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21화 (221/307)

제221화

221화

토트윈의 이번 디지털 싱글 ‘Parados’는 확실히 상승세를 탔다.

‘Prologue’로는 뚫지 못했던 음원 차트 1위를 2주 차에 바로 달성했고, 그 뒤로도 계속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Prologue’에서 쌓인 서사가 ‘Parados’에서 제대로 터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Prologue’에서 댄스 챌린지로 무튜브를 보는 많은 이들이 토트윈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로 인한 결과가 ‘Parados’에서 빵 하고 터진 것이다.

완전히 지구에 정착하게 된 판타지 세계의 그들이 지속적으로 느끼는 불안과 걱정 그리고 이를 이겨 내게 도와주는 팬들에 대한 이야기.

더불어 헤어, 메이크업, 의상의 완벽한 3박자와 ‘Parados’의 고난도 안무와 보컬을 소화하는 토트윈의 실력.

소위 팬들의 뽕이 차오르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 2년 차 후반기에 접어드는 시점이지만, 대중은 토트윈이 LAK급은 충분히 된다고 여기고 있었다.

연차로는 비빌 수 없을지라도 앨범 판매량 같은 수치들을 들먹이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팬들뿐 아니라 토트윈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음악 방송 출연을 위해 방송국을 찾은 토트윈을 대하는 다른 그룹들의 태도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물론 기존에도 무시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직은 후배보다 선배가 더 많은 토트윈이었기 때문에.

항상 먼저 가서 아는 척하고 인사를 하는 것은 토트윈의 몫이었다.

그러나 오늘 토트윈은 조금 달라진 분위기를 체감하고 있었다.

“어! 토트윈! 반가워요!!”

“아, 안녕하십니까. 선배님들.”

“하하하, 선배님이라고 하니까 좀 멀게 느껴지는 기분이네. 다음에 볼 때는 그냥 형이라고 해요.”

“아닙니다. 저희가 어떻게. 항상 선배님들의 곡을 보고 들으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토트윈과 꽤 연차가 나는 선배들이 먼저 아는 척하며 반갑게 인사해 주었던 것이다.

뭐랄까.

‘전에는 견제한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전에는 선배로든 같은 아이돌로든 밀리지 않으려는 경쟁심리가 강하게 느껴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태도가 좀 바뀐 듯했다.

‘……이제는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그런 걸까.’

하여간 재미있는 현상이었다.

에르제는 멀어져 가는 선배 아이돌 그룹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에르제와 비슷한 모습이었던 토트윈 멤버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뭔가 기분이 이상해여.”

“그러게.”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마디씩 하다가 이내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은 사녹 없이 무대야.”

그리고 리더인 윤치우는 들뜨기 시작하는 기분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부끄럽지 않게 잘하자.”

그래.

그동안 연예계를 경험해 보니, 미끄러지는 건 정말 한순간이었다.

제이를 이용해 먹고 있는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아이돌 제1군이었던 LAK도 요즘 활동이 뜸하니 그쪽 분위기도 순식간에 확 식지 않았던가.

‘원래는 제이 말고 다른 멤버들도 여기저기 얼굴을 비쳤던 것 같은데.’

혹시 제이와 관련된 일 말고 다른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일단 제이에게 특별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것 같으니까 별일은 없겠지.’

에르제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른 멤버들을 따라 그들에게 배정된 대기실로 향했다.

* * *

같은 시각.

제이는 현재 LAK의 활동 재개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다.

LAK와 아이돌 활동에 그렇게까지 큰 미련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커뮤니티를 보고 있는 그의 속이 쓰리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대표도 욕 엄청 먹고 있네.’

하기야 작년 여름 이후 1년이 넘도록 눈에 띄는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있으니. LAK 팬들인 라쿤의 입장에서는 목마름을 호소하고 있을 터였다.

제이는 스마트폰을 덮고 오늘 만나기로 한 이들을 가만히 기다렸다.

현재 그가 있는 곳은 뱀파리스 본부 내의 응접실이었는데, 오늘의 만남은 에이리스가 주선한 자리였다.

― 중요한 분들이니까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해 주도록.

에이리스가 중요하다고 할 만한 뱀파리스들이 누가 있을까.

‘그렇게 중요하면 본인이 직접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제이는 입술을 비죽였다.

소속사 대표나 LAK는 그가 통제하고 있으니 자신이 돌아가지 않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만……. 사실 LAK 숙소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오히려 자신 쪽이었다.

자신을 구속하고 있던 빌어먹을 혈석도 드디어 떨어져 나갔고, 뱀파리스의 존망에는 딱히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자신의 혈석을 뺏어 간 1장로라는 인물과 뱀파리스 로드 에이리스. 이 두 인외의 존재들이 알아서 싸우면, 자신은 자연스럽게 승자의 편에 서면 될 일이었다.

“에휴.”

그런데 이렇게 에이리스의 명령이나 듣고 있는 처지라니.

에르제가 계획과 관련된 모든 기억을 지워 버렸기 때문에 제이는 계속해서 생산성 떨어지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을까, 곧 응접실의 문이 열리고 두 남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나이는 많아 보이지 않았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최소한 자신보다는 오래 산 느낌이라 제이는 일단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에이리스 님이…… 오늘 만나 보라고 하신 분들 맞으시죠?”

“아, 네. 맞아요.”

여자가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남자는 입을 꾹 다문 채 자리에 앉았다.

불만이라도 있는 건가.

마른침을 꿀꺽 삼킨 제이는 여자가 앉고 난 뒤에 자리에 앉았다.

고급 원목으로 만든 의자였지만, 마음이 불편해서 그런지 앉은 자리도 너무 불편했다.

제이가 손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으니, 머뭇거리던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는…….”

“여보.”

“괜찮을 거예요. 여기 와서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

“……하아.”

여자의 말을 잠시 막아섰던 남자가 물러나자, 여자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저희는……. 아니, 혹시 서은우……라고 아시나요?”

“서은우요?”

제이는 뜬금없이 튀어나온 이름에 깜짝 놀랐다.

서은우? 에르제?

그리고 동시에 흥미가 강하게 일었다.

그동안 에르제를 로드라고 부르며 따르는 뱀파이어들을 몇 번 본 적이 있었지만, 여태 에르제에 대한 정보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이 사람들이 에르제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을까?’

제이는 호기심에 눈을 빛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야기에 제이는 바로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찾고 있는 것은 서은우였지, 에르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은우는…… 저희 아들이에요.”

여자가 그렇게 말하며, 손을 꾹 말아 쥐었다.

“뱀파이어에게서 태어났지만, 뱀파이어로 태어나지는 않았어요. 피가…… 피가 많이 옅어져서 그런 거겠죠.”

그러고도 여자의 넋두리는 계속되었다.

당시 뱀파이어의 수장을 맡고 있던 ‘바란’이 뱀파이어로 태어나지 못한 갓난아기들에게 뱀파이어의 피를 주입하라고 지시했고, 이를 버티지 못한 아기들은 폐기 처분을 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서은우의 부모는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어서 뱀파이어의 피를 주입하는 대신 고아원에 아이를 버렸다고.

그 말을 들은 제이는 얼굴을 굳혔다.

그 사실은 제이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장진규의 부사수 개념으로 뱀파이어 쪽에서 스파이 노릇을 하고 있었고, 그 행태를 몇 번이나 지켜봤던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난 서은우가 뱀파이어가 되기 전에 만났었고.’

제이는 윤소희에게 불려 갔던 날을 떠올렸다.

인간 하나를 뱀파이어로 만들어 주려고 하는데, 그런 판타지적인 이야기를 누가 믿겠냐며 직접 와서 힘을 좀 보여 달라고 해서 간 자리였다.

제이가 아이돌이 된 서은우를 보자마자 뱀파이어라고 알아챈 이유도 바로 그래서였다.

무사히 뱀파이어가 되었구나. 하지만 싸가지는 없구나. 당시에는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제이는 가라앉은 눈으로 서은우의 부모라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들은 서은우가 뱀파이어가 되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을까.’

결과적으로 서은우는 뱀파이어가 되지 못했다.

지금 서은우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에르제는 뱀파이어 로드였으니까. 그자가 서은우의 몸에 살고 있으니…… 서은우의 영혼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으음…….’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제이가 입술을 달싹이고 있으니, 이번에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말을 하다가 북받친 여자가 눈물만 흘리며 이야기를 더 이상 이어 갈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였다.

“은우의 몸에…… 다른 자가 들어와 있다는 것은 에이리스 님께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남자는 심각한 얼굴로 제이를 바라보았다.

“제이……라고 하셨죠. 표정을 보니, 당신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군요.”

“……이미 알고 계셨군요.”

제이는 그렇게 대답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괜히 고민했네. 에이리스가 이미 말했을 줄이야.

근데, 그러면 나를 굳이 여기로 불러올 이유가 없지 않나?

어차피 전후 사정도 다 아는 것 같은데.

제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니,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그의 심리 상태를 읽은 모양이었다.

“그냥, 그냥……. 제 아내가 은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해서 그렇습니다. 뱀파이어가 되기 전 은우를 만나셨다고 듣기도 했고, 은우의 몸에 들어온 다른 뱀파이어와도 접점이 많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냥, 그동안의 이야기를…… 조금 듣고 싶습니다.”

* * *

불편한 자리였다.

도대체 뭘 위한 자리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서은우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것도 아니었고, 에르제에 대한 정보까지 물어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에이리스의 명령이 있었으므로 제이는 자기가 아는 선에서 성실히 대답해 주었다.

대략 1시간 동안 제이는 이야기를 했고, 그들은 눈물을 훔치며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러고는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듯한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한 그들은 응접실을 나갔고, 제이는 혼자 남겨졌다.

꽤 오랜 시간 고민하며 앉아 있던 제이는 머리를 세차게 헝클어뜨렸다.

“아씨, 진짜.”

찝찝해도 너무 찝찝했다.

가슴에 뭔가 얹힌 느낌이라 답답하기만 했다.

그때 문득 떠오른 김지태와 김지원의 얼굴.

고아였던 김지원도 하나뿐인 형을 잃었을 때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던 제이는 입술을 씹었다.

꽤 오랜 시간 뱀파리스로 살아오면서 자신은 얼마나 많은 서은우의 부모님 같은 사람들을 만들어 냈을까?

‘……짜증 나.’

생각만 한다고 어두운 과거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제이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 우롱차 좋아하는 놈 ]

그리고 녀석에게 코코아톡을 보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