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1화
201화
라하임은 인기가 많았다.
외모와 기럭지, 그리고 특유의 젠틀한 이미지까지.
처음 라하임이 매니저를 지원했을 때, 장 대표가 아이돌 해 볼 생각은 없는지 물었다는 것은 모카 엔터테인먼트 내에서도 꽤 유명한 일화였다.
물론 라하임의 나이를 알게 된 뒤로 깔끔하게 포기했지만, 요즘 장 대표가 에르제 때문에 배우 매니지먼트에도 욕심을 내고 있으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라하임이 배우를 한다면, 팬들은 좋아하지 않을까?
이렇게 채팅창에서 매니저 외모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경우도 없을 테니 말이다.
‘심지어는 저번에 우리 말고 라하임 사인을 받아 간 사람도 있었지.’
에르제는 그렇게 생각하며, 신중한 표정으로 시식을 하고 있는 라하임을 바라보았다.
“음, 흐음.”
라하임은 무튜브로 미식가의 모습을 예습이라도 해 온 건지 느끼한 표정으로 맛을 음미했다.
‘……반쯤 탄 소시지를 먹으면서 저런 표정을 지으면 전혀 설득력이 없지 않겠니?’
에르제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으나, 멤버들은 ‘오오!’ 하는 표정으로 양손을 모으기까지 했다.
물론 표정과 점수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었다.
라하임이 음식을 덜었던 접시를 탁, 하고 내려놓으며 점수를 매겼다.
“4점입니다.”
“왜요!?”
태현우가 소시지야채볶음을 부여잡으며 울상을 지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식 평가들.
태현우 4점, 안단테 3점, 윤치우 11점 그리고 민주혁은.
“측정 불가.”
판정을 받았다.
“측정 불가의 의미가 뭔가요?”
민주혁은 목울대를 크게 움직이며 초조한 듯 물었다.
“혹시 너무 맛있어서 그런 건가요? 전투력이 너무 높아서 안경 깨지는 것처럼?”
“아, 아뇨.”
하지만 그건 헛된 희망이었을 뿐.
“마이너스 무한대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라하임은 냉정하게 평가를 내렸다.
“어째서…… 분명 백 선생님 레시피대로 했는데…….”
‘민주혁, 양심 좀 챙기자.’
그리고 에르제도 그 의견에 완벽하게 동의했다.
민주혁이 요리한 것은 안주 요리 중에서도 최고봉에 속하는 어묵탕이었는데.
어묵은 국물 내는 용도로만 사용했는지 거의 믹서에 간 수준으로 완전 분해가 된 상태였고.
국물은 은은한 노란빛이 아닌, 간장 범벅으로 시꺼먼 갈색이 되어 있었다.
“스읍.”
어디서 꺼낸 것인지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은 라하임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제 마지막이군요.”
라하임은 에르제의 음식을 가장 마지막에 꺼내 들었다.
원래 우승자는 항상 마지막에 나오는 법.
‘역시 방송을 좀 알아.’
에르제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라하임이 자신의 요리를 가까이 가져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건 망할 수가 없다.’
그리고 에르제는 자신했다.
이번에 자신이 만든 것은 비겁하다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는 요리였다.
황도를 베이스로 한 화채.
심지어 시간이 남은 덕분에 꽃잎으로 데커레이션까지 했으니, 보는 눈까지 즐거운 수준!
자, 감탄해라!
에르제는 양팔을 벌렸다.
노오란 빛깔의 황도가 라하임의 혀 위에서 녹듯이 사라졌다.
“……!!”
그러자 라하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이, 이 맛은……!”
라하임의 말에 채팅창도 난리가 났다.
조금 전까지 멤버들의 처참한 결과물을 보고 배를 잡고 웃던 와중이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기대주인 에르제의 요리가 예상 밖의 반응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크읍……!!”
하지만 라하임은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우욱…….”
기어코 뱉고 싶다는 감정과 그렇게 되면 지난날의 죄를 씻을 수 없다는 이성이 맞부딪치는 모양새였다.
‘……? 잘못한 게 없는데.’
이상한 낌새를 느낀 에르제가 미간을 좁혔다.
요리는 완벽했다.
이번에는 진짜로 카테이아 대륙의 뭐시기는 단 하나도 넣지 않았다.
그런데 왜 라하임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이제는 거의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라하임의 몸이 천천히 옆으로 기울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까지 고여 있었다.
“너,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나는 건가요?”
어쩔 수 없다.
뭐가 잘못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편파 판정으로 가면 된다.
하지만 라하임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기는 했으나, 이미 채팅창 분위기는 망해 버린 상태였다.
―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럴 줄 알았다.
― 뭘 넣은 거냨ㅋㅋㅋ 은우야.
― 역시 괴식 아이돌! 매니저 죽는다!!
― 여러분, 매형 걱정 좀…….
― 걱정 안 해도 됨. 은우 요리 먹은 사람들, 다이어트 용도로 먹는 거임.
― ㅋㅋㅋㅋㅋㅋㅋㅋ 태현우랑 제이 둘 다 그랬짘ㅋㅋ
같은 고통을 공유하는 것인지, 태현우도 속이 좋지 않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그러나 지난날의 죄가 워낙 컸기 때문에, 라하임은 황도를 기어코 삼켰다.
거의 바닥에 기다시피 했던 라하임은 눈물을 닦아 내며 엄지를 세웠다.
“100점!”
“네!? 거짓말하지 마요!”
“이건 분명히 매니저를 매수한 거다!”
그리고 당연한 반발이 이어졌다.
거의 사약 먹듯이 먹어 놓고 점수가 100점이라니.
멤버들뿐만이 아니라, 채팅창까지 한바탕 난리가 났다.
물론 팬들은 거의 웃고 있는 거긴 했지만 말이다.
“100점!”
그러나 같은 말을 반복하는 라하임 때문에 결국 태현우가 용기를 냈다.
아마 일생일대의 용기였을 것이다.
숟가락을 들고, 에르제의 화채를 한 숟갈 떠서 먹었으니까.
그리고 태현우는 선 채로 죽었다.
“…….”
그대로 굳어 버린 태현우를 옆으로 치워 둔 채, 윤치우가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찾아왔다.
“은우야, 혹시 사이다 넣어야 하는데 이거로 넣었어?”
“응. 그거 맞아.”
“…….”
윤치우는 그제야 사건의 전말을 알겠다는 듯 손으로 이마를 탁 짚었다.
“은우야, 이거 식초야.”
“……?”
“요리할 때 맛 안 봤어?”
에르제는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거품이 보글보글 안 생기더라.”
“라하임 매니저님.”
에르제의 대답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라하임을 바라보았다.
“점수가 어떻게 되나요?”
“아, 그게…….”
라하임이 에르제의 눈치를 보다가, 이내 당당히 허리를 폈다.
“100점입니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가로로 세웠다.
“마이너스.”
“!”
그렇게 라하임의 판정 번복으로.
이번 라이브 콘텐츠 우승자 특전은 윤치우가 가져가게 되었다.
* * *
사실 말이 우승자 특전이지, 벌칙 제외자라고 보는 편이 맞겠다.
“……푸하하학!!”
태현우는 벌칙 의상을 입고 나오는 민주혁을 보고 눈물까지 흘리면서 미친 듯이 웃었다.
“웃지 마.”
민주혁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레이스를 만지작거렸다.
벌칙은 꼴찌부터 2등까지 각각 수위가 달랐는데.
꼴찌를 한 민주혁이 벌칙 의상으로 입은 것은 레이스가 치렁치렁한 예쁜 핑크색 옷이었다.
여성용으로 판매되는 것은 아니고, 멤버들이 일반 옷에다가 덧대서 만든 수제 의상이었다.
당연히 거기서 끝은 아니었고, 그는 추가적인 예쁜 액세서리까지 착용한 상태였다.
민주혁은 거의 죽을 것 같은 얼굴로 미션 대사를 읊었다.
“나는 이, 이…… 세계의 마왕. 내…… 아……! 후……. 미모로 지구를…… 아아악!!”
“응……. 노력했어, 노력했어.”
수치사할 것 같아서 미션 멘트는 거기까지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다음 수위의 벌칙자는 에르제.
마이너스 100점의 위엄을 과시하듯, 방 안 거울에서 자신을 비쳐 본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주혁이 입은 건 나라도 소화하기 힘들었겠지만, 이 정도는 뭐 괜찮네.’
생각보다 다행이었다. 라하임에 대한 분노가 아주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그렇게 거실로 나온 에르제가 입고 있는 옷은 수도승들이 입을 법한 옷이었는데.
주황색 도포는 상체를 대각선으로 따라 내려와 밑에서 치마처럼 넓어지는 형태였다.
당연히 그 안에는 옷을 입지 않은 상태였기에 주황색 도포 윗부분에는 에르제의 쇄골 부분까지 그대로 드러났다.
단순히 그 정도였다면 비주얼 센터로서 훌륭히 소화해 냈겠지만, 멤버들은 이미 그것까지도 예상을 한 상태.
머리를 민머리로 만들 수는 없었기 때문에, 멤버들은 반대로 남은 부분들을 어울리지 않도록 세팅했다.
선글라스와 화려한 손목시계, 플렉스 목걸이, 그리고 검은색 클러치백까지.
‘플렉수도승’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안 비서.”
에르제는 정해진 대사까지 읊으며, 굽신거리며 다가온 안단테에게 클러치백을 넘겼다.
그러고는 고고하게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하 씨, 미치겠다.”
태현우는 미션 수행까지 완벽히 해내는 에르제를 보며 박수를 쳐 주었다.
얼굴은 웃음기가 가득했지만, 속으로는 분명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난 무엇이든 소화할 수 있으니까.’
에르제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턱을 치켜들고, 발끝을 까딱거렸다.
그렇게 에르제의 차례가 끝이 나고, 그 뒤로 안단테와 태현우까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벌칙 3등상 안단테는 보기에도 더운 다람쥐 인형 탈을 쓰고 나왔는데, 얼굴 부분만 동그랗게 뚫려 있었다.
“찍, 찌…… 찍!”
솔직히 매우 귀여웠으므로 벌칙은 덥다는 것 말고는 딱히 없어 보였다.
태현우은 2등이었기에 벌칙이 매우 약했는데, 동그랗고 작은 선글라스와 화분을 드는 것으로 끝이었다.
네옹 변장이었는데, 음. 이쪽도 꽤나 멋있게 잘 어울렸으므로 패스.
결론적으로, 꼴찌답게 최대 피해자는 민주혁이었다.
“이걸…… 이걸 입고 뮤비를 봐야 한다는 거지.”
뮤비를 다 볼 때까지 그걸 입고 있어야 했으니 말이다.
‘은근 즐기는 것 같은데.’
에르제는 민주혁이 들었다면 버럭 화를 낼 생각을 하면서 옆에 놓여 있는 카메라를 슬쩍 바라보았다.
이번 벌칙은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까지 해서 공식 계정에 업로드 될 예정이었는데.
당연히 패션쇼처럼 등장하는 부분과 대사를 하는 것까지 모두 편집 이후 올라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편집이 들어간다는 것은 뭐다?
당연히 모카 엔터 직원들이 원본 영상을 보게 된다는 것.
벌써부터 모카 엔터 사옥에 들어갔을 때를 상상한 건지 민주혁의 표정이 사뭇 어두워 보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에르제는 그다지 벌칙으로 여기지 않고 있었으니……. 남 일이라고 치부하는 중이었다.
‘오, 거의 시간 딱 맞았네.’
에르제는 자정이 다가오는 것을 확인하고 발을 까딱거리는 것을 멈추었다.
다들 뮤직비디오를 보기 위해 거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탈을 써서 덩치가 커진 안단테만 조금 떨어져 앉은 상태였다.
잡담을 나누며 5분 정도 시간을 보낸 뒤, 곧 뮤직비디오가 재생이 되었다.
어느 대학교의 전경.
푸르른 나무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고, 몇몇 학생들이 강의를 들으러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정문에 도착하는 5명의 사람들.
토트윈이었다.
정문에 모여서 서로를 반갑게 맞이하던 그들은 등에 백팩을 멘 채 이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신난 발걸음, 들뜬 표정.
그런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화면 위로, 이번 디지털 싱글 제목이 떠올랐다.
‘프롤로그(Pro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