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3화
213화
띠-띠-띠-띠-.
산소호흡기를 달고 누워 있는 강현규의 가슴이 호흡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움직였다.
의사가 겨우 목숨을 붙여 놓은 강현규는 딱 그 정도의 상태였다.
죽지도 살지도 않은 상태.
흔히 말하는 식물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
그의 병실 침대 앞에 서 있던 민찬혁이 주먹을 꾹 쥐며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겨우 잡았다 싶었는데, 이게 뭐냐고!”
“……그래도 더 이상 살인은 일어나지 않을 거 아냐.”
이혜선이 그를 위로하듯 등을 두들겼다.
그러나 민찬혁은 이를 갈며 대답했다.
“내가 이 X새끼, 어떻게든 살게 만들 거야. 죽더라도 죗값은 치르고 죽게 만들 거라고.”
대한민국에서 이토록 사람을 많이 죽인 연쇄살인범이 있었던가.
그토록 선한 얼굴로 자신 옆에 붙어서 그 정보를 역으로 이용해 먹었고.
그것 때문에 놈을 잡는 것이 몇 달이나 늦어져 버렸다.
강현규의 머리가 워낙 좋았던 점도 있었으나, 민찬혁에게는 그것이 그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후우.”
한숨을 내쉰 민찬혁이 자조하듯 중얼거렸다.
“여기까지야.”
“그 얘기 그만하라니까.”
“……아니, 이번이 마지막이야.”
민찬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꾸했다.
“나도…… 살인을 도운 셈이니까 형사 자격이 없지.”
“그게 어떻게 그렇게 돼! 이런 때일수록 견디고 이겨 내야지!”
이미 몇 번이나 들었던 이야기고, 몇 번이나 위로를 해 주었다.
더는 위로만 해 줄 수 없다고 판단한 이혜선이 그의 멱살을 잡았다.
“앞으로 네가 잡을 범인들만 생각해. 네가 그만두면, 그냥 그렇게 살인을 도와준 형사로 남는 거라고.”
“…….”
하지만 텅 비어 버린 듯한 민찬혁의 눈동자를 보고 이혜선이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냥, 그냥…… 시간이 좀 필요해.”
민찬혁은 이혜선의 손을 잡아 아래로 끌어내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시골이나 내려갈까 싶기도 하고.”
그러나 다시 강현규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그의 눈동자에는 불이 화르륵 타올랐다.
“그 전에 저 X끼는 무조건 살린다.”
강현규가 식물인간 상태가 된 지도 벌써 2주째.
민찬혁과 이혜선은 후배를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강현규를 죽일 뻔했던 장본인이자 현재 징계를 받고 집에 틀어박힌 양해원이었다.
자책이 어찌나 심했는지, 둘은 주기적으로 그의 우울증을 달래듯 그의 집을 들르는 중이었다.
오늘은 우연히 시간이 맞아 같이 가게 되었고 말이다.
“아직도 집에서 안 나오려고 해?”
“응. 자기가 사람을 죽였다면서……. 휴우.”
“……정당방위지.”
민찬혁은 운전대를 돌리며 고개를 저었다.
형사랑 경찰들을 소집해 강현규를 잡으려고 했던 날.
강현규는 양해원을 인질 삼아 그 자리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강현규의 등 뒤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당연히 공포탄이었으나, 뒤에서 난 큰 소리였기 때문에 강현규는 반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놀라서 순간 움츠러들었고, 붙잡혀 있던 양해원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자신의 목 근처에 있던 강현규의 팔을 잡아 그대로 돌려 버린 것이다.
“근데 그게 하필…… 강현규를 찌르는 게 되어 버려서.”
당시를 생각하던 민찬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따지자면 우발적인 사고였다.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었고, 그럴 의도는 하나도 없는 그런…… 방어기제.
그냥 재수 없게, 본인의 칼에 본인이 찔린 것뿐.
양해원이 팔을 돌렸기 때문에 칼날이 강현규를 향했지만, 그렇다고 양해원이 사람을 죽였다고 할 수는 없었으니까.
‘자책을 왜 그렇게 하고 있는 건지.’
그렇게 생각하던 민찬혁은 이내 피식 웃었다.
강현규의 죗값만 치르게 하고 나면, 형사를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다.
“해원이가 좋아하는 치킨이나 사 가자.”
“그래, 그러자.”
그는 이혜선의 말에 대답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강현규는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으나, 민찬혁의 바람대로 결국 의식을 차렸다.
첫 수술을 했던 이후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후 몸을 회복한 그가 재판정에 섰을 때.
변호인은 할 말 없다며 변호를 포기했고, 이를 지켜보던 대한민국 국민들은 어서 사형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강현규는 무기징역수가 되었고, 그대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그가 무제한 감옥 생활을 하게 된 지 1년이 되었을 때.
정말로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짓던 민찬혁은 초췌한 몰골로 강현규의 면회를 신청했다.
극악무도한 범죄자들만 모여 있다는 감옥에서 강현규는 꽤나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심판이라는 명목하에 죽였던 피해자들에게 그는 조금도 미안한 마음이 없어 보였고, 반성도 전혀 하지 않는 듯했다.
그를 잡아넣은 민찬혁은 피폐한 모습이었고, 반대로 강현규는 아주 멀쩡한 모습.
대비되는 둘의 모습이 의아함을 자아냈다.
“몰골이 말이 아니네요.”
강현규는 그를 보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농사가 힘들기는 하죠.”
“…….”
민찬혁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점점 눈동자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아…….”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은 민찬혁은 기괴하게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래, 이거야. 이거였지.”
“?”
의아해하는 강현규를 두고서 민찬혁은 미친 사람처럼 계속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숙였던 고개를 들고, 강현규에게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너, 밖으로 나오면 또다시 살인할 거냐?”
“……살인이 아닙니다.”
강현규는 미간을 좁히며 대답했다.
“심판이지.”
“아아, 그래. 그래, 그래.”
낄낄 웃던 민찬혁은 광기에 젖은 눈동자를 보였다.
“1년이면 오래 참았지.”
그 말을 끝으로.
― 어쩌면, 나는 그동안 녀석을 잡지 못한 게 아니라 잡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그런 내레이션과 함께 드라마는 감옥 내의 CCTV를 민찬혁이 바라보는 것으로 끝이 났다.
마치 강현규를 탈옥시키고 다시 형사로 복귀할 것 같은 열린 결말로 말이다.
심판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을 죽이는 연쇄살인마, 그리고 그 연쇄살인마를 좇으며 희열을 느끼는 형사.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은 이를 모니터링 하던 본인마저 소름 끼쳐 했을 정도였다.
“어우, 눈빛 왜 저래.”
강석구는 본인의 연기를 보며 몸서리를 쳤다.
당시에는 캐릭터에 몰입했기 때문에 느끼지 못했는데, 빠져나와서 보니 왠지 기분이 묘한 모양이었다.
“자화자찬이에요?”
옆에 서 있던 에르제가 그렇게 묻자, 강석구가 풋 하고 웃었다.
“당연하지.”
그러고는 그대로 에르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다. 고생했고.”
에르제는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한참 어린 인간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은 기분이 별로였으나, 연기를 칭찬받은 것은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회에서 호흡을 맞췄던 손유진도 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정도면 그 뭐냐, 연기돌! 타이틀 제대로 붙겠는데?”
“!”
연기돌!
에르제가 손뼉을 짝 치며 좋아했다.
그렇다는 건 이제 자신을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바뀐다는 말이 아닌가!
괴식 아이돌이라는 이상한 타이틀과는 이제 안녕이다.
‘열심히 하기를 잘했어.’
에르제는 스스로를 토닥토닥해 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좋냐.”
문휘영이 시비를 걸어왔지만, 에르제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기로 했다.
한때 악마에게 홀렸던 불쌍한 영혼이 아니던가.
인성에 문제가 많은 녀석이기는 했지만, 이번 드라마 촬영에서 자신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으니 봐줘야지.
문휘영에게 초크를 걸고 칼까지 들이밀며 질질 끌고 다녔던 장면.
그 장면에 담기는 사람의 수가 많았기 때문에 NG가 몇 번 났었고, 그때마다 문휘영은 상당히 고생을 했다.
“아.”
자연스럽게 문휘영과 악마에 관해 생각하던 에르제는 촬영 때문에 잊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악령.’
손유진에게 붙어 있던 악령은 촬영할 때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그 때문에 잠시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촬영 도중에 잡지도 못했어.’
악마와는 다르게, 악령 정도면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소멸시킬 수 있었는데 말이다.
‘손유진은 어디로 갔지?’
분명 아까까지는 함께 있었는데.
에르제는 모니터링 하고 있는 배우들을 두고 갑자기 사라진 손유진을 찾았다.
어쩌면 아까 사라졌던 악령이 다시 붙은 것일지도 모른다.
‘해코지를 할 것 같은 낌새는 아니었는데.’
하지만 혹시 몰라서 에르제는 촬영장을 뒤지고 다녔다.
그리고 곧 매니저와 함께 있는 손유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
멀리서 악령이 다시 붙었음을 확인한 에르제는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 은우!”
가까이 가기도 전에 그를 알아본 손유진이 손을 흔들며 반응했다.
키이이이―!
고양이 같은 소리를 내며, 악령은 손유진의 등 뒤로 돌아가 날을 세웠다. 생긴 건 고양이랑은 한참 다르게 생겨 가지곤.
‘본능적으로 깨달았나.’
소멸시키려고 왔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자칫하면 아까처럼 도망갈 수도 있었기에 에르제는 태연하게 손유진의 근처까지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아, 밤도 어두운데 어디 가셨나 해서요.”
“뭐야~, 걱정해 주는 건가~?”
손유진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나는 그냥 여기 매니저랑 스케줄과 관련해서 이야기 나누고 있었어. 내 모니터링은 아까 끝났거든.”
“아아, 그렇구나.”
에르제는 평범한 대화를 이어 가며, 악령의 경계심을 최대한 누그러뜨렸다.
덕분에 계속 날을 세우며 도망갈 채비를 하고 있던 악령은 에르제의 눈치만 살피는 정도로 경계심을 늦추었다.
그러고는 다시 하던 일, 손유진의 에너지를 빼앗아 가기 시작했다.
‘……아직 며칠 되지 않아서 심각한 수준은 아니긴 한데, 이대로 더 두면 안 되겠어.’
악령은 손유진의 생명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흡수하고 있었는데, 이게 계속되면 손유진은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빠지게 될 터였다.
그래도 몇 달 동안 같이 일했던 동료인데, 에르제는 그녀를 그렇게 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정신이 팔렸을 때.’
그 와중에도 손유진의 말에 꼬박꼬박 대답해 주며, 에르제는 악령의 틈을 노렸다.
도망가는 걸 잡아 소멸시키는 건 어렵지 않았으나, 보는 눈이 많았으니까.
단숨에, 그리고 확실하게 처리해야 했다.
그리고 악령의 의식이 자신에게서 완전히 멀어졌을 때.
“아, 잠시만요.”
에르제는 손을 뻗어 손유진의 머리 뒤로 가져갔다.
“여기에…….”
말끝을 흐리며, 에르제는 재빨리 손에 혈기를 둘러 그대로 악령에 접촉했다.
키이이이―!!
기괴한 소리와 함께, 에너지를 흡수하던 악령이 펑 하고 터져 나갔다.
물론 손유진과 그녀의 매니저는 아무것도 보거나 듣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에르제 또한 태연한 표정으로 연기했다.
“머리카락에 뭐가 묻어 있어서요.”
“놀랐잖아~.”
손유진은 갑작스런 에르제의 행동에 놀란 모양이었지만, 곧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곤란하다, 그렇지?”
그러고는 매니저를 보며 안타깝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게. 서은우 씨 정도면 사람이 참 괜찮기는 한데.”
“?”
뜬금없는 둘의 대화에 에르제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손유진이 양손을 모으며 아쉽다는 투로 말했다.
“미안해. 은우야. 우리 대표님이 그런 걸 워낙 싫어하기도 하고, 나도 아직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거든.”
“??”
“지금은 일에 더 집중하고 싶고, 누굴 만날 여력도 없어.”
“???”
“혹시 몰라서 미리 말해 주는 거야~. 괜히 상처받지 말라고.”
물음표가 하나씩 늘어나는 에르제를 두고, 손유진이 그의 어깨를 팡팡 두들겼다.
그러고는 그대로 매니저와 함께 쌩하니 자리를 떠나 버렸다.
에르제는 돌처럼 굳어 재가 되어 사라지는 악령을 바라보았다.
에르제의 2,500년 인생에서 첫 0고백 1차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