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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09화 (209/307)

제209화

209화

안병인의 아버지에게 기억을 조작하는 악령이 붙어 있었고, 그로 인해서 가족을 버리게 되었다.

최근까지도 그 악령은 계속해서 안병인을 괴롭히고 있었는데, 귀신을 볼 수 있는 에르제가 퇴치해 주었다.

우연한 상황에서 만들어 낸 스토리치고는 이야기가 꽤나 그럴듯했기에 민주혁은 별다른 의심 없이 에르제의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아마 악령을 직접 보게 된 것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그와 더불어 민주혁과 안병인이 나눈 이야기에는 아귀가 맞는 대화가 포함되어 있었다.

안병인이 에르제에게 큰 빚을 졌다고 이야기를 했고, 민주혁은 악령을 퇴치해 준 것이 그 빚이라고 여긴 것이다.

‘안병인이랑은 이후에 말을 다시 맞췄으니 괜찮겠지.’

에르제는 며칠 전 밤에 있었던 민주혁과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새벽에 잠시 물이나 마시러 나온 거였는데, 거기서 민주혁에게 붙은 악령을 발견했고.

그걸 퇴치해 주려다가……. 어쩌다 보니 안병인과 얽혀 있던 것들을 자연스럽게 해결해 버렸다.

박쥐 뒷걸음치며 날갯짓하다가 늑대 잡았다는 말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었다.

‘덕분에 민주혁이랑 어색했던 관계가 좋아지기는 했는데…….’

그 정도가 조금 심해져서 문제였다.

“이거.”

거실에서 뒹굴던 에르제에게 아끼던 초콜릿을 나누어 준다던가.

“여기.”

늘 경쟁해야 하는 샤워 시간에도 순서를 양보해 준다던가.

“조용히 좀 해. 은우 영상 보잖아.”

에르제가 무튜브를 집중해서 보고 있으면, 태현우와 안단테를 조용히 시킨다던가.

“아니…….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게.”

조금, 아니 좀 많이 부담스러웠다.

기존의 차갑고 무뚝뚝한 이미지는 전당포에 팔아먹은 모양이다.

민주혁과 새벽에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그 뒤로 며칠간 그의 태도가 그렇게 변하니 멤버들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요즘 주혁이 이상해. 아주 많이 이상해.”

“맞아여. 왜 은우 형만 챙겨 주는 거에여!?”

특히나 태현우와 안단테의 반발이 거셌는데.

그동안 민주혁의 관심을 끌기 위해 두 사람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시끄러워. 책 읽잖아.”

여전히 그들에게는 차가운 도시 남자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 은우야. 밤바람 시원한데, 여기 앉을래?”

“아…… 니. 괜찮아.”

에르제는 어색하게 웃으며 거절했다.

물론 속사정을 알고 있는 에르제로서는 민주혁이 그러는 이유가 충분히 이해됐다.

안병인과의 오해를 풀게 만들어 주었고, 안병인과 민주혁 두 사람에게 붙어 있던 악령을 제거해 준 고마운 은인이 아닌가.

어쩌면 평생 원망하며 살았을 아버지를 에르제가 구해 준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악령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나니 주변 상황이 다 이해가 되는 모양이지.’

결과적으로는 멤버들의 시기, 질투를 받게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민주혁과의 관계가 원만해져서 다행이긴 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말이다.

‘남은 건…… 윤치우와 서은우……. 그게 문제인데.’

이건 정말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서은우의 영혼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윤치우에게서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졌다.

지금도 그랬다.

민주혁의 바뀐 태도에도 유일하게 반응을 안 하고 있었으니까.

‘그것보다 요즘 자꾸 딴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데.’

에르제는 유심히 윤치우를 살폈다.

어디에 정신이 팔려 있는지, 최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횟수가 굉장히 많이 늘었다.

‘얼굴에 수심도 깊어 보이고.’

혹시 서은우 때문이 아니라 뭔가 다른 문제가 있는 걸까.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에르제는, 이내 다리를 쭉 펴고 앉았다.

‘윤치우와도 이야기를 해 보는 편이 좋으려나.’

이번에 민주혁과의 일이 잘 풀렸듯, 이야기를 하다 보면 뭔가 좋은 해결책이 나올 가능성도 있었다.

‘이제 곧 ‘Parados’로 활동할 시기도 다가오니까.’

할 수 있다면 그 전에 끝내 놓는 편이 좋을 듯싶었다.

그렇게 에르제가 생각에 빠져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을 때였다.

우웅―.

에르제의 스마트폰 진동이 울렸다.

메시지가 온 건가 싶었는데, 계속해서 울리는 것을 보니 전화인 모양이다.

에르제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대마.’

대마녀라고 이름을 저장해 놓으면 의심을 받을 수 있었기에 눈치채지 못하도록 줄여서 저장해 둔 이름이었다.

발신자를 확인한 에르제는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화 좀 하고 올게.”

에르제는 그렇게 말을 남기고, 거실을 가로질러 방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누르자, 예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끊을 뻔했잖아. 왜 이렇게 늦게 받아? ]

“거실에 있었거든요. 무슨 일인가요?”

대마녀는 낮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대답했다.

[ 네가 기다리던 소식을 전해 줄 수 있게 됐어. ]

“……!”

에르제는 침을 꿀꺽 삼켜 넘기고는 물었다.

“제이가 회복된 건가요?”

[ 맞아. ]

“하아……. 너무 오래 걸려서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에르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너무 늦게 깨어나는 거 아닌가 싶어서 가슴을 졸이지 않았던가.

때문에 LAK의 활동이 당분간 없었던 것은 토트윈에게 호재였지만, 다른 쪽 계획은 제이가 어서 의식을 차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으니 말이다.

‘LAK 쪽은 제이가 혈석을 제거하러 가기 전에 미리 말을 해 두었다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제이 역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터.

아마 LAK와 소속사에서도 제이를 찾고 있지는 않는지 걱정이 되던 참이었다.

대마녀는 그런 에르제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입을 열었다.

[ 일어나자마자 소속사에 보고하는 것 같던데, 다행히 별문제는 없는 모양이더라. 치밀하게 예약 메시지 같은 걸 미리 설정을 해 두어서 실종이니 뭐니 하는 사태까지는 가지 않은 모양이야. ]

“다행이네요.”

에르제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통화 가능한가요?”

[ 어어. 안 그래도 옆에서 바꿔 달라고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다. 바꿔 줄게. ]

“네.”

전화를 바꿔 주는 모양인지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제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 시간 잠에 빠져 있었던 탓인지 목소리가 잠겨서 착 가라앉아 있었다.

[ 좀 오래 걸렸지. ]

“괜찮아요. 계획에는 지장이 없으니까요.”

[ 들었어. 언제든지 작동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면서? ]

“예.”

에르제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심호흡을 한 뒤에 말을 이었다.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들었나요?”

[ 응. 대마녀님께 들었어. 그런데…… 괜찮을까? ]

아마도 자신의 안위에 관해 묻는 질문인 듯싶어서 에르제는 확신 어린 어조로 대답해 주었다.

“그건 문제없을 거예요. 혈석을 빼앗긴 죄에 대해 묻기는 하겠지만요.”

[ ……그런가. ]

씁쓸한 말투에 에르제는 혈석을 제거하기 전에 제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 무슨 일이 있어도 지구에 대악마를 불러오는 것만큼은 막겠다고 약속해. 나도 그래서 목숨을 거는 거니까.

그리고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겠다는 말은 아직까지 유효한 모양이다.

[ 내 기억을 조작할 필요가 있지? 그거 끝나면 바로 출발하도록 할게. ]

“예.”

기억의 조작이 끝이 나면 제이는 1장로가 혈석을 탈취했다고 굳게 믿게 될 터.

당분간은 조작된 기억이 진짜라고 믿고 살게 되겠지만, 그 부분은 제이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 에이리스에게 보고하러 떠나기만 하면 계획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라하임을 보내도록 할게요.”

[ 알았어. ]

제이는 결심을 굳힌 듯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뒤로 대마녀와 간단한 이야기를 나눈 뒤, 에르제는 통화를 종료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라하임을 호출했다.

비공식적인 호출이었으므로, 라하임은 매니저로서 차를 타고 오는 대신.

푸드드득―.

박쥐로 변해, 에르제의 창가에 걸터앉았다.

미리 문을 잠가 둔 에르제는 라하임에게 방 안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로드.”

라하임은 목소리를 최대한 작게 내며 고고하게 인사를 했다.

에르제도 마주 인사를 해 주며, 제이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드디어.”

“슬슬 끝이 보이네.”

에르제는 미소를 지으며 라하임에게 대답했다.

“대마녀와 제이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너는 이대로 곧장 이걸 가지고 가서 제이에게 먹여.”

“예.”

라하임은 에르제가 건네는 병을 받아 들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병 안에는 에르제가 미리 뽑아 둔 피가 담겨 있었는데, 로드의 힘이 담겨 있는 적혈구였다.

“제이의 정신을 조작해도 망가지지 않도록 이게 보호해 줄 거야. 그리고 네가 힘을 쓰기 더 쉽게 만들어 줄 거고.”

촉매제 역할을 하도록 만든 것이니 라하임이 정신계 술법을 쓰는 데 도움이 될 터.

현재 자신이 뱀파이어 지부로 직접 찾아가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도움을 주기 위함이었다.

라하임은 그것을 품에 조심스럽게 집어넣고는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몇 걸음 걸어갔을까, 라하임이 문득 궁금하다는 듯 에르제에게 물었다.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응. 뭔데?”

“제이는 어쩌다가 혈석을 제거하게 된 겁니까? 로드께서 대마녀를 끌어들인 것도 그렇고요.”

“아아.”

에르제는 픽 웃었다.

“제이가 과연 나나 에이리스를 완전히 믿고 있었을까? 당연히 새로운 세력에도 발을 하나 걸쳐 두려고 했겠지.”

“……그렇다는 건.”

“윤소희가 알려 줬어. 제이가 대마녀를 만나려고 한다는 거. 그래서 그걸 역으로 이용한 것뿐이야. 제이가 딴생각을 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그럼 그때부터 대마녀와 제이, 1장로를 엮으려고 하신 겁니까?”

“응. 에이리스와 1장로의 사이가 알아서 틀어질 거라고 예상한 건 아닌데, 결과적으로는 일이 더 쉬워지기는 했지.”

처음 제이가 대마녀를 만나기 위해 연락을 취했다고 했을 때.

보다 먼저 에르제는 윤소희를 통해 대마녀에게 이야기를 전했다.

혹시 제이의 몸에 있는 혈석을 제거할 수 있느냐고.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뱀파리스 쪽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다.

대마녀는 제이를 직접 만나서 확인해 보겠다고 했고, 곧 가능할 것 같다는 회신이 돌아왔다.

“그래서 제이를 만나 이야기했지. 대악마가 소환되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다른 동아줄을 구하지 않아도 되도록 혈석을 제거해 주겠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뭐, 제이도 지구가 폐허가 되는 걸 원치는 않는 모양이야.”

픽 웃은 에르제는 이제 진짜 가 보라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깊은 혜안에 탄복하고 갑니다.”

라하임은 다시 한번 깊게 고개를 숙인 뒤, 품 안에 병이 잘 들어 있나 확인했다.

“가 보겠습니다, 로드.”

에르제가 손을 흔들어 주자, 라하임은 곧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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