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화
156화
― LAK는 언제 나옴?
┖ 거기는 2부는 돼야 나올 듯.
― 1부에 토트윈 나오던데?
┖ 신인상 확정 지으러 오나 봄.
1부 무대를 위해 백스테이지로 온 윤치우는 잠깐 틈이 생긴 김에 스마트폰으로 시청자들의 반응을 훑었다.
대부분은 지금 본 것처럼 별생각 없이 ‘골든테이프’를 보고 있는 이들이거나, 토트윈의 신인상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 솔직히 토트윈은 다른 신인상 후보보다 빨리 데뷔한 덕 많이 봤지. 이번에 노미니 된 것도 정규 3집이라며ㅋㅋ 앨범이랑 예능 같은 거 나오면서 팬 누적되는 것도 많은데, 에바 아닌가?
┖ 그렇게 따지면 D.D.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데뷔했는데ㅋㅋ 거기서 늘어난 팬은 계산 안 하나 봄?
┖ 그렇다고 쳐도 토트윈 데뷔가 더 빠른 건 암?
┖ ㅇㅈ 불공정하다고 생각함. 나도 ㅋㅋ 판매량 빼고 실력만 보면 D.D.가 압살인데 ㅋㅋ
┖ D.D. 팬인데, 저흰 저렇게 생각 안 해요. ㅠㅠ 제발 팬 욕먹이지 마세요.
― 아니, 여기서 D.D.랑 토트윈 비교하는 애들은 정병이냐;; 1집만 봐도 판매량 차이 나는데, 3집까지 갈 필요도 없어. ㅋㅋㅋ 그렇게 억울하면 좀 더 일찍 데뷔하시던가;
┖ 먹금 해요. 관심 주면 더 저럼.
오히려 괜한 이들이 나서서 싸움을 붙이고 있었다.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 대상이 되는 D.D.와 토트윈의 팬들만 고통 받는 중이었다.
“후우.”
윤치우는 머리카락을 털며 스마트폰을 치웠다.
“왜 한숨이에여?”
옆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던 안단테가 물었지만, 윤치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은우야.”
그러고는 에르제를 불러서 멤버들에게 들리지 않는 곳으로 그를 끌고 갔다.
“왜?”
“…….”
잠시 고민하던 윤치우는 품에서 소원 쿠폰을 꺼냈다.
저번에 에르제가 생일 선물이라고 줬던 바로 그 소원 쿠폰이었다.
“……? 이걸 들고 다녀?”
에르제가 황당한 눈빛으로 물었으나, 윤치우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언제 쓸지 몰라서.”
“그래서? 이거 쓰려고?”
“응.”
윤치우는 입술을 깨물었다가 소원 쿠폰의 반쪽을 찢어 에르제에게 내밀었다.
“지금까지 생각나지 않는 거 보면, 내가 그렇게 가지고 싶은 게 없나 봐.”
에르제가 소원 쿠폰을 받아 들자, 윤치우가 희미하게 웃었다.
“사실 필요한 게 있으면 내가 사면 되고.”
“그렇기는 하지.”
돈 나가지 않는 소원이라면 더욱더 환영이다.
에르제가 “음음!” 하며 격하게 동의를 하자, 윤치우가 입을 열었다.
“오늘 무대, 찢어 줄 수 있어?”
“찢어 달라고?”
잠시 고민하던 에르제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가로로, 세로로?”
“아, 아니.”
진짜 무대를 갈라 버리겠다는 말에 윤치우가 당황하자, 에르제가 피식 웃었다.
“농담이야.”
그러고는 윤치우의 귓가에 속삭였다.
“은우는 그런 은어 이제 잘 알아.”
“……이상한 거 라임 맞추지 말고.”
질색한 윤치우가 한 발 뒤로 물러나자, 에르제가 피식 웃었다.
“그런데, 굳이 소원 쿠폰을 쓰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알아.”
윤치우가 멤버들 쪽을 보며 말을 이었다.
“다른 애들도 같은 생각이겠지만, 그냥. 동기부여 같은 거야. 너한테도, 그리고 나한테도 하는 동기부여.”
“음.”
소원 쿠폰을 쓰는 데에 이런 의미 부여까지 필요할까 싶기는 하다만.
굳이 하나를 사용해 준다는 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최선을 다해서 찢을게. 생일 선물이야.”
“응. 부탁할게.”
윤치우는 열의를 불태우며 멤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고, 에르제는 입술을 안으로 말아 넣으며 소원 쿠폰을 만지작거렸다.
‘말 그대로 생일 선물이니까.’
그리고 찢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니까.
‘그동안은 작위적인 느낌이라 봉인해 뒀는데, 엄청 중요한 무대가 되어 버렸네.’
에르제는 피식 웃으며, 일찍부터 힘을 끌어올렸다.
토트윈의 팬이 아닌 이들도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 있도록, 그리고 무대를 보면서 감탄할 수 있도록.
무대에 오르기 전, 에르제는 그렇게 사전 작업을 시작했다.
* * *
파아앗―.
골든테이프 무대 한쪽에 조명이 집중적으로 쏘아졌다.
Intro 형식에 맞춰, 강렬한 사운드가 무대 위로 풍성하게 쏟아졌다.
윤치우가 중앙으로 당차게 뛰어나옴과 동시에, 남은 멤버들이 시계 방향으로 움직였다.
― 기다려 왔어.
이 순간이 오기를
Under the blue sky―!
높은 음의 신디사이저가 현란하게 울려 퍼지고, 원곡인 ‘HaLLo’와는 다르게 비트가 훅 드롭됐다.
― 쉿―!
그대로 즐겨.
있는 그대로의 나를―.
The way I am.
멤버들이 동시에 검지를 세워 입가에 가져가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위이이잉―!!
신디사이저가 한 음으로 울리며, 우당탕거리던 악기들 소리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대로 조명이 팟, 하고 꺼졌다.
‘골든테이프 무대에 토트윈이 등장했다’는 것 하나를 알리기 위한 짧고 강렬한 intro였다.
그리고 조금 뒤 조명이 다시 들어왔을 때.
― ?
― 뭐야, 갑자기 의첸됨. ㅋㅋㅋㅋ
― FM에서 신기한 거 많이 하더니……. ㄷ;
이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어느새 긴 소파 위에 앉아 있는 토트윈은 조금 전 입고 있던 옷이 아니라 하얀 의상을 입고 있었다.
곧 3집 앨범의 타이틀곡 중 하나인 ‘AM’의 MR이 들어오고, 윤치우가 들고 있던 핸드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 함께 했던 밤은
이제 Rainy Dawn
마지막일 줄 알았던
Maybe, but
점점 희미해지는 너의 얼굴.
원래는 AM에도 가벼운 안무가 있었지만, 토트윈은 과감하게 모든 것을 배제했다.
오로지 목소리.
지금은 그저 가창력으로만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 마치 우리 사이 같아.
Distance between stars.
가까운 듯, 또 먼 듯
― 기다리고 있어.
In my world
잊지 않았어.
Our memory
그리고 이어지는 민주혁의 랩도 담담하지만 묵직하게 무대 위로 울려 퍼졌다.
― 시간이 오래 걸려도
It’s okay.
돌아갈게.
많은 고난도, 방해도
Can’t stop my step
…….
오롯이 가사와 멜로디에만 집중할 수 있게 서정적이고 애절한 감정을 쏟아 내었다.
그렇게 서서히 몰입되고 있을 때.
잠깐 고개를 숙였던 에르제의 동공이 붉어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화악―.
마이크를 잡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에르제의 모습에, 이를 지켜보던 이들은 마치 TV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카메라를 찾아 고개를 돌린 에르제 때문에, 이를 찍던 카메라가 살짝 흔들릴 정도였다.
그 순간만큼은 활발했던 시청자 반응이 절반 이하로 내려갔다.
― 너를 놓지 않게―
지워지지 않게―!
그리고 그와 더불어, 웬만한 솔로 가수 씹어 먹는 역량의 보컬까지.
순간 AR을 틀었나 싶을 정도의 라이브였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아쉽지.’
에르제는 자신의 파트가 끝나고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지금 다른 이들의 반응이 어떨지 대충 예상이 가지만, 진짜는 이다음 곡에 있었다.
1절과 마지막 부분을 이어 붙인 AM의 무대가 아쉬움을 남긴 채 끝이 나고.
토트윈은 소파에서 일어나 무대 중앙으로 향하면서 정장 형태의 하얀 겉옷을 벗었다.
팔 부분을 안쪽으로 빼내자, 안에 숨겨져 있던 검은 옷이 나왔다.
바로 이어서 불러야 하는 ‘FM’을 위해, 청화 쪽에서 특별히 제작해 준 옷이었다.
툭툭―.
무대 중앙에 선 토트윈이 먼지를 털어 내듯 손을 움직이고.
순간적으로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가운데 있던 에르제가 자리에 쪼그려 앉듯이 확 주저앉았다.
따라 내려온 카메라를 응시하며, 에르제는 한쪽 입꼬리를 쓱 올리며 손으로 입술을 느릿하게 훑었다.
― DA, DA, DA DA ― DA
DA DA ― DA, DA, DA
나른한 표정으로 정확하게 음정을 찍어 내는 에르제의 목소리는, 몽환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며 다시 한번 집중도를 최대로 끌어올렸다.
스윽, 자리에서 일어난 에르제가 한쪽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앞으로 걸어 나왔다.
설핏 웃는 붉은색 입술 사이로 송곳니가 드러났다.
― 벗어날 수 없단 건
Already I know
애초에 우린
처음부터 정해진 운명.
내 심장에 찍힌 지문은
지울 수 없어.
지금껏 보았던 에르제의 모습 중에서 지금이 바로 절정이라고 해도 이견이 없을 듯했다.
실제로 이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뱀파이어가 서은우의 몸에 들어온 게 아닌가, 하고 착각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체적인 퍼포먼스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FM은 보컬보다 안무에 중점을 둔 곡인 만큼, 에르제가 찢어 놓은 도입부 위로 그대로 편승해서 무대를 장악해 나갔다.
발을 굴렀다가 위로 튀어 오르고.
시너지를 받은 멤버들의 역량이 강제로 한 단계 도약했다.
엇박자로 타고 나가는 곳도 딱딱 끊어서 리듬감을 살리고, 동작이 어려운 부분도 단 하나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바퀴 돌아 다시 에르제의 차례가 돌아왔다.
― Ah―, Aaaa ―――――――――!
몸을 옆으로 틀고, 에르제의 고음이 10초 넘게 이어졌다.
이 부분은 라이브로 절대 못 할 거라고 판단했던 이들의 말이 아주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고음을 지르는 에르제를 둘러싸고 있던 멤버들이 고개를 사선으로 툭 떨구고.
― It’s our same
Frequency
마지막 가사를 뱉어 낸 에르제가 천천히 허리를 펴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멤버들과 상반되는 모습으로, 에르제가 카메라에 시선을 맞췄을 때.
어느덧 그의 눈동자는 흑안에서 적안으로 바뀌어 있었다.
* * *
토트윈의 라이브 무대가 끝나고 난 뒤.
간간이 보이던 부정적인 여론이 전부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기보다는 침몰했다고 표현하는 편이 맞을 듯했다.
― 이게 신인이라고?
― 미쳤다;; 이게 라이브로 되는구나…….
┖ 서은우 폐활량 무슨 일임.
┖ 심지어 토트윈 전부 성량으로 MR 잡아먹던데;;
┖ D.D.도 무대 잘하기는 했는데……. 응……. 실력으로 압살했다, 그냥.
그리고 그 와중에 단연코 화제가 된 것은 에르제였다.
― 이건 서은우가 찢었다;; 마지막에 붉은색 눈으로 카메라 보는데 순간 미칠 뻔.
― FM 무대 진짜 찰떡이다. 은우를 너무 집중해서 봤더니 눈 아픔.
┖ 2222
┖ 333 최근 들어 본 토트윈 무대 중에서 이게 베스트인 듯.
― 정신 차리니까 무대 끝나 있음. 생전 처음 경험하는 일에 당황하는 중;;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 올해 신인상은 토트윈입니다!! ]
올해만큼은 MC의 말에 그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