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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16화 (216/307)

제216화

216화

윤치우의 어머니를 치료하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혈액의 구성 성분이 일반 인간들과 달라.’

순식간에 문제점을 파악한 에르제가 본인의 혈기를 윤치우의 어머니 몸 안에 넣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명력과 기운을 북돋아 주는 회복 술법을 더하니, 윤치우 어머니의 몸은 건강한 상태와 다름없는 수준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깊이 잠들 수 있도록 근육을 이완시켜 준 에르제는 윤치우가 서 있을 문으로 가서 똑똑 두들겼다.

드르륵―.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고, 윤치우가 긴장한 기색으로 물었다.

“어떻게…… 됐어?”

에르제는 그를 병실 안으로 끌어당겼다.

“무사히 끝났어.”

그렇게 말하며 웃자, 윤치우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아…….”

그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모양인지 윤치우는 그대로 제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다시 일어나지도 못한 채로.

윤치우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에르제는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일 수술은 할 필요가 없어. 마침 피와 관련된 병이라 치료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생명력이 많이 떨어져 있어서 그 부분도 해결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 말에 윤치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나가면 창문 닫고.”

에르제는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들겨 주고는 다시 박쥐로 변해 병원 밖으로 쿨하게 날아갔다.

“…….”

그대로 병실에 남겨진 윤치우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희귀한 병에다 수술까지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수술 이후에 완치될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었던 병.

그나마 그의 이모가 흔쾌히 이식 수술에 동의해 주었지만, 그마저도 적합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했다.

어머니가 아프기 시작하고, 지난 몇 주 동안 얼마나 초조했었는지…….

“…….”

당장 내일이 수술이었기 때문에 걱정으로 밤을 지새울 뻔했는데, 그사이 에르제가 다녀간 것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딱히 티가 나지는 않았다.

‘은우가 치료가 잘됐다고 하기는 했지만.’

뱀파이어이기 때문에 어쩌면 인간들의 신체 구조에 대해서는 잘 모를지도 모른다.

에르제가 치료할 수 있다고 했을 때는 ‘어쩌면?’ 하는 마음에 홀리듯이 알겠다고 했지만.

따지고 보면, 원래보다 더 나빠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에르제가 그럴 뱀파이어가 아니기는 했지만, 실수는 선의나 악의에 관계없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내일……. 내일, 수술 들어가기 전에 검사 한 번 더 한다고 했으니까.’

그때 정말로 다 나은 거라고 진단되면, 자신은 에르제에게 평생 갚을 수도 없는 큰 은혜를 입은 게 된다.

“후우.”

윤치우는 제발, 이라고 중얼거리며 잠든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 * *

다음 날 오후.

특별한 스케줄이 없어서 멤버들과 숙소에 있을 때.

이윤이 황급히 찾아왔다.

어젯밤에도 오더니, 급작스러운 재방문에 토트윈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치우……!”

계단이라도 뛰어 올라온 건지 연신 헉헉대던 이윤은 심호흡을 몇 번이나 하고서야 뒷말을 이을 수 있었다.

“치우 어머니, 괜찮아지셨대!”

“엇, 정말여!?”

어제 얼마나 울었는지 아직도 눈이 퉁퉁 부은 안단테가 벌떡 일어났다.

“다행이다, 진짜로.”

태현우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수술이 잘된 거예요?”

“아니! 원래 수술 예정이셨는데, 그 전에 괜찮아지신 모양이야.”

“엥?”

그게 가능한 일이냐고 태현우가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뭐 결과가 좋다니 납득하는 듯했다.

“아무튼 잘됐네요. 어제 멤버들이랑 치우 형 어머니 수술 끝나고 나면, 언제 병문안 갈 수 있는지 의논했는데.”

이윤은 그런 그들을 기특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대표님께 먼저 보고를 드렸어야 했는데.”

윤치우에게 연락을 받은 뒤, 곧장 토트윈에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던 모양이다.

이윤이 장 대표에게 전화를 하러 나가고, 다시 스마트폰을 보려던 에르제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민주혁이었다.

“퇴마 성공이야?”

“어……. 응.”

악령 퇴치가 아니라 그냥 치료였는데, 굳이 그런 것까지 말해 줄 필요는 없겠지.

윤치우도 멤버들에게 자신이 치료해 주었다고 떠들지는 않을 테니, 그냥 민주혁이 그렇게 오해하도록 두는 편이 나았다.

자칫하면 귀신을 볼 수 있고 악령을 퇴치할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뱀파이어라는 사실까지 민주혁에게 들킬 수 있으니 말이다.

‘이윤은 다시 안 돌아올 것 같은데.’

그럼 거실에 굳이 나와 있을 이유가 없었다.

태현우와 안단테도 긴장이 풀렸는지, 완전히 뻗어 버렸고 말이다.

에르제가 방으로 들어가니, 곧 그의 뒤를 따라 민주혁까지 들어왔다.

“?”

민주혁의 방은 여기가 아닌데.

에르제가 고개를 갸웃하자, 민주혁이 어색한 얼굴로 그의 옆에 앉았다.

“아니, 그냥…… 물어볼 게 있어서.”

“뭔데?”

“……사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 몰라서 좀 혼란스럽기는 한데,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거든.”

뭔 소리를 하는 건가 싶어서 가만히 있으니, 민주혁이 헛기침을 하며 이어서 말을 했다.

“아니, 갑자기 궁금해져서. 악령이나 이런 것들이 왜 생기는지, 왜…… 인간들을 이렇게 아프게 하는 건지 말이야.”

“아.”

에르제는 그제야 민주혁이 왜 서두를 그렇게 깔았는지 이해했다.

평소 귀신이라든가 악령, 미신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완전히 부정하던 민주혁이었다.

‘하긴, 민주혁의 성격에 악령을 직접 보고 난 뒤에 꽤나 혼란스러웠겠지.’

아마 직접 그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절대 받아들이지 못했을 거다.

직접 보여 줬으니 조금 더 확실했을 거고.

‘악령이 생기는 이유, 말을 해 줘도 되려나.’

잠시 고민하던 에르제는 딱히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아서 이야기해 주었다.

“악령, 그러니까 귀신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야.”

“존재하지 않는다니?”

“생명체가 아니거든. 놈들은 그저 부정적인 감정이나 마이너스 에너지가 뭉쳐진…… 그런 것들이거든.”

“음…….”

뭐 쉽게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민주혁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먼저 물어봤으니, 에르제는 그냥 웬만한 것들은 다 말해 주기로 했다.

“그렇게 태어난 악령들은 당연히 감정이나 에너지 덩어리이기 때문에 인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 그런 것들은 형상화되지 않으니까.”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 좋아하는 마음의 크기나 형태가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건 이해가 됐는지, 민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이를 볼 수 있는 특별한 이들이 존재하기는 해. 그리고 나처럼 만지거나 소멸시킬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고.”

다른 종족이라면 많겠지만, 인간들의 기준에서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카테이아 대륙에서도 신의 권능을 받은 성직자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악령들은 본인의 형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명 에너지를 빨아들여. 저번에 너한테 붙어 있던 건 감정을 먹는 쪽.”

“……그럼, 사람한테서만 생겨나는 거야?”

“아니. 장소가 거의 대부분이야. 기억나? 우리 예전에 공포 체험을 하러 갔을 때.”

“아아, 자컨으로 간 거? 기억하고 있지.”

“인간들의 공포가 지속적으로 쌓이기 좋은 곳이니 그런 곳에서 오히려 더 많이 생겨날 수 있어.”

뭐 실제로 있기도 했고.

에르제는 어깨를 으쓱하며 이야기를 끝맺었다.

“일단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

“으음.”

민주혁은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하다가, 이내 에르제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러면…… 저번에 나한테서 악령을 없애 줬던 것처럼, 다른 멤버들도 그랬어?”

“어? 아니. 네가 처음이었는데.”

에르제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악령은 그렇게 쉽게 생기지 않는다.

한 사람이 부정적인 생각을 해 봤자 일생 동안 얼마나 하겠는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장소 혹은 누군가의 원한이 남아 있는 장소들이 훨씬 유력하지.

사람에게서 태어나는 악령이 그리 많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이를 설명해 주니 민주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그래, 남들보다 많이 했을 수도 있기는 한데, 네 말대로라면 나한테 악령이 생긴 건…… 조금 이상한 일 아니야?”

민주혁은 그렇게 말하다가 본인 스스로 결론을 내렸는지, 오소소 소름이 돋은 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은우야, 혹시 여기 터가 안 좋은 건 아닐까? 이사 가자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그 말에 에르제는 에르제대로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러네?’

민주혁이 한 말은 굉장히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민주혁 하나까지는 그냥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원한을 깊게 샀다거나, 뭐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손유진도 악령이 붙어 있었어.’

두 사람에게 비슷한 시기에 악령이 생겼다는 것은 굉장히 이상한 일이었다.

‘……표본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조사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다.

“은우야?”

“응? 아, 이사는 가지 않아도 괜찮아. 터 문제는 아니야.”

에르제는 괜찮다고 대답해 주며, 곧장 방문을 열고 나왔다.

‘내 주변에서는 둘뿐이지만, 내가 모르는 곳에서도 악령이 생겨나고 있을 수도 있어.’

어쩌면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 세계에 부정적인 기운이 가득 차게 되는 일 말이다.

‘악마들.’

만약 그들이 지구로 넘어오려고 하고 있는 거라면.

‘에이리스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수도.’

에르제는 서은우의 얼굴을 떠올리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아직은 추측이니까 일단 상황을 알아보자.’

뱀파리스 쪽은 아직 에이리스와 1장로가 눈치를 보고 있으니, 상황이 급작스럽게 변하지는 않을 터.

‘만약 지금 상황이 에이리스에 의한 거라면 그 전에 미리 준비한 패라고 봐야겠지.’

에르제는 스마트폰을 꺼내 라하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주변에 들리지 않도록 작게 속삭였다.

[ 전화 받았습니다. ]

“나야.”

[ 예, 알고 있습니다. 지금 밖이라. ]

“지금 뱀파이어 지부로 갈 수 있겠어?”

[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

“조사해 줘야 할 게 있어. 서울뿐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에르제는 마른침을 꿀꺽 삼켜 넘긴 뒤 말을 이었다.

“악기가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곳들을 찾아봐.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악령들이 생겨나는 빈도가 많아진 것 같거든.”

[ 악기라고 하시면……. 설마. ]

“응. 어쩌면 에이리스가 악마들이 넘어올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있을지도 몰라.”

과거 대악마가 카테이아 대륙에 강림했을 때, 다른 악마들도 같이 카테이아 대륙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에이리스가 제물을 바쳐 두 차원을 연결하는 통로를 만들어 둔 탓에 당시 악마들은 강림이 아닌 본체로 넘어올 수 있었다.

통로가 악마들의 힘을 버텨 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기에 하급 악마들로 한정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야.’

소멸될 때 본체까지 소멸되기는 했지만, 리스크가 큰 만큼 그들은 모든 힘을 발휘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때는 눈치채지도 못하고 당했지만.’

징조가 있으니 이번에는 놓치지 않는다.

‘악마들이 사는 차원과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지구 전체에 부정적인 기운이 강해지고 있는 걸 수도 있으니까.’

에르제는 입술을 아래로 꾹 누르며, 라하임에게 명령을 내렸다.

“찾아. 지부 내의 모든 인원을 동원해서라도. 필요하면 지서후에게도 연락할 테니까.”

[ 예, 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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