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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73화 (173/307)

제173화

173화

“…….”

에르제는 가만히 서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걸까, 윤치우의 얼굴이 서서히 구겨졌다.

“하아…….”

윤치우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바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혼잣말인지 에르제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작게,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은우의 몸에 다른 무언가가 들어온 것도, 영혼이 바뀐 채로 있는 것도, 데뷔한 후로 지금까지 같이 지내 온 게 다른 존재라는 것도…….”

언젠가 진짜 서은우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걸 동아줄처럼 붙잡고 버티고 있었던 걸까.

윤치우는 간신히 붙잡고 있던 희망의 끈을 놓친 듯 점점 허물어져 갔다.

“그리고…… 그걸 알고 있는 게 나 하나뿐이라는 것도…….”

윤치우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지만, 눈물이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슬픔보다는 분노, 그게 더 커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윤치우의 분노 어린 시선이 다시금 에르제에게로 향했다.

“그러니까 말해 달라고.”

윤치우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우는 죽었어? 나는…… 아니, 우리는 다시 은우를 볼 수 없는 거야?”

그의 말에 에르제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저번에 윤치우가 비슷한 말을 했을 때는 화가 났었다.

지금까지 해 온 게 전부 다 내가 한 일인데, 어째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은 서은우를 찾는 건가 싶어서.

하지만, 지금은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아니, 화가 나지도 않았다.

윤치우는 토트윈 멤버 서은우가 아니라, 친한 동생이었던 인간 서은우를 찾는 중이었으니까.

“……소원 쿠폰 받았으니까.”

물을 마셨음에도 금세 바짝 말라 버린 입술을 떼어 내며, 에르제가 소원 쿠폰을 주먹 안에서 구겼다.

“솔직하게 말해 줄게.”

“…….”

윤치우의 목젖이 크게 출렁였다.

“미리 말하지만, 나도 정확하게는 알지 못해. 그러니까 알고 있는 것만 말한다.”

이 이상 비밀을 숨길 수는 없었다.

아무리 술기운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해도, 윤치우가 지금까지 이 말을 속으로 쌓아 왔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알고 있는 거라도 말해 주자.’

에르제가 그렇게 생각하며 윤치우의 옆에 천천히 앉자, 윤치우도 그를 따라서 다시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일단 두 가지 경우가 있어.”

에르제는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첫 번째, 서은우의 영혼이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경우.”

“살아 있어?!”

에르제는 검지를 입술에 붙였다.

“애들 다 깨울 생각이야?”

“……아니, 미안.”

흥분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윤치우가 계속 이야기하라는 듯 입술을 짓눌렀다.

“아무튼, 서은우의 영혼은 지금 내 안에서 느껴지지 않아. 그럼 다른 곳 어딘가로 갔다는 뜻이겠지.”

윤소희의 기억을 읽었을 때 보았던 의식에 따르면,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리고 그 어딘가는 내가 원래 살던 세계. 그곳일 거야.”

“……!”

윤치우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럼, 은우랑 네 영혼은 서로 다른 세계로…….”

“응. 네가 저번에 말했던 의식은 그걸 행하는 의식이야. 물론.”

윤치우가 윤소희에 대한 분노를 키울 수도 있었기에 그는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윤소희도 의식의 진짜 정체는 알지 못하고 한 일이고. 윤소희도 서은우의 영혼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니까.”

“……알았어. 그래서?”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해. 내가 죽었는지 아닌지 모른다고 했지?”

“응.”

“서은우는 이곳에서 사고를 당하기는 했지만, 신체가 죽은 건 아냐. 그런데 나는…….”

에르제는 씁쓸한 표정으로 뒷말을 맺었다.

“죽었거든. 원래 세계에서.”

“……네 원래 몸이 죽었다는 뜻이야?”

“응. 죽기 직전에 이 몸으로 들어온 거야. 그리고…… 정신 차리자마자 이 몸의 주인의 영혼을 확인했는데, 전혀 느껴지지 않았었고.”

“그럼…… 은우는…….”

“내 몸에 들어가게 되었다면 죽었겠지.”

에르제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렇게 단정 지을 수는 없어. 영혼이 들어가기 전에 내 몸이 죽었으면, 서은우는 다른 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까. 그래서 내가 모른다고 한 거야.”

“그럼……!”

윤치우가 상체를 앞으로 확 당겼다.

“은우가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올 수도 있는 거야?”

에르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가능성이 제로인 건 아니지만, 한없이 제로에 가깝다고 봐야지.”

“의식은! 네가 이곳으로 온 것처럼, 의식을 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

당연히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당연히 그에 대한 대답도 정해져 있었고.

하지만 희망을 부수는 것 같아서 잠시 고민했지만, 에르제는 이내 입술을 열었다.

‘……솔직하게 말해 주기로 했으니까.’

“애초에 의식은 누군가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는 일이야. 나를 불러온 의식을 한다고 해도, 결국 다른 사람을 그 세계로 보내는 일이겠지.”

“……그렇지만.”

“그런데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야. 서은우의 영혼을 특정 지을 방법이 없어.”

“무슨 말이야?”

“의식의 대상으로 지정할 키워드가 없다고. 결국 의식을 랜덤으로 해야 한다는 건데…….”

그렇게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의식의 피해자가 되는지는 말 하지 않아도 알아들었을 것이다.

“……아…….”

윤치우는 결국 고개를 푹 숙이며 눈을 꽉 감았다.

“……솔직하게 말해 줘서 고마워.”

“응.”

지금 윤치우의 심정을 짐작할 수는 없겠지만, 그에게 위로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냥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그래서 에르제는 무릎에 힘을 주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비어 버린 그의 무게만큼, 소파가 위로 천천히 솟아올랐다.

‘……서은우가 이 세계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에게 예전처럼 대해 줄까.’

에르제는 말없이 윤치우의 뒤통수를 보다가 몸을 돌렸다.

잠도 완전히 깨 버렸고, 내일도 특별한 스케줄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래서 조촐하게나마 술 파티라도 한 거였고.

‘물론 죄다 취해 버렸지만.’

에르제는 탁자에 프라이팬이 잘 꽂혀 있는지 확인하고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윤치우와의 관계가 예전 같을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에르제는 방으로 걸음을 옮기며, 속으로 바랐다.

다들 취했던 것처럼, 윤치우도 그저 취해 있었던 것이기를.

달칵―.

방문을 닫고 들어온 에르제는 가만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몇 시간 전에 세리나에게 온 메시지가 떠 있었다.

‘어차피 잠도 다 깼고.’

에르제는 태현우가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한 뒤 창문을 열었다.

* * *

탁―.

문 앞에서 박쥐 형태를 푼 에르제가 땅에 발을 디뎠다.

현재 그가 향한 곳은 서울에 위치한 집이었는데, 개발이 되지 않은 곳이라 인기척이 거의 없는 동네였다.

세리나처럼 뱀파이어 지부에 살지 않는 이들이 위험해졌을 때를 대비해 준비해 둔 작은 집 중 하나였다.

곧 에르제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안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퀸님!”

다만 문을 열고 들려오는 목소리는 세리나가 아니었다.

장미영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낸 채, 문 밖으로 얼굴을 쏙 내밀었다.

“……장미영?”

“네!”

“네가 왜 여기…….”

에르제가 말끝을 흐리자, 뒤늦게 세리나도 뛰어나와 그를 맞이했다.

“로드!”

“……응.”

둘이 왜 자매 같은 느낌이 드는 거지.

이마를 긁적이고 있으니, 장미영이 자연스럽게 그를 안으로 인도했다.

“장미영은 왜 여기에 있어?”

“아, 그게.”

세리나가 큼큼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로드께서는 그런데 어쩐 일로…….”

“어쩐 일이긴. 김지원 때문에 온 거지.”

에르제가 스마트폰을 흔들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세리나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잠시만.”

세리나가 황급히 “미영아!”라고 외쳤다.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은 둘은 빠르게 지하실로 뛰어 내려갔다.

‘……뭐 하냐.’

에르제는 엉거주춤하게 서서, 지하실로 내려가는 길을 바라보았다.

우당탕, 하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아직 새벽인데.’

괜히 다른 집에 피해를 주는 거 아닌가.

‘그런데 뭘 하고 있었길래 이렇게 난장판이야.’

에르제는 지하실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아래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가 내려오는 소리를 또 어떻게 알아챘는지, 세리나가 빠르게 지하실 문 쪽에서 뛰쳐나왔다.

“안 됩니다. 로드. 전적으로 가만히 계셔야 합니다.”

“……아니, 그러니까…… 둘이 뭐 하는 건데?”

“안 됩니다.”

단호하게 고개를 저은 세리나는 문을 쿵 닫고 사라졌다.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위에서 또 다른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르는 게 좋을 거다, 로드.”

소란으로 잠에서 깬 참이었는지 플랑이 눈을 비비고 계단 위에 서 있었다.

“너까지 그러니까 더 궁금해지는데.”

“다 로드를 위해서다.”

“…….”

문고리까지 손을 가져간 에르제는 결국 플랑의 말에 손을 아래로 떨구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땀을 뻘뻘 흘린 채로 세리나와 장미영이 나란히 등장했다.

“하하, 하……. 들어가시죠.”

어색하게 웃은 세리나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비켜 주었다.

지하실 안으로 들어가니, 그 안에는 주황색 형광등이 은은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에르제는 고개를 휙휙 돌려 조금 전 둘의 수상한 흔적을 찾으려 했으나,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지하실에 저건 왜 둔 거야?’

그나마 지하실에 TV가 설치되었다는 게 이상하다는 것 정도.

어찌 되었든 모르는 편이 좋다고 하니, 에르제는 궁금증을 접고 지하실 한복판으로 걸어갔다.

저번과 비슷하게, 의자에 결박되어 있는 김지원이 보였다.

“음.”

그래도 죽다 살아났을 수도 있는 건데, 좀 너무했나.

에르제가 볼을 긁적이다가 그의 결박과 재갈을 풀어 주었다.

“으……. 으으…….”

악몽에라도 시달리는 건지 신음을 내뱉던 김지원이 인기척에 눈을 떴다.

“!!”

그는 에르제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아…… 아악!! 3D야? 이제는 3D냐고!!”

“입 막아, 어서!!”

세리나가 장미영에게 소리쳤으나, 에르제가 손을 들어 가로막았다.

에르제는 비명에도 놀라지 않은 채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3D가 아니고, 현실이야.”

“어……. 어어…….”

하지만 그럼에도 정신을 차릴 때까지 시간이 좀 필요할 듯싶었다.

‘환각 같은 거로 고문이라도 하고 있었던 건가.’

어쩌면 시끄러웠던 소리는 그와 관련이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괜히 김지원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어서 에르제가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쥐 죽은 듯이 살게 해 주겠다고 했는데, 곧장 뱀파리스들한테 빼앗겨 버리고.

또 그 이후에는 제이에게 목숨을 잃을 뻔하고.

‘큼.’

자비롭고 자애로운 로드였기에 그 부분에서는 미안한 감정을 느낄 줄 아는 자신이 참으로 도량이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김지원을 가만히 둔 채 기다리고 있으니, 곧 녀석의 정신이 돌아왔다.

“하, 하.”

녀석이 에르제를 발견하고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널 만나려고 기다리기는 했는데, 또 이거일 줄은 몰랐네.”

“그러게.”

에르제도 동의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우선순위는 지켜야 한다.

“일단 내가 묻는 말에 대답 먼저.”

에르제는 손가락을 세우며 말했다.

“일단 첫 번째, 네가 살아 있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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