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1화
181화
― 역시 믿고 보는 강석구, 손유진. ㅠㅠ 형사 연기 뻔한데도 엄청 자연스럽네.
― 문휘영 ㅋㅋㅋㅋ ㄹㅇ 구박받는 동생 재질.
― 초반 스토리는 약간 뻔한 느낌인데, 그래도 작가님 드라마니까 대반전 기다려 본다.
― 범인 사실 강석구였던 것임.
┖ 헐, 나도 이 생각 했는데.
1화, 2화 모두 방영이 되고 난 이후.
대부분의 시청자 평가는 ‘그냥저냥 괜찮았다’, ‘다들 연기 잘한다’ 정도였다.
기본적으로 드라마의 1, 2화는 흥미를 끄는 자극적인 요소 조금과,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는 기본적인 세계관 설명이 필요했던 만큼.
이 정도면 무난한 스타트였다고 봐도 좋았다.
“곧 무튜브에 비하인드 영상도 올라간다고 하더라.”
“그래?”
“엉. 그리고 거 뭐냐, 리뷰 무튜버한테도 리뷰 부탁했다던데.”
“아! 나 그거 뭔지 알아.”
문휘영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도 가끔 무튜브 볼 때 그런 리뷰 떠서 보는데, 그거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찾아보게 되더라고. 근데 그거 잘하는 사람한테 맡겨야 할 텐데.”
“알아서 잘하겠지.”
보통 한 곳에서 리뷰를 하고 나면, 다른 리뷰 무튜버들도 따라서 리뷰를 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요즘 시대에는 가장 훌륭한 홍보 수단이 되어 줄 터였다.
강석구는 문휘영의 술잔에 술을 따라 주며, 다른 화제로 전환했다.
저번에 대본 리딩 이후에 있었던 문휘영의 태도 때문이었다.
“야, 그런데 너 아이돌이 연기하는 거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았잖아.”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니, 그 뭐냐. 네가 SNS에다가 그런 미친 짓까지 할 정도로 서은우를 왜 싫어하나 해서 물어보는 거지.”
“아, 그 X끼.”
문휘영이 똥 씹은 표정을 지으며 안주를 집어 먹었다.
“그런 게 있어. 형은 절대 알 수 없는 그런 거.”
“뭔데, 인마?”
문휘영이 입을 다물자, 옆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던 다른 배우가 낄낄대며 대신 입을 열었다.
그는 이번 드라마에서 강력반 팀장 역할을 맡은 진병우였는데, 강석구와 문휘영보다 한참 선배였다.
“얘, 그 서은우 때문에 배역 밀린 거잖아. 원래 첫 오디션 보러 왔을 때는 강현규 역할로 왔거든.”
“아아.”
강석구가 안타깝다는 듯이 문휘영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손바닥을 자신의 얼굴 위로 휙휙 움직였다.
“이거 때문에?”
“그렇지 뭐.”
“선배님들 너무하시네.”
문휘영이 얼굴을 일그러뜨리자, 진병우가 다시금 낄낄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나도 처음에는 말이야. 아니, 휘영이 정도면 배우 중에서도 괜찮은 편인데, 갑자기 캐스팅 디렉터 말 한마디에 배역이 바뀌어, 라고 생각했거든.”
진병우가 그의 어깨에 완전히 손을 올렸다.
“어우, 근데 리딩 할 때 보니까 서은우가 인물이 장난 아니기는 하더라. 걔는 아이돌이 아니라 배우라고 해도 되겠던데? 그리고 솔직히 휘영이는 살인범 역할 하기에는 너무 착하게 생기긴 했어. 순둥순둥~하니.”
“선배님!”
문휘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노려보자, 진병우가 “어이쿠!”라고 말하며 손을 뗐다.
이번 드라마를 같이하기 전부터 셋은 친했기에 장난이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문휘영은 외모 때문에 하고 싶은 배역에서 밀렸다는 사실이 화가 나는 것이었다.
“배우는요, 마스크가 아니라 연기로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거 아닙니까? 에이, 진짜. 어디서 아이돌 하나 데려와서는…….”
점점 중얼거림으로 바뀌는 문휘영의 말을 들으며.
강석구는 진병우에게 은근슬쩍 눈치를 주었다.
‘형, 핸드폰 핸드폰.’
‘어어.’
눈짓을 주고받은 뒤, 진병우가 문휘영의 스마트폰을 몰래 숨겼다.
지난번처럼 술에 취해서 사고 칠까 싶어서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럴 상황조차 만들지 않게 하려고, 둘은 문휘영에게 계속해서 술을 권했다.
“그럼~ 휘영이가 최고지. 이번에 드라마에서 네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란 말이야.”
“그래야죠. 물론, 물론 그래야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술을 들이켜던 문휘영은 결국 고주망태가 되어 머리를 테이블에 박고 말았다.
술집이 아니라 강석구의 집에서 조촐한 술자리를 가진 것이었기에 그는 문휘영을 둘러업고 손님방 침대에 눕혀 주었다.
“얘가 보기보다 엄청 무겁네.”
나름 열심히 운동해서 다져진 몸이었는데, 운동 기구보다 문휘영의 중량이 더 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도 술 취해서 그런가.”
고개를 갸웃한 강석구는 불을 꺼 주고 방문을 닫고 나갔다.
그리고 완전히 뻗어서 잠에 빠진 문휘영의 몸에서 어둠에서는 보일 리 없는 그림자가 살짝 움직였다.
* * *
정규 앨범의 활동기도 슬슬 마무리가 되어 갈 무렵.
장 대표는 에르제에게 새로운 제안을 들고 왔다.
“은우야, 너 피처링 해 볼 생각 없냐?”
“피처링이요?”
“어어. 그 다른 사람 곡에 같이 참여해서 노래 불러 주는 거 있잖아.”
그렇게 말한 장 대표는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은우, 너 ‘루비다이아’라는 그룹 알아?”
“루비다이아……. 몰라요.”
“요즘 핫한 데다 활동기도 겹쳤으니까 방송국에서 꽤 마주쳤을 텐데.”
“토트윈보다 선배예요?”
“너희보다 데뷔 2년 빨라.”
“음.”
“이거 봐도 기억 안 나?”
장 대표가 루비다이아를 검색해서 보여 주었으나, 에르제는 고개를 갸웃했다.
“네.”
“기억력도 좋은 녀석이 이런 건 또 기억을 못 하네.”
“원래 하나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다른 기억 하나를 버려야 하는 법이에요.”
“그……렇구나.”
기억의 비밀을 알게 된 장 대표가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사이, 에르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여기 그룹 노래에 제가 피처링을 하는 거예요?”
“아니. 거기서 ‘하얀’이라는 멤버가 솔로곡을 준비 중이라 하더라고. 거기에 피처링 해 달라고 부탁이 들어와서.”
장 대표가 얼떨결에 대답을 해 주고는, 에르제를 설득하기 위해 말을 이어 갔다.
“일단 나는 괜찮은 기회 같은데, 네 의견도 들어 봐야 하니까. 그런데 ‘하얀’이면 화제성도 있고, 노래 실력도 좋아서 너랑 같이 무대에 서면 진짜 기깔날 것 같거든? 어때?”
그의 말에 에르제는 잠시 고민했다.
솔직히 요즘 에르제는 스케줄이 굉장히 빡빡했다.
알바 몬스터 시즌 2와 드라마 ‘1년(One Year)’ 촬영, 그리고 뱀파이어 로드로서 신경 써야 하는 많은 것들.
거의 쉬는 날 없이 움직이는 상태였다.
‘사실 일족과 관련된 일도, 라하임에게 꽤 많이 맡기고 있는 상황인데…….’
그럼 다른 멤버들이 하면 안 되는 일인가?
“다른 멤버들은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에르제가 장 대표에게 물었으나.
“일단 거기서 1차적으로 원하는 게 보컬 실력인데, 거기에 부합하는 게 너랑 현우 그리고 단테 정도거든? 그런데 지금 가능한 게 너밖에 없어.”
태현우는 모자이크 싱어에 출연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컬과 관련된 스케줄이 겹치면 부담스러워할 가능성이 높았고.
안단테는 이제 메인 보컬 자리를 노리기보다는 완전히 작사 작곡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그래서 거 뭐냐, 프로듀서랑 가수랑 같이 협업하는 프로그램. 그거 나가겠다고 엄청 열심히 준비하고 있거든.”
장 대표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너 아니면 할 사람이 없어. 애초에 그쪽에서 너를 콕 집기도 했고.”
“저를요?”
“응. 그래서 네가 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냥 다른 아이돌을 알아보라고 해야지. 제이나 그런 애들이 한다고 하지 않을까 싶은데.”
장 대표는 경쟁심을 자극하려고 일부러 제이를 언급하는 것 같았지만, 지금의 에르제는 제이가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몰라도, 지금은 제이와 협력 관계를 구축해 둔 상태였으니 말이다.
제이가 다른 마음을 품지 않는다면, 녀석이 피처링을 하든 말든 크게 상관은 없었다.
‘아마 활동기도 슬슬 끝나 가니까 음악 쪽으로 계속 활동을 이어 가려고 하는 것 같은데…….’
에르제는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장 대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장 대표는 내가 뱀파이어 일로 바쁜 건 모르니까.’
그래서 스케줄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겠지.
‘어떻게 할까.’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차에 장 대표가 손가락을 튕겼다.
“아, 맞아.”
“?”
책상 서랍에서 무언가를 뒤적거리던 그는 종이 하나를 꺼내서 그에게 내밀었다.
“그쪽에서 네 팬이라고 이거 전해 달라고 하더라. 아, 그쪽은 ‘하얀’을 말하는 거야.”
“아, 네.”
내 팬이라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종이를 받아 든 에르제는 그곳에 적혀 있는 글을 읽었다.
“좀 뜬금없는 내용이 적혀 있어서 뭔가 싶기는 했는데, 그래도 보여 주긴 해야 할 것 같아서.”
그곳에 적힌 글은 장 대표의 말대로 뜬금없는 내용이었다.
― 체스를 두면 킹과 퀸
두 개가 제일 중요한 거 아님?
뭔 소리야, 이게.
에르제가 미간을 좁히며 다시 한번 읽었다.
그러나 여전히 의미 불명의 글이었다.
“저랑 체스를 두고 싶은 걸까요?”
“몰라.”
이상한 사람이다. 그렇게 판단한 에르제가 종이를 책상 위에 다시 내려놓았을 때였다.
장 대표가 그것을 가져가기 위해 종이 위를 손바닥으로 덮었는데.
그 덕분에 신경 쓰이는 단어가 보인 탓이었다.
“잠깐만요.”
“어? 왜?”
에르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손바닥 옆으로 삐져나와 있는 두 글자를 세로로 읽었다.
‘퀸, 님.’
순간적으로 장미영의 얼굴이 떠올라서, 에르제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하얀’이라는 루비다이아의 멤버를 만나면, 어떻게 될지 눈에 선했다.
에르제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장 대표에게 말했다.
“안 해요. 무조건 절대 하지 않겠어요.”
* * *
굉장히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생각했는데, 저쪽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거절을 하고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에르제는 현재.
“안녕하세요!”
“…….”
루비다이아의 멤버 하얀과 그녀의 매니저를 마주하고 있었다.
에르제가 거절했다는 말을 듣고, 설득을 위해 직접 찾아왔다고 한다.
자신을 서큐버스 퀸으로 알고 있다면, 거절을 할 때 순순히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곤란하네.’
거절을 거절하고 이렇게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자신을 보며 싱글벙글 웃고 있는 하얀을 보며, 에르제는 어색하게 웃어 주었다.
“미영이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랬구나.”
“네!”
사건의 전말도 알게 되었다.
장미영과 친한 서큐버스들은 죄다 자신을 서큐버스 퀸으로 알고 있을 거라는 사실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팬이에요!”
“아, 저도요.”
속사정도 모르고, 하얀의 매니저와 이윤은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같이 노래를 할 수 있는 영광을 제게 주세요! 부탁 드려요! 길이길이 가보로 남기겠어요!”
하얀의 과한 태도에 그녀 매니저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이럴 줄 알았다.’
그리고 대충 예상하고 있던 에르제가 눈을 꾹 감았다.
편지로 암호를 보내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어쩔 수 없나.’
결국 에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고한 자세로 하얀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저쪽이 과했으니 이쪽도 과해야 했다.
“함께할 수 있는 영광을 주셔서 감사드려요. 저도 꼭 하얀 님과 같이 노래를 해 보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