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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60화 (160/307)
  • 제160화

    160화

    지서후는 그러고도 몇 가지 이야기를 더해 주었고, 에르제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그것에 대해 생각했다.

    결국 강제로 뱀파리스가 되었던 김지원은 누군가에 의해 죽었고, 죽기 직전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전화를 건 대상은 바로 자신. 지서후가 직접 통화 목록을 보여 주었으니, 틀림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에 D.D.랑 같이 연습할 때 왔던 전화야.’

    에르제도 통화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

    ‘살려 달라고 했던 전화.’

    그때는 112에 전화를 해야 하는지 119에 해야 하는지 헷갈렸지만 말이다.

    ‘그 상황에서 나한테 전화를 한 이유는 하나밖에 없겠지.’

    에르제는 미간을 좁혔다.

    ‘뱀파리스에게 쫓기고 있었고, 그들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

    그리고 지서후가 말해 주었던 것처럼, 김지원의 죽음의 형태가 미라 같았다고 하면 더욱 확실해진다.

    그들은 같은 동족이라고 하더라도 피를 남기는 법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의문이 남았다.

    ‘왜?’

    김지원은 왜 뱀파리스에게 쫓기고 있었던 걸까.

    그저 약육강식, 강자지존의 세계에서 잡아먹혔던 걸까.

    ‘……잡아먹힌다.’

    문득 든 생각에 에르제가 그 말을 곱씹었다.

    ‘잡아먹고, 잡아먹힌다.’

    뱀파리스들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일종의 지침서이자 누구라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설마?’

    에르제는 최근 주차장에서 마주쳤던 제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원래는 쿼터라서 힘이 약했던 녀석이었는데, 저번에 보았을 때는 다른 뱀파리스라도 된 듯한 모습이었다.

    ‘분명 힘이 강해져 있었는데.’

    그게 만약 동족을 흡혈해서 강해진 거라면?

    ‘……김지원을 제이가?’

    에르제의 손가락이 차창을 톡톡 두들겼다. 깊은 생각에 빠질 때 나오는 그의 버릇이었다.

    김지원을 뱀파리스로 만들었던 것은 제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지원의 힘을 제이가 흡수한 거라면?

    ‘그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에이리스의 명령이야.’

    그쪽으로 생각의 물꼬를 틀자, 조금 더 확실한 증거가 떠올랐다.

    에이리스와 처음 지구에서 마주치게 되었던 날, 그녀는 죽어 가던 데 캄을 넘겨 달라고 이야기했다.

    라하임을 풀어 주는 대가로.

    ‘……데 캄도 제이가 흡수하도록 하려고 했던 거야.’

    그리고 그 행위에 대한 결과를 알고 있는 에르제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저번에 신인상 사건은 미끼였어.’

    방송 쪽으로 시비를 걸어 신경을 다른 쪽으로 돌려놓고, 바깥에서 제이의 힘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지서후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른 채 그대로 당했을 것이 분명했다.

    ‘에이리스…….’

    무엇보다도 최악인 결과로 말이다.

    끼기기긱―.

    저도 모르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차창에 긴 손톱자국이 생겨났다.

    “로드.”

    아마 이를 눈치챈 라하임이 경고해 주지 않았다면, 그대로 차창에 구멍이 생길 뻔한 순간이었다.

    “……후우.”

    겨우 분노를 가라앉힌 에르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라하임.”

    “예, 로드.”

    “전쟁이 문제가 아닌 것 같다.”

    “……? 무슨 말씀이신지…….”

    “에이리스는.”

    에르제가 입술을 깨문 채 발음을 짓이겼다.

    “혈석을 제이의 몸에 키울 생각이야.”

    “설마, 그때처럼……!”

    운전대를 잡은 라하임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막아야 합니다.”

    “막아야지.”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주 오래전의 일을 떠올렸다.

    카테이아 대륙에 있을 때, 에이리스는 이와 같은 일을 했었다.

    본인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보내오던 뱀파리스 하나에게 지속적으로 먹이를 주었고, 결국 그 뱀파리스의 몸 안에서 혈석이 완성되었을 때.

    에이리스는 그를 죽여 혈석을 취했다.

    그리고 그날, 혈석을 매개로 현현한 대악마에게 자신은 목숨을 잃을 뻔했다.

    동시에 같은 것을 떠올리고 있던 라하임이 에르제와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날, 로드를 곧바로 영면에 들게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다른 종족들이 위기를 느끼고 대악마와 같이 싸워 주지 않았다면.

    “로드의 힘이 에이리스에게 전부 넘어갔겠지.”

    에르제는 후, 하고 숨을 내뱉었다.

    “그렇게 됐으면, 미친 황제가 나타나기 전에 에이리스가 먼저 똑같은 짓을 했을 거야. 혹은…… 대악마가 그 이후에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르는 일이고.”

    “……예.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에르제는 차창 너머 평온한 세계를 바라보았다.

    ‘……지구에서 또 대악마를 불러낼 생각인 건지.’

    그것도 아니면, 또 다른 정신 나간 계획을 꾸미고 있는 중인 건지.

    뭐가 되었든, 같은 일이 반복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멤버들도 좋았고, 아이돌을 하는 지금의 생활도 좋았으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그 방향성 하나로 움직이고 있기도 했고.

    ‘제이…….’

    또 다른 희생양이 되어 버린 녀석의 얼굴이 창가에 비쳤다.

    “……우리도 계속 똑같을 수는 없겠지.”

    에르제는 백미러에 비친 라하임과 눈을 마주쳤다. 에르제의 눈에 씁쓸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에이리스가 그렇게 된 건 내 잘못이지만, 언제까지 거기에 얽매여 있을 수는 없으니까.”

    “…….”

    “먼저 움직여야 해.”

    전에 윤소희와 이야기를 했을 때에는 뱀파리스 쪽에서 무얼 노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에 조심스러웠지만, 지금은 그쪽이 노리고 있는 바가 명확해졌다.

    최악이라 생각했던 전쟁이 아니라……. 그보다 더 최악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대악마를 불러낼 계획.

    “매개체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으니까.”

    라하임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그는 지금까지 에르제가 했던 생각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누구입니까?”

    “제이.”

    “제이…… 라면, 혹시 LAK의 제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

    에르제는 입술을 아래로 짓누르며 말을 이었다.

    “제이는 내가 만날 확률이 높으니까 나한테 맡기고, 너는 다른 일을 해 줬으면 해.”

    “하명하십시오, 로드.”

    “제이가 힘을 키울 수 없도록 만들어. 너도 내가 오기 전까지 그곳에 있었으니까 무슨 의미인지 알지?”

    “예.”

    라하임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상 저희가 전쟁의 빌미를 제공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이것저것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니까요.”

    “……그렇지.”

    “뱀파리스 쪽에 제이의 먹이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이들을 빼앗아 오도록 하겠습니다.”

    “응. 일단 조직 개편은 어느 정도 된 것 같으니까 문제는 없겠지. 마녀들이 준 물건들도 아끼지 말고 사용하고.”

    “예, 로드.”

    라하임은 결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액셀을 밟고 있는 발에 힘을 주었다.

    * * *

    이면의 세계가 치열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과 비슷하게 이쪽 세계도 마찬가지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에르제의 촬영까지 모두 끝나고 난 뒤였기에 장 대표가 본격적으로 앨범 준비를 하자고 말을 꺼낸 것이다.

    그리고 앨범 준비와 관련해서 장 대표는 예상되었던 계획을 꺼내 들었다.

    “너희가 벌써 3집 앨범까지 낸 상태라 곡수가 그렇게 부족하지는 않단 말이지.”

    장 대표는 회의실에 앉아 있는 토트윈을 보며 운을 뗐다.

    “첫 콘서트, 이번 4월에 열어 보자.”

    “4집 앨범도 만들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한 거 아니에요?”

    윤치우의 질문에 장 대표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었다.

    “내부적으로는 이미 진행하고 있었거든. 그러니까 너희들은 콘서트에 부를 곡들이랑, 콘서트에서 어떻게 할지 그런 것들만 신경 쓰면 돼. 나머지는 작년부터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넵.”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 대표가 말을 이었다.

    “커버곡 하고 싶은 거 있으면, 윤이한테 말해서 알려 주고.”

    “알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내가 아까 얘기했지. 4집 앨범 준비하자고?”

    장 대표는 괴었던 턱을 빼며 손가락을 튕겼다.

    “4집 앨범 타이틀곡을 콘서트에서 선공개하는 형식으로 하자고.”

    “서프라이즈로요?”

    “응. 루머야 돌겠지만, 그것까진 어떻게 막을 수는 없을 거고. 일단 오피셜로 발표하지는 않을 생각이야.”

    다른 아이돌이나 가수들이 콘서트를 열 때 은근히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기에 다들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은 것 같습니다.”

    “저도 찬성입니다. 앨범에 대한 기대감도 높일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토트윈의 표정은 실시간으로 죽어 가고 있었다.

    저 말은 결국.

    ‘4월에 있을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5월에는 4집 앨범을 내겠다는 뜻이네.’

    그런 의미였으니까.

    여유로운 표정의 에르제와는 달리 나머지 멤버들은 벌써부터 어두운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멤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는 듯, 장 대표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미 고정적으로 출연하는 예능이 있는 사람은 어쩔 수 없겠지만.”

    잠시 장 대표의 시선이 에르제에게 머물렀다가 떨어졌다.

    “다른 사람들은 콘서트랑 앨범 준비에만 매진하도록 해. 뭐, 본인이 원하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강요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계속해서 TV에 얼굴을 비춰야 한다고 생각했던 멤버들은 의외의 말에 당황했다가 이내 편안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 대표가 껄껄 웃었다.

    “신인상도 받았고, 다른 데서는 올해의 아티스트 상도 받았잖냐. 휴식…… 이라고 말하기는 조금 미안하다만, 그래도 좀 쉴 때도 있어야지.”

    “쉬는…… 건가요?”

    태현우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지만, 곧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슬프게 주억거렸다.

    “쉬는…… 거겠죠.”

    “콘서트와 앨범 퀄리티가 휴식 기간에 반비례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 부분은 조금 더 고찰해 볼 필요가 있겠네.”

    민주혁의 냉소적인 반응에 태현우의 표정이 조금 더 슬퍼 보인 것은 기분 탓이리라.

    그렇게 조금 더 콘셉트나 기타 사항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뒤, 콘서트에 관한 첫 회의는 끝이 났다.

    에르제를 포함한 멤버들은 회의가 끝난 뒤, 연습실로 가는 게 아니라 곧바로 숙소로 돌아왔다.

    이윤도 별말 없이 그들을 데려다준 뒤에 숙소에 남았는데, 그것은 에르제와 관련된 일 때문이었다.

    “드디어 은우 형의 미친 연기력을 감탄하면서 보게 될 그 시간인가여.”

    라하임이 멤버들이 같이 있을 때, 에르제의 연기력을 하도 칭찬해 댔기에 생겨난 일이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라하임 매니저님이 그렇게 하루 종일 칭찬할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잘했다는 거야?”

    “처음에 나는 라하임 씨가 본인 아이돌의 자존감을 띄워 주는 연습이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이윤이 멤버들의 말을 받아 이어 갔다. 그의 얼굴에는 ‘대리 뿌듯함’이 묻어 있었다.

    “장 대표님께 드라마 감독님이 직접 연락까지 했다고 하더라. 이번에 방송 나가면, 다른 데서 섭외 들어올지도 모른다고. 미리 연기 수업 같은 거 받아 보게 하면 어떻겠냐고 했다던데?”

    이윤의 말에 또다시 멤버들의 기대감이 끝도 없이 치솟았다.

    ‘……음.’

    이 정도로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바라지는 않았기에 에르제는 자못 난감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괜히 부담스러운 마음에 그의 양 무릎이 살포시 맞닿았다.

    다소곳하게 앉아서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곧 에르제가 출연하는 장면이 나왔다. 9시부터 시작했던 드라마의 가장 마지막 장면이었다.

    “오오……!!”

    “사이비 교주가 저 얼굴이면 나라도 신도 했겠어여!”

    처음에는 에르제의 분위기에 환호를 보내던 멤버들은.

    “……!!”

    “…….”

    에르제가 보여 주는 분위기와 연기에 압도되어 금세 얌전해졌다.

    [ 신도라도 되려고 온 것이냐? ]

    [ 아니. 퇴마하러. ]

    그리고 지서후가 쏜 석궁이 에르제의 이마를 뚫고 지나가고.

    [ 어리석은 인간. ]

    쓰러진 사이비 교주의 몸에서 악귀가 일어나며 드라마가 끝이 났다.

    그리고 숙소 내에서는 에르제를 향해 열렬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흡사 룡룡영화제를 방불케 하는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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