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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98화 (198/307)

제198화

198화

“컷!!”

감독의 컷 뒤에는 오케이 사인이 붙지 않았다.

“뭐 하는 거야!!”

감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짜증 섞인 호통을 쳤다.

그 대상은 에르제가 아니라 애먼 곳이었다.

“와이어, 똑바로 못 당겨?!”

“아니, 그게…… 저희는 제대로 했는데…….”

와이어 조작을 맡은 스태프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제대로 했는데, 저렇게 높이 뛰는 게 말이 돼? 사람이?!”

“그…… 렇기는 한데…….”

감독의 말은 틀린 데가 없었다.

실제로 에르제는 와이어를 사용했다는 티가 날 정도로 너무 높이 뛰었으니까.

아마 거의 3m, 그러니까 서은우 등신대 정도의 높이로 뛰었던 듯싶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에서였을 뿐.

‘……음.’

에르제는 자기 때문에 혼나고 있는 와이어 팀을 보며 볼을 긁적였다.

‘내가 뛴 거라고 말을 하기가 좀 어렵겠군.’

다음번에 점프할 때는 힘을 좀 빼야지.

갑자기 뱀파이어 사냥꾼에게 쫓길 때가 떠올라서 그랬다.

‘흥분을 가라앉히자.’

에르제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도주 장면을 찍기 위해 돌아갈 때였다.

그냥, 거기서 끝났다면 죄책감이 덜 했을 텐데.

“다들 은우 씨 좀 본받으라고. 어?!”

감독은 말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갑자기 와이어가 당겨져서 놀랐을 텐데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착지 후 도주까지 완벽하게 연기를 이어 가잖아.”

처음 와이어 팀에 튀었던 불똥이 점점 번져 가기 시작했다.

“석구랑 손유진 씨! 놀란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일단 연기는 이어 갔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에이~, 감독님. 딱 봐도 NG였는데~.”

강석구가 손유진을 감싸며 능글맞게 웃었지만, 감독은 이번 기회에 기선을 좀 잡으려는 모양인지 여전히 싸늘한 목소리로 강석구에게 말했다.

“강석구, NG인지 아닌지는 감독인 내가 정하는 거야. 네가 먼저 나서서 판단하지 마.”

“……넵.”

틀린 말은 아니었던지라 강석구가 깨갱 하며 물러났다.

‘……으으으음.’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어정쩡한 자세로 서서 지켜보는 에르제는 아주 죽을 맛이었다.

실수한 건 자신인데, 어쩌다가 다른 사람들이 혼나고 있는 걸까.

“저것 봐. 어? 은우 씨는 NG 소리 듣자마자 재촬영하려고 다시 자리 잡고 있잖아.”

‘아니, 그건 내가 미안해서…….’

소리 없는 아우성도 아니고.

“다들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을 거라고 믿습니다. 정신 차려요.”

화를 가라앉힌 감독은 종이를 나팔처럼 말아 쥔 뒤 다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예,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여기저기서 잘못 없는 인간들이 사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르제는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그런 그들을 두리번거리며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지서후와 시선이 딱 마주쳤는데.

지서후는 거의 웃음보가 터지기 직전이었다.

연기하는 거 지켜보겠다더니 이럴 때는 차에 좀 가 있지.

미안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큼.”

헛기침을 한 에르제가 눈빛으로 경고를 보내자, 지서후는 결국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웃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어딘가에 있을 대나무 숲을 찾으러 떠난 모양이었다.

‘후우.’

“자, 스탠바이.”

곧 감독의 큐 사인이 나오고, 다시 촬영이 재개되었다.

* * *

그 뒤 이어진 촬영은 무사히 끝이 났다.

도주하는 장면과, 범인의 몸에 상처가 남는 장면을 찍은 뒤에.

이제 얼굴을 드러낸 채 연기하는 부분을 찍었는데, 다행히 NG는 거의 나지 않고 잘 마무리가 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 많았어요~.”

촬영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끝이 났고, 스태프들과 배우들은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어~! 은우 씨! 오늘 아주 프로페셔널하고 좋았어.”

감독은 특별히 준비해 온 거라면서 종이컵 하나를 주고 마무리를 하기 위해 떠났다.

‘유자차인가.’

한 모금 마시자, 새콤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들어왔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로드.”

“너도 자리 지키느라 고생 많았어.”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습니다.”

“그건 그렇지.”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컵을 라하임에게 내밀었다.

“너 마셔라.”

“아, 감사합니다.”

라하임이 유자차를 받아 들고 종이컵 안을 바라보았다.

액체는 하나도 없었고, 형체를 알 수 없는 고체만 남아 있었다.

“로드. 그, 다 마신…….”

“그렇게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그거 마시면서 조금 쉬고 있어. 나는 지서후랑 할 얘기가 있으니까.”

“……예.”

라하임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고, 에르제는 피식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하나둘 떠나는 차들 사이에 검은색 밴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지서후의 차였는데, 그는 그 안에 있는 모양이었다.

‘촬영 막바지부터 안 보이더니, 저 안에 있었나.’

그렇게 생각하며, 에르제는 조수석 문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잠가 두지는 않았는지, 조수석 문이 달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야, 넌 누가 올 줄 알고 문을…….”

“크어어어어어. 푸우우우.”

에르제는 말을 하다 말고, 운전석에 누워 있는 지서후를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거의 뒷좌석에 닿을 정도로 의자를 젖히고 녀석은 요란하게 코를 골면서 자고 있었다.

“귀청 떨어지겠네.”

거의 탱크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크어어어!!”

“작작해.”

에르제는 뒷좌석에 놓여 있는 쿠션을 집어다가, 그대로 지서후의 얼굴에 내리쳤다.

그러나 이 정도의 충격으로는 잠에서 깨지도 않는 듯했다.

계속해서 코를 골고 자는 모습에 에르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휴.”

그래도 이럴 때 특효약이 있어서 다행이다.

에르제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개 짖는 소리를 무튜브에 검색했다.

최상단에 개 짖는 소리 모음집이 바로 보였다.

에르제는 스마트폰을 시트 위에 놓고 영상을 재생했다. 그리고 그대로 문을 닫았다.

― 왈! 으르르르! 컹컹!

온갖 종류의 개 짖는 소리가 지서후의 차 안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코 고는 소리와 함께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개 짖는 소리의 현장이었다.

‘10, 9, 8, 7…….’

에르제는 정확한 체내 시계로 10초를 셌다.

‘3, 2, 1.’

그리고 0초가 되는 순간.

“아아아악!!”

비명 소리와 함께 지서후가 벌떡 일어났다.

“어떤 미친놈이!!”

그러고는 황급히 소리의 발원지를 찾았다.

시트 위에 놓인 스마트폰을 발견한 지서후는 곧바로 강한 악력으로 스마트폰을 부숴 버렸다.

‘누가 늑대인간 아니랄까 봐 그걸 힘으로 부수고 있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에르제는 그제야 조수석 문을 열고 얼굴을 비쳤다.

“……네놈 짓이냐?”

“응.”

태연한 에르제의 표정에 지서후는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에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야~, 미안하다. 네 스마트폰인 줄도 모르고 부숴 버렸네? 아니~ 내가 개 짖는 소리는 진짜 참을 수가 없어서. 미안하다. 내 맘 알지?”

미안하다고 하는데, 전혀 미안한 투가 느껴지지 않는 사과였다.

역시 배우인가.

에르제가 그렇게 생각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아. 내 폰 아니야.”

“……뭐야, 라하임 거야?”

“아니?”

에르제는 턱으로 지서후를 가리켰다.

지서후가 미간을 좁혔다.

“내 거라고?”

그러고는 조각난 잔해들을 바라보았다.

“내 거, 잠금 걸려 있었을 텐데?”

“지문 인식이더라.”

“야……. 이…….”

“미안해. 네가 다짜고짜 스마트폰을 부술 줄은 몰랐네. 그런 줄 알았으면 공기계로 할걸.”

에르제는 똑같이 미안하지 않은 투로 사과를 하고는 조수석에 다시 올라탔다.

“이…… 용의주도하고 악독한 박쥐 새끼.”

지서후가 양손에 스마트폰의 잔해를 주워 담으며 중얼거렸다.

“……내 사진들……. 소중한 추억들이 담겨 있는데…….”

“클라리넷 백업 안 해 놨어? 요즘 그건 기본으로 해야 하는 건데.”

“……뒷광고 받았냐.”

지서후가 허탈한 표정으로 대꾸하고는,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등받이를 당겨 앉았다.

“뭐, 그래서 그건 됐고.”

그러고는 머리를 뒤에 기댄 채 고개만 돌려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오늘 뭐 물어볼 거 있다면서?”

“응. 나보다는 네가. 아니, 너희 종족이 더 잘 알지 않을까 싶어서.”

“뭔데? 코톡으로 물어보기는 좀 그런 거였어?”

“보여 줄 것도 있었거든.”

“……별 얘기 아니기만 해 봐. 내 폰의 복수를 바로 집행할 거니까.”

사나운 지서후의 말투에 에르제는 가벼운 미소로 응수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너, 악마들에 대해서 잘 알아?”

“악마들?”

지서후는 고개를 갸웃하며 이마를 찌푸렸다.

“갑자기 악마는 왜? 설마 놈들이 지구에도 기웃거렸어?”

“응. 근데 좀 이상한 게 지구의 악마들이 아니야. 카테이아 대륙의 악마들인 것 같더라고.”

“응? 아아.”

지서후는 손가락을 허공에 쿡쿡 찍다가 이내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걔네들은 그런 구분이 없어.”

“……무슨 말이야?”

“뭐 대충 예를 들자면, 세상은 상계, 중간계, 하계로 나누어져 있어.”

지서후는 그 말을 시작으로 간단한 설명을 이어 갔다.

각각의 계는 독립된 공간이며, 또한 중간계는 여러 차원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이다.

다만 반대로 상계와 하계는 모든 차원이 통합되었는데, 그런 일을 벌인 게 흔히 ‘신’이나 ‘대악마’라 불리는 것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계는 독립된 공간이라 했지? 상계, 중간계, 하계는 서로 간섭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 있어. 그래서 하계에 사는 악마들이 주로 사용하는 게 거래를 이용한 강림이고.”

“……그런 건가.”

그래서 상계의 신이 계속 두문불출하고 있는 건가.

어쩌면 악마들이 거래라는 것을 이용하듯, 상계도 어떠한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뭐, 그래서 카테이아 대륙에서 본 놈들이 여기서도 보이는 게 이상한 건 아니야.”

지서후는 간단히 설명을 마치고는 이내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넌 이거 몰랐어? 보통 종족 내에 전해져 오는 그런 역사책 같은 것들 있잖아.”

“……읽어 보기도 전에 에이리스가 가지고 나갔거든. 못 가지고 나간 건 죄다 태워 버렸고.”

“아!”

지서후가 씁쓸한 표정을 짓자, 에르제는 주머니에서 구겨진 무언가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문휘영의 그림자에서 잘라 냈던 악마의 잔해였다.

“문휘영에게 붙어 있던 악마야.”

그렇게 말을 꺼낸 에르제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문휘영과 거래를 맺은 악마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악마가 에르제를 보고 했던 찾았다는 말,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은우의 영혼에게 몸을 빼앗겼던 일까지.

“……그래서 서은우의 영혼이 도대체 이것들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건지, 도대체 이 몸으로 어떻게 들어왔던 건지 알고 있나 해서.”

“…….”

지서후는 곧바로 입을 열지는 않았다.

꽤 오랜 시간, 생각에 빠져 있던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말도 안 돼. 그럼 서은우가…….”

그러고는 한동안 영문을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렸다.

“왜, 뭔데?”

에르제가 재촉하자, 지서후가 혼란스러운 눈동자로 바라봤다.

“아무래도 서은우가 대악마인 것 같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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