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88화 (188/307)

제188화

188화

― 이번에 하얀이랑 같이한 곡 개좋다. ㅠㅠ 둘 다 분위기 찰떡이야.

― 서은우, 그 눈빛 뭐냐고!!

― 안 본 눈 삽니다. ㅠ 무대 첨 봤을 때의 충격을 다시 느껴 보고 싶다.

┖ ㄹㅇ ㅋㅋ

― 그런데, 서은우 노래랑 춤……. 왜 전 같은 느낌이 안 들지?

┖ 오, 나도 그 생각함.

┖ 노래랑 춤 둘 다 원래 안 하던 거라서 그런 거 아님?

┖ ㅇㅈ 원래 매번 하이 찍으면서 고음 위주로 노래하다가 이번에 저음으로 툭툭 뱉는 노래라서 다르게 느껴질 수도. 갠적으로는 취향에 맞음.

― 솔직히 춤이 전처럼 쫄깃쫄깃하지는 않네. ㅠㅠ

댓글을 살펴보던 서은우는 얼굴을 구기고 스마트폰 화면을 꺼 버렸다.

좋은 얘기들도 있었지만, 역시나 그보다는 다른 댓글들이 신경 쓰였다.

‘원래대로였으면 어떻게 됐을지도 모르면서.’

이게 원래 난데.

주먹을 꾹 쥔 서은우는 이내 잡생각을 털어 냈다.

오늘은 매우 중요한 자리를 마련해 두었으니 말이다.

“다 왔어.”

서은우는 뒤를 돌아보며 그렇게 말했다.

“생일 선물로 밥 사 주려고?”

민주혁은 건물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런 거면 멤버들 다 불러서 같이 먹지.”

“오늘 네게만 인사시켜 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그래.”

“나한테만?”

서은우는 의아해하는 민주혁을 이끌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고급 한정식 식당이었는데, 이곳도 프라이빗 룸이 마련되어 있는 곳이었다.

며칠 전에 예약을 해 두었기에 서은우라는 이름을 대자 종업원이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일부러 먼저 도착하려고 했기에 서은우는 민주혁과 단둘이 방 안에 앉았다.

자신의 옆에 앉는 서은우를 보며 민주혁이 미간을 좁혔다.

“뭐야. 왜 여기에 앉아?”

“조금 이따가 올 사람이 있어서.”

“…….”

민주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고급스러운 방 내부의 장식들, 그리고 메뉴판에 보이는 음식 옆에는 ‘0’이 많았다.

“너, 설마…….”

순간적으로 민주혁의 머릿속에 아이돌로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우르르 떠올랐다.

“최근에 드라마랑 피처링, 예능, 광고……. 그런 것들 다…….”

“무슨 소리야, 갑자기.”

서은우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대답하자, 민주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난 안 해. 아니, 너도 하지 마. 미쳤…….”

“먼저 와 계셨습니까?”

하지만, 방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민주혁의 몸이 그대로 멈췄다.

“…….”

서은우의 팔을 잡고 있던 민주혁의 손아귀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아파.”

서은우가 민주혁의 손등을 치자, 그는 그제야 손을 놓아주었다.

“어, 미안.”

애써 태연한 척 민주혁은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와 아들.

이면의 사정은 그랬지만, 아직까지는 기업 후원을 해 주는 회장님과 아이돌이 만나는 자리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자네는 밖에서 기다리게.”

“알겠습니다. 회장님.”

안병인은 비서를 밖에 세워 둔 뒤, 두 사람의 앞자리에 천천히 앉았다.

쓴웃음을 지은 그는 목이 타는지 물을 따라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서은우.’

이를 지켜보던 민주혁이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서은우에게 속삭였다.

‘왜?’

‘안병인 회장님은 여기 왜 부른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지 민주혁이 그렇게 물어왔다.

하긴……. 아무리 토트윈을 후원하고 있는 기업의 회장이라고 해도 이렇게 그들을 만날 이유가 없었다.

그것도 토트윈 전원이 아니라, 민주혁과 서은우 둘만 만나는 자리면 더더욱.

“왜냐고?”

그러나 서은우는 혼란스러워하는 민주혁의 시선을 마주하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

그의 시선은 민주혁에게 향해 있었으나, 꺼낸 말은 안병인을 향해서였다.

“할 얘기가 있잖아.”

“무슨…….”

민주혁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나 서은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주혁이는 이미 알고 있었고, 회장님은 안 지 얼마 안 됐고.”

“……?”

“뭐, 이 이상 제가 참견하는 건 보기에 그리 좋지 않겠죠?”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공손하게 대답한 안병인은 다시 물을 들이켠 뒤 입을 열었다.

“덕분에 이렇게 마주할 자격이라도 생기지 않았습니까.”

“예, 뭐 그렇죠.”

“……소중한 기회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병인이 먼저 묵례를 했고, 서은우도 따라서 고개를 살짝 숙여 주었다.

“그럼, 이만.”

말을 남긴 서은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민주혁이 ‘왜 우리 둘만 남겨 놔?’라는 표정으로 서은우를 바라보았다.

“…….”

그런 그를 무심히 바라보던 서은우는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살짝 털어 냈다.

“안병인 회장님, 네 아버지잖아.”

“……!”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나던 민주혁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걸, 네가…… 어떻게?”

“그건 중요하지 않고.”

손을 내저은 서은우는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회장님, 그동안 너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셨어. 적어도 네 아버지로서. 그러니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잖아.”

“……하.”

민주혁은 서은우의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자리에 서서 바닥을 바라본 채, 그는 주먹을 꾹 쥐었다.

이내 고개를 든 그는 짜증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로 서은우를 보고 있었다.

“네가 뭔데?”

민주혁이 저벅저벅 다가와서, 서은우를 밀쳤다.

“비켜.”

“……싫어.”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야. 그 빌어먹을 뱀파이어가 아니라.

겨우 뒷말을 삼킨 서은우는 꿋꿋하게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민주혁은 거친 호흡을 뱉어 내며 냉소적인 눈빛을 띠었다.

“네가 뭔데 오지랖이야?”

“내가 너보다 진실을 먼저 알게 되었으니까.”

“진실? 아버지가 아들을 버리고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거? 그런 막장 드라마 같은 일에 무슨 진실이 필요해?”

“응. 필요해.”

서은우는 민주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뱀파리스에 의해 안병인이 변하게 되었다는 것은 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적당한 변명거리는 존재했다.

“안병인 회장, 아니 네 아버지. 기억상실이셨어.”

“……미치겠네.”

머리를 쥐어뜯다시피 헝클어뜨리던 민주혁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진짜 막장 드라마네?”

“……믿기 어려운 건 알아. 그래서 이런 자리를 만든 거야. 직접 이야기 들어 보고, 믿을지 말지 결정하라고.”

“…….”

결국 민주혁은 꾹 쥐고 있던 주먹의 힘을 풀었다.

“너.”

그러고는 힘없이 입을 열었다.

“……아니다. 이제 와서 네가 그런 사실들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겠지.”

민주혁이 안병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네 말대로 이야기를 들어 보면 나올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민주혁이 다시 자리에 털썩 앉자, 서은우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후……. 생각보다 반응이 격하네.’

그래도 지금쯤이면 감정이 어느 정도 희석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섣부르게 판단했나.

‘그래도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게다가 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일이 성사가 된다면. 민주혁에게는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고.

천천히 고개를 젓던 서은우는 이내 방문을 닫고 나왔다.

이제 둘이 알아서 남은 회포를 잘 풀겠지.

관계가 이전보다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안병인은 더 이상 뱀파리스의 하수인으로 살고 있지 않으니까.

탁―.

미닫이문을 완전히 닫자, 문 앞에 서 있던 비서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수고하세요.”

서은우도 살짝 고개를 숙여 준 뒤에, 준비해 왔던 모자를 푹 눌러썼다.

검은색 마스크까지 쓰고 밖으로 나오니, 선선한 공기가 그를 반겼다.

“스읍, 후우.”

몇 번을 맡아도, 서울의 공기는 질리지가 않는다.

‘내내 유황불 냄새만 맡아서 그런가.’

피식 웃은 그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발걸음을 옮겼다.

민주혁과 안병인의 대화가 그리 빨리 끝나지는 않을 테니, 그동안 시내 구경이나 할까 싶어서였다.

‘겸사겸사 생각도 정리하고.’

원래는 그 뱀파이어의 계획을 알아내고, 유리하게 상황을 이끌어 가려고 했는데.

녀석이 의식을 잃던 와중에도 기억에 술법을 걸어 둔 모양이었다.

뱀파이어와 그 일족들, 구상하던 계획 등등. 중요하다 싶은 기억들은 죄다 락이 걸려 있었으니 말이다.

‘안병인과 민주혁, 이런 기억들은 남겨 놓았으면서.’

“에휴.”

출 수 없는 춤을 대신 쳐 줘, 민주혁의 일을 대신 처리해 줘.

아주 그냥 심부름꾼 노릇이 따로 없었다.

‘뭐, 춤이야…… 거래의 조건으로 만들어서 그 틈을 파고든 것이니 그렇다고 쳐도.’

민주혁의 일은 그냥 스스로 벌인 일이라 할 말이 없긴 하다.

‘자업자득이네.’

혀를 찬 서은우는 잡생각을 떨쳐 내고 정처 없이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그가 거래를 빌미로 이곳으로 왔으니 그에 대한 계획을 짜야 했다.

서은우의 발이 타박타박, 바닥과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이 몸을 없앨 수는 없어.’

스스로를 죽이는 기분이라 꺼림칙한 것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에르제의 영혼이 또 어떤 몸에 들어갈지 모른다.

‘굳이 불확실성을 늘릴 이유는 없어.’

다만 에르제의 기억을 막아 놓아 읽을 수가 없으니, 당초 계획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고민해야 했다.

서은우는 걸음을 멈추고, 근처에 있던 벤치에 가서 앉았다.

‘우선 에이리스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제일 좋겠지.’

에이리스와 만나는 것은, 제이에게 연락을 해서 부탁하면 될 터.

고개를 끄덕거린 그가 스마트폰을 꺼내 들 때였다.

그보다 먼저 다른 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세리나.”

일족들과 관련된 일은 최대한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결론을 내린 서은우는, ‘회의 중입니다. 다음에 전화 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제이의 번호를 찾아 누르려고 할 때, 세리나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 바쁘신 듯하니, 메시지로 연락드립니다. ]

[ 1장로와 대마녀가 은밀히 만나려는 것 같습니다. 뱀파리스 내에 숨겨 둔 라하임 님의 정보원이 알아낸 정보이니 확실한 듯하고요. ]

“으음.”

메시지로 이렇게 와 버리면, 답장을 하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

언제고 해야 할 답장이었기에 서은우는 한숨을 내쉬며 최대한 무난한 답장을 보냈다.

[ 그래? 알았어. 계속 확인해 줘. ]

세리나의 답장은 약간의 텀을 두고 도착했다.

[ 예, 로드. ]

무사히 넘어갔나.

어깨를 으쓱한 서은우는 이내 제이의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한참 신호음이 가다가 이내 받지 않고 끊어졌다.

“……?”

뭐 하고 있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제이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 회의 중입니다. 다음에 전화 주세요. ]

“…….”

씁쓸한 표정을 지은 서은우는 자판을 눌러 메시지를 작성했다.

[ 에이리스와 만나고 싶으니 자리를 마련해 주세요. 도플갱어, 라는 말을 전하면 뭔지 알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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