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55화 (155/307)

제155화

155화

“…….”

이윤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제일 먼저 정신을 차렸다.

“어쩔 수 없겠는데.”

이윤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뭐, 다른 팀들도 곡 줄어드는 거니까…… 형평성의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말이 나오기는 하겠네.”

“……음.”

그러나 민주혁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그러면 사녹 딴 팀들은요? 저희는 오늘 라이브로 하려고 사녹 안 한 건데……. 사녹은 그대로 방송 나가는 거 아니에요?”

“……!”

그 말에 멤버들이 상체를 벌떡 세웠다.

“그러네?”

“아니면 사녹만 나가고, 추가 무대가 없어지나?”

“……자세히 설명 좀 해 주시지.”

민주혁의 말에 이런저런 추측이 튀어나왔다.

‘거슬리는데.’

에르제는 심각한 표정으로 다리를 꼬았다.

그렇지 않아도 반말로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간 PD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열심히 준비한 무대를…… 그것도 당일 갑자기 취소하라고 하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전반적으로 토트윈 멤버들의 분위기가 다운되자, 이윤이 박수를 짝짝! 쳐서 주의를 환기했다.

“재작년에는 미리 통보도 안 해 줬어. 아직 무대 남았는데, 그대로 불 꺼 버리고 화면을 전환시켰거든.”

“윽. 그거 저도 봤어여.”

안단테가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래. 그러니까 미리 알려 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기자. 뭐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건 그렇죠.”

윤치우가 체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윤의 말대로 무대 위에 올랐는데 불을 꺼 버리는 것보다야 나았으니까.

“작년에 그걸로 엄청 논란이 되어서 저쪽도 조심하는 모양이네요.”

“그런 것 같다.”

이윤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intro랑 AM까지는 틀어 주는 것 같으니까 일단 무대에 집중하자.”

“넵.”

애초에 토트윈에게 무슨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소속사에서 나선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다.

당일 통보이기도 했고, 다른 팀도 똑같이 겪는 문제라고 하니 말이다.

‘애초에 이럴 거면 이틀로 나누든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에르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 시간 인간들을 지켜봤지만, 그들의 일 처리 방식은 참으로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쉽네.’

에르제는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생각했다.

이번 신인상은 토트윈이 받을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여론이 토트윈의 편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데뷔한 기간이 다른 신인 그룹보다 오래되었다는 이유가 대표적인 반발 이유였다.

다른 신인 아티스트는 고작 정규 1집 하나로 싸우는데, 토트윈은 벌써 3집 앨범까지 나온 상태였으니까.

때문에 불공정한 수상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데.

‘사실은 다 헛소리지.’

1년 동안 나온 모든 앨범의 판매량을 합치는 거라면 모를까, 애초에 기준이 앨범 하나만을 평가하지 않던가.

그것조차 이전에 낸 앨범이 다음 앨범에 영향을 준 게 아니냐고 하긴 하는데.

‘그럴 거면 더 열심히 하던가.’

그런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헛소리였다.

아무리 데뷔 기간이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사이에 토트윈이 영혼을 갈아 넣어 1년을 보냈다는 사실은 그들 머릿속에서 까맣게 지워진 모양이다.

무엇보다 우스운 것은 이런 이야기가 팬덤의 크기가 토트윈과 비슷한 D.D.에서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D.D.가 신인상을 받지 못하게 되는 일인데도 말이다.

‘이쪽이랑 척지기 싫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다른 신인상 수상자와 토트윈을 비교해 가며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어느 팬인지도 모를 이들이었다.

‘그래서 오늘 보여 주려고 했는데.’

에르제는 그들이 썼던 글들을 떠올리다가 그만 김이 팍 샌 표정을 지었다.

오늘 라이브 무대로 압도적인 실력의 격차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정당한 수상이라고 주장하고 싶었는데.

그 목표가 PD의 말로 사라지는 바람에 의욕이 조금 깎여 나갔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인 거 같고.’

에르제는 시무룩해진 토트윈 멤버들의 모습을 보며 콧잔등을 찡그렸다.

‘그렇다고 매혹의 힘으로 토트윈만 2곡 하게 해 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게까지는 다른 팀한테 미안해서 못 하겠다.

“후우.”

에르제는 콧잔등을 찡그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했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어? 혼자?”

이윤이 불안한 눈으로 대꾸하자, 라하임이 곧바로 손을 들었다.

“제가 모시…… 아니, 같이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럴래?”

“예.”

평소 라하임이 매니저 일을 잘 배우고 또 잘하고 있었는지, 이윤이 굳은 신뢰의 눈빛을 보냈다.

달칵―.

에르제는 라하임과 함께 대기실 밖으로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

그 모습에 라하임이 고개를 갸웃했다.

“진짜로 화장실 가시는 거였습니까?”

“응. 왜?”

“아, 저는 PD한테 매혹의 힘을 쓰러 가시는 건가 해서.”

“…….”

얘는 나보다 더 지구에 오래 있었는데, 왜 사회화가 덜 된 것 같지.

에르제가 당황한 눈으로 라하임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다른 팀은 하나만 하는데, 우리만 두 개 하면 어떻게 되겠어.”

“음.”

“그리고 그 PD도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라고 했잖아. 그 사람이 우리만 특혜를 줬다가 잘리거나 하면 우리가 책임질 것도 아니고.”

“역시 명민하십니다.”

라하임은 에르제가 그렇게 행동하면 말리려고 한 말이었으나,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수긍했다.

그렇게 화장실 볼일을 마치고 나온 뒤 복귀하던 둘은 복도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조금 전에 들었던 PD의 공손한 목소리 때문이었다.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청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거리가 굉장히 멀었지만 잘 들렸다.

PD는 주변에 아무도 없음에도 작은 목소리로 통화하고 있었다.

[ 예. 말씀하신 대로 전달했습니다. LAK랑, D.D. 그리고 그 외 몇 팀은 큐시트에 적힌 대로 진행할 겁니다. ]

“?”

뭔가 심상치 않은 말인 것 같아 에르제는 PD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몸을 숨겼다.

에르제를 따라 라하임도 같이 몸을 숨기고 PD의 대화를 엿들었다.

[ 네, 네. 토트윈은 아예 반발조차 없던데요.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아……. 네. 무대를 아예 못 하게 하는 건 팬들의 반발도 거세고 해서……. 네 네. ]

[ 무대장치나 소품까지 건드리지는 못하지만, 카메라 구도나 그런 것들은 제가 지휘할 겁니다. 신인상 수상에 사람들이 의문점을 가지도록 초라하게 보여 줄 생각입니다. ]

이 새X가.

대충 대화의 흐름을 파악한 에르제의 얼굴이 험악하게 바뀌었다.

‘로드.’

라하임이 작게 속삭였지만, 에르제는 고개를 저었다.

나서지 말라는 뜻이었다.

‘내가 해.’

‘……알겠습니다.’

라하임이 고개를 숙여 뜻을 받들었다.

에르제는 며칠 전 만났던 제이가 한 말을 떠올렸다.

‘잘해 봐요, 라고 했던 게 이거 때문인가?’

그렇다면 제이는 미리 알고 있었거나 혹은 그쪽에서 또 장난질을 쳤다는 뜻일 터.

‘아육시에서의 교훈이 부족했나.’

에르제는 입술을 씹었다.

물론 그때처럼 대놓고 작업한 건 아니었다. 나름대로 조심하며, 일단 여론부터 건드리려는 생각인 모양.

하지만 그들도 미처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자신이 우연히 PD의 통화를 엿듣게 될 거라고는.

‘그러니까 잘해 봐요, 같은 속 편한 소리를 했겠지.’

그때는 그냥 재수 없다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던 말이었으니까.

‘제이가 움직였다는 건 에이리스의 짓이라는 건가.’

하지만 토트윈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를 도무지 모르겠다.

혹여 제이의 힘이 강해진 것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에르제의 한쪽 눈썹이 곡선을 그리며 위로 치솟았다.

‘앞으로도 계속 토트윈을 견제하는 움직임을 취할 것 같기도 한데…….’

일단은 이쪽으로 경계심을 높이는 수밖에.

짜증스러워하던 에르제는 PD의 통화가 끝난 것을 확인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어쨌든 저쪽에서 먼저 수작을 부린 거니까.’

굳이 LAK나 D.D.의 무대를 줄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토트윈의 정당한 권리만 되찾아 오면 된다.

에르제는 빠르게 PD에게로 다가가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PD님. 잠시 할 얘기가 있는데요.”

“서은우?”

그를 알아본 PD가 목을 뒤로 빼며 눈썹을 찡그렸다.

“바쁘니까 나중에.”

그러고는 마치 파리를 쫓듯이 손을 내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고 했다.

“……?”

하지만 그의 발바닥은 마치 바닥에 딱 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에르제가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할 얘기가 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뭐, 뭔데?”

“혹시 방금 통화한 사람, 제이 선배인가요?”

* * *

전화를 끊은 제이는 소파에 앉은 채 다리를 쭉 뻗었다.

대기실에 다른 멤버들은 그런 그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가 썩 마음에 든 제이는 웃음기를 머금은 표정으로 조금 기다렸다.

토트윈이 있는 대기실과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곧 그쪽에서 그가 원하는 결과물을 들을 수 있을 것이었다.

‘어떻게 했으려나?’

제이는 손가락으로 푹신한 소파 위를 긁었다.

일부러 에르제가 화장실을 가는 타이밍에 맞춰서 움직였는데.

‘알아차렸겠지?’

못 알아차렸어도 상관없고, 알아차려 준다면 오히려 좋다.

곧 토트윈 대기실의 문이 닫히고, 에르제가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이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그리고 에르제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제이의 예상과 같았다.

― 오는 길에 PD님을 만났는데요. 저희 무대 2개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그래? 그냥 갑자기 그렇게 하자고 해?

― 너 뭐 이상한 말 같은 거 한 거 아니지??

평소에 에르제가 어떻게 행동했길래 다들 불신의 태도를 보이는 건지 모르겠지만.

― 소통에 뭔가 오해가 있었다고 합니다. 다른 팀들도 원래대로 하기로 했답니다.

라하임이 옆에서 거들어 주니, 분위기가 금세 바뀌었다.

― 다행이다.

‘그래, 다행이지.’

누군가의 목소리에 제이도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제이는 다른 LAK 멤버들이 자기 쪽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후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 미끼를 문 것 같습니다. ]

제이는 메시지 하나를 보낸 뒤에,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떠먹여 줘도 못 먹으면 곤란하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