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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72화 (172/307)

제172화

172화

일요일 밤 콘서트가 끝나고 난 뒤, 토트윈은 잠깐의 꿀 같은 휴식 시간을 가졌다.

콘서트에서 신곡 발표를 했고 그 이후에 활동할 예정이었으나, 당분간은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다 하라고 장 대표가 특별히 허락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트윈은 콘서트를 무사히 마무리를 한 기념으로 숙소에서 조촐한 술 파티를 열었다.

“우리 먹기 전에 사진 한 장 찍어서 올릴까?”

“앗, 좋아여!”

윤치우의 제안에, 멤버들은 식탁 위에 먹을 것들을 세팅하고 옹기종기 모였다.

안단테와 사진을 찍어야 하는 윤치우가 맨 앞줄에, 나머지는 뒷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음.”

이리저리 구도를 맞추던 윤치우가 카메라에 잡히는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술만 치우고 찍자.”

“오케이.”

재빨리 몸을 돌린 태현우가 탁자 위의 맥주 캔들을 화면에 보이지 않도록 치웠다.

“아, 잠깐만.”

그러나 이번에는 맥주 캔을 치우고 온 태현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옷도 좀 갈아입을까? 지금 너무 추레한 것 같은데.”

“그런가?”

“하긴, 다들 잘 때나 숙소에서 돌아다니던 옷이니까 그렇게 하자!”

그리고 옷을 또 갈아입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안단테가 나섰다.

“형들! 우리 트로피도 보이게 찍을까여?!”

“시상식 기간 지났는데…….”

“아니, 그럴 거면 이것도!”

콘서트를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과 흥분이 겹친 건지, 다들 사진을 찍겠다는 본분을 망각한 듯 행동했다.

‘…….’

오직 에르제만이 숙소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무심히 지켜보았다.

“대충 찍자.”

조금 전에 그렇게 말했다가.

“팬분들 보시라고 올리는 건데, 대충?! 대애애애충!?”

“도대체 무슨 부귀온앤온을 누리겠다고.”

“부귀온앤온이 아니라 부귀영화, 은우야.”

아주 사방에서 공격이 들어오는 탓에 그냥 입 닫고 가만히 있기로 작정한 것이다.

언젠가는 이 시련도 끝이 나겠지. 뱀파이어임에도 무릎을 꿇고 있는 종아리가 저린 것은 기분 탓이리라.

‘박쥐 하나, 박쥐 둘, 박쥐 셋…….’

그렇게 시간 보내기 좋은 박쥐 세기를 하고 있으니, 온갖 소품과 치장을 한 멤버들 사이에 끼게 되었다.

― 하나, 둘 김치이즈으!

귀여운 꼬마 아이의 외침과 함께, 드디어 계정에 올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물론,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찍어야 했지만……. 어쨌든 길었던 고난의 끝이 찾아왔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배고파…….’

보정 작업과 업로드까지 모두 마친 뒤에야, 에르제는 젓가락을 잡을 수 있었다.

저번에 맛보지 못한 맥주와 다양한 안줏거리들이 에르제의 입 속으로 사라졌다.

“은우야, 그러다 취해.”

“내가?”

에르제는 피식 웃으며 맥주 한 캔을 입 안에 통째로 털어 넣었다. 그러고는 탁! 하고 맥주 캔을 탁자 위로 내려놓았다.

“이, 내가?”

“그 네가 취할 것 같은데.”

민주혁이 손가락으로 에르제 앞에 놓인 맥주 캔을 가리켰다.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하나, 둘, 셋, 넷…….”

안단테가 그걸 또 세고 있길래 바라보았더니, 취한 건 녀석이었다.

“어, 뭐야? 단테 취했어.”

“내가 방으로 데리고 갈게.”

윤치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안단테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일으켜 세웠다.

“……놔아……!”

“맥주 두 캔도 다 안 먹은 것 같은데, 금세 취했네.”

“안 취했어어……!”

“누가 봐도 취했어.”

버둥거리는 안단테를 윤치우가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가만히 있어. 무거워지잖아.”

“싫어여어……. 나갈 거야…….”

“어딜 나가?”

안단테의 말에 피식 웃은 윤치우는 겨우겨우 그를 눕혀 놓고 기다렸다.

이대로 방을 나가면 다시 따라 기어 나올 것 같아서였다.

버둥거리면서 에너지를 다 썼는지, 막상 침대에 눕혀 놓으니 금방 얌전해졌다.

“후우.”

윤치우는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 내며 새근새근 잠이 든 안단테를 바라보았다.

“고생했어.”

윤치우는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 그렇게 말했다.

이번 콘서트의 퀄리티를 올리는 데에 안단테의 역할과 비중은 정말 컸다.

편곡과 무대를 어떻게 구성하면 좋을지 음악적인 부분에서 확실히 큰 도움을 주었으니까.

조금 전에 고생했다고 말한 것은 100퍼센트 진심이었다.

“자?”

말도 걸어 보고 살짝 건드려도 보고 하면서 완전히 잠이 들었다는 것을 확인한 윤치우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후우.”

이마에 흘렀던 땀을 닦아 낸 윤치우는 방을 나가기 위해 문으로 향했다.

“……?”

그런데, 조금 전까지 그냥 시끌벅적하기만 했던 거실이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뭐지, 그렇게 중얼거린 윤치우는 빠르게 문고리를 잡아 거실로 향했다.

혹시라도 누군가 또 취했으면 케어를 해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거실에 도착한 순간, 윤치우의 표정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은우야!”

“어, 형!”

윤치우는 탁자에 머리를 박고 쓰러져 있는 에르제의 옆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만약 이것뿐이었다면 ‘그냥 취했구나.’ 하고 생각하고 말았을 텐데, 그 주변 상황이 문제였다.

구부러진 젓가락, 끝이 부서진 탁자, 심지어는 구멍이 난 프라이팬까지.

도대체 뭘 한 건지 알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게…….”

윤치우가 말끝을 흐리자, 태현우가 프라이팬을 들고 푸하하 웃었다.

눈이 풀린 걸 보니 태현우도 취한 모양이었다.

소파 구석에서 머리를 박고 있는 민주혁도 마찬가지고.

“대박이지. 은우 술 취하니까 괴력남이 됐어.”

“……은우가 한 거라고?”

“어. 처음에는 재미있는…… 거 보여 준다면서 젓가락? 젓가락 맞나? 그걸 구부리더라고.”

“……그래서 탁자랑 프라이팬도 저 모양으로 만든 거야?”

“응. 완전 신기해. 아!”

태현우가 자신의 손바닥 위로 주먹을 내리쳤다.

“영상으로 찍을걸. 형, 은우 잠깐 깨워 봐. 우리 이거 영상으로 찍자.”

“안 돼.”

단호하게 태현우의 스마트폰을 뺏어 든 윤치우가 눈으로 민주혁을 가리켰다.

“너는 주혁이 좀 방에 데려다 놔. 은우는 내가 챙길게.”

“으응…….”

“아냐. 그냥 너도 가만히 있어.”

윤치우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는 에르제도 아까처럼 질질 끌고 침대 위에 눕혔다.

“하아…….”

이걸 어째야 하나.

“…….”

일단 증거 인멸부터 하자.

윤치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음에 술 파티를 한다면, 한 캔 이상은 절대 마시지 못하게 하겠다고 굳게 다짐하면서.

* * *

“으……음.”

얼마나 잠들어 있었던 것일까.

에르제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한참을 뒤척이다가 일어났다.

참기 힘들 정도로 목이 말라서였다. 목 안은 마치 가뭄이라도 든 듯이 뻑뻑했다.

양팔로 겨우 침대를 짚고 일어나니, 시야가 잠깐 핑 하고 돌았다.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숙인 에르제는 어지러움이 사라지자, 침대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직 새벽인가.’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해 보니 새벽 4시. 아직 멤버들이 잠에서 일어날 때는 아니었다.

‘어제 뭐 했더라…….’

에르제는 잠깐 멍하니 앉아서 생각하다가 이내 술을 마셨던 것까지 떠올렸다.

“……!!”

그리고 술에 취해서 자신이 했던 일까지도.

완전 기억 능력에 의해 생생히 떠오르는 만행은 잠에서 막 깬 신체를 각성시켰다.

에르제는 벌떡 일어나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렀다.

‘프라이팬……! 탁자!’

탁자의 모서리 부분은 엄지와 검지로 잡아 부쉈고, 프라이팬은 주먹으로 손쉽게 뚫어 버렸다.

그 중간에 젓가락도 구부린 것 같은데, 그건 차라리 양반일 지경이다.

에르제는 빠르게 방문을 열고 나와 거실로 나왔다.

‘설마 눈치챈 건…….’

아니겠지…….

뒷말은 거실에 있던 윤치우를 보고 그대로 흩어졌다.

“응? 뭐야, 벌써 일어났어?”

윤치우는 에르제를 발견하고 꽤나 태연하게 물어왔다.

“……응.”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안 자고 뭐 해?”

“정리 다 끝내고 누워 있는데, 잠이 안 와서.”

윤치우는 어두운 거실을 밝게 밝히고 있는 TV를 가리켰다.

“잠깐 예능 보고 있었어. 콘서트를 끝내고 나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나도 술을 먹어서 그런 건지 잠이 잘 안 오더라고. 취기가 아직 남아 있나 봐.”

윤치우는 살풋 웃으며 되물었다.

“왜? 목말라서? 물 줄까?”

“아냐. 내가 할 수 있어.”

“그래.”

윤치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TV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괜히 아무 말도 안 하니까 더 불안한데.’

에르제는 정수기에서 물을 떠다 마시고는, 잠시 고민하다가 윤치우의 것까지 물을 떠왔다.

“마셔.”

“아, 고마워.”

윤치우는 물잔을 받아 들고는 그대로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에르제가 그쪽으로 시선을 두니, 탁자 끝 부분에 이상한 것이 하나 보였다.

자신이 부숴 버린 탁자 모서리에 구멍 난 프라이팬이 꽂혀 있었다.

마치 프라이팬으로 탁자를 내려친 것처럼.

“아, 이거.”

에르제의 시선을 눈치챈 윤치우가 볼을 긁적이며 설명을 했다.

“원래 젓가락이랑 프라이팬, 그런 것들 다 버리고 없었던 일로 하려고 했는데, 탁자 부서진 건 해결이 안 되더라고.”

윤치우가 탁자에 꽂혀 있는 프라이팬 손잡이를 톡톡 두들겼다.

“이게 그나마 자연스러운 스토리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

에르제는 말없이 설명을 듣고는, 콧잔등을 찡그렸다.

“자연스럽네.”

“그렇지?”

윤치우는 피식 웃고는, 소파에 등을 기대었다.

“너도 취하기는 하는구나.”

“……안 취하려면 안 취할 수 있는데, 굳이 힘을 쓰지는 않은 거지.”

“그래서 저렇게 다른 데다 힘을 쓴 거야?”

민망한 듯이 에르제가 다른 곳을 바라보자, 윤치우가 말을 덧붙였다.

“다른 애들도 그때 취해 있어서 어떻게 잘 넘어갈 수는 있겠는데, 앞으로는 조심해. 술도 많이 마시지 말고.”

“……응.”

“…….”

에르제가 대답하고 난 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예능에서 웃긴 장면이 나올 때에도 둘은 웃음을 터뜨리지 않았다.

그렇게 가만히 침묵을 지키다가 에르제가 소파에서 일어날 때였다.

달그락―.

윤치우가 잔을 집어 물을 한 모금 축이고, 다시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방으로 향하던 에르제에게 말을 걸었다. 그의 목소리는 사뭇 씁쓸한 감정이 묻어 있었다.

“나한테 아직 소원 쿠폰 하나 남아 있지?”

“유효기간 아직 안 지났나?”

“아직 한참 남았어.”

에르제가 몸을 돌려 윤치우를 마주 보았다.

윤치우의 손에는 소원 쿠폰이 들려 있었다.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다고 했지.”

“…….”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야.”

윤치우가 소원 쿠폰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에르제 쪽으로 밀었다.

“그냥 솔직하게 대답해 주는 것만으로 충분해.”

“……뭔데?”

에르제가 자신 쪽으로 밀어진 소원 쿠폰을 집어 들자, 윤치우의 입술이 느릿하게 떨어졌다.

“은우는.”

잠깐 바닥으로 향했던 윤치우의 시선이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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