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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99화 (199/307)

제199화

199화

“그게 무슨…….”

에르제는 드물게 당황한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자세히 설명해 봐. 무슨 뜻인지.”

지서후는 마른세수를 한차례 하고는,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그의 입술은 이미 바짝 마른 상태였다.

“악마가 찾았다고 말한 건 악마들이 특정 인간에게 도달할 수 있는 통로를 말해. 악마와 인간, 그 둘 사이만 이어져 있는 통로.”

지서후는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서은우는 자신의 몸에 들어올 수 있는 통로를 찾아낸 거야. 그 그림자에 붙어 있던 악마를 이용해서.”

“그럼…… 언제든지 이 몸에 강림할 수 있다는 뜻이야?”

“아니, 아니. 그건 아닌데.”

지서후는 고개를 흔들고는 말을 이어 갔다.

“강림의 조건은 거래야. 아마 네가 몸을 빼앗긴 건 서은우의 영혼과 무언가 거래를 맺어서일 거야.”

“……아, 설마.”

그리고 에르제는 그 말에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기억나는 게 있어?”

“응.”

지서후의 질문에 에르제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아마도 하얀과 춤추는 것 때문에 그런 것 같아. 내가…… 다른 사람이 대신 춤춰 주었으면 하고 바랐거든.”

“그거네.”

지서후의 대답이 바로 돌아왔다.

“악마들은 교활해. 한번 그렇게 통로가 이어지고 나면, 그런 식으로 거래를 자기들 맘대로 정하고 이용하거든. 하지만 보통은 성공하기 어려운 방식인데.”

지서후가 가만히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네가 한 생각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어. 네가 네 스스로를 내려놓았다는 거.”

“……다른 사람이 대신 춰 줬으면 했다고 한 생각이 문제인 거야?”

“어. 스스로를 버리는 말은 강력한 거래의 조건이 되거든.”

지서후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맞는 것 같다고 재차 말했다.

“네 말대로라면 추측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어. 앞으로는 생각도 조심해서 해야 할 거다.”

“…….”

“아무튼 원래였다면, 하얀과의 무대가 더 이상 없을 때가 되어서야 돌아갔을 텐데. 라하임이 널 기절시키고 생명력을 빼앗아 둔 것 때문에 서은우의 영혼이 되돌아간 모양이야.”

“그 상태로는 더 이상 무대를 설 수 없으니까?”

“어. 하얀과의 무대가 거기서 종료됐다고 본 거지. 당연히 거래가 끝이 났으니 하계로 되돌아간 거고.”

“잠깐만.”

에르제는 눈썹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거래가 일단 성사되기는 했다는 건데, 대가는? 악마들은 거래에서 대가를 챙겨 가잖아.”

“……그건.”

지서후는 잠깐 생각에 빠져 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네 몸으로 무언가를 했다면, 그걸 대가로 받아 갔을 거야. 그리고 내 예상에는 에이리스를 만나서 한 이야기가 그 대가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럴 가능성이 제일 높겠네.”

에르제는 순순히 수긍했다.

“진작에 너한테 물어볼걸 그랬다.”

에르제는 지금까지 낭비한 시간을 생각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다가 문득 중요한 것을 빼먹었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용은 이해가 가는데 서은우가 대악마라고 한 건 대체 무슨 의미야?”

“아, 그게 남았지.”

지서후도 잠깐 잊고 있었는지, 얼굴을 확 구겼다.

“추측이기는 하지만, 거의 가능성이 90퍼센트 이상이라고 보면 돼. 내가 볼 때는 서은우가 대악마인 게 맞는 것 같아.”

“그러니까 도대체 왜…….”

지서후는 입술 끝을 짓눌렀다.

“그림자에 붙어 있던 악마. 놈을 그렇게 부려먹은 뒤에 죽이는 거, 최소한 고위 악마는 되어야 가능한 일이야.”

지서후가 손가락을 세웠다.

“근데, 그 악마가 이야기했다면서. 대놓고 대악마라고.”

“……그랬지.”

“생각해 봐. 대악마가 너와 연결된 통로를 찾으라고 했고, 그렇게 해서 들어온 게 서은우의 영혼이야.”

“……아니, 그래. 그건 이해했어.”

에르제는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그래도 말이 되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서은우는 인간이었어. 아무리 카테이아 대륙으로 넘어갔다고 하더라도 대악마가 되었다는 건 말이 안 돼.”

“…….”

지서후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예전에 형이 있었어.”

그렇게 시작된 지서후의 이야기는 확실히 늑대인간들만이 알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인간 외의 종족들 중에서 늑대인간과 같은 특수한 종족들은 악마들과 관련된 어떤 사명 하나를 지니고 있었다.

시공간의 축.

죽은 영혼들이 하계와 상계로 나눠지는 곳이었고, 늑대인간은 그곳에서 그들을 인도하는 제사장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름달이 뜨는 날, 우리의 신체는 늑대로 변할 수 있어. 지금 이 상태보다 외적으로는 훨씬 강해지는 거지.”

“그건 알지.”

이미 지서후와 며칠을 싸웠던 경험이 있었기에 에르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우리는 영혼들을 인도해. 죽기 전 각자의 생에 따라서 상계로 갈지, 하계로 갈지 나눠지지만.”

“그럼……. 악마들이 탄생하는 게 하계로 간 영혼들로 인해서 탄생하는 거야?”

“아니.”

지서후는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너도 악마가 태어나는 이유는 알잖아. 그들은 인간들의 부정적인 감정이 모여서 태어나. 다른 마족들과 비슷하게.”

“그럼 하계로 가는 영혼들은…….”

“먹잇감.”

지서후는 쓴웃음을 지었다.

“전생에 악했던 자들은 악마들에게 보양식이나 다름없어. 시공간의 축을 타고 하계로 넘어간 영혼들은 대악마에서부터 하급 악마까지 순차로 양을 보급 받아.”

“……먹이가 된다라.”

“어. 하지만, 하계로 가게 되는 경우가 하나 더 있어.”

에르제는 조금 전 언급되었던 지서후 형의 이야기인 모양이었다.

“살아 있는 채로 시공간의 축에 빨려 들어가는 거. 그리고 내 형이…… 영혼을 인도하다가 실수로…… 그곳에 빨려 들어갔고.”

지서후는 그 뒤로 형을 되찾기 위해서 안 해 본 일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 주었던 이야기들은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라고 했다.

‘……죽은 영혼들이 어디로 가는 건지 그때 알게 된 거구나.’

혈족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에르제도 어느 정도 그 상심을 공감했다.

자신의 혈족은 살아 있지만, 여태 그러는 이유도 모른 채 악의 끝으로 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으니까.

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지서후는 형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아무튼, 하려던 이야기는 그게 아니고. 그렇게 살아 있는 채로 시공간의 축에 들어간 이들은 상계나 하계 두 곳 중 하나에 무작위로 도착하게 돼. 상계는 잘 모르겠지만, 하계로 도착한 이들은…… 먹이조차 되지 못하지. 죽어 있는 영혼이 아니니까.”

“그러면?”

“알아서 생존해야 해. 악마들은 살아 있는 것을 죽이려 달려드니까.”

“그래야 먹이로 만들 수 있어서 그런 건가?”

“맞아. 그리고…… 내 형은 그 과정에서 죽었고.”

깊이 심호흡을 한 에르제는 손을 포갰다.

“네 말은, 서은우의 영혼이 시공간의 축에 빨려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네. 그리고 그곳에서 끝까지 생존해서 대악마가 되었다는 거고.”

“……어.”

“인간이, 그것도 영혼 상태인 서은우가 모든 악마들을 꺾고 대악마가 됐다고.”

에르제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쪽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까지는 인정하기 어려운데. 시공간의 축에 갇혔던 것은 맞겠지만, 글쎄, 만약 대악마가 된 거라면 뭔가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을 것 같아.”

“……하긴. 그 스토리는 개연성이 좀 떨어지긴 하지.”

지서후는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래도 하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과정이 어찌 됐든, 그래도 서은우가 대악마라는 건 맞아. 결과가 그러니까.”

“……그래.”

그것은 에르제도 동의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서은우가 정말 대악마가 되었고, 에이리스가 강림시키려는 대악마가 서은우라면.

어느 정도 퍼즐이 이해할 수 있게 맞춰진다고.

‘에이리스는 대악마를 강림시키는 게 목적이 아니야. 분명 녀석은 서은우가 대악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지.’

그렇다는 건 강림한 서은우를 이용해 자신을 없애려고 하는 거다.

로드의 힘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세상이 파괴되든 말든 안중에도 없을 테니까.’

에르제는 눈을 꼭 감은 채, 시공간의 축에 대해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죽은 자가 아닌 누군가가 그곳에 빨려 들어가게 되면, 실제로 시간과 공간이 뒤틀린다고 했다.

‘서은우는 거기서 과거로 간 거야.’

미치겠네.

지구에 온 이후, 그저 일족을 찾으려고 아이돌이 되었을 뿐인데.

어쩌다 보니, 이제는 대악마랑 싸우게 생겼다.

‘에이리스 하나만으로도 버거운데.’

심지어 둘이 같은 편이란다.

어쩌면 에이리스는 진즉에 서은우와 거래를 맺고, 서로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을 수도 있고.

‘서은우가 에이리스를 찾아간 이유도 그것 때문이겠네.’

이제야 서은우와 에이리스의 관계가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둘이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지 궁금했었는데.

“너한테 물어보길 잘한 것 같다.”

“…….”

그의 말에 지서후는 대답하지 않았다.

심각한 표정으로 운전석에 앉아서 운전대를 꽉 잡고 있을 뿐.

그러다가 머리를 쿵, 운전대에 박았다.

빵! 하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가 사라졌다.

지서후는 운전대에서 머리를 들어 올리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무언가 결심을 한 모양인지 표정이 한껏 진지했다.

“원래 내가 이곳에 처음 오게 되었을 때 말이야. 그냥 평범하게 살려고 했어. 인간들 사이에 섞여서 살아 보니까 살 만했고, 배우 일도 꽤 적성에 맞았거든.”

“……?”

“그런데, 이제는 다시 우두머리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뒤가 구린 건 참지를 못해서.”

지서후는 헛웃음을 흘렸다.

“뭔가 지구 종말까지 며칠 안 남은 기분이 드는데, 가만히 앉아서 당하는 성격은 아니라서 말이야. 도와줄게.”

지서후가 후, 하고 숨을 뱉어 냈다.

“나 혼자 말고 우리 종족 전체. 알아서 움직이기야 하겠지만, 부탁할 거 있으면 언제든지 하고.”

“……고마워.”

에르제는 고개를 숙였다.

“고맙기는. 내가 살려고 도와준다고 하는 거다.”

지서후는 에르제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든 생각인데, 시공간의 축 말이야.”

“응.”

“우리가 지구로 오게 된 거, 어쩌면 그걸 거쳐서 여기로 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

“아, 각자 온 시간이 다른 게…….”

“뭐 추측이긴 하지만.”

지서후는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상계에 있는 신들도 그렇게 유능한 건 아닌가 봐.”

둘의 비웃음 소리가 차 안을 짧게 울렸다.

“우리도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은 알아볼게. 어쩌면 여기서도 제사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부탁할게.”

“그래.”

둘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

에르제는 지서후의 어깨를 툭 치고는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조심해서 가라.”

“너도.”

에르제는 차 문을 닫고 멀리서 기다리고 있는 라하임에게 향했다.

그를 발견한 라하임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로드, 시간이 조금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그러고는 스마트폰을 꺼내 보여 주는데, 이윤에게서 온 전화가 벌써 5통을 넘어가고 있었다.

“일단 촬영이 지연되었다고 말했는데, 그…… 최근에 로드가 입원한 것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인지라…….”

“아, 잔소리.”

습관성 잔소리증후군이 이미 도진 것일지도 모른다.

에르제는 울상을 지으며 라하임에게 물었다.

“가는 길에 투명한 귀마개 같은 거 살 수 없을까?”

“윤소희 실장한테 물어볼까요?”

“……아니야.”

에르제는 축 처진 어깨로 재빠르게 차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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