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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06화 (206/307)
  • 제206화

    206화

    [ 신나서 물었네~. ]

    대마녀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하고, 에르제는 주먹을 꽉 쥐었다.

    물었다는 것은 미끼 이야기가 분명했다.

    ‘혈석을 받았구나.’

    다행히 대마녀는 혈석의 열화판을 만드는 데에도 성공했고, 그 안에 독을 집어넣은 것도 성공한 모양이었다.

    [ 혈석을 섭취하게 되면, 몸 안에 독이 퍼지는 방식이야. 피가 아니라 신경 쪽에 작용하도록 만든 거라서 아마 눈치채기 어려울 거야. ]

    뱀파이어들은 피에 민감하다.

    때문에 피에 흐르는 독이라면, 금세 눈치채고 분해할 가능성이 높았다.

    당연히 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대마녀는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했고, 그 결과물로.

    [ 원할 때 말하면, 바로 중독시킬 수 있어. 말단부터 신경이 마비되면서 최종적으로 심장이 마비되어 죽게 될 거야. ]

    에르제는 원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타이밍까지 조절할 수 있으면 최고지.’

    덕분에 에이리스를 이용하는 일이 훨씬 더 쉬워졌다.

    이제는 그녀에게 1장로가 혈석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만 은근슬쩍 흘리면 된다.

    만약 그 일이 성공한다면, 자신은 더 이상 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어진다.

    ‘에이리스에게 제이의 몸에서 혈석이 제거되었고 그것이 1장로의 손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린다면.’

    에이리스는 1장로의 속내를 읽어 낼 것이고, 역으로 그걸 이용할 게 뻔했으니까.

    ‘그렇게 되면, 바로 1장로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생각으로 귀결될 거야.’

    만약 그 전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더더욱 일이 그렇게 흘러갈 가능성이 높을 테고.

    ‘그리고…… 에이리스가 1장로를 제물로 바쳐 악마를 소환하게 된다면.’

    독이 든 성배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낼 것이다.

    에르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을 생각하고 있으니, 운전대를 잡고 있던 라하임이 궁금하다는 듯 물어왔다.

    “그런데 말입니다.”

    “응?”

    “에이리스에게 그 정보를 어떻게 흘리실 생각입니까?”

    “아, 그거.”

    에르제는 피식 웃었다.

    라하임의 걱정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기 때문이다.

    “에이리스가 눈치가 빠르기는 하지.”

    에이리스가 괜히 뱀파리스라는 세력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

    어쭙잖은 방식으로 그 사실을 전했다가는 분명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말 터였다.

    그렇게 되면, 힘들게 여기까지 온 계획이 한순간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에르제는 손가락으로 시트 위를 두드리다가 반대로 라하임에게 물었다.

    라하임도 머리가 좋았기 때문에 어쩌면 자신보다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낼 수도 있다고 판단해서였다.

    “너는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제 생각에는…….”

    말끝을 흐린 라하임은 곧 그의 의견을 내놓았다. 이미 그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저희 지부 내에 로드가 결계를 쳐 둔 비밀 구역을 이용해 보는 게 어떨까 싶었습니다.”

    의외의 대답에 에르제가 고개를 갸웃했다.

    “비밀 구역을 이용한다고? 어떻게?”

    “현재 비밀 구역 내에서 제이가 회복을 하고 있는 중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럼 그 안에 들어와서 보게 된다면, 제이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결계가 열려 있을 때는 보통 플랑이 지키고 있는데, 일부러 자리를 잠시 비워 주는 것이죠. 그럴듯한 상황을 만들어서.”

    “음.”

    에르제는 라하임이 말한 뜻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긍정적인 반응에 라하임이 화사한 미소를 지었으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부정적이었다.

    “그건 기각.”

    “……어째서입니까?”

    “너무 작위적이야. 그리고 제이가 뱀파이어 지부에 있는데, 그 혈석이 1장로의 손에 들어갔다고 하면 너무 어색하지 않아? 차라리 내가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은데.”

    “1장로의 능력 중 하나가 도플갱어이니까 1장로가 낚아챘다고 하면…….”

    어떻게든 구멍 난 부분을 메우려 애쓰던 라하임은 이내 오류를 깨닫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뭐, 그래도 생각해 보지 않은 방향이라서 나름 신선했어.”

    에르제는 로드다운 자상한 면모를 보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로드의 생각을 들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는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다.”

    “생각나지 않을 수밖에 없지. 웬만한 것들은 너무 뻔하니까.”

    에르제는 슬쩍 뜸을 들였다.

    “제3자를 이용해 소문을 흘리면 너무 티가 나고, 그렇다고 에이리스의 측근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지. 그들 중 누가 1장로에게 회유되었는지 우리는 모르고 있으니까.”

    “……하지만 누군가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렇지. 네가 뱀파리스 쪽에 있었을 때 들었던 얘기에 따르면, 에이리스는 접견실을 제외하고는 아예 나오지 않는 듯하니까.”

    “예, 맞습니다. 지금도 그럴 겁니다. 그녀는 걷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 주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에르제는 입맛을 다시며,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딱 하나 있어. 그 이야기를 전해도 이상하지 않을, 딱 한 명의 뱀파리스.”

    “……뱀파이어도 아니고, 뱀파리스요?”

    “아, 이제는 뱀파이어인가. 아무튼 라하임, 너는 내가 왜 에이리스에게 곧바로 정보를 흘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

    라하임이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그 뱀파이어가 아직 깨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야.”

    “……!”

    에르제가 말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깨달은 라하임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제이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계신 거군요.”

    “맞아. 에이리스의 의심을 피하기 가장 좋은 상대가 누구일까? 당연히 피해자겠지.”

    “……확실히.”

    라하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혈석이 없어졌다는 사실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고, 무엇보다…… 제이가 배신한 상황이라면 제 발로 에이리스를 찾아갈 리도 없으니까요.”

    “그래.”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기억을 말하는 거지?”

    에르제의 말에 라하임이 침묵으로 답했다.

    전에는 혈석에 영향이 갈까 싶어서 에이리스가 제이의 몸에 혈기를 흘려보내지 못했지만, 혈석을 빼앗긴 이후라면 달랐다.

    당연히 확실히 하기 위해서 제이의 머릿속을 뒤져 볼 게 뻔했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편해. 우리가 먼저 제이의 기억을 헤집어 놓으면 되니까.”

    “……아, 그렇게 되면 당연히 1장로가 혈석을 빼앗고 기억을 날렸다고 생각하겠군요.”

    제이의 기억이 망가져 있으면, 자연스럽게 1장로를 의심하게 될 것이다.

    ‘제이는 혈석을 빼앗아 간 것이 1장로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

    에르제는 픽 웃었다.

    전혀 엉뚱한 인물이 혈석을 가져갔다면, 당연히 에이리스의 머리에는 도플갱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를 수밖에 없을 터.

    “준비는 끝났어. 제이가 깨어나기만 하면 돼.”

    에르제는 한쪽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

    대마녀에게서 좋은 소식을 들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드디어 평화로운 일상을 지킬 수 있게 됐다고 안도한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혹시 모를 단순한 불안일까.’

    숙소로 돌아가는 길.

    에르제는 잔잔하게 떨리는 가슴 위를 손바닥으로 지그시 눌렀다.

    * * *

    에르제가 뱀파이어와 관련된 일을 처리하는 동안, 디지털 싱글인 ‘Parados’의 준비도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현재 ‘Prologue’는 음원 차트 3위에 머물러 있는 상태였고.

    그 위로는 솔로 가수의 곡과 여자 아이돌의 곡이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1위로 올라서는 것을 기대해 볼 법도 했는데, 아직까지는 두 곡이 철옹성처럼 굳건히 순위를 지키고 있었다.

    잡힐 듯하다가도, 또 멀어져 버리는…….

    지금까지 토트윈의 성공을 내리 맛보고 있었던 장 대표로서는 아쉬움을 삼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욕심을 버리지 못했기에 그는 이번 곡인 ‘Parados’를 음원 차트 1위로 올리려는 마음이 강해졌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이미 완성된 뮤직비디오를 엎고 다시 찍자고 고집하는 걸 옆에서 겨우 뜯어말려 진정시켰다.

    “그만큼 대표님이 이번 싱글에 진심이니까, 다른 부분에서 최대한 완성도를 높여 보자.”

    이윤은 그렇게 말하며 멤버들을 독려했다.

    벌써 몇 시간째 연습하느라 지쳐서 쓰러진 멤버들에게 딱히 독려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도 숨이 찰 정도이니.’

    에르제는 가쁜 호흡을 가다듬으며, 연습실에 널브러져 있는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평소에 아무리 힘들어도 의자에 앉아서 쉬던 민주혁마저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것만 봐도 연습량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안무가 격하다거나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그냥 아주 작은 동작조차도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멤버들 스스로가 영혼을 갈아 넣고 있는 중이었다.

    에르제는 그 이유를 곧바로 떠올렸다.

    ‘댄스 챌린지 때문이겠지.’

    저번 달에 나왔던 ‘Prologue’의 음원 성적은 워낙 쟁쟁한 다른 곡들 때문에 아쉽게 밀리고 있었으나.

    무튜브에서 소비되고 있는 양은 토트윈이 훨씬 많았다.

    이윤의 댄스 챌린지 영상으로 시작된 ‘Prologue’의 춤이 에르제의 혹독한 평가에 당하는 모습이 재미 포인트가 되었는지.

    댄스 챌린지뿐만 아니라 춤을 분석하는 영상이라든가, 강의 영상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뿐이었으면, 이렇게까지 빡세게 하지는 않았을 텐데.’

    에르제는 헛웃음을 지으며, 무튜브에서 유행한 다른 영상들의 제목을 떠올렸다.

    [ 토트윈이 현 남자 아이돌 중에서 폼이 1위인 이유 ]

    [ 0.1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칼군무, 이게 가능한가? ]

    [ 춤을 추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라이브 ]

    등등.

    ‘Prologue’의 뮤직비디오를 포함해, 음악 방송 무대 등이 움짤이나 짧은 영상 형태로 무튜브 팬 계정에 잔뜩 올라와 있었고.

    그것들은 고스란히 토트윈 멤버들의 부담으로 작용했다.

    앞으로는 어떤 무대에서도 안무를 틀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시간적 오차조차 절대 내지 않겠다는 형태로 말이다.

    때문에 누가 아주 조금만 늦거나 빨라도, 멤버들 다같이 ‘다시!’를 외치며 그 부분만 몇십 분 연습을 해서 칼같이 맞췄다.

    그러니 이렇게 퍼질 수밖에.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팬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 줄 수 없다며, 연습에 매진하는 멤버들이 기특해 보이긴 했다.

    ‘0.3초 정도 차이 나는 건 말하지 말아야겠다.’

    그렇게 에르제가 적당한 수준에서 마음속으로 합의를 보고 있을 때였다.

    그런 그들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던 이윤의 주머니에서 스마트폰 진동이 울렸다.

    거친 숨소리만 들리던 연습실이었기에 진동 소리는 꽤나 크게 들렸고, 때문에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부담스럽다, 얘들아.”

    이윤은 손사래를 치며,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벌써부터 노안이 온 건 아닐 텐데, 화면을 바라보는 이윤의 눈이 단춧구멍만 하게 작아졌다.

    그러더니 점차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

    멤버들은 뭔 일인가 싶어서 쳐다보고 있으니, 이윤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민주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혁아, 드디어 너도 토트윈 활동 말고 활약할 수 있는 곳이 생겼다.”

    “?”

    “청화 쪽에서 프로그램 하나를 제대로 미는 모양인데?”

    “……예?”

    민주혁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으나, 그와 반대로 이윤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가득했다.

    “봐 봐.”

    올라간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한 이윤은 스마트폰을 조작해 주혁에게 화면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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