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1화
171화
카테이아 대륙에서 음유시인으로 활동했을 때.
작은 무대에서는 노래가 끝나면 사람들은 박수를 쳐 주고 환호성을 크게 질러 주었다.
조금 더 큰 무대, 혹은 왕실과 관련되어 있는 무대에서는 조금 더 조용했다. 그들은 품위를 지키기 위해 환호성 없이 그저 박수 정도만 쳐 주었으니까.
‘그때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건 단 하나의 경우밖에 없었다.
무대가 아니라 아무 술집에서 맥주나 마시며, 누가 썼는지 또 누가 불렀는지도 모를 아무 노래나 부를 때.
그러니까…….
― 항상 내 옆에 있어 줘요.
단 한순간의
그리움도 느낄 수 없도록.
내 시선에 늘 있어 줘요.
단 한순간도
벗어나지 말아요.
지금처럼 가수로 무대에 섰을 때.
오롯이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불러 주는 경험은 바로 이 순간이 처음이라는 뜻이었다.
“아…….”
나직이 흘러나온 탄성에 옆을 바라보니, 다른 멤버들도 팔을 늘어뜨린 채 멍하니 관객석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니, 반짝거리는 응원봉이 노래에 맞추어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 팬들이 토트윈을 위해서 다같이 목소리를 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엄청나게……. 아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
잠깐이라도 눈을 감으면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에르제는 노래가 끝날 때까지 눈을 깜박거리지 않았다.
“감사……합…… 끄윽…….”
결국 팬들이 토트윈을 위해 노래를 불러 주는 이벤트가 끝나고, 마이크를 잡은 모든 멤버들의 모습은 똑같았다.
* * *
이벤트 이후 새 앨범의 타이틀곡까지 무대에서 선보이고 성공적으로 콘서트를 마친 토트윈은 이제 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오늘 너희들 진짜 최고였어. 보고 있는데, 내가 다 눈물이 나더라.”
이윤이 백미러로 멤버들을 보며 말했다. 그의 눈은 아직도 충혈이 되어 있었다.
“내일까지만 더 힘을 내자.”
“……네.”
겨우 대답한 윤치우가 차창에 머리를 기댔다.
다른 멤버들의 모습도 큰 차이는 없었다.
첫 콘서트를 무사히 마치고 난 뒤의 순간적인 탈력감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팬들이 불러 준 노래에 대한 여운이 큰 모양이었다.
다들 아직도 감동받은 표정으로 켜지도 않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으니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얘들아, 앞으로도 계속 비슷한 일이 있을 텐데 아직까지 그러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 내일도 펑펑 울려고?”
“…….”
“……그렇지만, 저희는 몰랐잖아여.”
안단테의 말에 이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팬들이 소속사랑 따로 논의해서 진행한 이벤트니까 당연히 너희들한테는 말 안 해 주지.”
“생각도 못 하고 있다가…….”
태현우가 중얼거리듯 대답하다가 마른세수를 했다.
“바로 뒤에 신곡 부르는데, 틀릴 뻔했어요. 목이 계속 메여 가지고.”
“너 엄청 울더라.”
그 말에 에르제가 쿡쿡 웃으며 말했다.
“마이크 다 젖은 것 같던데.”
“뭐래.”
그러나 태현우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도 울어 놓고.”
“……내가?”
에르제가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난 안 울었어.”
“단기 기억상실증이야?”
“그게 아니고.”
급 치고 들어온 민주혁의 말에 에르제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까 말했잖아. 운 게 아니고 일부러 눈 안 감고 있어서 눈물이 난 거라니까.”
“퍽이나.”
태현우가 낄낄 웃으며 이윤에게 말했다.
“형, 콘서트 VOD 나오면 꼭 얘 보여 줘요.”
“그래, 그게 낫겠다.”
이윤도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아무튼 감동 적당히 받고, 내일도 콘서트 해야 하니까 들어가서 바로 씻고 자. 체력이 전부다.”
“넵.”
* * *
“후아.”
세리나는 콘서트장에서 빠져나와 폐에 가득 찼던 숨을 크게 뱉어 냈다.
“최고였어.”
그녀는 이틀간의 콘서트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역시 토트윈의 노래는 무대에서 직접 듣는 것이 훨씬 좋았고, 또 토트윈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음악 방송에서 보여 주었던 것과는 또 다르게 편곡하고 의상을 바꾸는 등 팬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을 쏙쏙 집어넣어 알차다는 말로도 부족할 콘서트로 꾸몄다.
‘티켓팅 이틀 치 다 성공한 나 자신을 칭찬해.’
세리나는 자신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들겨 주며, 이틀간 수확해 온 것들을 확인했다.
어제 찍었던 것은 어젯밤에 확인했으니, 오늘은 오늘 것만 확인하면 되었다.
‘역시, 로드는 뭘 입어도 다 멋있어.’
세리나는 히죽 웃으며 에르제로 가득한 사진들을 천천히 넘겼다.
확실히 이틀 차에는 조금 더 적응을 했는지, 표정과 제스처가 더욱 다양하고 풍부해졌다.
역시 처음 생각했던 대로, 로드께서는 천년이고 만년이고 아이돌을 해야 할 상이 분명했다.
‘원래 모습이셨다면 더 좋았을 텐데.’
세리나는 잠깐 떠오른 아쉬움을 어렵사리 감추었다.
‘아니야. 그랬으면 너무 불공평했겠지.’
다른 아이돌과 토트윈의 멤버들이 불행해지는 길일 수도 있었기에 세리나는 이 정도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이건 잘 나왔고 아, 이건 좀 흔들렸네.’
세리나는 몇백 장인지 모를 사진들을 넘기다가 이내 가장 중요한 사진을 발견하고 멈추었다.
‘뭐니뭐니해도 이게 최고였지.’
첫날에도 그랬는데, 에르제는 이틀째에도 눈물을 흘렸다.
펑펑 운 다른 멤버들에 비하면 비교적 얌전하게 운 편이었지만, 그래도 세리나에게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에르제가 눈물을 보였던 일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일족이 죽었을 때…….’
그리고 아마 소문으로만 들은 내용이긴 하다만.
‘그리고 장님 인간 소녀가 죽었을 때도 그러셨다고 했지.’
물론 평범한 마을 소녀였던 자신이 에르제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직접 본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카테이아 대륙에서의 이야기일 뿐!
이곳에 온 이후 로드의 눈물을 실제로 본 것은 자신이 유일하고, 또 최초일 것이 분명했…….
‘아, 맞다.’
순간 토트윈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라하임과, 에르제의 그림자에 숨어 있을 플랑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도……!!’
과거의 지위를 생각해 보면, 세 명 중에 자신이 포함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주 역사적인 일이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 또한 로드를 위해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빨리 보정하고 업로드 해야지!’
그렇게 의욕을 불태운 세리나가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그녀의 눈에 살아서 돌아다니면 안 될 것 하나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김지원?”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세리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러나 다시 봐도 김지원의 얼굴이 맞았다.
저번에 자신의 집에서 오랫동안 데리고(?) 있었기 때문에 몰라볼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변용술을 쓴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변용술 특유의 위화감이 느껴지지는 않았으나, 거리가 멀어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조금 더 가까이 가 보자.’
그렇게 마음을 먹은 세리나는 김지원으로 추측되는 인물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들키지 않도록 최대한 사각지대에서 접근한 세리나는 그가 김지원이라는 사실을 거의 확신했다.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세리나의 이마가 깊게 패었다.
분명 로드의 친구분인 지서후 님이 김지원이 피가 다 빨린 채로 죽어 있었다고 말했는데…….
그는 분명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김지원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초조하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앞쪽에 팬들이 많은 걸 보면…… 콘서트를 마치고 돌아가는 토트윈, 아니 로드를 기다리고 있는 건가?’
하지만 만약 로드를 만나기로 얘기가 되어 있었다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약속을 잡지는 못했다는 이야기인데……. 비밀리에 로드께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세리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이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에르제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고 곧 에르제가 전화를 받았다.
[ 세리나. ]
“아, 로드. 긴급하게 말씀드릴 것이 있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통화 괜찮으십니까?”
[ 응. 이제 나갈 준비하고 있는 중인데, 만나서 이야기해야 하는 일이야? ]
“아닙니다. 지금 말씀드리려고 전화했습니다.”
[ 무슨 일인데? ]
주변에 아무도 없었지만, 세리나는 입과 스마트폰 위를 손으로 가리며 작게 말했다.
“저번에 지서후 님이 김지원이 죽었다고 하셨는데, 현재 토트윈이 나가는 쪽 출구에 김지원이 있습니다.”
[ ……누구? 김지원? ]
덩달아 작아진 에르제의 목소리에 세리나가 대답했다.
“예. 변용술이 아닐까 했는데, 가까이서 봐도 딱히 위화감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죽은 줄로 알았던 김지원이 로드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서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 ……. ]
스마트폰 너머 정적이 조금 길어졌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듯해서 세리나도 김지원을 주시한 채 입을 열지 않고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 세리나. ]
“예.”
[ 김지원 주변에 누가 있는 건 아니지? ]
“예.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이 혼자 있는 모양인데…….”
[ 제압해서 데리고 가. 내가 따로 찾아갈게. 무슨 말인지 알지? ]
“저번처럼…….”
[ 응, 맞아. 라하임을 먼저 보낼 테니 그때 링크 여부 확인하고. ]
“알겠습니다.”
세리나는 전화를 끊고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김지원의 주변 상황을 확인했다.
주변에 팬들로 보이는 이들이 많았지만, 다들 김지원의 반대편만 보고 있는 상태.
김지원은 마치 무리에서 떨어진 단일 개체 같은 상태였다.
‘사각에서 들어간다.’
세리나는 가방 끈을 꽉 조여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하고, 상체를 낮게 숙였다.
훅―!
그러고는 단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빠른 속도로 김지원을 향해 돌진했다.
“아 씨……. 진짜 언제 나오는 건데…….”
중얼거리는 김지원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고.
“……!! 뭐……!”
갑자기 느껴진 기척에 뒤를 돌아본 김지원이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표정이 보였다.
“쉿.”
세리나는 갈고리 형태로 만든 팔로 김지원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달려가던 속도 그대로 김지원을 낚아챈 세리나는 발끝에 힘을 주어 브레이크를 걸었다.
연기가 피어오를 정도로 발생한 마찰력을, 세리나는 반동으로 이용해 방향을 직각으로 틀었다.
“너…… 너……!!”
세리나의 팔에 매달려 가는 와중에 김지원은 그녀를 알아보고 비명 비슷한 소리를 냈다.
“내려…… 줘……!!”
그러나 고작 뱀파리스의 말단이 직계의 힘을 받은 세리나를 이길 수는 없었다.
어느덧 인파가 많은 지역을 벗어나 인적이 드문 곳까지 오게 되자 김지원의 버둥거림이 더욱 심해졌다.
“내려……! 달라고!!”
“조용히 해.”
세리나는 김지원을 감고 있는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결국 떨쳐 내는 것을 포기했는지.
“아, X바아아알……!! 또야……!!”
김지원의 구슬픈 비명 소리가 골목 안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