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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74화 (174/307)
  • 제174화

    174화

    “살려…… 줬으니까.”

    김지원의 대답이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나왔다.

    “누가? 지서후가?”

    “지서후가 누군데?”

    이 상황에서 배우의 이름이 나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는지, 김지원은 이마를 찌푸렸다.

    ‘지서후는 아니고.’

    하긴 지서후였다면 자신이 살렸다고 이야기했겠지. 죽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럼 누가 널 살렸다는 거야?”

    에르제가 재차 묻자, 김지원이 모기만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이가.”

    “제이? 제이가 널 살려 줬다고?”

    김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르제는 김지원의 앞에 무릎을 굽히고 쪼그려 앉았다.

    “널 죽이려고 쫓아왔던 게 제이 아니야?”

    “맞아.”

    김지원이 입술을 아래로 꾹 눌렀다.

    “날 이용하고 뱀파리스로 만든 것도, 마지막에 날 죽여서…… 힘을 가져가려고 한 것도 다 제이가 맞아. 그런데.”

    “그런데?”

    “왜 날 살려 줬는지는 모르겠어. 마지막에 마음이 바뀐 건지…….”

    “후우, 뜬금없는 대답이라 오히려 신뢰가 가네.”

    오히려 그럴듯한 말이었다면, 더 믿기 어려웠을 듯싶었다.

    그러나 에르제는 로드의 힘을 끌어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부터 그냥 이렇게 할 걸 그랬어.”

    “아, 잠깐만……!”

    또?! 김지원의 눈동자가 그렇게 말하는 듯했지만, 에르제의 손바닥이 그의 이마에 닿는 게 더 빨랐다.

    덥석―.

    곧 에르제가 눈을 감고, 그의 기억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김지원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하악, 하악.”

    거친 숨을 내쉬는 김지원을 내려다보며, 에르제가 손바닥을 털었다.

    “거짓말은 아니네.”

    “내가……. 하악, 널 만나려고 찾고 있었는데……. 후우, 학!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지.”

    “날 찾고 있었다는 것도 거짓은 아니고.”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물었다.

    “날 찾고자 한 이유는?”

    기억을 읽는 것은 단어 그대로 기억만을 읽을 뿐, 기억 속 인물의 감정이나 속마음까지 알아내지는 못한다.

    즉, 김지원이 은밀히 자신을 찾아다니는 것은 보았지만, 그 이유는 알지 못하는 상태.

    “지금 너에게 내가 필요한 이유는 없을 텐데.”

    “후우, 후욱.”

    김지원은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어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살기, 위해서.”

    김지원의 눈동자는 공허했다. 텅 비어 버린 듯, 어떠한 욕망도 느껴지지 않았다.

    “뱀파리스……에게도 버려졌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그래서…….”

    김지원이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예전에 네가 말했던 거……. 쥐 죽은 듯이 살라고 했던 말. 그거 지킬 테니까 그렇게 하게 해 줘!”

    어느덧 그의 목소리는 악에 받쳐 있었다.

    “애초에……!! 애초에, 날 뱀파리스에게 빼앗긴 것도 네가……!!”

    “헛소리하지 마.”

    에르제는 그런 그의 말을 끊으며 냉소를 지었다.

    “그때는 네가 그 정도의 가치는 있었으니까 그랬던 거고, 지금은 아니야. 그리고 내가 널 뱀파리스 쪽에서 빼앗아 온 거지.”

    에르제가 허공에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왜 반대로 생각하고 있어? 뱀파리스는 빼앗겼던 것을 회수해 간 것뿐이야. 그렇지, 라하임?”

    이곳으로 오며 라하임에게도 연락을 해 두었기에 에르제의 말이 허망하게 사라질 일은 없었다.

    “예, 로드.”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라하임이 주황색 형광등 아래로 나오자, 김지원이 발작하듯 몸을 비틀었다.

    “저, 저 새끼가 왜 여기……! 아니! 그리고 저 새끼가 날 납치……!”

    “납치가 아니라 회수.”

    라하임이 에르제의 바로 뒤편에 서서 말을 정정해 주었다.

    그리고 언짢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새끼가 뭐냐.”

    라하임은 에르제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자신의 처지가 어떤지 모르는 녀석에게 다시 한번 알려 주는 것도 좋을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의 말에 에르제가 입을 떡 벌렸다.

    “야, 그렇게 말하니까 우리가 꼭 악당 같잖아…….”

    “지금은 누가 봐도 저희가 악당 같은 느낌이긴 합니다.”

    “그 ‘누구’보고 생각 잘하라고 전해 줘.”

    “예?”

    에르제는 라하임의 반응을 무시한 채, 김지원에게 말했다.

    “아무튼. 날 찾아다닌 건 살고 싶어서라고?”

    “마, 맞아!”

    김지원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에르제는 가만히 팔짱을 낀 채 혀를 찼다.

    “라하임, 얘는 뱀파이어 지부 쪽에 방 하나 내줘서 머물게 해 줘.”

    “……예, 알겠습니다.”

    라하임이 고개를 숙여 대답하고는, 이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그런데, 굳이 살려 두시는 이유가…….”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바깥에서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없잖아.”

    에르제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그것보다는 얘가 다른 뱀파리스들에게 발각되는 게 그리 좋은 그림은 아닐 것 같아서.”

    그렇게 되면, 제이가 명령을 거부한 꼴이 될 테니까.

    지금은 제이에 대한 에이리스의 신뢰를 최대한 높여도 부족한 상황이 아니던가.

    계획이 틀어지는 건 이런 사소한 일을 간과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영민하고 뛰어난 생각을 알아챘는지, 라하임이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과연. 그렇군요.”

    “그래, 그런 거다.”

    에르제가 라하임의 말투를 따라 하고는, 발길을 돌렸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느덧 경어로 바뀐 김지원의 감사 인사가 등 뒤에서 들려왔지만, 에르제는 무시하고 지하실 밖으로 나왔다.

    “더, 더 이상 토트윈 콘서트 직캠 같은 거 안 봐도 돼…….”

    뭔가 이상한 중얼거림이 들려온 것도 같았지만, 잘못 들은 것이라고 여겼다.

    “돌아가시려는 겁니까?”

    “응.”

    에르제는 마중을 나온 세리나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

    박쥐 날개가 조금씩 에르제의 등에서 자라났다.

    ‘조만간 제이를 한 번 더 만나 봐야겠어.’

    왜 김지원을 살려 준 건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리고 대답 여하에 따라, 앞으로 제이가 움직일 방향도 제시해 줄 수 있을 듯했다.

    ‘……연락을 따로 하는 건 좋지 않을 것 같고.’

    에이리스의 의심을 피하려면, 우연을 가장해서 자연스럽게 만나야겠지.

    에르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곧 우리도 활동기이니까.’

    그때가 바로 에이리스와의 일에 마침표를 찍을 분수령이 될 것이다.

    에르제의 눈동자가 붉게 변했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 * *

    5월 5일, 어린이날.

    모두에게 공평한 빨간 날, 제이의 홈마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오늘은 토트윈의 뮤직비디오와 음원이 공개되는 날. 스스로 라쿤이브라고 부르는 그녀에게는 매우 중요한 날이다.

    당연히 토트윈의 콘서트와 쇼케이스를 모두 다녀온 그녀는 타이틀곡 등을 미리 듣긴 했지만, 그래도 뮤직비디오로 보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항상 뮤직비디오 제작에 진심인 모카 엔터테인먼트가 또 얼마나 많은 자본을 투자해 명작을 만들었을지 자못 기대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에도 영상미 장난 아닐 것 같은데……!’

    그녀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어서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곧 공개 예정 시간이 되었다.

    ‘빨리 되라.’

    광고에 쓰는 시간도 아까워서 프리미엄을 구독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로딩 따위가 이렇게 오래 걸리다니!

    초조한 만큼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고, 그제야 빙글빙글 돌던 동그라미가 사라졌다.

    솨아아아―.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하늘에는 먹구름이 서서히 걷혔다.

    구름이 열린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을 따라 카메라 워킹이 이루어졌다.

    미끄럼틀을 타듯 곡선을 그리며 바닥으로 내려간 화면 속에 끝도 없이 펼쳐진 풀밭이 보였다.

    바람이 풀밭을 헤치는 소리와 함께, 화면도 풀밭을 따라 빠르게 이동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나갔을까.

    ― 흐응, 흥, 흥.

    풀밭 위에 놓여 있는 커다란 회색 돌 위에 앉은 인영 하나가 멀리서 보인다.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은 돌 위에 앉아 있는 사람.

    녹색 옷을 입고, 녹색 머리를 한 그는.

    ‘안단테다!’

    조그만 발을 까딱까딱 움직이며, 손에 든 꽃줄기를 잡고 빙글빙글 돌린다.

    꽃가루인지 모를 것들이 안단테의 주변에서 뭉쳤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이윽고 화면이 안단테의 모습을 크게 담아낼 정도로 가까워지자, 안단테가 카메라와 시선을 맞춘다.

    그러고는 씩 웃으며, 손에 든 꽃 한 송이를 이쪽으로 내밀었다.

    동시에 타이틀곡의 제목인 ‘KnoCK’가 그 위에 겹치듯이 떠올랐다.

    ‘귀여워…….’

    제이의 홈마는 침을 꿀꺽 삼켰다.

    최애는 당연히 서은우였지만, 그렇다고 다른 멤버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토트윈을 좋아하는 이유는 서은우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의 매력과 실력도 출중했기 때문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관 콘셉트……!!’

    이번 앨범에서는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토트윈의 색채가 진하게 묻어 나왔다.

    판타지 세계관 콘셉트 말이다.

    콘서트에 갔던 팬들이 그렇게 분석하긴 했지만, 확실하지는 않았었는데.

    도입부에서부터 안단테가 요정 느낌을 살린 옷을 입고 나왔으니, 이번 타이틀곡은 판타지 세계관 콘셉트가 확실했다.

    ‘뱀파이어 은우……!’

    그런 기대감이 무럭무럭 자라난 상태로, 제이의 홈마는 이어지는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타이틀곡 제목이 사라진 뒤, 곧바로 음악이 나오지는 않았다.

    에르제를 제외한 토트윈 전원이 어느 동굴 앞에 모여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손을 턱에 가져다 대며 고민하던 그들은 이내 결심한 듯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민주혁을 필두로, 동굴 안으로 진입하는 토트윈의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화륵―.

    윤치우가 손 위에 피어 낸 불이 동굴 안을 환하게 밝혔고,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동굴 속을 왕왕 울렸다.

    파드드득! 그리고 그 소리에 놀란 박쥐들이 동굴 깊숙한 곳에서 날아와 멤버들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 지나갔다.

    다들 거북목을 한 채 박쥐를 피했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러고는 박쥐들이 다 지나간 것을 확인한 후 동굴 더욱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그들이 이동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으나, 이를 지켜보는 제이의 홈마는 괜히 긴장해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영상으로는 약 10초 분량이었음에도, 최소 10분은 지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탁―.

    곧 토트윈은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민주혁이 오만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앞으로 가리켰다.

    윤치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지만, 이내 손바닥을 앞으로 펼쳤다.

    그의 손 위에 있던 불덩어리가 동굴 안에 위치한 공동 위로 태양처럼 떠올랐다.

    밝게 타오르는 불덩어리 아래, 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를 확인한 민주혁이 멤버들을 돌아보았지만, 다들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결국 어깨를 으쓱한 민주혁이 뒷짐을 진 채 관 앞까지 걸어갔다.

    그러고는 뒷짐을 풀어, 오른손으로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똑, 또도 똑,똑.

    ― 에르제?

    민주혁이 관 뚜껑에 노크를 하는 장면이 클로즈업되었고.

    곧이어 관 뚜껑이 자동문처럼 옆으로 스르륵 열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느덧 화면이 민주혁의 시점이 되어, 관 속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바뀌었다.

    까맣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관 속.

    붉은색 점 두 개가 조그맣게 생기고, 하얀 장갑을 낀 손이 순식간에 카메라를 향해 솟아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 It’s the time.

    민주혁의 싱잉 랩을 시작으로 타이틀곡 ‘KnoCK’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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