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08화 (208/307)
  • 제208화

    208화

    자고 있는 사람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주먹을 치켜들고 있는 에르제의 모습에 민주혁은 자는 척하는 것을 그만두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뭐, 뭐 하는데……!”

    당황한 민주혁의 목소리에 에르제가 슬며시 주먹의 힘을 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에르제의 눈동자는 좌우로 쉴 새 없이 굴러다녔다.

    당연히 민주혁이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걸 뭐라고 변명하지.’

    에르제는 450년 만에 목덜미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아니, 민주혁이 자고 있는 척하고 있을 거라고 어느 누가 생각하겠느냐고.

    ‘심지어 붙어 있던 악령도 악몽 쪽이었으니…….’

    에르제는 민주혁의 등 뒤에 숨어서 낄낄거리는 악령을 노려보았다.

    거의 투명하다 싶을 정도의 몸통에 세 개의 눈, 그리고 가로로 길게 찢어진 지퍼처럼 생긴 입.

    카테이아 대륙에서 자주 보았던 형태의 악령이었다.

    주로 잠든 상대의 꿈을 조종해 악몽을 꾸게 만들고, 그에 따라 생성되는 부정적인 감정을 먹이로 삼는 악령.

    어제까지만 해도 민주혁의 주변에서 본 적이 없었으니 아마도 오늘 붙은 모양인데…….

    숙소 주변에 쳐 놓은 자신의 결계를 악령 따위가 뚫고 들어왔을 리는 없을 테니.

    아마도 민주혁의 부정적인 감정이 계속해서 쌓이고 쌓이다가 만들어진 악령인 듯했다.

    ‘청화에 관련된 일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을 계속했던 건가.’

    빠르게 생각을 전환하던 에르제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중요한 건 저런 악령 따위가 아니었다.

    인간에게 해를 끼쳐 봤자 악몽이나 꾸게 만드는 정도의 수준이니까.

    ‘지금 중요한 건…… 민주혁에게 뭐라고 변명해 납득을 시키느냐 하는 건데.’

    악령이 네 뒤에 붙어 있어서 잡아 주려고 했어, 같은 소리는 정말로 씨알도 먹히지 않을 테니까.

    “자고 있을 때, 한 대 때리려고 했냐?”

    “그건 아니고.”

    “그럼?”

    오해가 더 깊어지기 전에 에르제는 필살기를 꺼내야 했다.

    “네가 자고 있을 때, 네 옆에 커다란 벌레가 있었어.”

    “…….”

    민주혁은 입을 꾹 다물었다.

    통했나?

    에르제는 희망적인 관측을 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그렇지 않았다.

    “거짓말하지 마.”

    이미 너무 많이 사용한 필살기여서 그런가, 손쉽게 의중을 읽혀 버린 모양이었다.

    “진짠데.”

    그렇게 대답하는 에르제의 눈동자가 슬며시 창가 쪽으로 데구르르 굴러갔다.

    그 모습에 민주혁이 헛웃음을 지었다.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대답해 봐.”

    “지금 똑바로 보고 있어.”

    “……어딜 보는 건데?”

    전혀 시선이 맞질 않아서 민주혁이 어이없다는 듯이 되물었고.

    “내가 사시라서 그래.”

    에르제의 대답은 그런 민주혁의 힘을 쏙 빼놓았다.

    “……됐다.”

    민주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저번에 내가 심한 말 했으니까…….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이해가 가지는 않아. 잘못한 건 넌데, 왜 네가 날 때리려고 한 건지…….”

    “아니, 정말로 때리려고 한 거 아니라니까.”

    “……그럼?”

    민주혁이 주먹을 위로 치켜들었다.

    “이 상태로 날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고? 그럼 때리는 척만 하려고 한 건가? 그런 거로 스트레스라도 풀려고?”

    오해는 더욱 깊어졌다.

    차라리 때리려고 했다는 게 나을 정도로 민주혁의 상상력은 점점 나쁜 쪽으로 뻗어 나갔다.

    “아니면 섀도우 복싱이라도 한 거야? 차라리 그냥 내 뒤에 귀신이 있어서 그거 잡으려고 했다고 하지?”

    “……!”

    무심코 정답을 말해 버린 민주혁 때문에 에르제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뭐야, 그 반응은?”

    그리고 민주혁은 이상하다는 듯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괜히 오싹했는지 자신의 뒤를 흘깃 보았다.

    ‘……그냥 그렇다고 할까?’

    에르제는 그런 민주혁을 보며 이마에 손바닥을 얹었다.

    아무리 그래도 때리겠다는 생각은 한 적도 없는데, 그렇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 않은가.

    에르제는 일부러 좌우를 빠르게 살피는 척을 하고는, 민주혁 귓가에 얼굴을 붙였다.

    그러고는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맞아.”

    “……뭐가?”

    “귀신 있었다고.”

    그 말에 민주혁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장난치지 마……!”

    “진짜야.”

    에르제는 다시 상체를 뒤로 당기며 처음으로 민주혁과 눈을 마주쳤다.

    “사실…… 리더도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해.”

    “……내 뒤에 귀신이 있는 걸 치우 형도 알고 있다고?”

    “아니. 내가 귀신을 볼 수 있다는 거.”

    지금의 상황을 무마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것뿐이다.

    실제로 아직 민주혁의 뒤에서 낄낄거리는 악령을 잡으면, 그 존재를 느끼게 해 줄 수 있었으니까.

    뱀파이어니 뭐니 하는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고, 그냥 이 정도로 넘어갈 수 있을 듯싶었다.

    ‘이대로 밀고 나가자.’

    에르제는 마른침을 꿀꺽 삼킨 다음 말을 이어 갔다.

    “사실…… 사고 난 이후, 죽다 살아났던 것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때부터 귀신을 볼 수 있게 됐어.”

    “……진짜야?”

    “응.”

    에르제는 턱짓으로 민주혁의 어깨 너머를 가리켰다.

    “지금도 네 뒤에 귀신이 있고, 사실 그걸 잡으려고 했던 거야.”

    “……그런 말을 믿으라고? 증명…… 할 수 있어?”

    민주혁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마른세수를 했다.

    “나는 헛소리하지 말라는 뜻으로 말한 건데, 그 헛소리가 사실은 헛소리가 아니라 진짜였고, 그럼 진짜라고 생각한 게 사실은 헛소리였고…….”

    뭔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에 에르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상한 점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어쩐지 이상했어.’

    원래의 민주혁이었다면, 아무리 자신이 주먹질을 하려 했다고 오해해도 이런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치고 싶으면 치든가.’라고 냉소적으로 반응했겠지.

    이렇게 횡설수설이나 하고 있지는 않았을 거란 소리다.

    ‘저 자식이 뒤에서 계속 감정을 건드리고 있구나.’

    에르제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러고는 아까처럼 혈기를 그 주먹 위에 옅게 둘렀다.

    “뭐 하게……?”

    멍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민주에게 에르제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네가 저번에 선 넘지 말라고 하긴 했는데……. 미안, 이번만 넘을게.”

    에르제는 순식간에 팔을 뻗어서 낄낄대던 악령의 머리를 꽉 붙잡았다.

    민주혁의 귀 옆을 스친 에르제의 주먹이 2초 남짓한 시간에 다시 회수되었다.

    물론 에르제의 손에는 꾸깃꾸깃 접힌 악령의 머리통이 들려 있었다.

    가가각각가가각각가가각!

    아까까지는 입이 찢어져라 웃어 놓고, 이제 와서는 놓아 달라고 발악을 한다.

    세 개의 눈알이 괴로운지 삼각형을 그리며 계속해서 움직였다.

    에르제는 손에 붙잡힌 녀석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원래는 악몽을 꾸게 만드는 정도의 악령일 텐데……. 지구라서 가지고 있는 능력도 조금 달라진 건가.’

    자고 있지 않은 인간의 감정을 건드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어.”

    그제야 심신의 안정이 찾아온 것인지 민주혁이 자신의 양 손바닥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그의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했다.

    “다한증이야?”

    에르제가 물었고, 민주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무서워서 그런 것 같은데.”

    곧 민주혁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그것만으로도 평소의 민주혁다운 느낌이 들었다.

    에르제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돌아왔구나, 민태식이.”

    “뭐래?”

    민주혁은 에르제가 어정쩡하게 펴고 있는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내 뒤에 있다던 그 귀신이 잡혀 있는 거야?”

    “응. 볼래?”

    “내가 그걸 볼 수 있다고?”

    민주혁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난 귀신 같은 거 안 믿는데.”

    “사실 귀신이라기보다는 악령이야.”

    “……둘이 다른 건가?”

    “뭐, 비슷해.”

    둘의 차이점을 늘어놓자면 수도 없이 많았으나, 그걸 민주혁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있기도 뭐해서 에르제는 대충 대답했다.

    에르제는 오른손을 내밀어 민주혁의 손에 악령이 닿도록 만들었다.

    “이 상태로는 정확한 형체를 볼 수는 없겠지만, 아마 감각적으로 느껴지기는 할 거야. 이곳에 이상한 게 있다, 뭐 이 정도?”

    그리고 민주혁은 악령이 손에 닿자마자 놀라서 황급히 손을 뗐다.

    순식간에 기분이 나빠지는 게 여태껏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불쾌한 경험이었다.

    “……이게…….”

    민주혁은 말도 채 끝마치지 못하고 악령이 닿았던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의지와 상관없이 손은 벌벌 떨리고 있었다.

    ‘……하긴, 악령이 아무리 약하다 해도 인간이 견뎌 낼 정도는 아니지.’

    그래도 이런 식으로 포획한 상태가 아니면 직접적으로 접촉할 수 없다는 건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게 아니면 온 세계에는 미쳐 버린 인간들로 넘쳐날 테니까.

    에르제는 버둥거리는 악령을 더욱 세게 붙잡아 두며 입을 열었다.

    “이제는 믿을 수 있겠어?”

    “…….”

    민주혁은 본인의 손과 에르제의 손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너는 왜 괜찮아? 아니면…… 참는 건가?”

    “나는 악기에 강해서 괜찮아.”

    “나도 할 줄 아는 거 많은데.”

    “?”

    “?”

    갈고리 수십 개가 짧은 시간 둘 사이를 오갔다.

    “그 악기 말고 악한 기운.”

    “그걸 왜 굳이 줄여서 말해?”

    “MZ세대라서.”

    에르제의 대답에 민주혁이 순간 벙찐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그는 떨리는 손이 진정되지 않는지 반대쪽 손으로 붙잡아 꾹 누르고 있었다.

    “……당연히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인간이 초자연적인 현상을 쉽게 믿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조금 전 악령의 기운을 직접 체험하고도 여전히 그의 목소리에는 불신이 어려 있었다.

    “하……. 이게…….”

    여전히 완전하게 믿는 것 같지 않았기에 에르제는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자신이 민주혁의 몸에 혈기를 조금 흘려 넣어 주면 악령을 직접 볼 수 있다.

    보는 것뿐만이 아니라 놈이 내는 소리까지도.

    그리고 자신의 혈기가 민주혁을 보호해 줄 테니 별문제도 생기지 않을 터였다.

    ‘……어쩌면 안병인에 관한 것도 이걸로 풀 수 있겠는데.’

    좋은 생각을 떠올린 에르제는 말없이 민주혁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

    민주혁이 뭐 하냐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았으나, 이내 에르제의 혈기가 들어오자 조금 차분해진 듯했다.

    “어…….”

    민주혁은 조금 전까지 떨리던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에르제 덕분에 떨림이 멈춰 있었다.

    “믿지 못하는 것 같아서.”

    에르제는 민주혁의 심신이 안정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에게 악령을 조금 멀리 떨어뜨려 보여 주었다.

    “악……!!”

    민주혁은 악령을 보자마자, 황급히 소파의 끝 쪽까지 물러났다.

    “뭐, 뭐야!!”

    기겁을 한 민주혁은 신체적으로는 괜찮았지만 정신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도, 도대체…….”

    그리고 에르제는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 아버지.”

    “갑자기 그, 그건 왜?”

    민주혁은 이제 보이지 않는 악령 쪽을 노려보며 대꾸했고, 에르제는 더욱 안타깝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너희 아버지에게도 이런 게 붙어 있었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