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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03화 (203/307)

제203화

203화

이번 ‘Prologue’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하게 되었을 때, 이미 두 가지가 준비되어 있었다.

첫 번째는 라이브 방송과 토트윈 전담 매니저인 라하임이 심사위원을 보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총괄 매니저인 이윤이 댄스 챌린지를 하는 것이었다.

텅 빈 연습실.

이윤은 카메라를 슬쩍 바라보았다가, 이내 민망한 듯 마른세수를 했다.

“끄응.”

잠시 앓는 소리를 하던 이윤은 여전히 민망한 듯한 얼굴로 카메라…… 아니,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이에게 물었다.

“라하임 씨가 하면 안 되는 거야? 나 춤 진짜 못 추는데.”

“가위바위보 졌잖아요. 승부에 승복할 줄 아는 멋진 어른인 줄 알았는데…….”

그에게 대답한 것은 압도적인 근력과 밸런스로 동영상을 찍을 때, 작은 흔들림조차 허용하지 않는 에르제였다.

“실망이에요.”

“하면 되잖아, 하면.”

“연습한 대로만 하면 돼요.”

“간신히 동작만 외운 거야.”

이윤은 소심한 움직임으로 미리 조그맣게 춤을 춰 보고는 이내 고개를 흔들어 털었다.

“해 보자.”

“이미 찍고 있었어요.”

“야!”

이윤은 얼굴을 확 붉혔다가 이내 편집을 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지 빠르게 표정을 고쳤다.

그러고는 마치 본인이 아이돌이 된 것처럼 만면에 미소를 띠며 음악에 몸을 맡겼다.

― Cause now I’m on―.

뛸 듯이 팔을 휘적거리며 스텝을 밟다가 발을 전환해서 왼발을 앞으로 쭉 뻗고.

“어때? 잘 나왔어?!”

10초 남짓 되는 안무를 성공한 이윤이 빠르게 카메라 밖으로 벗어나며 말했다.

그래도 영상을 찍는다고 해서 그런가, 연습한 티가 나기는 했다.

하지만 이윤이 하나 간과한 것이 있었다.

습관성 잔소리증후군의 최대 피해자, 에르제가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다시.”

에르제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방금 0.8초 정도 박자가 밀렸어요.”

“……0.8초? 어디서?”

“딴딴딴, 따단. 여기요.”

에르제가 직접 멜로디와 춤을 춰 주며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 주었다.

이를 바라보던 이윤이 “음…….” 하고 낮은 진동음을 냈다.

“그, 은우야.”

이윤이 코끝을 검지로 만지작거렸다.

“내가 아이돌도 아니고, 댄스 챌린지 하는 건데 0.8초……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이윤은 토트윈 매니저잖아요.”

“그렇…… 지?”

“그럼 이브들보다는 훨씬 더 잘해야 하지 않을까요? 연습실에서 저희 연습하는 걸 그렇게 많이 봤는데?”

“그런…… 가?”

“그런 거예요.”

에르제는 다시 한번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것만 문제가 아니기도 했고요.”

그리고 에르제는 다시 운을 떼었다.

“여기, 안무 초반 부분에서 팔 각도가 11.2도 정도 틀어졌어요. 팔꿈치를 조금 더 안쪽으로 밀어 넣어야 해요.”

“이…… 렇게?”

“음, 완벽하진 않지만 그 정도면 뭐.”

그 뒤로도 에르제는 방금 춘 춤에 대해서 아주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옆에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있던, 최근 서먹서먹해진 민주혁이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것만 보더라도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다시.”

그렇게 이윤은.

“다시 해 볼게.”

무려 2시간이 넘도록 같은 춤을 추고 난 뒤에야 겨우 에르제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 * *

이윤의 눈물겨운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꽤나 그럴듯한 챌린지 영상이 탄생했고.

이후 비하인드 영상이 풀리면서 에르제의 말은 하나의 지침이 되어 버렸다.

덕분에 무튜브 쇼츠나, 티키타카톡에 올라오는 보통의 댄스 챌린지와는 조금 다른 결의 댄스 챌린지가 되었다.

[ 서은우 선생님,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

영상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마치 무튜브에서 자주 보이는 피드백 영상처럼 댄스 챌린지가 진행된 것이다.

당연히 에르제가 영상 하나하나에 댓글을 달면서 피드백을 할 수는 없었으나.

애초에 진짜 피드백을 바라고 올린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렇게 꽤나 특이한 콘셉트로 시작된 댄스 챌린지는.

모카 엔터테인먼트와 토트윈의 예상을 깨고 엄청난 유행을 몰고 왔다.

토트윈을 모르거나 관심이 없던 일반인들의 알고리즘을 ‘Prologue’의 춤이 점령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흡혈으누가진리 님이 1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

요즘 유행하는 댄스 챌린지.

이브들의 홍보를 통해서든, 스트리머가 우연히 보게 되었든.

사람들이 보는 스트리머들과 티키타카토커에게 댄스 챌린지가 유행하게 되었고.

도네이션이라는 훌륭한 창구를 통해, 스트리머에서 스트리머로 점차 퍼져 나가게 되었다.

춤 자체가 상큼한 매력을 지닌 데다 중독성도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피드백’이라는 키워드가 붙은 것이 가장 크게 한몫했다.

경쟁심.

춤에 문외한인 이들도 스스럼없이 영상을 찍어 올렸으나, 점차 사람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마치 유명 가수의 난이도 높은 곡이 발매되었을 때.

이를 커버하고 영상을 올려 자랑하는, 그런 현상이 춤으로 발현된 것이다.

당연히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도록 만든 쉬운 난이도 때문에 경쟁 방식은 ‘완벽하게’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말이다.

[ 한국 최고 댄서, ‘Prologue’ 추는 법 알려 드림! ]

심지어는 에르제가 이윤에게 했던 말을 바탕으로, 춤 전문가가 등장해 강의하는 영상까지 올라올 정도였다.

“역시……!”

세리나는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순수한 감탄을 내뱉었다.

“로드께서는 이미 다 예측을 하셨군요.”

“……응.”

“역시 대단하십니다. 가히 아이돌계의 로드이십니다.”

“대단해요!”

거의 찬양 수준으로 치닫는 세리나와 장미영의 반응에 에르제는 떨떠름한 미소를 지었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아니라고 할 수는 없잖아.

‘뭔가 점점 변질되어 가는 기분이기는 하지만.’

에르제는 괜스레 민망해져서 볼을 긁적이다가 오늘 뱀파이어 지부를 찾은 목적을 깨닫고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지.”

장미영이 여기까지 왜 따라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어차피 뱀파이어가 아니므로 내부까지 들어오지는 못한다.

장미영을 차에 남겨 둔 채 에르제는 세리나와 라하임 그리고 플랑까지 대동해 뱀파이어 지부의 내부로 들어섰다.

“오셨습니까. 주군의 로드.”

“오랜만이야.”

바란이 가장 먼저 마중을 나와서 그들을 정중하게 맞이했다.

‘……늘었네.’

에르제는 5명 정도 늘어난 친위대의 숫자를 보며 살짝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여전히 라하임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고 있었기에 면전에서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라하임에게 따로 말을 전해야겠어.’

게다가 여전히 감시 대상 1순위에 놓여 있는 만큼, 겉으로 티를 내는 것은 좋지 않았다.

만약 바란이 1장로의 도플갱어라고 한다면, 눈치를 챌 수도 있으니 말이다.

에르제는 조금 구겨졌던 얼굴을 펴며 말했다.

“비밀 구역으로 갈 거니까 따라오지 않아도 돼.”

“예.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불러 주십시오.”

바란은 고개를 깊숙이 숙여 인사를 하고는, 친위대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에르제는 조금 전 바란의 인사를 떠올리며 라하임에게 물었다.

“우리의 고귀한 인사법은 가르쳐 주지 않은 거야?”

“저희 일족이 아니니까요.”

“그러네.”

순순히 수긍한 에르제는 플랑에게 따라오는 이가 없는지 확인하라고 전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그들이 향하는 곳은 뱀파이어 지부 내의 비밀 보안 구역이었다.

에르제가 자신만이 열고 닫을 수 있도록 만든, 고위 결계를 쳐 둔 공간이었다.

그 공간은 들어가거나 나오는 것 모두 에르제의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조금 전에 마중을 나왔던 뱀파이어 지부를 총괄하고 있는 바란조차도 현재 그 안에 누가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따라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결계 앞에 도착하고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던 에르제는 플랑의 확답을 받고서야 혈기를 끌어올렸다.

“물러나.”

에르제의 경고에 나머지는 세 걸음 뒤로 물러섰다.

“찬란하게 부서지는 달빛. 그 사이에 스며드는 붉은 실의 끝을 따라…….”

눈을 감고 술법을 외는 에르제의 몸에서 혈기가 폭사하듯 터져 나왔다.

그러고는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이리저리 똬리를 틀기도 하고 서로 물어뜯기도 하며 조금씩 하얗게 변해 갔다.

백 개의 적혈구가 모여 달빛에 근접해 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백혈구.

그것들이 서로를 잡아먹고 하나가 된 백색의 뱀.

설산에 펼쳐진 백색의 시린 눈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을 에르제가 나지막이 불렀다.

“설사여, 열어라.”

에르제가 양손을 옆으로 뻗자, 거대한 뱀이 꾸물거리며 결계의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기둥을 물었다.

꾸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기둥이 빠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둥이 빠져 나간 자리에 그들이 지나갈 수 있는 틈이 생겨났다.

“후우.”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 내며, 에르제가 앞장서서 그 안으로 들어갔다.

세리나와 라하임이 뒤따라 들어왔고, 플랑은 남아서 입구를 지켰다.

뱀파이어 지부 안이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기 때문.

“부탁할게.”

“걱정하지 마라.”

플랑의 든든한 목소리를 뒤로하고, 에르제는 이곳으로 데려온 손님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하기 전, 뒤따라오던 라하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술은 잘되었을까요?”

“혈석에 관해서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니까 믿어 봐야지. 그렇게 자신 있어 했는데.”

에르제는 픽 웃으며 걱정 말라는 듯, 라하임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안으로 들어갔을까.

어두웠던 다른 방들과 다르게, 전등 불빛이 새어 나오는 커다란 방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저기 있네.”

에르제는 걷는 속도를 빨리해 빛이 새어 나오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늦었잖아.”

그리고 그 안에 앉아 있던 이는 에르제가 들어오자마자 핀잔을 주었다.

그녀는 다리를 꼰 채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귀찮음이 얼굴에 잔뜩 묻어 있었다.

“로드께 그 무슨 무례한…….”

“됐어.”

세리나의 분노를 말리며, 에르제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그런 에르제를 보며 피식 웃었다.

“매번 소희나 너희 쪽 애들에게 이야기나 전달 받았지,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네. 반가워.”

대마녀는 여전히 무례한 자세로 앉은 채 얼굴을 괴고 있지 않는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에르제는 어깨를 으쓱한 후 그 손을 맞잡았다.

“제이는요?”

“아, 그거.”

대마녀는 제이를 무슨 물건 취급을 하듯 말하며, 턱으로 방의 구석 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커다란 침대가 놓여 있었는데, 제이는 그 위에 쥐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죽은 건 아니죠?”

“죽었으면 큰일 났지.”

“하긴.”

제이가 죽었으면 혈석은 대마녀의 몸속으로 넘어갔을 테니까.

본인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실패했으면 실패했지 죽이지는 못했을 거다.

고개를 끄덕인 에르제가 고개를 돌려 대마녀를 바라보았다.

“수술은요?”

그의 말에 대마녀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러고는 품에서 붉은색 빛을 내는 것을 꺼내 들었다.

에르제가 그것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으나, 그녀는 손목을 꺾어 피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까딱, 움직였다.

“셈은 확실히 해야지?”

대마녀는 엄지와 검지로 혈석을 잡은 채 말했다.

“허튼짓하면, 부순다?”

“…….”

겉으로 보기에 평화로운 대화였으나, 은근한 긴장감이 공간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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