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05화 (205/307)
  • 제205화

    205화

    토트윈의 신곡 ‘Prologue’는 순항 중이었다.

    이제는 톱급 아이돌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전혀 무색하지 않을 정도였기에 발매와 동시에 신곡이 차트 순위권에 올라왔다.

    때문에 뒤이어 발매 예정인 후속곡 ‘Parados’에 대한 기대감도 수직 상승하고 있는 중이었다.

    음악 방송에 출연하면서 다음 싱글 준비도 해야 했으니 토트윈은 그야말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윤치우와 민주혁, 안단테는 단발성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었던 예능에 최근 고정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나마 태현우의 모자이크 싱어 촬영이 곧 끝나 갈 테고, 에르제의 드라마 촬영도 이제 막바지에 들어섰다는 사실이 다행이었다.

    ‘안단테는 아예 프로듀싱 쪽으로 예능 방향을 잡고 밀어주는 것 같던데.’

    최근 나가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니, 소속사에서 안단테를 그쪽으로 계속 미는 듯한 느낌이었다.

    태현우는 보컬, 안단테는 프로듀싱 그리고 자신은 연기 등 다양한 활동을 겸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윤치우의 예능감이 물이 올랐는지 예능 쪽에서 그를 탐내는 분위기였는데, 그렇게 되면 토트윈 멤버들 중에서 민주혁만 붕 뜨게 될 가능성이 있었다.

    ‘춤과 관련한 예능이 좀 나와 주면 좋겠는데.’

    에르제는 입맛을 다시고는, 드라마 촬영장으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촬영장으로 가는 동안, 머릿속 생각은 계속 이어졌다.

    대마녀에게 의뢰한 일은 당장 자신이 뭔가 손을 쓸 수 있는 부분이 없었기에 괜찮았지만.

    자신을 대하는 민주혁의 태도가 여전했기에 볼 때마다 불편했다.

    ‘……안병인하고 한번 이야기를 해 봐야 하나.’

    아무래도 저번에 서은우가 벌인 일로 인해서 둘이 이야기를 나누긴 한 모양인데.

    안병인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 것도 그렇고, 민주혁도 저런 상태인 거 보니 이야기가 잘 안 된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게 회복될 여지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었다.

    ‘중요한 건 바로 그거지.’

    에르제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사실 민주혁과 계속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토트윈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지.’

    일족들도 다 찾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굳이 아이돌 말고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으니까.

    뱀파이어라는 종족의 특성을 활용하면, 일족들이 살아갈 터전이야 뭐 충분히 해결 가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르제는 토트윈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반대로 민주혁이 토트윈을 탈퇴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그냥 지금 이대로, 더는 노래를 하지 못하고 춤을 추지 못할 때까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

    어쩌면, 에이리스와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음유시인으로서 행복했던 기억이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평화로운 일상을 지키고 싶었다.

    계속해서, 끝까지.

    그런 생각을 곱씹던 에르제는 문득 든 생각에 피식 웃었다.

    ‘내가 뱀파이어라는 사실도 언젠가는 털어놓을 수 있을까.’

    에르제는 감았던 눈을 뜨고, 운전석에 앉아 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오늘 라하임은 태현우와 일정을 함께하고 있기에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이는 이윤이었다.

    에르제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그에게 물었다.

    “이윤.”

    “왜?”

    “내가 진짜 뱀파이어라고 하면, 어떨 것 같아요?”

    “뭔 소리야, 갑자기.”

    이윤이 미간을 좁혔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생각해 본 적 없어서 모르겠다.”

    ‘생각해 본 적이 없다라…….’

    에르제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이윤의 말이 이어졌다.

    “근데 좀 무섭지 않으려나? 뱀파이어들은 막, 목 같은 데 콱 물어서 피를 빨고 그러잖아. 나한테도 그러는 거 아니야?”

    “아, 그건…….”

    뱀파리스라고 말을 하려다가 에르제는 입을 꾹 다물었다.

    말을 하다가 마니, 이윤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뭐야, 왜 말을 하다가 말아? 뭔데?”

    “아무것도 아니에요.”

    에르제는 고개를 저었다.

    “싱겁기는.”

    이윤이 다시 운전에 집중하는 듯 보이자, 에르제는 들리지 않게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역시, 지구에서는 무리겠지.’

    아무래도 인간을 제외한 다른 종족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상상조차 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드라마나 영화 같은 데서 나오거나 하겠지.

    ‘하긴…… 원래 없던 종족들이 카테이아 대륙의 신에 의해서 여기로 오게 된 거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에르제는 가까워지는 목적지를 보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아무래도 뱀파이어라는 사실은 앞으로도 윤치우만 알고 있는 게 좋을 듯싶었다.

    * * *

    1장로는 데 캄 아니, 이제는 자신의 거처가 된 공간에서 피를 공급받고 있었다.

    이전까지는 뱀파리스의 방식이라 기피했던 일이었는데, 최근 생긴 목표 때문에 힘을 빠르게 키워야 했기 때문이다.

    제이의 몸에서 제거한 혈석을 섭취하고 에이리스에게서 로드의 힘을 뺏기 위함이었다.

    ‘에이리스를 내가 죽일 수는 없으니까.’

    제압을 하고 무사히 힘만 뺏기 위해서는 그녀의 저항을 막을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힘의 가장 큰 원천은 혈석이 될 터.

    “도대체 언제 연락을 주려고 하는 건지…….”

    약속했던 한 달이 지났음에도 아직 대마녀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뒤에서 무슨 수작질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

    1장로는 입 안에서 음미하던 피를 삼켜 넘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거처 중앙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날, 분명 뭔가 숨겨 둔 게 확실한데.’

    1장로는 입술을 깨물며, 지난번에 에르제가 뱀파이어 지부를 찾았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뭘까.’

    에르제는 뱀파이어 지부 내에 비밀 공간을 하나 만들어 두었는데, 그곳은 자신도 침입할 수 없게 정교한 결계가 쳐져 있었다.

    그리고 에르제는 본인을 제외한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공간에 무언가를 숨겨 두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마지막에는 플랑까지 앞에 세워 두고 들어갔으니까.’

    그렇게까지 경계하면서 그곳에 숨겨 둔 것이 대체 뭘까.

    1장로는 빙글빙글 돌던 걸음을 멈추고,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었다.

    ‘……그게 에이리스를 향한 칼날이면 좋을 텐데.’

    그렇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에르제를 위시한 그들은 분명 자신의 존재를 신경 쓰고 있었으니까.

    그들은 자신의 능력인 도플갱어를 경계하고 있었고, 지속적으로 뱀파이어 지부 내에 숨어 있는 자신을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에이리스뿐만 아니라 나한테도 겨눠진 칼날이라고 봐야겠지.’

    아마 저들은 자신이 에이리스와 협력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1장로는 다시금 깊은 한숨을 내쉬며, 거처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늦으면 안 돼.’

    에르제가 그렇게 상정하고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그들보다 한발 앞서서 움직여야 한다.

    그들은 뱀파리스라는 적을 상대하고 있지만, 현재 자신은 에이리스와 에르제 두 로드를 상대해야 했으니까.

    ‘빨리 혈석을 섭취해야 에이리스에게서 로드의 힘을 빼앗을 수 있을 텐데.’

    자꾸 마음만 조급해지니, 머리가 더 안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끙.”

    그렇게 한숨이 깊어져 갈 즈음, 드디어 그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대마녀를 만났을 때 그녀가 주었던 물건이었는데, 도청의 걱정 없이 통화할 수 있는 푸른색 수정구였다.

    참으로 마녀들이 쓸 법하게 생겼다고 생각하며 받아 왔던 건데, 그것이 드디어 한 달이 지난 오늘에야 빛을 발하고 있었다.

    ‘수정구가 빛을 발하면 오른쪽으로 두 번, 왼쪽으로 세 번…….’

    대마녀가 알려 준 대로, 자신만이 아는 수신 방법을 적용하자.

    화아아악―!

    수정구 주변에서 은은하게 빛나던 하얀빛이 주변을 조금 더 밝게 밝히다가 금세 사라졌다.

    ‘됐다.’

    그 의미는 성공적으로 송수신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증거.

    “큼큼, 전화 받았습니다.”

    1장로가 헛기침을 하며 수정구에 대고 이야기하자, 곧 반대편에서 응답이 돌아왔다.

    [ 이건 전화가 아닙니다만. ]

    대마녀의 목소리였다.

    한 번 만났을 뿐이었지만,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보아 대마녀가 분명했다.

    “크흠! 그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봅니다만.”

    [ 그건 그렇지요. ]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 성격이 참 급하십니다. ]

    대마녀는 풋 하고 웃었다.

    [ 글쎄요? 어떻게 되었을까요? ]

    “…….”

    지금 누굴 놀리나.

    1장로가 송곳니를 까드득 깨물었다.

    “내가 시간이 별로 없다고 분명히 말했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대답도 신중히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 오, 그래요? 그럼 없던 일로 할까요? 나는 솔직히 누구 편에 서든 딱히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그냥 장사꾼일 뿐이지요. ]

    뻔뻔하게 나오는 대마녀의 태도에 1장로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하여간, 마녀들이란 카테이아 대륙에서나 여기나 다를 게 없군.’

    대마녀는 뱀파이어와 뱀파리스, 두 종족 간의 전쟁에서 물자를 팔아먹으며 이득을 취하는 게 목적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따라서 1장로를 이렇게 끌어들이는 것도 그 두 세력의 싸움이 조금 더 진흙탕 싸움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계기야 제이 놈이 만든 것 같긴 하다만.’

    1장로는 최대한 짜증을 가라앉히며 인내심을 발휘했다.

    그리고 그 반응은 대마녀가 의도한 대로였다.

    어쭙잖은 의심을 사지 않도록, 일부러 1장로를 자극한 것이었으니까.

    때문에 1장로는 다른 쪽으로는 머리를 굴리지 못하고 대마녀의 페이스에 그대로 말려들었다.

    “협력 관계가 아니었나, 우리.”

    1장로는 입술을 안으로 말아 넣었다.

    [ 그냥 반응이 재미있어서 한 번 놀려 보고 싶었던 것뿐이었습니다. ]

    얄미운 대마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아무튼 한 달 동안 결과만 기다리고 계셨을 테니 이쯤 하고. ]

    “…….”

    [ 조만간, 저희 쪽에서 직접 전달하러 갈 겁니다. 괜히 움직여서 의심 받지 마시고, 조금만 더 기다리고 계시죠. ]

    “!”

    결국 혈석을 뽑아내는 데 성공하긴 한 모양이구나!

    1장로는 가장 큰 관문을 넘었다는 생각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결과만이라도 알려 줘서 고맙습니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훗, 하고 웃음소리가 들려온 뒤 수정구는 금세 빛을 잃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지금까지 에이리스와는 서로 믿고 의지해 왔던 사이였지만, 그 관계를 먼저 깬 것은 저쪽이다.

    대악마니 뭐니 하며 놈의 말에 홀려서 제이 대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으니까.

    ‘에르제와 에이리스 둘 다 상대해야 하지만, 그래도 내가 지금 제일 우위에 서 있어.’

    이제 곧 혈석이 자신의 손에 들어올 테니 말이다.

    역시 대마녀와 손을 잡은 것은 근래 들어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음이 틀림없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1장로가 며칠 동안 거처에서 두문불출하며 대기하고 있었고.

    드디어 기다림의 끝이 찾아왔다.

    ‘이게…… 그 혈석인가.’

    1장로는 흐뭇한 얼굴로, 자신의 손에 쥐어진 붉은 혈석을 바라보았다.

    꿀꺽.

    그의 목울대가 크게 출렁였다.

    ‘확실히 강한 혈기가 담겨 있어.’

    이 정도면 충분히 해 볼 만했다.

    혈기는 쌓이면 쌓일수록 증폭되는 성향을 지니고 있으니까.

    1장로는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붉은 안광이 그의 눈에 어른거렸다.

    결심을 마친 1장로는 망설임 없이 바로 혈석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