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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14화 (214/307)

제214화

214화

드라마의 마지막 회 촬영까지 모두 마치고 난 뒤, 당연하게도 조촐한 회식이 열렸다.

나중에 따로 종방연을 하기 때문에 모든 스태프들과 배우들을 불러서 한 회식은 아니었고, 그냥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인 그런 자리였다.

에르제는 주조연 배우들 몇몇이 모이는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온 이들은 강석구와 문휘영 그리고 다른 세 조연이 함께였다.

손유진은 다른 사람들과 회식하러 갔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참석하지 않았다.

사실 회식이라고 했지만 간단하게 술과 안주 정도만 있어서 1~2차로 금방 끝이 날 자리이기도 했다.

“마지막 회 대박을 위하여!!”

“위하여!”

다들 취하지 않을 정도로만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은우가 그 귀신을 봤다면서?”

“어어. 맞아, 맞아. 나 그때 유진이 옆에 있었잖아. 순간 식겁했다니까?”

“에이,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습니까~?”

귀신이 아니고 악령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존재했다.

자신이 촬영을 마치고 소멸시키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굳이 그런 말까지 할 필요가 없었기에 에르제는 그저 미소만 지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저는 내일 음악 방송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 볼게요.”

“어어, 그래! 종방연 때 보자!”

회식이 시작되고 1시간 30분 정도 지났을 때, 에르제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뱀파이어는 인간보다 술에 강했기 때문에 더 마신다고 취할 리 없었고, 사실 음악 방송에도 별 지장은 없었으나.

[ 너무 오래 있지 말고, 잘 말씀드리고 일찍 귀가해. ]

이윤에게 온 코코아톡 때문에 자리에서 먼저 일어난 거였다.

“아, 로드 오셨습니까.”

라하임은 차에 타는 에르제를 보며 반갑게 맞았다.

돌아가는 길은 라하임이 운전을 해 주기 때문에 음주 운전 같은 불상사는 일어날 일이 없었다.

“응. 어디에 있다가 온 거야?”

“민주혁의 댄스 예능이 오늘 첫 촬영이라서 그쪽에 들렀다가 숙소에 내려 주고 온 참입니다.”

“아아.”

민주혁은 악령 사건 이후에 안병인과 묵은 감정을 털어 냈는지 댄스 예능에 흔쾌히 나가겠다는 반응을 보였고.

마침 그 첫 촬영이 오늘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마지막 촬영이고, 민주혁은 첫 촬영이라.’

잠시 잊고 있던 일이었는데, 라하임의 말을 들어 보니 촬영은 별문제 없이 진행되었던 모양이었다.

“민주혁은 잘했고?”

“예. 방송 나가면 확실히 토트윈 이미지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

민주혁이 나간 댄스 예능 프로그램은 조금 특이한 플롯을 가지고 있었다.

시청자들을 자극할 ‘경쟁’이라는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일반적인 서바이벌 형태의 예능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탈락한다는 개념 자체도 없었고, 특별히 순위를 매기지도 않았다.

그저 ‘운.’

완전히 랜덤으로 돌아가는 플롯에다가 마지막 상금을 차지하는 쪽도 운으로 결정된다고 했다.

‘하여간 인간들의 상상력이란…….’

에르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라하임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거 첫 방송은 언젠데?”

“2주…… 보다 조금 뒤일 겁니다. 초반에는 관객들이 따로 없어서 미리 촬영을 해 둘 거라고 하더군요.”

“하긴, 참가자들이 결과를 스포 하지는 않겠지.”

“예. 제가 현장에 같이 있었는데, 스포 하면 탈락시켜 버릴 거라고 엄포를 놓더군요.”

“탈락 같은 거 없다면서?”

“아!”

라하임이 좌회전 깜빡이를 켜며 말했다.

“한 참가자가 그렇게 물어보니 PD가 알게 뭐냐고 답하던데요.”

“음.”

그쪽 PD는 본 적 없는 새로운 유형이군.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창가에 머리를 기댔다.

차가운 감촉이 느껴지니, 술기운으로 달궈진 얼굴이 조금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기분이 좋아서 계속 얼굴을 비비고 있으니, 라하임이 미심쩍은 눈빛을 띠며 물었다.

“로드, 취하신 겁니까?”

그 말에 순간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취했다고 대답하면, 다시 병원 신세를 질 것 같은…… 아주아주 불길한 예감이…….

“아니. 멀쩡해.”

에르제는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빠르게 대답하고 창에서 얼굴을 떼어 냈다.

기분 좋았는데.

에르제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 있자, 옆에 내려놓았던 스마트폰이 우웅 하고 울렸다.

그러자 에르제는 이마를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윤의 습관성 잔소리증후군이 또 도진 것 같은데.”

거참, 그새를 못 참고 연락을 하다니. 가고 있다고 라하임이 보고도 했을 텐데 말이다.

에르제는 스마트폰으로 날아온 코코아톡을 확인했다.

[ 너는 참 좋은 사람이야. 개인적으로 이번에 연기하는 걸 보면서, 그리고 음악 활동을 하는 걸 보면서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하지만…… 미안해. 다시 생각해 봤지만, 지금은 그게 맞는 것 같아. 너무 상심하지 말고, 언젠가는 좋은 인연을 꼭 만날 거라고 믿어! 만약 네가 한…… 10년(?) 뒤에도 같은 마음이라면……. ]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라 에르제는 더 이상 뒷내용을 확인하지도 않고 코코아톡 대화방을 나가 버렸다.

“…….”

도대체가.

에르제가 혀를 차며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니, 백미러로 그의 표정을 확인한 라하임이 물었다.

“이윤의 잔소리가 많이 심했습니까? 지금 로드의 표정이 거의 흉신악살 같습니다.”

“아니, 이윤 말고.”

에르제는 표정을 고치며 대답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인간.”

“!”

그 말에 이번에는 라하임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게 대체 누구입니까? 제 참교육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됐어.”

에르제는 손사래를 치며 그를 말렸다.

겨우 악령을 떼어 놨는데, 그보다 더한 것을 붙일 수는 없었으니까.

* * *

‘요즘 너무 행복해!!’

구 제이의 홈마, 현 에르제의 홈마는 스마트폰을 품에 꼭 안으며 들뜬 기분으로 토트윈 무대를 기다렸다.

정규가 아닌 싱글이라서 음원이 하나씩밖에 나오지 않는 것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크게 쉬는 텀 없이 계속해서 토트윈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곧 우리 애들 나올 때가 됐는데!’

에르제의 홈마는 두근두근하는 심장을 손으로 꼭 눌렀다. 그러나 심장을 진정시키려 하니 이번에는 발이 절로 동동 굴러졌다.

허벅지를 눌러 다리를 진정시키면, 다시 심장이 쿵쿵 뛰었고 말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이브들도 비슷한 상황인 듯해서 에르제의 홈마는 그냥 자신을 진정시키는 걸 포기하기로 했다.

그렇게 이번에 새로 데뷔한 아이돌의 무대, 그리고 솔로 가수들의 무대가 끝나고.

드디어 음악 방송에 다시 출연하게 된 토트윈이 무대 위로 등장했다.

“꺄아아악!!”

“은우야아아아아!!”

팬들의 함성 소리가 이브들이 앉아 있는 곳에서 크게 터져 나왔다.

토트윈은 슬쩍 눈치를 보며 그쪽에 손을 흔들어 주고는, 곧 이번 신곡 ‘Parados’의 무대를 시작했다.

‘으아.’

에르제의 홈마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다가 곧바로 무대에 온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번 곡은 뮤직비디오만으로도 이미 역대급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댄스 장르를 가지고 나온 것부터 이미 작정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

‘무대도 장난 아닐 것 같은데……!’

그리고 오늘 토트윈의 음악 방송 무대는 그런 그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탁, 탁, 탁―!

빠르게 발을 구르며 대형을 이리저리 바꾸고, 이에 따라 움직이는 상체는 리듬감이 제대로 살아 있었다.

밀었다가 당겨 주고, 느렸다가 다시 빠르게.

그리고 이를 돋보이도록 만든 안무는 자칫 어깨가 탈골되는 거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격렬했다.

곡의 시작부터 나온 짧은 브레이크가 끝이 나고, 대형의 앞으로 나온 것은 안단테였다.

― 두려울지도 몰라.

Leaving the past

Behind―.

하지만 괜찮아.

이곳에는

네가 있는걸.

쿵쿵 찍는 비트와 화려한 무대 연출, 안무와 무대 의상까지.

‘Prologue’에서는 판타지 세계에서 완전히 지구로 넘어왔다는 인상을 주었다면.

이번 ‘Parados’에서는 새로운 세계에 머물게 된 두려움을 팬들 덕분에 이겨 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었다.

안단테의 뒤를 이어 윤치우가 Verse의 B파트와 브릿지까지 소화했고.

하이라이트 부분에서는 메인 보컬인 태현우가 나섰다.

― Para, Parados.

Umm, Umm.

Para, Parados.

Umm, Umm.

순간에 사라질

꿈이 아니야.

― Para, Parados.

Umm, Umm.

Para, Parados.

Umm, Umm.

경계를 넘어

이젠 돌아갈 수 없어.

뒤의 파트는 에르제가 이어받아서 중앙에서 안무와 함께 소화했는데.

‘퇴폐미 미쳤다.’

멤버들의 의상은 전체적으로 캐주얼한 힙합 티였는데, 검은색을 담당하고 있는 에르제는 확실히 뱀파이어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턱을 살짝 사선으로 올리고 눈을 흘기듯이 시선 처리를 하며, 엄지손가락으로 새빨간 입술을 꾹 아래로 찍어 누르거나 하면서 말이다.

게다가 중독성 있는 구간에 갉작갉작하는 에르제의 묘한 음색이 그런 느낌을 더욱 강화시켜 주었다.

마른침을 꼴깍 삼킨 에르제의 홈마는,

― Para, Parados.

Umm, Umm.

Para, Parados.

Umm, Umm.

경계를 넘어

돌아가지, 않아.

곡이 끝났을 때 거의 홀린 듯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아아, 크흠! 큼!”

그 짧은 사이에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목이 따끔따끔했다.

저번에는 중독성 있는 안무로 댄스 챌린지를 시도하더니, 이번에는 그것보다 더 노골적으로 멜로디에 강한 중독성을 가미해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안무는 따라 하기 어려울 것 같으니, 멜로디로 그 부분을 채운 모양이었다.

“파라, 파라도스~.”

그로 인해 에르제의 홈마는 방청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도 모르게 계속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확신했다.

“이번에는 1위 무조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번에 뮤직비디오를 보고 난 후에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곡을 듣고 나니 저도 모르게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지 않은가.

이번 곡은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들으면, 무조건 다시 들으러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음원 차트에서 1위를 하는 게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으나, 그래도 팬의 입장에서는 1등을 100번 하든 1,000번을 하든 어쨌든 하면 너무 좋았다.

‘근데 이 정도쯤 되면 진작에 외국으로 눈을 돌리지 않나?’

특히 요즘 같은 시대라면 더욱 그렇다.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리는 게 유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LAK도 지금은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 전에 미국에 다녀오지 않았던가.

아마 토트윈도 곧 그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을까 예상했다.

‘한국에서 많이 활동해 주면 좋겠는데.’

에르제의 홈마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던 때.

스마트폰으로 토트윈의 무대 영상이나 사진 잘 나온 거 없나 찾아보던 그녀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걸음을 딱 멈췄다.

[ 오늘 토트윈 음방 끝나고 돌아간 지 얼마 안 됐을 텐데, 치우가 왜 여기 있지? 내가 잘못 본 건 아니지? ]

글 밑에는 사진까지 첨부되어 있었는데, 변장을 한 채 병원 입구로 들어가는 윤치우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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