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화
161화
1월까지는 멤버 그 누구도 예능에 고정 출연하고 있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토트윈이 TV에 나오는 빈도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3집 앨범의 활동기도 끝이 났고, 간간이 켜는 라이브로 소식을 전하는 정도.
그러나 2월이 되었을 때.
이브들이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프로그램의 시즌 2가 시작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알바 몬스터’의 시즌 2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은 헛소문이 아니었다.
실제로 에르제는 현재 알바 몬스터 시즌 2의 첫 회 촬영을 위해 와 있었으니까.
“다들 오랜만이야.”
“그러게요. 얼굴 까먹을 뻔했잖아요.”
“평소에 연락하지 그랬어?”
출연자들은 서로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했다.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일단 겉으로 보이는 분위기는 그랬다.
에르제도 대충 분위기에 휩쓸려 정원영, 강보라 등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고 있으니, 멀리서 우다다다 소리가 들렸다.
“퀴…… 아니, 에르…… 아니! 서은우 님!”
장미영이었다.
그녀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열심히 뛰어와서는 에르제의 양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러고 보니 장미영에게 뱀파이어 쪽 진영에 들어가 있으라고 해 놓고는 특별히 연락을 하진 않았다.
그런데도 별말 없이 자신을 따르는 게 기특해서 에르제는 반갑게 웃어 주었다.
“오랜만이네요.”
“아.”
잠시 멍하니 에르제를 쳐다보던 장미영이 고개를 흔들며 배시시 웃었다.
“저는 오랜만 아닌데!”
“?”
“토트윈 음악 방송이랑 시상식에 다 참석했고, 최근에 했던 드라마도 본방 봤거든요!”
“우와!”
그 말에 옆에 있던 정원영이 대신 놀라 주었다.
“뭐야? 미영이가 은우를 좋아했나?”
“아뇨! 저는 성덕이에요. 후후.”
“팬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어디 살겠나. 미영이는 좋겠네. 이제 매주 볼 거 아니야.”
“그러게 말이에요.”
정원영의 말에 볼멘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가장 마지막으로 도착한 것으로 보이는 박장호였다.
“멤버 교체는 안 하나?”
장미영의 매료는 진즉에 풀렸지만, 이전의 기조대로 여전히 틱틱대는 말투였다.
그래도 이전처럼 싫어하거나 적대하는 건 아니라서 박장호는 픽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에르제는 검지와 엄지만을 이용해 박장호의 손가락을 잡고 흔들었다.
“아오.”
그 모습에 박장호가 손을 휙 채 갔다.
그렇게 박장호와 강제로 악수를 한 뒤에 곧 PD가 그들을 불러 모았다.
“다들 오랜만에 뵙는 거죠? 저도 마찬가집니다. 다들 반갑습니다. 시즌 2도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와아아아!”
호응하지 않았다가는 무슨 불이익이 있을지 몰라서 출연자들은 열심히 박수를 치고 호응해 주었다.
“다들 눈치가 많이 빨라지셨네요.”
PD는 푸하하, 웃음을 터뜨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시즌 2의 첫 시작인 만큼, 시청자들도 많은 기대를 하고 있겠죠?”
이미 뭘 하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정원영과 강보라는 모르는 척하며 초반 분량을 뽑았다.
“……벌써 불안해지는데요.”
“얼마나 힘든 걸 시키시려고……!!”
정원영의 말에 PD가 검지를 위로 치켜세웠다.
“오늘 촬영은 몸이 힘들지는 않을 겁니다.”
“그게 더 불안한데!?”
“대신 책임감이 아주 막중한 일입니다.”
PD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오늘 촬영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주었다.
“오늘 여러분들이 할 일은 청소년 코칭 아르바이트입니다.”
“청소년 코칭이요?”
“그런 알바가 있어요?”
“그럼요.”
PD는 촬영 전에 주었던 대본과 콘셉트에 대해 더욱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어린 학생들의 진로나 고민 같은 것들을 상담해 주면 되는 건가.’
그러나 제작진 측에서 상담에 참여할 학생들을 따로 고른 것이 아니라 랜덤으로 텐트 안에 들어오는 형식이라 무슨 고민을 들고 올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텐트는 이곳 여기저기 랜덤으로 설치가 완료되었고요. 겉으로 봐서는 여러분들이 그 안에 있다는 티는 나지 않을 겁니다.”
PD는 출연진들을 쓱 둘러보며 둘씩 짝을 지어 줬다. 하나둘씩 2인 1조가 되어 갔고, 곧 에르제의 이름도 불리게 되었다.
“작년에 시즌 1 할 때, 시청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케미죠.”
“……!”
에르제의 옆에 서 있던 박장호가 순간 몸을 움찔했다.
“박장호 씨랑 서은우 씨. 두 분이 이쪽에 위치한 텐트로 가시면 됩니다.”
PD가 지도 위에 손가락을 찍었고, 박장호는 울상을 지었다.
“저희가 인기가 많았던 케미예요? ……왜?”
“친형제 재질이라고 좋아하시던데요?”
“맞아. 형 놀리는 동생, 그런 느낌……?”
“나도 방송 보면서 엄청 웃었는데.”
박장호의 작은 반항은 PD와 다른 출연진들에 의해 손쉽게 묻혔다.
에르제는 그런 그의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거렸다.
“오늘은 살살 할게요.”
“그냥 하지 마.”
그렇게 2인 1조로 팀이 나눠지고, 에르제는 박장호와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긴 책상에 둘이 나란히 앉을 수 있게 되어 있었고, 과자나 음료 같은 것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오늘 날씨는 꽤나 쌀쌀했기 때문에 소형 난로가 비치되어 훈훈한 공기를 유지하려는 노력도 엿보였다.
박장호는 외투를, 에르제는 검은색 코트를 벗어서 옆에 두었다.
“여기서 학생들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겁니까?”
박장호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제작진 측에 묻자, 카메라 감독이 손가락으로 OK 사인을 만들었다.
“근데 성인들이 들어오면 어떻게 해요?”
“아까 텐트 밖에 보니까 청소년 전용 상담 텐트라고 크게 붙어 있던데요.”
“아, 그랬어?”
“네. 평소에 관찰력이 그렇게 좋지는 않으신 편인가요?”
“야, 살살 한다며. 시작부터 달리면 어떻게 해.”
투덜대는 박장호에게 에르제는 손수 깐 달달한 과자를 먹여 주었다.
얼떨결에 받아먹은 박장호가 과자를 입에 문 채로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에르제는 싱긋 웃으며, 손바닥으로 과자의 남은 부분을 밀어 넣어 주었다.
손쉽게 박장호의 입을 틀어막은 에르제는 텐트의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생각했다.
‘청소년들 상담이라…….’
지구의 기준으로 에르제의 나이는 청소년들과 그리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제작진은 아이돌이라는 특수한 직업으로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고, 또 고생을 많이 했을 거라는 추측 아래 자신을 박장호와 한 팀으로 붙인 것일 터.
‘겉으로는 그렇기는 한데, 사실은 2,500년을 넘게 살았으니까.’
옆에 있는 박장호보다 삶과 인생에 대한 조언만큼은 훨씬 잘해 줄 것은 분명했다.
다만 조금 걱정되는 것은.
‘지구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게 아니라서 세대 공감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
그래서 일단 에르제는 카테이아 대륙의 300년 전후의 뱀파이어들을 상담해 준다는 생각으로 임하기로 했다.
마을 밖을 나가 보지 못한 300년 전후의 뱀파이어들이 이곳 청소년들과 제일 비슷할 것 같아서였다.
상황적으로나 정신의 미성숙함이나 그런 부분들이 말이다.
그렇게 에르제가 진지한 자세로 임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 텐트 밖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이거?”
“야, 지서야. 한번 해 볼래?”
“나 타로나 그런 거 안 믿는데?”
“상담이라잖아. 타로랑 다르지.”
“그런가?”
그렇게 들어올까 말까 고민하는 것 같아서, 과자를 다 먹은 박장호가 자신 있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꽤 오래 기다린 것 같은데, 슬슬 저희도 개시해야 하지 않아요?”
원래 기획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었으나, 다른 텐트에 비해서 이곳은 아직 상담을 시작하지도 못했기에 제작진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르제도 그의 뒤를 따라 일어났지만, 박장호가 손을 내저으며 만류했다.
“너까지 일어날 필요 없어.”
그렇게 말한 박장호는 양옆으로 열 수 있는 텐트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엇.”
깜짝 놀란 소리가 들려왔다가, 이내 의문 섞인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누구셨지? 나, 분명 TV에서 본 것 같은데.”
“어! 맞아! 나도! 혹시 이거 그건가? 연예인분들 나오는 그거?”
“하하하, 저 몰라요?”
“알 것 같은데……!! 아, 알아요! 박……!”
“…….”
씁쓸함으로 가득한 박장호의 얼굴이 다시 텐트 안으로 들어오자, 이를 찍고 있던 카메라가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에르제가 오, 하는 얼굴로 엄지 척을 해 주었다.
“역시, 개그맨이시라 못 알아보는 거로도 웃음을 주시네요.”
“야…….”
순간 벌게진 박장호의 얼굴 뒤로, 앳된 두 얼굴이 등장했다. 서로 굉장히 친한 것처럼 보이는 두 여학생이었다.
“안녕……하세요?”
조심스럽게 텐트 안으로 들어온 두 여학생은 박장호 너머 앉아 있는 에르제를 발견하고 그만 입을 틀어막았다.
“와악!!”
“어떻게 해! 토트윈……!!”
한 여학생은, 옆에 있던 친구의 어깨를 주먹으로 때리기까지 했다.
“은우 오빠! 팬이에요!!”
“정말요?”
에르제가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 후다닥 앉는 학생들을 바라보자, 박장호가 쓸쓸하게 그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여기는 개그맨 박장호 님이에요.”
“아, 맞아!”
“저희, 알고 있었어요!”
능숙한 거짓말에 박장호는 다시 한번 상처를 입은 표정을 지었고, 학생들은 그게 또 재미있는지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저, 연예인 처음 봐요!”
“와, 진짜 잘생기셨어요. 어떻게 이러지?”
“제 얘기죠?”
“……네!”
박장호의 인터셉트에 여학생의 대답이 한발 늦게 터져 나왔다.
“파, 파이팅!”
옆에 있던 여학생은 두 팔을 아래로 내리며 응원까지 해 주었다.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에서 본격적으로 두 사람의 첫 상담이 시작되었다.
어느 정도 질문의 가이드라인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에르제는 대본의 내용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두 분 나이가 어떻게 돼요?”
“아, 저희는 17살이에요. 이번에 고등학교 들어가요!”
“그렇구나. 어디 가는 길이었어요?”
아직 고등학교에 입학할 날짜는 아니었으므로, 두 여학생은 사복을 입고 있었는데.
어디 놀러 가는 것인지 한껏 꾸미고 온 티가 나서 물어본 질문이었다.
“저희 놋데월드에 가는 중이었어요!”
“둘이?”
“네. 히히.”
텐트가 지하철 근처에 있었기에 역으로 향하던 도중에 이곳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재미있겠다.”
에르제가 저번에 했던 놀이공원 아르바이트를 떠올리며 미소를 짓자, 박장호가 질문을 이어 갔다.
“요기 텐트 앞에서 봤겠지만, 저희가 상담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거거든요.”
“헉, 이거 알바 몬스터예요?”
무슨 프로그램인지 대번에 알아챈 여학생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에르제의 얼굴만 보고 있다가, 뒤늦게 제작진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잠깐 기다려 주니, 여학생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고민거리를 꺼냈다.
“사실, 제가 남자친구가 있는데요.”
흥미로운 시작에 박장호의 상체가 앞으로 숙어졌다.
“이번에 서로 다른 고등학교로 가게 되어서 솔직히 많이 불안해요.”
“아아.”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었다는 듯, 박장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남자친구가 가는 곳이 남녀공학이에요?”
“네에.”
시무룩해진 여학생을 보던 박장호가 이내 에르제 쪽으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거는 또 연애 경험이 있어야 조언해 줄 수 있을 텐데, 은우는 연애해 본 적 있어?”
그의 말에 여학생들도 궁금하다는 듯이 눈을 반짝였다.
“저요?”
부담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에르제는 매혹적인 미소를 얼굴 가득 띠었다.
“저는 엄청 많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