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2화
212화
에르제가 한 말은 고스란히 붐 마이크를 타고 음향 팀에게 전해졌다.
헤드셋을 끼고 있던 음향 팀 몇몇이 저도 모르게 손유진 쪽을 바라보았다.
“응?”
덕분에 무슨 일인지 모르는 손유진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누군가가 에르제에게 물었다.
“귀신이라뇨?”
“아!”
손유진에게서 시선을 뗀 에르제는 그제야 자신이 무슨 말을 뱉었는지 깨달았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건데…….’
지구의 기술력은 마법도 없이 어찌나 뛰어난지 작게 중얼거린 말마저 다들 들은 모양이었다.
코끝을 긁적인 에르제는 조금 전 강석구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 그, 강석구 선배님이 촬영장에 귀신 나오면 드라마가 대박 날 징조라고 해서요.”
큼큼, 헛기침을 한 에르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무슨 기대감이라도 생겼는지 눈빛들이 아주 초롱초롱했다.
강석구뿐만 아니라, 다들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에르제는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는 생각으로 말을 이었다.
“그…… 손유진 선배님 뒤에서 언뜻 귀신을 본 것 같아서요. 혹시나 저희 드라마가 더 잘되나 해서. 큼큼, 지금은 안 보이는 것 같은데…….”
주먹을 입에 가져다 대며 작위적으로 헛기침을 하니, 제작진 측에서 “오오!” 하는 소리가 나왔다.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귀신이 아니라 악령이었고, 안 보이는 게 아니라 아직도 손유진 어깨 근처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긴 했지만…….
‘악령이야 나중에 내가 떼어 주면 되는 거고.’
하는 꼴을 보니 손유진 개인한테만 관심이 있는 듯했고, 촬영 자체에 피해를 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진짜 귀신 본 거 맞아요?”
“음……. 잘 모르겠는데요.”
이후로 몇 번 더 관심을 받았지만, 에르제가 어물쩍 넘어가니 곧 시들시들해졌다.
‘그나저나 갑자기 악령들이 보이기 시작하네.’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두 번째였다.
보통 부정적인 기운이 가득할 때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데, 단편적인 사건들로는 에르제로서도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일단 그건 촬영 끝나고 생각해 보자.’
어찌 되었든 마지막 촬영이니까.
“스탠바이 하겠습니다!”
PD의 말에 어수선했던 분위기는 금세 잡혔고, 곧 마지막 회 촬영이 시작되었다.
마지막 회는 첫 회로부터 딱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사이에 연쇄살인마인 강현규가 죽인 이들만 벌써 10명이 훌쩍 넘은 상황.
민찬혁(강석구의 배역 이름) 형사와, 이혜선(손유진의 배역 이름) 형사는 눈에 불을 켜고 범인을 쫓는 중이었다.
증거와 정보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범인인 강현규에게 상당히 근접해 있는 상황이었고.
반대로 강현규는 여동생을 죽인 범인을 잡겠다며 그들 근처를 서성거렸다.
그것을 빌미로 그들의 정보를 역으로 이용하는, 셋의 치열한 두뇌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더불어 교묘한 편집과 시나리오 덕분에 시청자들은 아직도 범인이 누구인지 의견이 분분했는데, 그 모든 것들이 슬슬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푹―.
13번째 희생자를 만든 강현규는 얼굴에 튄 피를 닦아 내며 굽혔던 무릎을 폈다.
“스읍, 후우.”
희생자는 덩치 큰 남자였는데, 덕분에 저항이 심해서 체력적인 소모가 꽤 컸다.
숨을 거칠게 몰아쉰 강현규는 보란 듯이 피해자의 손가락을 꺾어 그의 시그니처를 새겼다.
그리고 그 옆에 당당히 떨어뜨린 범행 도구까지.
“풉.”
이걸 보고 또 열 받을 두 형사의 얼굴을 떠올리며 강현규는 웃음을 터뜨렸다.
“볼만하겠네.”
강현규는 손을 툭툭 털고는, 깜박거리는 가로등을 지나쳤다.
다음 날, 민찬혁과 이혜선은 범행 현장으로 후다닥 달려왔다.
아직도 잡지 못한 거냐고 서에서 된통 깨지고 온 참이라 둘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이번에는 부둣가일 줄 알았는데.”
“아오! 그놈의 프로파일링,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아?”
“…….”
민찬혁은 입술을 짓이기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정말 확실했어. 놈이 이번 피해자를 타깃으로 삼았다는 것까지는 맞췄잖아.”
“……그렇기는 하지.”
이혜선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피해자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 사람은 부둣가가 아니라 이쪽으로 왔을까? 자기가 살던 곳과 꽤 떨어진 곳인데.”
“놈이 유인한 거야.”
민찬혁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젠장.”
주먹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내려친 민찬혁은 머리를 잔뜩 헝클어뜨렸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무슨 생각?”
“이번 범행이 일어날 걸 알고도…… 심지어 피해자와 그 위치까지 추적하고도 왜 범인을 잡지 못했을까? 과연 이번 한 번뿐일까?”
민찬혁은 눈을 감고 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정보가 새고 있는 거야.”
“정보가 새고 있다고? 이 정보를 알고 있는 거 너랑 나 말고 없잖아. 너, 설마…… 나 의심하는 거야?”
“그러겠냐.”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한 민찬혁은 손가락을 두 개 펴 보였다.
“두 명 더 있잖아.”
“……!”
그 말에 이혜선이 놀란 얼굴로 미간을 좁혔다.
“에이, 말도 안돼.”
“말이 안 되는 건 지금 상황이고.”
민찬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돼.”
“아무리 그래도…….”
이혜선은 여전히 미간을 좁힌 채 입술을 안으로 말아 넣었다.
“양해원(문휘영의 배역 이름)이랑 강현규……. 둘은 진짜, 그럴 리가 없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지금까지 당한 걸지도 몰라.”
한쪽은 범인에게 여동생을 잃은 피해자 가족.
그리고 다른 한쪽은 진짜 가족 같은 형사 후배.
어느 쪽도 범인이라고 믿고 싶지도, 그렇게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이들이었다.
“나는 왜 의심 안 해?”
이혜선은 문득 궁금해서 물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담겨 있는 질문이었는데, 민찬혁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피해자 죽었을 때 넌 나랑 같이 있었잖아. 알리바이가 확실한데, 뭐 하러 의심을 해? 머리 아프게.”
“……그래, 넌 그냥 계속 혼자 살아라.”
눈치 더럽게 없는 자식 같으니라고.
그렇게 중얼거린 이혜선은 민찬혁을 따라 쪼그리고 앉았던 무릎을 폈다.
그리고 마침 그때, 둘의 시야에 범인으로 의심되기 시작한 둘이 다가오고 있었다.
“너 때문에 늦었잖아!”
“그게 왜 나 때문이야? 네가 늦게 일어나 놓고.”
“어허! 어른이 말하면 공손히 네네, 해야지!”
양해원은 강현규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는데, 고작 한 살 많으면서 꼰대 바이브를 유감없이 뽐내는 중이었다.
덕분에 ‘어린 부장님’이라는 별명도 생겼단다.
“어제 본인이 술을 그렇게 많이 드셔 놓고는 왜 제 탓을 하고 그래요?”
지지 않고 맞받아치는 강현규 탓에 둘의 다툼은 조금 더 격해졌다.
그 틈에 민찬혁은.
“야, 알지? 눈치껏 해라.”
그렇게 이혜선에게 당부하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너희는 범행 현장까지 와서 싸우고 있어, 왜!”
“그렇지만, 이 자식이…….”
“됐어. 늦은 걸로 뭐라 할 생각도 없었다.”
민찬혁은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며,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혜선에게 다시 한번 눈치를 주었다.
“아하하, 안녕. 다들 잘 잤니? 피곤하지는 않고?”
로봇 같은 연기력에 내적 박수가 절로 터져 나왔다.
“뭐야? 선배, 무슨 일 있어요?”
때문에 양해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민찬혁은 그의 등을 팡팡 두들겼다.
“일은 무슨 일. 그냥 또 피해자가 나와서 멘탈 나가 가지고 저런다.”
“그래서, 이번 피해자는 누구예요?”
“30대 후반, 과거 운동까지 했던 남잔데 그래서 그런가? 이번에는 완전히 깔끔하게 잡지는 못한 모양이야.”
“으음.”
강현규는 그런 그의 눈치를 살짝 살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번에 부둣가에서 범행이 일어날 거라고 하시지 않았어요? 날짜까지는 맞추기 어려우니까 계속 그쪽에서 잠복하고 계셨다고 들었는데.”
“그러게 말이다. 에휴, 요즘 들어 능력이 떨어졌는지 왜 이렇게 틀리는지 모르겠다.”
꾸욱, 강현규가 주먹을 쥐며 분개했다.
“이번에는 진짜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걱정하지 마. 꼭 잡을 거니까. 네 여동생의 원한 풀어 줘야지.”
“……예. 저도 최선을 다해서 도울게요.”
고개를 푹 숙인 강현규의 어깨를 양해원이 토닥거려 주었다.
그리고 그런 둘의 모습을 민찬혁은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로부터 13일 뒤.
그날은 첫 범행으로부터 정확히 1년이 되기 하루 전이었다.
그동안 둘의 행적과 의심스러운 부분을 샅샅이 조사하던 민찬혁은 드디어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바로 너였구나.”
민찬혁은 홀로 집 안에서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래도 1년간 상당히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했던 사이였는데, 사실은 지독하게 이용만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녀석이 보인 슬픔과 절망에 판단력이 흐려졌고, 겉으로 내보인 웃음에 의심의 천을 걷었던 자신이 너무도 후회가 됐다.
“빌어먹을.”
민찬혁은 깨끗이 비워 낸 소주잔을 테이블 위에 쾅 하고 찍었다.
녀석을 위한 술은 딱 한 잔이면 족했다.
내일 녀석을 꼭 잡아 모든 피해자들의 유가족 앞에 무릎을 꿇리리라.
민찬혁은 나머지 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정확히 1년이 되는 시점.
강현규는 나머지 셋과 거리를 걸어가다가 이내 걸음을 멈추었다.
이상하리만치 위화감이 들어서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왠지 평범한 사람들 같지 않았고, 나머지 셋의 행동도 묘하게 부자연스러웠다.
왠지 긴장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
“…….”
역시나 강현규가 걸음을 멈추자, 나머지 셋이 그를 포위하듯이 둘러쌌다.
“왜 그래?”
“뭐야, 배 아프냐? 화장실 갈래?”
말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지만,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래요.”
강현규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누군가가 멈춰 주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
그 말에, 나머지 셋도 상황을 완벽하게 눈치챘다.
“잡아!!”
민찬혁이 빠르게 소리치며 달려들었으나, 이번에는 강현규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어느덧 양해원의 목을 팔로 감싸 초크를 걸고, 그 옆에 날카로운 칼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아직 죽여야 할 인간들이 많아서요.”
강현규는 서늘한 웃음을 지으며, 양해원의 목에 칼을 더욱 가까이 들이밀었다.
역시 지나가던 행인들도 경찰이었는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그를 포위한 상태.
대략 열댓 명이 강현규의 주변을 원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이제 그만해! 네가 죽인 사람들이 몇인 줄은 알아?! 죄책감은 아예 없어?”
“죄책감이요?”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린 강현규는 양해원의 목을 살짝 그었다.
피가 칼날을 따라 주르륵 흘렀다.
“……윽…….”
양해원이 낮은 신음을 흘렸으나, 강현규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범인이라는 걸 알았다면, 제가 죽였던 인간들의 관계성을 찾아냈기 때문…… 아닙니까?”
강현규가 지금까지 죽여 왔던 인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버지를 죽인 여동생을 시작으로, 피해자 모두는 가족을 죽음으로 몰고 간 전적이 있는 자들이었다.
“심판입니다.”
강현규는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너에게는 누군가를 심판할 자격이 없어.”
민찬혁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유감입니다.”
그 말에 강현규는 무표정으로 돌아와, 양해원을 뒤로 질질 끌며 이동했다.
자칫하면 양해원의 목숨이 위험했기에 그들은 원을 유지한 채 강현규를 따라 이동하는 기괴한 광경이 연출됐다.
“……계속 이렇게 막고 계시면, 저도 더는 그냥 보고 있지 않겠습니다.”
이런 상태가 이어질 것 같아서 강현규는 양해원의 목을 더욱 깊이 그어 내며 강수를 두었다.
“내버려 두면 죽을 정도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닙…….”
그리고 그와 동시에.
타아앙!!
강현규의 뒤에서 강렬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