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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70화 (170/307)
  • 제170화

    170화

    ― 오, 뭐야. 치우랑 단테, 현우 이렇게 셋이 유닛 하는 거임?

    ┖ ㅇㅇ 그런 듯. 뭐 하려나?

    ┖ 커버곡 같은 거 하지 않을까?

    ― 메인 보컬, 갓 프로듀서이자 서브 보컬, 든든 팀 리더……. 이 셋의 조합이라니 가슴이 웅장해진다.

    콘서트 내의 몇몇 해적 방송이나 인터넷에 상황을 공유해 주는 팬들로 인해 콘서트에 오지 못한 이들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그리고 곧 VCR에서 확인하라고 했던 대로 화면이 밝아지고 팬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모였다.

    치이이익―.

    라디오의 치지직,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VCR 화면에는 옛 느낌이 나는 대학교 전경이 보였다.

    길게 뻗은 복도와 중간중간에 밖으로 나 있는 창, 그리고 창가에 윤치우가 벽에 기댄 채 서 있었다.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이 된 CD플레이어는 이어폰으로 윤치우의 귀와 연결되어 있었다.

    저벅, 저벅.

    곧 누군가의 발소리가 크게 울리고, 그 누군가는 윤치우의 뒤에 섰다.

    살금살금 다가온 것은 안단테였다.

    멤버 내 가장 큰 키의 윤치우와 그 반대인 안단테, 둘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화면에 잡혔다.

    안단테가 윤치우의 정수리를 톡 치고 그대로 아래로 숨었다. 화면에서도 쏙! 하고 사라지는 모습이었다.

    뒤를 돌아보는 윤치우가 찾지 못하고 두리번거리자, 관객석에서 작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 누구지? ]

    윤치우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안단테가 다시 화면에 휙! 하고 등장했다.

    [ 아, 뭐예여. 모르는 척하지 마여. ]

    [ 와, 깜짝이야. ]

    윤치우가 무미건조하게 놀란 척을 하니, 안단테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 집에 안 가고 뭐 해여? ]

    [ 음악 듣고 있었어. ]

    윤치우가 손으로 눈 위쪽을 가리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 날이 좋아서. ]

    [ 비 오는데여? ]

    [ 날이 좋지 않아서. ]

    [ 좋지 않을 정도로 흐린 건 또 아닌……. ]

    [ 적당해서. ]

    [ ……. ]

    안단테가 이마를 찌푸리며 윤치우를 바라보자, 그도 창가에서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췄다.

    [ 그 모든 날에 이 음악이 함께했어. ]

    윤치우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이어폰 한쪽을 빼냈다. 그러고는 그것을 안단테에게 내밀었다.

    [ 같이 들을래? ]

    [ 누구 노랜데여? ]

    [ 토트윈. ]

    [ 토트윈? ]

    [ 얘네 노래 많아. 다 좋고. ]

    안단테가 고개를 갸웃하며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치지직, 치직.

    주파수 잡히는 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VCR 화면 속이 아닌 무대에서 MR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AM’의 반주였다.

    와아아―!!

    패러디 장면에 웃음을 터뜨리던 팬들이 이내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 함께 했던 밤은

    이제 Rainy Dawn

    마지막일 줄 알았던

    Maybe, but.

    점점 희미해지는 너의 얼굴.

    ― 마치 우리 사이 같아.

    Distance between stars

    가까운 듯, 또 먼 듯

    기다리고 있어.

    In my world.

    잊지 않았어.

    Our memory

    원곡대로 윤치우와 안단테의 파트가 이어지고, 바로 뒤의 민주혁의 랩 파트는 태현우가 맡았다.

    ― 시간이 오래 걸려도

    It’s okay

    돌아갈게.

    많은 고난도, 방해도

    Can’t stop my step.

    별과 별, 사이만큼 멀다 해도

    We know―.

    생각보다 가깝다는 것.

    민주혁의 두꺼운 저음 랩은 아니었지만, 그런 만큼 신선하게 들렸다.

    5명이 참여하는 원곡과 다른 부분은 태현우의 파트뿐만이 아니었다.

    반주의 시작부터 편곡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잔잔한 분위기의 AM은 원래 아슬아슬한 감정을 위한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이번에는 아니었다.

    어쿠스틱 버전으로 편곡된 AM은 스트링 사운드와 함께 서서히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이내 절묘하게 조합된 멜로디가 어느새 다른 노래의 멜로디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3집 앨범에 수록된 곡 중 하나인 ‘RE:LIFE’라는 곡이었다.

    마찬가지로 어쿠스틱 버전으로 편곡된 ‘RE:LIFE’는 위화감 없이 AM과 연결되어 메들리로 이어졌다.

    ― 슬픈 표정

    난 알아 버렸어.

    오늘 네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

    오늘 이곳에

    난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RE:LIFE’는 다시 2집 앨범 수록곡인 ‘틈’으로, 그리고 또 다른 곡으로.

    짧게 조각난 4개의 곡이 마치 하나의 곡처럼 합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중 2개의 곡은 팬들이 무대로 꼭 보고 싶다고 하던 곡들 중 하나라서 콘서트장에 온 팬들은 너나없이 응원봉을 이리저리 흔들며 감성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첫 유닛 무대가 끝나고, 셋은 별다른 멘트 없이 후다닥 사라졌다.

    뭐지? 이대로 끝인가?

    어리둥절한 팬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다시 VCR 화면이 들어왔다.

    안단테가 이어폰을 빼는 장면이었다.

    그에게서 이어폰을 건네받은 윤치우가 씩 웃으며, CD플레이어를 가방 안에 넣었다.

    그러고는 그에게 물었다.

    [ 어때? ]

    [ 아. ]

    안단테가 막 대답하려던 차에 멀리 복도 끝에서 태현우가 손을 흔들며 머리를 내밀었다.

    [ 뭐 해! 빨리 와! 조금 있으면 비 더 온대! ]

    [ 어, 알았어. ]

    윤치우가 가방을 고쳐 메고 몸을 돌리는 것으로 VCR이 종료되었다.

    그리고 무대 밖에서 태현우가 영상에 나온 가방과 같은 것을 멘 채로 무대로 뛰어나왔다.

    윤치우와 안단테도 같은 모습이었다.

    마치 VCR 속에서 뛰쳐나온 듯한 연출에 팬들이 귀엽다고 외쳤다.

    윤치우가 화면과 비슷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팬들에게 물었다.

    “어떠셨나요?”

    좋았어!! ‘RE:LIFE’ 무대 해 줘서 고마워!! 사랑해!!

    어땠냐는 질문에 대한 답과, 그것과 상관없는 말들이 사방에서 우당탕 무대 위로 쏟아졌다.

    “단테가 편곡한다고 엄청 고생했어요.”

    윤치우가 안단테의 등을 두들기며 말했다.

    “치우 형은 저거 찍을 때 NG 10번 넘게 냈어요!!”

    옆에 있던 태현우가 낄낄대며 윤치우를 놀렸다.

    “비밀로 해 달라고 했는데.”

    윤치우가 눈을 흘기며 팬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현우한테는 비밀 얘기를 하면 절대 안 돼요.”

    다시 한번 관객석에서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다음 무대 소개를 맡은 안단테가 마이크를 고쳐 잡았다.

    “이제 다음 무대를 만나 볼 시간인데여.”

    안단테가 뒤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번에도 VCR이 준비되어 있어여. 눈물샘 조절 잘해 주셔야 해여!”

    갑자기 눈물샘이라니?

    의문스러운 말을 남긴 채 셋은 백스테이지로 사라졌다.

    그리고 곧 주변 조명이 꺼지고 VCR 화면만이 밝게 비추었다.

    찌르르, 찌르르.

    풀벌레 우는 소리, 그리고 숲길을 사박사박 걷는 발이 보였다.

    보폭이 일정하지 않고 비틀거리는 것이 마치 부상을 당한 듯한 걸음걸이였다.

    그리고 두루마기를 입은 전신이 화면에 드러났을 때.

    어깨를 부여잡은 채 고통스럽게 걸어가는 에르제의 모습이 나타났다.

    [ 하아. ]

    대중에게도 나름 연기력을 인정받은 에르제는 곧 한숨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커다란 나무에 기대어 어깨 쪽을 붙잡고 있는 에르제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위로 들었다.

    휘황찬란한 달이 구름에 걸려 있었다.

    [ 결국…… 인간은 될 수 없는 건가. ]

    씁쓸한 표정으로 에르제는 눈을 감았다.

    곧 그의 뒤로 누군가의 발걸음이 들려왔다.

    [ ……! ]

    놀라서 황급히 눈을 뜬 에르제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어깨를 꽉 붙잡은 채 얼굴을 찡그렸다.

    [ 여기에 있었구나. ]

    결국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에르제의 앞에 무사 복장을 한 민주혁이 서 있었다.

    민주혁은 혀를 쯧, 하고 차고는 고개를 저었다.

    [ 가만히 있거라. 내 너를 해치러 온 것이 아니니. ]

    [ ……. ]

    어차피 움직이지 못한다.

    눈빛으로 그렇게 말한 에르제는 체념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나무에 몸을 기대었다.

    민주혁은 그런 그의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품에서 붕대를 꺼냈다.

    그러고는 그것을 다친 에르제의 어깨에 칭칭 감기 시작했다.

    달빛이 둘의 모습을 비추었다.

    [ ……! 윽! ]

    에르제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뱉어 내자, 민주혁이 손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 아프냐? ]

    덤덤한 민주혁의 목소리가 숲속에 울렸다.

    [ 나도 아프다. ]

    그 말에 에르제가 눈을 감고 고개를 위로 젖히는 장면을 끝으로, 무대는 새까맣게 변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여우 울음소리.

    WOOOOOOOO ―!

    VCR이 단순히 패러디가 아니라 빌드업이라는 것을 깨달은 팬들이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 산 위를 걷는 발걸음에

    바스러지는

    주황빛, 노란빛

    낙엽.

    푸른색, 백색 조명이 희미하게 무대 위를 비추고.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가 스산하게 들려왔다.

    ― 쌀쌀한 바람에

    밀려나는 구름

    ― 가을에 내리는 비는

    마치, 마치, 마치

    그대를 생각한 밤에

    내리는 비, 비, 비

    이전에 아육시에서 했던 공연이었다.

    그때는 9명의 인원이 꾸몄던 무대였다면, 지금은 에르제와 민주혁 둘이서 무대 위를 채우고 있었다.

    가야금 소리처럼 애절하게 울리는 에르제의 목소리와, 도포를 펄럭이며 춤을 추는 민주혁.

    무대 위에는 오직 둘뿐이었지만, 어느 한 곳도 비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대로 계속 진행되면, 결국은 허전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1절이 끝났을 때, 도포를 입은 백댄서들이 투입되었다.

    ― 끝내 나를 떠나갔나.

    그대는, 가을비처럼

    ― 아니, 다시 나를 향해

    내리나, 가을비처럼

    ― 비처럼

    왔다가 떠나가네.

    이윽고 마지막 가사가 끝이 날 때, 에르제는 제자리에 서서 가만히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아육시 무대에서는 에르제가 완전히 무대 밖으로 나가며 마무리되었지만, 이번에는 다른 결말이었다.

    가만히 손바닥을 내려다보던 에르제가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주먹을 꾹 쥐었고.

    뒤에서 가만히 기다리던 민주혁이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붙잡았다.

    부상당했던 어깨는 더 이상 아프지 않은 듯, 에르제의 표정은 변함없이 미소를 띠고 있었다.

    팟―.

    그리고 서서히 잦아드는 푸른색과 백색의 조명들.

    마치 결국에는 인간이 되었다는 듯, 그렇게 무대가 끝이 났다.

    와아아아아!!

    커다란 함성 소리가 콘서트장 내부를 가득 채웠다.

    * * *

    “하이파이브!”

    “예이!”

    유닛 무대에 더불어, 그 뒤 이어지는 다른 곡들까지 무사히 끝낸 토트윈은 마지막 일정을 앞두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주도한 것은 물론 태현우였지만, 다른 멤버들도 벅차오른 고양감에 신나서 합류했다.

    “지금까지 수고 많았어. 이제 마지막 하나 남았네.”

    윤치우가 씩 웃으며, 멤버들의 고양감을 유지시켰다.

    ‘이제 마지막 신곡 발표 차례인가.’

    그의 말에 에르제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그러나 콘서트의 마지막 곡을 위해 무대에 섰을 때.

    에르제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에…….

    “아!”

    그만 마이크를 허벅지 옆으로 떨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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