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5화
165화
운전대를 잡은 것은 지서후였다. 조금 전에 끌고 왔던 그의 차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선글라스를 낀 채 고속도로를 달리던 지서후는 조수석에 앉아 있는 라하임에게 물었다.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 지부로 쳐들어가는 건 아니지?”
“예. 2장로는 뱀파리스 지부에 거주하지 않습니다. 따로 별장을 매입해서 그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 돈이 많은가 보네.”
“조직을 운영하고 있거든요.”
“조직?”
“조직 폭력배요.”
“……아.”
지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인간들도 좀 있겠는데.”
“어차피 그들은 우리 상대가 되질 않으니 굳이 머릿수에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그건 그렇지. 그럼 뱀파리스들은 얼마나 있는데? 2장로가 인간들로만 조폭들을 구성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제가 뱀파리스 지부에 있을 때에는 일곱이었습니다.”
“지금은 더 늘었겠네.”
“에이리스도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챘을 테니까요.”
라하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2장로를 지금 단계에서 벌써 노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겠지만요.”
“그래서 에르제가 2장로를 잡으라고 우리를 보낸 건가?”
“그렇습니다.”
라하임은 충심으로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로드의 혜안은 저로서는 감히 예측도 할 수 없으니까요.”
“우리 애들도 너희처럼 충성심이 좀 깊었으면 좋겠다.”
지서후는 입술을 비죽 내밀며 투덜댔다.
“우두머리에서 내려온 이후에 배우 활동을 하면서 인간들하고 친하게 지내니까 아주 칠색 팔색을 하더라.”
“음.”
라하임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로드와의 친분을 동족들에게 말씀하셨습니까?”
“말하지는 않았는데, 이미 다들 눈치챘을걸? 걔랑 나랑 친하다고 소문이 좀 퍼진 것 같던데.”
“늑대인간들은 그런 거에 별로 관심 없지 않습니까?”
“알 놈들은 알 거야. 친하게 지내지만 않을 뿐이지 지구에서는 인간들 사이에 섞여 지내기는 해야 하니까.”
“그렇습니까.”
라하임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곧 도착이군요.”
그 말에 지서후가 백미러로 플랑과 이룸을 보며 물었다.
SUV였음에도 뒤를 꽉꽉 채운, 두 뱀파이어는 한 줄씩 차지해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뒤에 깨워야 하는 거 아니야?”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라하임의 말에 지서후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굳이 더 묻지는 않았다.
그렇게 15분가량 지난 뒤, 그들은 어느 마을에 들어섰다.
도로 양옆으로 늘어서 있는 상가와 거주 구역은 분명 평범한 일반인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도로 끝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확실히 심상치 않았다.
“음.”
그리고 그 기운을 느낀 플랑과 이룸이 눈을 부스스 뜨며 몸을 일으켰다.
살기도 아닌, 애매한 기운을 감지하고 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이를 확인한 지서후가 헛웃음을 터뜨리고는 도로 옆에 있는 공간에 차를 세웠다.
저들의 별장으로 차를 타고 대놓고 들어갈 수는 없었기에 남은 거리는 도보로 이동해야 했다.
그들의 걸음 속도로 대략 3분.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평범한 인간들의 숫자는 점차 줄어들었다.
그렇게 걸어가던 도중, 지서후가 킁킁 냄새를 맡으며 이마를 찌푸렸다.
“결계다.”
“그러네요.”
이를 같이 눈치챈 라하임이 허공에 손을 가로로 그었다.
분명 눈앞에는 울창한 산림이 있었으나, 마치 물 위에 비친 듯이 일렁거렸다.
“부수면 되나?”
플랑이 목과 손목을 뚜둑 풀며 물었다.
“잠시만.”
그러나 라하임은 고개를 저으며, 결계에 손을 올리고 집중했다.
‘뱀파리스 지부에 있을 때, 그들의 술법을 연구해 두기는 했는데.’
뱀파이어와 뱀파리스는 피를 매개로 술법을 사용했으나, 이를 활용하는 방법이 미묘하게 달랐다.
플랑의 괴물 같은 힘으로 뚫고 들어가는 방법도 있으나, 그렇게 되면 침입 사실을 입구에서부터 대놓고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행히 아는 거야.’
라하임은 입꼬리를 올리고, 결계에 그들이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었다.
“결계가 이곳에 집중되지 못하도록 만들었어. 오래는 유지하지 못하니까 빨리 들어가.”
라하임의 말에 플랑과 이룸이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갔고, 지서후도 긴장한 기색으로 결계 안으로 발을 디뎠다.
마지막으로 라하임까지 들어오고 난 뒤, 그는 고개를 들어 결계 안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결계 밖에서 볼 때는 산림이었으나, 지금은 그 사이에 커다란 별장 하나가 시야에 잡혔다.
“갑시다.”
라하임은 그렇게 말하고 앞장섰다. 그러고는 빠르게 전략을 설명했다.
“별장에는 금방 도착할 겁니다. 2장로는 보통 2층에 있는 본인 사무실에서 하루를 보낸다고 하니, 사무실 위치를 파악해서 그쪽으로 곧장 침입하는 게 나을 겁니다.”
“너희는 변해서 날아가면 되지만, 나는 벽을 타야 할 텐데 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
“박쥐로 변해도 뱀파리스들은 바로 눈치챌 겁니다. 조건은 다르지 않아요.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알았어.”
지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후우, 다시는 모기라고 놀리지 말아야지. 귀찮은 거 진짜 질색이야.”
그렇게 그들이 눈에 띄지 않게 나무들 사이를 지나쳐 별장을 바로 코앞에 두었을 때였다.
그들의 위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쥐새끼들이 숨어들어 왔네?”
“……!!”
2장로가 나무 위에 기대 누운 채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목소리만큼이나 나른한 표정이었으나, 눈빛만큼은 살기로 가득했다.
플랑은 자신이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얼굴을 하며, 이내 전투태세를 갖췄다.
“진짜 노역형이 되게 생겼는데.”
지서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피부의 털을 바짝 세웠고.
“아, 이제 싸우는 겁니까?”
이룸은 플랑의 옆에서 푸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쾌활하게 말했다. 날 선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태도였다.
‘하여간, 저 싸움광들.’
라하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2장로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레이.”
“안녕, 라하임. 오랜만이지?”
레이라 불린 여자는 나뭇가지 위에서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다리를 꼬며 엄지손가락으로 새빨간 입술 위를 훑었다.
“얌전히 피만 넘겨주고 가면 목숨은 살려 줄 의향도 있는데. 라하임, 너만.”
레이의 히죽 웃는 입이 손등 옆으로 삐져나왔다.
‘곤란해졌는데.’
원래는 방심하고 있을 2장로 레이를 빠르게 제압해 납치할 예정이었다.
무력보다는 뛰어난 두뇌로 2장로까지 올라간 레이였기에 충분히 가능한 전략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먼저 덫을 치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
‘아무리 머리가 좋다고 해도 예지 능력이 있는 건 아닐 텐데.’
라하임은 미간을 좁히며 그녀에게 물었다.
“우리가 오는 건 어떻게 알았지?”
“읏차~.”
레이는 나뭇가지에서 훌쩍 뛰어내리며 대답했다.
“뻔한 답을 질문하네? 이제 막 새롭게 개편된 조직에 정보가 새지 않을 리 없잖아?”
“……배신자가 있었나.”
“아니면 처음부터 내가 심어 두었겠지.”
“……하.”
헛웃음을 터뜨린 라하임이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혼자야?”
“누가 올지 뻔히 아는데, 그럴 리가 없잖니.”
레이가 손짓하자, 그 뒤로 뱀파리스들이 나타났다.
그들을 바라보는 라하임의 눈 밑이 약하게 떨렸다.
‘……레이의 힘으로 기척과 존재감을 숨기고 있었던 건가.’
그렇게 생각한 라하임은 기쁨과 아쉬움의 표정을 동시에 지었다.
‘결국 로드의 말씀대로 됐구나.’
라하임은 후, 하고 숨을 뱉어 냈다.
이곳에 오기 전, 로드는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 미리 예측을 했다.
― 이제 막 개편된 조직이야. 일족을 제외한 다른 뱀파이어들을 백 프로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이지. 그런데, 일반 뱀파리스도 아니고 2장로를 잡으러 갈 때는 어떨까?
― 당연히 들킬 거야. 그러니까 그냥 당당하게 잡으러 가. 레이 성격이면 피하지 않을 테니까 결계도 그냥 플랑의 힘으로 부수고 처리해.
결계를 들키지 않게 해제하느라 들어간 자신의 피를 생각하면, 결론적으로는 로드의 말을 따르는 것이 맞았다.
실제로 레이는 그들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확신을 했던 로드와는 다르게, 자신은 혹시나 아닐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을 뿐.
‘결국은 로드의 말씀이 맞았지만.’
그리고 저 말에 이어 로드는 한 가지 말을 더 덧붙였다.
그들이 미리 알고 있다면 2장로를 납치하는 일은 어렵지 않느냐고 자신이 물어보았을 때였다.
― 그래서 알든 모르든 상관없을 녀석을 붙여 줄 거야. 넌 안내만 해도 괜찮을걸.
라하임은 에르제의 말을 상기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하아암.”
길게 하품하는 지서후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휘었다.
늑대인간 특유의 향취가 바닥에서부터 훅 올라왔다.
하품을 한 탓에 새어 나온 눈물을 닦으며, 그가 라하임에게 물었다.
“얘기 끝났어?”
“…….”
레이보다 더 태평한 모습에 라하임은 몸의 긴장이 한순간에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라하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래.”
지서후는 어깨를 몇 번 돌려 팔을 풀고는,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아, 참고로 뒤로 도망가는 녀석은 너희들이 알아서 처리해라. 다 쫓아가서 패는 건 귀찮아.”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답하는 라하임의 시선이 지서후의 어깨 너머, 30은 넘어가는 뱀파리스들을 훑었다.
“새로 영입한 뱀파이어야?”
그들 사이에 위치해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 있던 레이가 지서후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아닌데.”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찍으며 대답한 지서후는 이내 파인 구멍에 발끝을 집어넣었다.
꾸욱―.
발가락 끝에 힘이 들어가니, 그의 허벅지 근육이 조여질 대로 조여졌다.
활시위처럼 휘어졌던 지서후의 몸이 반동과 함께 쏜살같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레이와 거리가 꽤 떨어져 있었음에도, 그곳에 도달하는 데에는 2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
레이의 눈이 놀란 듯 동그랗게 커졌다.
그녀는 빠르게 상체를 숙여 미친 속도로 날아오는 지서후의 주먹을 피했다.
뒤늦게 따라온 바람이 레이의 긴 머리카락을 위로 흩날렸다.
“……늑대인간.”
그대로 몸을 굴려 옆으로 피한 레이는 입술을 짓이기며 지서후를 노려보았다.
“너로구나. 늑대인간 주제에 에르제와 친구 먹었다던 녀석이.”
“얌전히 잡혀 주면 안 될까? 웬만하면 땀 흘리기 싫은데.”
“하.”
레이는 나머지 뱀파리스들에게 눈짓을 하며 코웃음을 쳤다. 조금 전과는 달리 그다지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은 아니었다.
“입 닫아. 개X끼 냄새가 나니까.”
“…….”
지서후의 눈썹이 꿈틀, 하고 움직이며 살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어이, 모기. 여기에 샤워할 곳이 있어야 할 거야.”
레이의 눈이 붉게 타오름과 동시에.
지서후의 눈동자에서 노란 동공이 세로로 길게 찢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