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화
157화
골든테이프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토트윈은 다른 곳에서도 상 여러 개를 거머쥐었다.
아쉽게도 골든테이프 본상은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다른 ‘서울 청사과 어워즈’ 같은 곳에서는 신인상 외에도 다른 상을 수상한 것이다.
올해의 아티스트, 올해의 앨범상 등.
데뷔한 지 1년, 토트윈의 숙소에는 이제 반짝반짝하는 트로피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후우.”
민주혁이 골든테이프에서 받은 신인상에 입김을 불고는, 어디서 구해 온 건지 모를 손수건으로 정성스럽게 쓱싹쓱싹 닦았다.
이를 지켜보던 태현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닳겠다, 닳겠어.”
“닳게 하는 게 아니고, 닳지 않게 관리하는 거야.”
지지 않고 맞받아치는 민주혁을 태현우는 히죽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옆에서 뒹굴뒹굴하는 안단테에게 말했다.
“단테야, 잡아.”
“!”
무슨 의미인지 이해한 안단테가 곧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민주혁에게 오도도 달려갔다.
“뭐…….”
뭐 하는 짓이냐고 말할 틈도 없이 안단테가 민주혁을 정면에서 꽉 붙잡았다.
안단테의 키가 더 작아서 붙잡았다기보다 안긴 꼴이 되기는 했지만, 중요한 것은 안단테가 임무를 완수했다는 사실이다.
“굿.”
태현우가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지체 없이 스마트폰을 TV에 연결했다.
“……!!”
“자! 이번 신인상을 수상한 토트윈의 수상 소감을 듣겠습니다!”
민주혁의 눈이 동그랗게 뜨이고, 태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양팔을 양쪽으로 뻗었다.
“야!!”
얼굴이 벌게진 민주혁이 소리쳤다.
“꺼!!”
“싫은데~.”
그리고 그런 민주혁의 고함을 들었는지, 윤치우가 방에서 나오며 미간을 좁혔다.
“너희, 싸우는 거 아니지? 단테는 왜 그러고 있어?”
“임무를 하는 중이에여.”
“무슨 임무?”
윤치우가 고개를 갸웃했고, 민주혁이 도와 달라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 쟁쟁한 후보들의 모습을 모두 만나 보았는데요. 올해 신인상을 수상할 이는 과연 누구인지!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
TV에서 들려오는 MC의 말에 윤치우도 헛웃음을 터뜨렸다.
“또 주혁이 괴롭히는 거야? 그거 벌써 10번은 틀지 않았어?”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걸.”
“음.”
태현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그는 소파에 가서 털썩 앉았다.
“……형!”
민주혁이 안단테의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뻗었지만, 윤치우는 희미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미안.”
“아……! 제발! 안 돼!!”
“어차피 우리밖에 없잖아. 왜 그렇게 부끄러워하고 그래.”
“으……!!”
민주혁이 안단테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문제의 장면까지 진행된 상태였다.
민주혁의 괴력에 마음이 급해진 태현우가 뒤로 10초씩 스킵했기 때문이다.
[ 토트윈은 이번 연도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HaLLo’부터 시작해 ‘AM’과 ‘FM’까지. 모든 앨범이 차트에 진입하는 등 아주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
MC의 멘트와 함께, FM의 무대 복장을 그대로 입고 나온 토트윈이 등장했다.
손을 흔들거나,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 하트를 날리거나.
각자 다르게 등장했지만,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다.
감동이나 그런 것보다 상을 받게 되었다는 기쁨이 더 커서였다.
중앙의 단상에 놓인 금색 트로피를 들고 스탠드 마이크 앞에 선 토트윈은 대표로 상을 들고 있는 윤치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윤치우는 양손으로 트로피를 가슴께에 든 채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가져갔다.
[ 우선 저희 음악을 사랑해 주시고 저희에게 열렬한 응원을 해 주시는 이브님들, 늘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
흔하게 볼 수 있는 정석적인 소감이었다.
누구, 누구에게 감사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는 그런 거.
시간 관계상 모든 토트윈 멤버들의 수상 소감을 들을 수는 없었기에 다른 멤버들은 윤치우가 이야기하는 동안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물론 태현우가 윤치우의 머리 위로 브이 자를 그린다던가 에르제가 카메라를 향해 입술에 찍은 엄지를 들이민다던가 하는 행동을 했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보는 키스 날리기에 시청자들이 환호성을 질렀으나, 그들에 이어 카메라에 잡힌 민주혁 때문에 모두 헉 소리를 내고 말았다.
평소 무대 위에서는 늘 시크하고 차가운 모습만 보여 주던 민주혁이……. 예능과 인터뷰 같은 곳에서도 늘 현실적이고 도도한 모습만 보여 주던 민주혁이.
보는 이가 안쓰러워질 정도로 펑펑 눈물을 쏟아 내고 있었다.
[ ? ]
수상 소감을 이야기하던 윤치우가 뭔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뒤를 돌아보았을 정도였다.
고개를 푹 숙인 채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는 민주혁은 눈에서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리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떨리는 어깨에, 바로 옆에 있던 안단테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 해여? 어케!?’
안단테가 에르제를 보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말하는 모습도 카메라에 잡혔다.
[ 감사……합니다!! ]
윤치우가 황급히 멘트를 마무리하지 않았다면, 민주혁의 펑펑 우는 모습은 더욱 오래 화면에 잡혔을 것이다.
그리고 이날.
수상하고 운 사람은 민주혁이 유일했다.
“아…….”
결국 그 모든 모습을 다시 한번 리플레이 당한 민주혁은 빨개진 얼굴로 태현우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런 것에 굴할 태현우가 아니었기에 현우는 푸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실검 있었으면 백퍼 떴을 텐데. 매우 아쉽구먼.”
“치우 형.”
민주혁이 입술을 깨물며 안단테를 밀어냈다.
이미 재생이 끝난 뒤라 안단테는 쉽게 그에게서 떨어져 주었다.
“응?”
윤치우가 하하, 웃으며 그를 바라보자 민주혁이 코 밑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멤버 하나 없어도 저희 잘 굴러가지 않을까요?”
“어?”
“일루 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태현우가 벌떡 일어났고, 민주혁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에르제는 소중한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다리를 오므려 주었다.
“울보가 쫓아온다!!”
“누가 울보냐고!!”
숙소가 그리 넓지 않았기에 태현우는 금세 민주혁에게 따라 잡혔다.
소파 위에 드러눕듯 쓰러진 태현우 위로 민주혁이 올라타서 무릎으로 그의 팔을 봉인했다.
“각오는 하고 저지른 일이겠지?”
민주혁이 목과 손목을 뚜둑뚜둑 풀며 입꼬리를 올렸다.
“……저는 강이 보이는 곳에 꼭…….”
“응.”
민주혁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태현우의 가장 약한 부위를 공략했다.
저번에 에르제가 가르쳐 주었던 대태현우 공략법이었다.
‘음, 많이 늘었군.’
애제자의 간지럽히는 기술이 성장한 모습을 보며, 에르제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윽, 크흡. 큽……!! 악!! 미안! 미안해!!”
다양한 비명이 태현우의 입에서 터져 나오고 있을 때, 숙소 문이 열리며 이윤이 들어왔다.
“……레슬링하니?”
“죄인을 응징하고 있습니다.”
민주혁이 담담하게 말하자, 이윤이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현우가 또 뭐 잘못했나 보네.”
늘 있는 일이라서, 이윤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며 말했다.
“얼굴에 상처만 나지 않게 해라.”
싸우는 게 아니었기에 그 정도 주의만 주는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윤치우가 그렇게 묻자 이윤이 아, 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무릎을 가슴까지 끌어당겨 앉은 에르제를 찾아냈다.
“은우, 오늘 갈 데 있어. 미리 일정 보내 놨으니까 알고 있지?”
“아아.”
오늘이었던가.
머릿속에 개인 일정을 떠올려 보니, 1월 9일에 남은 미션이 있었다.
저번에 장 대표에게서 받았던 두 미션 중 하나인 상담사를 만나는 일이었다.
* * *
차를 타고 상담사를 만나러 가는 길.
이윤은 꼼지락대는 에르제에게 말했다.
“병원이나 그런 데가 아니라서 기록이 남거나 하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좋은 일은 아니니까 알아보는 사람 없도록 조심하고.”
“거기 상담사나 직원들에게 얼굴이 보이는 건 괜찮아요?”
“응. 연예인들도 많이 상담하러 오는 곳이야. 가서 상담사님 말씀 잘 듣고 물어보는 거 솔직하게 대답하고.”
어디까지 솔직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에르제는 일단 알겠다고 대답했다.
‘카테이아 대륙 이야기나 내가 진짜 뱀파이어라는 사실은 말 못 하는데.’
만약 그렇게 한다면, 지금보다 더 강도 높은 무언가가 계획될 듯한 기분이었다.
곧 상담사가 있는 곳에 도착했고, 에르제는 완전 무장을 한 채 차에서 내렸다.
프라이빗하게 조성된 복도를 따라 이동한 둘은 곧 접수처를 지나 상담사의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윤이 안까지 동행하지는 못하기에 그는 말없이 에르제의 어깨를 두 번 두들겨 주고는 자리를 떠났다.
에르제는 문고리를 잡고 잠시 생각했다.
‘저번에 장 대표가 하는 말을 들어 보니, 잘 끝나지 않으면 계속 상담을 시킬 모양이던데.’
그렇게 되면, 쉬는 시간마다 이곳으로 끌려 와야 할지도 모른다.
가뜩이나 일족을 만나러 가는 시간도 부족한데, 이런 곳을 주기적으로 올 수는 없었다.
‘애초에 기억상실증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할 것 같은데, 그건 의미가 없고.’
그러나 서은우의 기억에 대해서는 저번에 윤소희의 기억을 뒤졌던 것 말고는 추가로 알게 된 것이 없었다.
‘매혹의 힘이라도 써야 하나.’
정 안 되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그렇게 결론을 내린 에르제는 문고리를 잡아 돌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 어서 와요.”
상담사는 싱긋 웃으며 그에게 자신의 앞으로 오도록 손짓했다.
“안녕하세요.”
에르제는 앉기 전에 고고한 자세로 인사를 한 뒤.
“Trick or treat! 토트윈의 서은우입니다.”
발랄하게 토트윈식 인사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음……! 네……!!”
조금 당황한 상담사가 안경테를 손가락으로 잡아 고쳐 썼다.
헛기침을 몇 번 한 그는 다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저는 오늘 서은우 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제일 중요한 건 서은우 씨의 기억이 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 일이고. 적어도 그 계기는 마련해 보려고 해요.”
“네.”
“그러면 시작해 볼까요?”
상담사는 양손을 빠르게 마찰시킨 뒤에, 책상 위로 양팔을 얹고 상체를 숙였다.
“천천히, 겉에서부터 들어가 볼게요.”
에르제가 고개를 갸웃하자, 상담사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우선 제일 좋아하는 것부터 떠올려 볼까요?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
에르제는 눈을 감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지구에서 먹은 음식 중에서 골라야 할 텐데, 사실 이곳에 와서 먹었던 음식은 모두 너무 맛있었기 때문이다.
“음……. 으음…….”
지구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을 앞에 둔 에르제를 보고 상담사의 이마에 땀이 살짝 맺혔다.
“음료는요?”
“아!”
그거는 쉽지. 최근에 먹었던 것이 제일 맛났다.
“어서 오세요! 환상의 초코 바나나 나라에!”
에르제는 상담사 앞에서 라하임이 보여 주었던 춤까지 춰 주었다.
그 모습에 서류와 에르제를 번갈아 바라보던 상담사가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여전히 온화한 미소는 잃지 않은 채였다.
“앞은 건너뛰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도록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