었을 테니까.
‘서은우와 에이리스가 서로 소통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가정하면…….’
그런 생각을 하자, 무언가 실마리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만약 대악마인 서은우가 지구에 강림했다고 하면?
서은우는 자신을 강림시킨 에이리스를 동료로서 인정해 주고 건드리지 않을까?
‘미지수야.’
그리고 이건 에이리스도 마찬가지 생각일 것이다.
에르제는 인상을 썼다.
‘인질.’
어쩌면 서은우의 유일한 약점일지도 모를 그의 혈육. 그들을 인질로 삼을 셈인 거다, 에이리스는.
‘여전히…… 그런 식으로 살아남으려 하는구나.’
에르제는 헛웃음을 흘렸다.
과거 카테이아 대륙에서도 그녀는 똑같은 짓을 자행했었다.
뱀파이어에서 떨어져 나가 뱀파리스라는 저열한 종족을 만들었을 때도 말이다.
당시 뱀파이어들은 뱀파이어들의 세계에 오랫동안 적응되고 학습이 된 상태였다.
아무리 내재된 욕망이 있다고 해도, 에이리스의 밑에 들어갈 뱀파이어들은 거의 없었다는 의미다.
그녀의 사상에 동조하는 이들은 대부분 일족에서 쫓겨난 추방자들이었으니까.
그래서 에이리스는 최악의 짓을 저질렀다.
가능한 많이, 확보할 수 있는 만큼…… 뱀파이어들의 부모를 납치한 것이다.
이미 늙어 버린 그들은 젊은 뱀파리스에게 당해 낼 수 없었고, 그들은 뱀파리스가 될 생각이 없는 뱀파이어들을 끌어들이는 미끼로 이용되었다.
‘한번 뱀파리스의 사상과 본능에 물들고 나면…… 다시 돌아오는 일은 거의 없었으니까.’
그 이후로 경계를 강화했기에 같은 일이 또다시 벌어지는 일은 없었지만, 당시 일족을 떠난 뱀파이어들의 수는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그 뒤로는 인간들을 뱀파리스로 만들었지.’
그로 인해 에이리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뱀파이어 일족과 엇비슷한 힘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너는 이번에도 살아남기 위해 비슷한 짓을 하고 있구나.’
에르제는 고개를 들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서은우의 부모님을 찾지 못하게 숨겨 놓고, 지구에 강림한 서은우를 이용해 먹으려는 생각이 분명했다.
분노를 사그라뜨린 에르제는 다시 고개를 정면으로 내렸다.
‘이번에는 네 생각대로 되지는 않을 거야.’
서은우의 부모를 숨긴 것은 오히려 안전한 곳에 보호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1장로와 에이리스의 싸움에서 자신은 에이리스를 이기게 만들어 줄 것이고.
그렇다면, 독이 든 성배는 서은우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 테니까.
주먹을 꾹 쥐었다가 편 에르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이에게 굳이 답장을 보내지는 않았다.
그도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다시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게 될 테니까.
에르제로서 하는 생각은 여기까지다.
일단 지금은 토트윈의 서은우로 돌아와야 할 때였으니까.
* * *
토트윈의 ‘Parados’ 활동도 이제 슬슬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곧바로 마지막 서사인 ‘Epilogue’를 준비해야 할 때였다.
팬들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규 앨범이 아니라 디지털 싱글 음원으로 3곡이 발표되는 형식이었지만, 그 3곡이 서로 연결되는 하나의 서사 속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완전히 지구로 오게 된 판타지 세계관의 캐릭터들과, 그 안에서 겪는 불안과 격정 그리고 팬들에 대한 이야기.
마지막 ‘Epilogue’는 어떤 스토리를 보여 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꽤나 많이 나오고 있던 참이었다.
한 달 간격으로 싱글 음원이 나오는 미친 일정이니 3곡은 진즉에 완성이 되어 있는 상태였고, 그것을 그저 한 달 간격으로 풀고 있을 뿐이라면서.
미리 떡밥이라도 좀 던져 달라고 아우성치는 팬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그건 팬들뿐만이 아니라, 토트윈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토트윈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STT’도 마찬가지였다.
‘STT’는 가수와 아이돌 그룹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매체였는데, 그들도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청했다.
어차피 곧 12월이고, 얼마 안 있다가 공개될 예정이었으니 장 대표도 허락한 모양이었다.
단, 스포는 최대한 자제하라고 말했다.
그것이 장 대표와 이윤이 인터뷰 전에 토트윈에게 신신당부한 내용이었다.
이번 인터뷰 진행을 맡은 ‘이희주’가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영상 형태로 무튜브에 인터뷰가 올라간다 했기 때문에, 토트윈은 조금 긴장한 기색을 보이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신인상 수상부터 시작해 많은 히트곡을 낸 그룹이었지만, 아직 2년 차에 불과한 그들이었다.
그동안 몇 번이나 인터뷰를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에르제 혼자만 평온한 얼굴로 이희주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반갑습니다. 일단 팬분들께 인사부터 하고 시작할까요?”
이희주의 말에 토트윈은 카메라를 향해 방긋 웃으며 윤치우를 따라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Trick or treat! 토트윈입니다!”
손을 내밀며 하는 동작까지 에르제 또한 틀리지 않고 인사를 무사히 마쳤다.
그 모습에 미소를 짓던 이희주가 서두를 꺼냈다.
“사실 저도 토트윈 팬이거든요. 이렇게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고 인터뷰할 수 있어서 무척 기뻐요.”
“저희도 인터뷰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른스러운 윤치우의 말에 이희주가 다시금 미소를 머금었다.
“이번에 토트윈은 꽤나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 가고 있는데요. ‘Prologue’를 거쳐 이제 ‘Parados’의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네요.”
이희주는 멤버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특히 ‘Prologue’에서는 댄스 챌린지가 대중 사이에서 꽤나 화제가 되었는데, 토트윈 여러분들도 알고 계셨나요?”
그 말에 윤치우가 다시 대답했다. 대부분의 인터뷰 질문은 앞으로도 그가 최대한 나서서 대답할 예정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에르제와 TMI 전문인 태현우, 시니컬한 민주혁이 답변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이라고 할까.
“그럼요. 저희도 팬분들 영상을 많이 봤고, 사실 저희가 바란 일이기도 해요. 저희 이윤 매니저가 그 영상을 찍느라 꽤 고생했거든요.”
“푸하하, 그 영상 저도 봤어요.”
이희주가 웃음을 터뜨리며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서은우 씨가 옆에서 엄청 뭐라고 하던데요? 그렇게 피드백 주기로 사전에 협의된 거예요?”
“협의된 일은 아니었어요. 근데 은우가 평소에도 원래 엄격하거든요. 주혁이도 그렇고요.”
아닌데. 엄격해서가 아니라 평소 잔소리가 많은 이윤을 괴롭히고 싶어서 그런 거였다.
에르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 이희주는 꽤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특정 멤버를 저격해 물어보지 않는 이상, 윤치우가 대부분 대답을 해 나갔다.
“으음…….”
결국, 인터뷰 중간에 이희주가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뭔가 재미있는 대답을 건지고 싶은 듯한데, 윤치우가 계속해서 커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순순히 물러날 이희주가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꽤 많은 아이돌과 가수들을 인터뷰했었고, 이런 경우도 충분히 겪어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면 재미없는데. 그렇게 생각한 이희주는 아예 노골적으로 에르제를 쳐다보며 물었다.
“최근에 나온 음악 방송 무대에서도 그렇고, 팬분들 이야기도 그렇고. 이번 ‘Parados’ 활동에서 윤치우 씨와 민주혁 씨가 특히 서은우 씨를 챙기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는 말이 있어서요.”
이희주의 말은 사실이었다.
윤치우와 민주혁의 개인적인 가정사를 에르제가 해결해 준 뒤로, 이 둘은 에르제에게 특히 신경을 써 주고 있었다.
무대가 끝나고 땀 때문에 몇 가닥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손수 떼어 주던 윤치우의 모습이나.
평소 다른 멤버들의 언급이 거의 없던 민주혁이 ‘보글보글’에서 에르제에 관한 주제를 꺼내는 등 말이다.
그래서 요즘 부쩍 세 사람에 관한 궁금증이 커졌는데, 이희주는 그것을 정확히 노리고 질문을 던졌다.
역시나, 그녀의 질문에 윤치우와 민주혁이 약간 긴장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말실수……까지는 하지 않겠지만, 에르제가 과연 정상적인 대답을 내놓을까? 하는 그런 걱정이 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에르제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옛날에 내가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최근에는 딱히 ‘사고’라고 부를 만한 일도 벌이지 않았으니까!
에르제는 당당히 어깨를 펴고 이윤이 놀랄 만한 대답을 내놓았다.
“사실 저희가 엄청 친하거든요. 팬분들께도 그런 모습을 많이 보여 드리고 싶은데, 아무래도 그러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그러다 보니 그런 친한 모습들이 드러난 장면을 팬분들이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원래 두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워낙 잘 챙기는 타입이라서 더욱 멤버들을 위하는 모습이 많이 포착된 것 같고요.”
하하, 에르제는 말이 끝나고 밝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너 원래 그런 캐릭터 아니잖아.’
이희주의 눈에 아쉬움과 실망이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