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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69화 (169/307)
  • 제169화

    169화

    놀랍게도 남자 팬의 최애는 없다고 했다. 그나마 관심 있는 게 에르제라고 했는데, 세리나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이것도 드세요. 아, 그리고 이것도요.”

    에르제만큼은 아니었지만, 세리나의 요리 솜씨도 훌륭한 편이었다.

    예전 카테이아 대륙에 있을 때, 마을에서도 그녀의 요리 솜씨는 꽤나 정평이 나 있었으니 말이다.

    “아……. 감사합니다.”

    남자 팬은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세리나가 내미는 것을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예의 때문인지, 아니면 진짜 맛이 있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리나는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는 이내 무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간을 보니, 슬슬 입장이 완료가 되고 콘서트가 시작될 듯해서였다.

    숨겨 둔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곧 콘서트장이 암전이 되었다.

    화아아악―!

    그리고 빛이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스크린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와!”

    남자 팬도 감탄사와 함께 샌드위치를 입에 넣다 말고 멍하니 앞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하얗게 빛 입자가 쏟아지는 VCR에서는 곧 하얀색과 검은색, 이 두 가지 색으로 반이 갈라졌다.

    빛과 어둠.

    두 이미지가 쪼개지고 겹쳐지더니, 곧 5개의 세로선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무대의 가로선과 이어졌다.

    마치 세로로 높게 솟은 문 같았다.

    이브들 모두의 머릿속에 ‘HaLLo’의 티저가 겹쳐 보였다.

    곧 그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5명의 토트윈이 천천히 그 빛 속에서 걸어 나왔다.

    저벅, 저벅.

    발걸음을 입힌 음향 소리와 함께 ‘HaLLo’의 간주가 흘러나왔다.

    ‘아, 나 이거 아는데.’

    대학생의 오빠는 잘 아는 노래가 오프닝부터 나오자,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샌드위치를 조심스럽게 무릎 위로 내려놓았다.

    ― 와아아아악!!

    사방에서 토트윈의 등장을 환영하는 함성 소리가 남자 팬을 압박했다.

    엄청난 압도감이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무대의 중앙에 선 토트윈은 그 압도적인 광경에도 한 점 흐트러짐 없이 ‘HaLLo’를 불러 나갔다.

    ― 기다려 왔어.

    이 순간이 오기를

    Under the blue sky―.

    ― 길을 따라 도착한 곳에는

    날 기다리는 네가 있어.

    The way you are―!

    여전히 풋풋한 목소리를 가진 안단테는 그동안의 무대 경험이 적지 않았다는 듯.

    날 기다리는 네가 있어, 라는 파트에서 손을 관객석 쪽으로 향했다.

    다시금 작은 비명 소리가 안단테의 시선이 닿은 곳마다 터져 나왔다.

    ― 내 정체는 Secret

    쉿―!

    그대로 즐겨.

    있는 그대로의 나를―

    The way I am.

    ― We are on

    Another World ―!

    우릴 마주…… 해!

    태현우의 박자가 살짝 미끄러졌지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예민한 사람만 알아차렸을 정도.

    그렇게 다른 멤버들의 파트가 지나가고, 에르제가 높은 음을 마이크 위로 쏟아 냈다.

    ― HaLLo――――!!

    성량이 얼마나 풍부한 건지 스피커가 찌르르 울릴 정도였다.

    ‘와……. 라이브가 더 미쳤구나.’

    대학생의 오빠는 숨을 죽이고 무대를 감상하다가 저도 모르게 감탄하고 말았다.

    먹을 것을 나눠 주던 팬님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양손을 꼭 감싼 채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으니까.

    “훌륭합니다…….”

    저렇게까지 할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큼큼, 작게 헛기침을 한 그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어느덧 첫 번째 타이틀곡이 끝나고, 토트윈은 빠르게 다음 무대 준비를 했다.

    가수도 팬도 쉴 틈이 없는 오프닝 구성이었다.

    ‘아……. 이거!’

    그리고 대학생의 오빠는 이번에도 간주가 나오자마자 무슨 노래인지 알아차렸다.

    ― 그 시절, 그 순간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던 날.

    The Memory

    운동장에 묻어 둔

    흙 묻은 기억.

    ‘그 시절의 너(Reminisence)’였다.

    이 곡은 간질간질한 노래를 좋아하는 그가 토트윈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였다.

    ― Feel so high

    너와 있을 때면

    그래서 다시 찾은 발걸음.

    안무와, 노래.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짐 없이, 토트윈은 그 뒤로도 2곡을 더 완곡하고 나서야 무대 위에서 멈추었다.

    폭주 기관차처럼 무대 위를 돌아다니더니, 이제야 정차하고 숨을 고르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Treak or treat! 토트윈입니다!!”

    토트윈이 해맑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팬들도 환호성으로 그들에게 답했다.

    “후아, 후―. 오프닝 재미있으셨나요?”

    어어어어!!

    최고!!

    팬들의 대답이 마이크도 없는데, 크게 들렸다.

    이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그는 스크린에서 크게 띄워 준 멤버 하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학생의 오빠가 토트윈 중에서 가장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멤버 에르제였다.

    “이지러진 달빛이.”

    그대의 마음에 깃들기를!!

    이달그마로 말을 시작한 에르제는 씩 웃으며 관객석을 바라보았다.

    “아……. X…….”

    그리고 대학생의 오빠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까 노래할 때부터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게 더 심해졌기 때문이다.

    ‘미치겠다.’

    자기도 모르게 ‘그마’ 부분을 외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세리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남팬마저 토며 들게 하다니, 에르제는 역시 역대 최고의 로드가 분명했다.

    * * *

    오프닝 무대를 끝낸 뒤에도 토트윈은 걸어 다닐 시간조차 없었다.

    멘트를 치며 겨우 고른 호흡이 뛰어다니느라 다시 헐떡이게 됐다.

    “이건가? 이거 맞지?”

    “어. 다음 무대 의상 그거 맞아!”

    첫 콘서트였기에 저런 것으로 은근히 소모되는 시간들이 상당히 많았다.

    “곧 VCR이지!?”

    서둘러 준비를 끝내고 백스테이지에 도착한 토트윈은 VCR이 끝나면 무대에 오르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태현우.’

    에르제는 그중 태현우를 찾아 가까이 다가갔다.

    “아직도 긴장돼?”

    “어? 아니……!”

    늘 당당하던 녀석이 대답을 하면서 고개를 돌린다. 이런 일은 여태 없었기에 에르제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

    “너 아까 네 파트에서 박자 밀린 거 알고 있지?”

    “아. 그건…… 인이어 때문에 그랬어.”

    “인이어 어떤 거. 말해 봐. 지금 교체할 수 있으면 빨리하게.”

    “아니, 그게…….”

    에르제의 말에 태현우가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뭉친 혈류를 풀어 주지 않았으면, 이것보다 더 심했겠는데.’

    그나마 자신이 그렇게라도 해 줬기에 망정이었다.

    ‘……그런데 태현우가 단순히 콘서트 무대가 더 크다고, 팬들이 많다고 이럴 녀석은 아닌데.’

    에르제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유심히 태현우를 바라보았다.

    결국 윤치우까지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묻고 나서야 태현우가 빠르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아니, 사실.”

    태현우가 무대로 나가는 문을 슬쩍 보며 말했다.

    “부모님 오셨거든.”

    그는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거 때문인가 봐. 무대 보러 오신 게 오늘이 처음이라서 그런 것 같아.”

    “음.”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은 했지만, 외적인 이유로 그러는 것은 해결해 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에르제는 다시 한번 태현우에게 강조했다.

    “아까 내가 말해 준 거 기억하고 있지?”

    “……아, 응. 뭐야, 그거 장난친 거 아니었어?”

    “장난 아닌데?”

    에르제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리프트 올라가고 간주 나올 때 조용히 말해 봐. 마이크에 소리 나가지 않도록 조심해서. 분명 도움이 될 거야.”

    “…….”

    태현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믿지 못하겠다는 듯 쳐다보자, 에르제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VCR 종료 10초 전!!”

    무대에 올라가야 할 시간이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잖아. 부모님 오셨다며. 뭐라도 해 봐야지.”

    “……네가 첫 단콘부터 장난을 치진 않겠지.”

    태현우는 전혀 납득하지 못한 얼굴로 납득을 하고는, 다른 멤버들과 같이 리프트에 섰다.

    오프닝 이후의 첫 무대는 ‘FM’이었다.

    앞에서 신나는 소년미를 보여 줬으니, 그 뒤는 조금 분위기를 잡고 가려는 계산이었다.

    게다가 타이틀곡인 만큼 팬들에게도 익숙해서 즐기기 좋을 테니까.

    그그그긍, 소리를 내며 리프트는 토트윈 전원을 무사히 무대 위로 안착시켰다.

    무대 위에는 어느새 하얀 연기가 발목까지 올라와 있었다.

    이건 민주혁의 아이디어였는데, 무대와 관객석의 거리가 먼 만큼 시각적인 효과를 주고 싶어서였다.

    격한 안무가 FM의 포인트였기에, 그들의 발 구름에 맞추어 하얀 연기가 양옆으로 갈라져 퍼질 예정이었다.

    ‘태현우는?’

    문득 든 생각에 에르제는 옆에 서 있는 태현우를 흘깃 바라보았다.

    ‘풀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어두운 밤, 그 안에 있는 것은 오직 붉은 달과 나 하나.’

    태현우는 자신이 알려 준 술법의 주문을 읊는 중이었다.

    리허설 당시, 태현우의 긴장을 풀어 주며 자신의 힘을 조금 넣어 두었는데.

    그것이 저 술법의 주문과 반응을 하여 태현우에게 특별한 효과를 줄 것이다.

    ‘원래는 전투 중에 집중력과 고양감을 올리기 위한 용도이긴 한데.’

    무대에서의 집중력이 극한에 오르면, 긴장이고 뭐고 느낄 새도 없을 테니 이렇게 사용해도 문제는 없을 듯했다.

    무엇보다 FM은 절대 긴장한 상태로 소화할 수 있는 무대가 아니었으니까.

    ‘역시.’

    에르제는 태현우의 눈빛이 변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술법이 잘 먹혔다는 것을 깨달은 에르제는 한 발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쿵, 찍는 발에 하얀 연기가 좌우로 갈라졌다.

    ― DA, DA, DA, DA ― DA

    DA DA ― DA, DA, DA

    무심한 눈빛으로 관객석을 훑으며, 에르제의 공허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나왔다.

    그렇게 문제없이 FM의 무대가 끝나고 난 뒤.

    확실히 분위기가 무르익은 콘서트장의 무대 위로 두 명이 등장했다.

    민주혁과 에르제였다.

    “저희는 너무 즐거운데,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민주혁의 말에 ‘너무 좋아!!’라는 말이 관객석 전방위에서 들려왔다.

    큰 소리에 깜짝 놀랐는지 민주혁의 눈썹이 위로 치솟았다.

    “아하하.”

    그가 밝게 웃자, 에르제도 따라 웃으며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댔다.

    “울보 민주혁 씨, 다음 무대 소개해 주시죠.”

    “……야!”

    민주혁이 원망의 눈빛을 보냈으나, 팬들이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으므로 목숨의 위협을 받는 일까지 가지는 않았다.

    괜찮아! 귀여워!!

    “……귀엽지 않아요.”

    그렇게 크게 외친 팬에게 슬픈 표정으로 대답한 민주혁은 손으로 무대 뒤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다음 무대는 저희 콘서트의 첫 유닛 무대입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거의 아시는 노래일 것 같아요.”

    “그럼, 저희는 이만!!”

    에르제와 민주혁이 발랄하게 인사하고는 무대 밖으로 사라졌고, 그 빈자리를 VCR이 채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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