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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17화 (217/307)

제217화

217화

윤치우의 어머니는 얼마 안 돼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원래는 조금 더 빨리 퇴원할 수 있었지만, 수술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멀쩡해졌기에 의사가 혹시 모른다며 붙잡았다고 한다.

“무슨 학계에 보고를 해야 한다 어쩐다 말이 많더라고.”

윤치우는 에르제에게 따로 감사 인사를 전하며 그렇게 웃었다.

“아무튼 정말 고맙다. 은혜는 꼭 갚을게.”

“그럴 필요 없어.”

에르제는 그를 따라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전에 너한테 줬던 소원권, 그거 하나 남아 있었다고 치면 돼.”

“……소원권?”

“응. 그때 네가 그랬잖아. 은우에 대해서 알려 달라고.”

“그랬지.”

윤치우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제대로 된 대답을 해 준 것도 아니었고, 소원권으로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 한 것도 좀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었으니까.”

에르제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번에 진짜 소원권 2개 다 쓴 걸로 해.”

그 말에 윤치우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고마워.”

바닥을 보며 말하고 있던 그는 이내 에르제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올해도 소원권 줄 거야?”

“아니.”

에르제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는 소원권이라는 선물이 아주 획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에르제는 이제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사람들이 소원권을 팔지 않는지, 선물로 소원권을 잘 주고받지 않는지 말이다.

“소원권 시스템은 곤란할 때가 너무 많아.”

모든 것이 소원을 비는 사람의 마음이니까. 자신도 서은우와 관련된 소원에 당황하지 않았던가.

“소원권은 이제 폐지야.”

“풉, 그래.”

윤치우는 알겠다는 듯이 밝은 웃음을 지었다.

최근 어머니의 일로 마음고생이 심하더니, 그게 깔끔하게 해결되고 나니 괜찮아진 모양이다.

표정부터가 훨씬 밝아졌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 와중에 팬들이 그의 사정을 눈치채지 못했으니, 무대나 팬들 앞에 설 때 얼마나 표정 관리를 잘했는지 알 수 있었다.

‘팬들도 병원 사진을 보고 놀랐던 게 윤치우가 혹 아픈 거 아니냐고 걱정했을 정도니까.’

심지어는 도대체 어디서 짜깁기를 해 온 것인지, 무튜브에는 ‘아픈 거 참고 무대 하는 윤치우’라는 영상까지 돌아다니기도 했다.

사실 윤치우는 지금까지 아프지도, 아픈 적도 없었…….

‘아, 한 번 악플 때문에 쓰러진 적이 있긴 하구나.’

아무튼, 그 영상이랑은 아무 상관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걸 믿은 이들이 어찌나 많은지, 모카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상당히 곤욕을 치렀단다.

아프면 쉬게 해야지, 왜 무대에 세우느냐면서 말이다.

‘안 그래도 요즘 일 못한다고 욕먹는 것 같던데.’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던 것들이 이제 와서 재조명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윤치우까지 나서서 해명한 덕분에 논란이 금세 가라앉기는 했다.

‘건강검진을 받으러 간 거라고 말을 맞췄지.’

하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일거리가 하나 늘어나기는 했다.

윤치우만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니, 다른 멤버들도 다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건강검진에서 구체적으로 뭘 하는지 모르는 에르제로서는 아직까지 별생각이 없었다.

윤치우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그런데, 은우야.”

“응.”

“너희들도 건강검진 받으러 가야 하잖아.”

“그렇다고 하더라.”

에르제가 표정 변화 없이 대답하자, 윤치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괜찮아?”

“……뭐가?”

“건강검진 말이야.”

되레 윤치우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거 피검사도 하고, 내시경도 하고……. 아무튼, 네 몸이 어떤 상태인지 이런 거 다 확인할 텐데.”

“……!”

그제야 에르제가 반응을 보였다.

“그래……? 피검사도 한다고?”

“응. 뱀파이어라고 해도 일반인들이랑 크게 다르지는 않으려나? 아니면, 은우 몸…… 이니까 상관없을까?”

그 말에 에르제는 고개를 저었다.

서은우의 몸에 들어와 있기에 신체 구조 자체는 뱀파이어가 아닌 인간과 똑같지만, 그 안에 흐르고 있는 피는 아니었다.

흡혈 욕구가 사라졌다고 해서 로드의 힘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니 말이다.

‘어떻게 하지?’

건강검진을 하는 날 아프다고 할까?

‘아니, 아프다고 하면 더 보내려고 하겠구나.’

진퇴양난에 빠진 기분이었다.

에르제가 심각한 얼굴로 일생일대의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윤치우와 에르제, 둘만 있던 방문이 스르륵 열렸다.

“둘이 뭐 해?”

민주혁이었다.

윤치우에게는 악령 이야기를 미리 해 두었기에, 그는 별 고민 없이 대답했다.

“그냥, 우리 어머니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있었어.”

“아!”

민주혁은 빠르게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왔다.

“악령 말하는 거지?”

“어? 어, 으응.”

윤치우가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리며 대답했다.

“나한테도 악령이 붙어 있었거든. 어쩌면 나도 아프거나 그랬을지도 몰라. 아, 그리고 우리 아버지도.”

이제는 안병인에게 가지고 있던 악감정도 거의 사라졌는지 편안하게 그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아버지도 악령이 붙어 있었다던데, 이런 것도 유전인가?”

고개를 갸웃한 민주혁은 이내 심각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은우 덕분에, 아버지랑 나도 그렇고 형 어머니도 그렇고……. 정말 다행이야. 멤버 중에 메인 퇴마사가 꼭 필요하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어.”

“으응. 그, 그렇지.”

“다음번에 대표님이 새로운 아이돌 그룹을 만드시려고 하면, 꼭 말씀을 드리려고.”

“아니, 그건…… 좀.”

어쩌다가 민주혁이 이렇게 변하게 된 걸까.

‘아니, 본인은 진지하겠지만.’

코를 긁적이던 에르제는 이내 윤치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민주혁의 말에 윤치우는 쩔쩔매고 있었는데, 이를 지켜본 에르제의 감상은 하나였다.

‘너는 연기하지 마라.’

나중에 윤치우가 연기를 하겠다고 나서거나, 소속사에서 시키겠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만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근데 건강검진 진짜 어떻게 하지.’

이건 민주혁이 있을 때는 이야기할 수도 없었기에, 에르제는 침대에 그냥 벌러덩 누워 버렸다.

윤치우라고 해서 딱히 좋은 해결책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그렇게 눈을 감고 있으니, 곧 민주혁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튼, 나는 오늘 부모님이랑 같이 식사하기로 했어.”

그 말에 에르제가 벌떡 일어났다.

“부모님?”

“아, 응.”

민주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때…… 나한테 붙어 있던 악령을 없애 준 이후로 나도 아버지랑 관계 회복을 위해 계속 연락하고 있었거든.”

그랬구나. 그건 참 다행스런 일이었다. 민주혁 쪽에서 적극적인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 어머니와도 이야기를 좀 같이 나누면 좋을 것 같아서 오늘 식사 자리를 마련했어.”

“그래? 잘했네.”

윤치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대답했지만, 에르제는 식사 자리라는 사실에 불안감을 느꼈다.

저번 댄스 예능 때부터 느꼈던 불안감이었다.

“혹시, 식사 자리라는 게 외부의 식당이야?”

“아, 아니.”

민주혁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에르제가 무슨 생각인지 알고 있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팬들에게 알려지면 안 된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그래서 어머니 집에서 같이 보기로 했고, 도착하는 시간도 따로따로 오기로 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럼 괜찮겠네. 사정은 미리 말해 뒀지?”

“응. 그래서 기사님도 없이 따로 혼자 오시겠다고 하셨어.”

하긴 안병인이 연예인도 아니고.

아무리 대기업 회장이라고 해도, 지속적으로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얼굴은 아니니까.

슬쩍 보는 것만으로는 쉽게 알아채지 못할 듯했다.

‘민주혁도 팬들에게 안병인과의 관계가 밝혀지면 곤란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구나.’

역시 생각이 깊은 녀석이야. 에르제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민주혁과 에르제, 둘의 대화에서 묘하게 소외되어 있던 이가 입을 열었다.

“그…… 저기, 얘들아?”

“?”

“팬들에게 알려지면 안 된다는 게 무슨 말이야?”

윤치우가 둘을 번갈아 바라보며 묻자, 민주혁이 에르제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 일인데, 왜 나를 쳐다보니?’

마치 말해도 되느냐고 허락을 받으려는 모양새였다.

에르제가 당황한 눈으로 그를 마주 보며 말했다.

“네 얘기니까 네가 결정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 말에 민주혁이 아차, 하는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둘의 관계에서 에르제가 도와준 것이 많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런 듯했다.

민주혁은 말을 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결국 말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대중에게 퍼지지만 않으면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토트윈 멤버들이 이런 이야기를 마구 떠벌릴 인간들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형이나 애들한테…… 사실 그렇게 숨길 만한 내용도 아니고.”

목을 가다듬은 민주혁은 안병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스토리를 짧게 요약해서 말을 해 주었고, 윤치우는 5분가량 놀라서 입을 벌린 채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까지 민주혁이 어머니 밑에서 혼자 자라온 걸로만 알고 있었을 테니,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럼, 청화에서 우리 쪽에 후원해 주고 그런 것도…….”

“맞아.”

“그래서 팬들이 알면 안 된다고 한 거구나.”

윤치우는 납득을 했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나 안병인이 민주혁의 아버지라는 사실은 쉬이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근데 왜…… 안주혁이 아니라 민주혁이야?”

“어머니 성으로 바꾼 거야.”

“아아…….”

윤치우는 넋이 나간 얼굴로 대답했다.

그 틈에 시간을 확인한 민주혁이 다급하게 말했다.

“얘기하다 보니 늦었네. 갔다 올게!”

“다녀와.”

에르제는 손까지 흔들어 주며 인사를 해 주었다.

“…….”

윤치우는 나가는 그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에르제에게 물었다.

“이거, 현우나 단테…… 윤이 형한테도 말을 하는 게 좋을까?”

그러니까, 왜 자꾸 나한테 물어보는 거냐고.

에르제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민주혁한테 물어봐…….”

* * *

부모님과의 식사 자리가 꽤 만족스러웠는지, 민주혁은 그날 밝은 얼굴를 한 채 숙소에 돌아왔다.

악령 이야기까지 꺼내지는 않았겠지만, 아마 안병인과 말을 잘 맞췄겠지.

그런 것까지 도움을 줄 이유는 없었기에 에르제는 그냥 결과만 보기로 했다.

‘결과가 과정을 설명하는 거지.’

윤치우도, 민주혁도.

틀어졌던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분이 들어 에르제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며칠간 음악 방송 활동과, 알바 몬스터 시즌 2 촬영을 병행하며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

혹시 몰라서 에르제가 부탁해 놓았던 일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별 탈 없이 지나가리라고 여겼던 곳에서 생긴 시한폭탄이었다.

[ 로드, 수상한 자를 찾았다. ]

에르제는 플랑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하고 표정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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