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2화
162화
평온한 에르제의 표정과 다르게, 박장호는 불안한 눈빛을 띠었다.
“뭐야, 방송에 나가도 되는 거야?”
그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묻자, 에르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은데요?”
“……왜 괜찮은데? 너희 소속사 대표님…… 아니, 애초에 아이돌은 연애 이런 거 되게 민감하지 않아?”
민감한 부분 아니냐고 말하는 것치고는…… 아까 자연스럽게 연애 경험 있냐고 물어봤던 것 같은데.
‘편집 요청이라도 하려는 생각인가.’
하지만 어차피 문제될 내용은 아니었기에 에르제는 어깨를 으쓱했다.
“전생 얘기예요.”
“그러니까 너는 아이돌……. 어? 전생?”
“네, 전생이요.”
“보통…… 이럴 때는 팬들밖에 없다거나, 뭐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나……?”
박장호의 표정이 잠시 멍하게 바뀌며 중얼거렸고, 여학생들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에 전생이 어디 있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에르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했다.
“전생에는 종…… 아니, 직업 특성상 그래야 했어요.”
어깨를 으쓱한 에르제는 문제없지 않느냐는 투로 말했다.
“그러니까 편하게 이야기해 보세요. 어떤 게 걱정인 거예요?”
“앗, 네.”
그제야 다시 돌아온 본론에 여학생이 “큼!” 하고 헛기침을 하며 웃던 표정을 바꾸었다.
“왜 그런 말 있잖아요.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그래서 남자친구의 마음이 변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 뒤로도 몇 분을 더 이야기하긴 했지만, 결국 의미는 같았다.
남자친구의 변심이 걱정된다는 거.
다만, 아직 어린 학생들이라 그런지 귀여운 수준이었다.
‘300년 전후의 뱀파이어들을 상상하면서 듣기는 했는데, 지구의 문화와 다른 게 좀 걱정이네.’
여태 봤던 드라마에서는 학생들의 연애를 다룬 것은 보지 못했기에 그쪽 기억도 그리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없었다.
“꼭 그렇다고 단정을 지을 수는 없답니다. 남자친구를 믿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는 게 중요하고요.”
자칭 ‘연애의 신’이라던 박장호의 조언도 그리 믿음직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답답하기는.’
아직까지 상담이나 조언을 시작하지도 않은 에르제는 박장호를 보며 혀를 끌끌 차다가, 슬슬 자신이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곳에서 지낸 지도 어언 1년하고도 몇 개월.
어쩌면 스스로 너무 걱정을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으니까.
“그럴 때는 역시 남자친구의 마음을 완벽하게 사로잡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마음을 완벽하게 사로잡아요?”
“네. 사랑의 포로로 만드는 거죠.”
“사랑의…… 포로?”
“다른 인간 여자에게 관심을 가질 수도 없게 매혹하는 거예요.”
“……네?”
여학생의 반문에, 에르제는 얼른 단어를 수정해 주었다.
“유혹이요.”
“아, 넵.”
잠깐 당황했던 여학생은 유혹이라는 말에 눈빛을 빛냈다.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음, 역시 초보자가 하기 좋은 것은 눈빛인데, 이렇게.”
에르제가 눈매를 길게 늘어뜨리며, 턱을 사선으로 비틀었다.
약간 아래서 위를 올려다보는 구도였는데, 에르제의 외모와 합쳐지자 유혹이라는 단어가 찰떡같이 이해되는 모습이었다.
“헙.”
“헉.”
여학생과 박장호의 반응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여학생들 쪽은 감탄이었고, 박장호 쪽은 기겁이었다.
그는 황급히 양 손바닥을 펼쳐서 에르제의 얼굴을 모두 가렸다.
“애들한테 뭘 가르치고 있는 거야, 너는!”
“사랑의 포로로 만드는 비법이요.”
“그러니까!”
“포로보다는 노예가 더 나을까요?”
태연한 에르제의 반응에, 박장호는 계속 그의 얼굴을 가린 채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이러면 카메라에 안 잡히는데.’
결국 어쩔 수 없이 에르제가 표정을 풀자, 그제야 그는 손을 치워 주었다.
“요렇게.”
“야……!”
박장호의 손이 다시 가리기 전에 다시 한번 표정을 지어 주어 속성 과외를 마친 에르제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하면 되나?”
“오! 비슷해, 비슷해.”
“아니, 그걸 또 연습하고 있으면 어떻게 해요!”
웃음을 참던 여학생들이 박장호의 유교 반응에 결국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학생들의 상담과 조언(?)이 끝나고, 두 여학생은 손을 흔들며 깡총깡총 밖으로 뛰어나갔다.
“재미있게 놀다 와요.”
“…….”
에르제는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지만, 박장호는 무언가 불만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17살 애들한테 유혹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 너는.”
“이거요?”
에르제가 다시 한번 매혹의 눈빛을 박장호에게 쏴 주니, 그는 놀라서 몸을 확 뒤로 젖혔다.
“어……!”
그 반동으로 의자째 뒤로 넘어가려는 박장호의 모습에 에르제가 왼팔을 뻗어서 그의 허리를 잡아 끌어당겼다.
“고, 고맙다.”
졸지에 허리를 잡혀 끌려온 박장호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고.
“실례합니…….”
그 순간, 텐트 문을 열고 들어오려던 남학생이 천을 반쯤 걷은 채로 딱 굳어졌다.
“죄송합니다.”
예의 바른 남학생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천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사라졌다.
“자, 잠깐만요!”
“?”
박장호가 애타게 손을 뻗었으나, 그 남학생은 아르바이트가 끝나기 전까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 * *
― 와! 드디어 알바 몬스터 시즌 2 함!!
― 여기는 색다른 체험 많이 해서 재미있던데, 오늘은 뭔가 의미 있는데?
┖ 그러게. 청소년들 상담해 주는 거, 사실 국가에서 제대로 못 하고 있잖아.
┖ 그건 애들이 말을 안 해서 그런 거지.
┖ 뭔 소리임. 그렇게 말을 못 하게 만드는 세상이 문제인 건데;;
┖ ㅇㅈ
알바 몬스터 시즌 2 첫 회는 으레 다른 TV 예능이 그렇듯 본 방송 시청률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모바일 재방송이나 알바 몬스터 제작진 측에서 무튜브 용으로 제작한 쇼츠 등은 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뜰 정도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출연자들이 진지한 모습으로 청소년들의 고민을 상담해 주는 모습은 ‘누구누구 클래스’ 등의 이름으로 재탄생하여 알고리즘의 바다를 떠돌기도 했다.
그리고 ‘유혹의 신 서은우’도 마찬가지였다.
― 나는 왜 학생이지 않았던 것인가. 왜 빨리 태어난 것인가!! 나도 저 앞에서 저 눈빛 받아 보고 싶다고. ㅠㅠㅠ
― 풋풋함에 알싸함을 한 스푼 추가해 보았습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
― 진짜 매번 알바 몬스터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서은우는 생각 회로가 남들이랑 조금 다른 것 같음. ㅋㅋㅋ
┖ 저번에 박장호 고문 영상 봤냐며. ㅋㅋ ㅠㅠㅠㅠ
┖ 좋은 뜻으로 하는 고문이었잖아. ㅋㅋㅋ
이브들은 이미 내성이 생긴 만큼 에르제의 유혹 눈빛에 관한 댓글을 주로 달았고.
다른 알바 몬스터의 시청자들은 그냥 웃긴 장면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다.
물론.
“아직 어린 학생들인데, 뭘 가르치는 거냐. 진지하지 못하다. 너무 장난을 치는 것 아니냐.”
스마트폰을 들고 있던 인영이 어깨를 으쓱하며 그것을 에르제에게 내밀었다.
“안 좋은 말도 꽤 있네요.”
“학생들은 처음이다 보니.”
에르제는 코를 긁적이며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나름대로 진지하게 대답해 준 건데요.”
“뭐.”
상대방은 스마트폰을 회수해 가며, 가만히 턱을 괴었다.
“그래서, 나는 왜 보자고 한 겁니까? 서은우…… 아니, 에르제 로드님? 이거 보여 주려고 보자고 한 건 아닐 것 같은데요.”
“아, 겸사겸사 홍보도 한 거예요. 아무래도 제가 나오는 예능이라서요.”
그의 말에 제이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저희가 서로 신곡 홍보하거나, 예능 나온 모습 보여 줄 사이는 아니지 않나요? 특히 요즘에는 더욱.”
“그건 모르는 일이죠.”
예상 밖의 말에 제이가 몸을 뒤로 젖혔다.
“으음.”
현재 그들이 있는 곳은 예전 장진규와 제이를 처음 만났던 카페.
나름대로 완벽한 변장을 하고, 주변에 소리가 들리지 않는 구석 자리로 왔기에 아직까지 그들을 알아보는 이들은 없었다.
“무슨 뜻입니까, 그게.”
“앞으로 선배가 어떻게 할지에 달렸다는 뜻이에요.”
에르제는 싱긋 웃으며, 제이와는 반대로 상체를 앞으로 숙여 그를 유심히 관찰했다.
‘확실히. 저번보다 힘이 그렇게 많이 늘어나지는 않았어.’
그만큼 라하임과 바란이 잘 움직여 주고 있다는 뜻이었다.
제이의 먹이가 될 가능성이 높은 뱀파리스들의 보호.
먼저 움직임을 읽고 선제 타격한 효과가 지금 눈앞에 증거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제이가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선배는 악마의 존재를 믿어요?”
“……?”
갑자기 튀어나온 악마라는 단어에 제이가 미간을 좁혔다.
“악마요? 그…… 등에 날개 달리고, 머리에 뿔 달린 뭐 그런 거?”
‘뭔지 모르는구나.’
하지만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대화가 너무 길고 복잡해질 듯해서 에르제는 그냥 고개를 끄덕거렸다.
“비슷한 거예요.”
“……뭐 악마교라도 전도하려고 온 겁니까? 그쪽 뱀파이어 아니었나?”
“전도는 아닌데, 선배는 오늘부터 악마의 존재를 믿어야 해요.”
“…….”
“부정적인 감정들이 모이고 모여서 태어난 마물들. 악마는 그런 마물들이 계속해서 성장해 만들어지는 존재예요.”
에르제는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를 약하게 두들겼다.
“그리고 당연히 모든 악마들의 정점에 위치하는 것도 있겠죠. 그걸 대악마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다른 악마들과 다르게 인간계에 머무르지 않아요. 인간계에 존재하는 에너지로는 그들의 힘을 담을 그릇이 너무 약하니까.”
“뭔 소리를…….”
“끝까지, 들어요.”
단호하게 검지를 입에 가져간 에르제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인간계에 현현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에너지와 계약이 필요해요.”
그렇게 말한 에르제는 입술에 가져갔던 검지를 제이의 심장 부근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에이리스가 당신 몸에 키우고 있고요.”
“……아까부터.”
제이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팔짱을 꼈다.
“계속 알 수 없는 이야기만 하는 것 같은데, 진짜 전도하러 온 거 아닙니까? 악마교라도 세웠어요?”
계속 적대적으로 나오는 제이의 태도에 에르제의 표정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데 캄, 김지원 그리고 그 외의 뱀파리스들.”
“……!”
“전부 다 에이리스가 시켰을 텐데요. 신인상 때 무대를 방해한 건 그걸 들키지 않기 위한 미끼였을 거고.”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말하려던 제이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그의 얼굴에는 괜히 반응을 보였다는 후회가 묻어 나왔다.
“역시.”
덕분에 확신하게 된 에르제가 한숨을 내쉬며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에요. 그러다가 그쪽.”
그러고는 제이의 얼굴을 뚫어질 듯이 바라보았다.
“죽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