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화
154화
마지막에 토트윈을 포함한 가수와 아이돌들의 합동 캐럴 무대를 끝으로, 가요축제도 무사히 끝이 났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토트윈은, 선배는 물론이고 만나는 모든 스태프들에게도 깍듯이 인사를 했다.
“아! 오늘 고생 많았어요.”
“수고했다. 무대 잘 봤어! 잘하더라?”
다행히 그들도 복도를 지나가며 화답해 주었다.
“아! 은우 형! 현우 형!”
“오!!”
그리고 어느덧 친해진 D.D.의 멤버들도 복도에서 조우했다.
조르르 달려온 그들은 민주혁과 윤치우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민주혁의 경직된 인사에 잠깐 당황하기는 했지만, 금세 쾌활한 모습으로 돌변해 달려들었다.
“이번에 팬들 반응이 엄청 좋아, 우리!”
“매시업 완전 성공적.”
최선규가 스마트폰까지 꺼내 들며 팬들의 반응을 보여 주었다.
― K 아이돌의 미래가 밝다. 그중에서 우리 D.D.가 제일 밝다.
― 토트윈도 잘하긴 하더라. 괜히 음원 차트 잡아먹은 게 아닌 듯.
┖ ㅏㅏㅏ 소속사 놈들아, 곡 좀 좋은 것 뽑아 와. ㅠ 우리 D.D. 애들 실력 다 죽이는 중이여. ㅠㅠ
┖ ㅇㅈㅇㅈ 제바류 ㅠㅠ 일해라…….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서바이벌에서 살아남은 D.D.가 못할 수가 없지. 근데 토트윈 안 묻히고 잘했네. ㅋㅋㅋ
― 근데 서은우 얼굴 실화인가;; 시선 자꾸 뺏어 가네.
┖ 친구가 저번에 음방에서 실물 봤다는데, 마치 고해성사 하는 기분이라던데.
┖ 고해성사?
┖ ㅇㅇ 죄가 씻겨지는 기분이라던데.
┖ ㅁㅊ ㅋㅋㅋㅋㅋ 나도 가야겠다.
아무래도 D.D. 멤버들이 보는 곳이라 D.D. 팬들이 작성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토트윈에 관한 언급도 같이 되어 있었다.
‘같이’ 훌륭한 무대를 만들자고 했던 전략이 잘 먹힌 것이다.
“하이파이브?”
“하이파이브!”
태현우의 주도 아래, 양쪽 보컬 라인이 복도 한가운데서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양측 리더의 눈이 마주쳤다.
서로 경쟁자라기보다는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동료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르제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결과가 좋게 나왔어.’
LAK는 이채선 때문에 시작부터 꼬여서 어쩔 수 없지만, 굳이 이 세계에서 적을 늘릴 필요는 없었다.
이미 에이리스만으로도 충분하니까.
D.D.도, 토트윈도 건전한 경쟁심을 불태우며 같이 성장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다음에 또 봐!!”
“같이 무대 또 해!”
곧 훈훈한 인사로 마무리되었고, 토트윈은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거의 주차장까지 왔을 때였다.
“어.”
윤치우가 앞에 있던 이들을 보며 발걸음을 멈췄다.
따라서 멈춘 토트윈도 고개를 들어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LAK?’
에르제는 고개를 기울이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도 차를 타기 위해 온 것인지, 앞쪽을 보며 기웃거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다가 혼자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제이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이.’
에르제는 그와 마주친 눈을 가늘게 떴다.
‘뭐지?’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찌릿, 찌릿.
에르제가 저도 모르게 자신의 팔을 잡았다.
제이에게서 원래 느껴지던 기운이 아니었다.
전에는 쿼터답게 옅은 피의 한계가 느껴졌다면…….
‘힘이 더 강해졌어.’
지금은 민감한 자신의 피부가 경고를 보내올 정도까지 성장했다.
그러나 더 깊이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들을 알아본 제이가 옅은 미소를 띤 채 다가왔기 때문이다.
“반가워요. 오랜만이네?”
“아!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제이의 인사에 윤치우가 깍듯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나머지 토트윈 멤버들도 같은 반응을 보이니, LAK의 다른 멤버들도 반가운 얼굴로 인사했다.
물론 이채선은 반가운 척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말이다.
“오늘 무대 잘 봤어요. 응원도 막 해 줬는데 봤으려나?”
“하하, 감사합니다.”
억지웃음을 지으며 윤치우가 인사하자, 제이가 되었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 돌아가는 거예요?”
“네.”
“크리스마스인데 뭐 안 하나 봐요?”
제이가 씩 웃으며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말했다.
“우리는 와인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갈래요?”
“아, 아뇨. 괜찮습니다.”
“아쉽네~.”
제이는 여유로운 얼굴로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은우 씨는? 나는 은우 씨만 와도 괜찮은데.”
와인이라는 새로운 술 얘기에 순간 귀가 솔깃하기는 했지만, 에르제는 인내심을 발휘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그럼 다음에 한잔 같이하는 걸로.”
아쉬운 척 연기하던 제이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번에 골든테이프에서 무대 하죠? 잘 해봐요.”
그렇게 말을 남긴 그는 피식 웃으며 다른 LAK 멤버들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으, 재수 없어여. 와인이 뭐야.”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안단테가 작게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와인잔을 손에 쥔 것처럼 느끼한 표정을 지었다.
“그대 눈빛에 건배.”
“으악.”
공격 대상이 된 태현우가 기겁하며 뒷걸음질 치다가 누군가의 발을 그대로 밟았다.
“억……!”
이윤이었다.
“엇, 윤이 형! 괜찮아요?”
태현우가 황급히 그에게 다가가 발을 붙잡고 있는 이윤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데리러 왔더니…….”
이윤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자, 태현우가 빠르게 고자질을 했다.
“단테 때문이에요!”
“윤이 형, 그대 눈빛에 건배.”
“저거!”
“아.”
이윤도 식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너네…….”
그러고는 심각한 얼굴로 멤버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이 에르제에게 잠시 머물렀다.
“왜 다 서은우화되고 있냐?”
이윤의 눈빛이 무척 슬퍼 보였다.
* * *
가요축제를 성공리에 마쳤지만, 토트윈에게는 다음 스케줄이 남아 있었다.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
다양한 곳에서 진행되는 시상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과 다르게, 올해는 최소 신인상을 충분히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토트윈은 시상식 당일 아침부터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메이크업, 의상, 수상 멘트 등등.
소속사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토트윈을 케어했다.
“인기상은 어차피 투표수 많이 밀리니까 기대하지 말고, 우리 목표는 딱 하나야. 알지?”
“넵.”
하지만 이번 연도 성적이 거기서 멈추기에는 아쉬운 것도 사실.
그래서 이윤이 은근슬쩍 희망 사항을 말했다.
“대상은 당연히 무리겠지만, 그래도 본상…… 정도는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 전문가 평가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만. 일단 우리도 후보에 오르기도 했고, ‘AM’이랑 ‘FM’ 무대도 하기로 되어 있으니까.”
판매량이 60%, 전문가 심사가 40%를 먹기 때문에 이윤의 말대로 충분히 기대해 볼 만한 여지가 있긴 했다.
음반 판매량과 디지털 음원 양측 모두에서 말이다.
태현우도 이윤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저희 이번 3집 앨범이 음원 차트에 꽤 꾸준히 있었으니까 1년 기준으로 보면 경쟁력은 있는 것 같아요.”
“……그렇기는 한데, 아이돌끼리만 경쟁하는 게 아니니까.”
그러나 민주혁은 조금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솔로 아티스트 중에서도 릴리아 선배님이나 배종현 선배님 등등 너무 쟁쟁하신 분들이 많아서……. 글쎄.”
찬물을 끼얹은 듯 보이기는 했지만, 그들은 이미 민주혁의 성격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저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속으로는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다만 너무 앞만 바라보다가는 넘어질 수도 있으니, 이렇게 현실적인 브레이크를 걸어 주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에르제는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며 창가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래도 1년 넘었다고, 다들 팀 내에서 맡은 역할을 잘 해내는 것 같네.’
민주혁도 그렇고, 리더 윤치우도 지금까지 매우 훌륭했다. 멤버들의 멘탈 관리나 자잘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일을 수행했으니.
분위기 메이커인 태현우도, 그리고 그의 파트너인 막내 포지션 안단테도 마찬가지였다.
보컬, 퍼포먼스, 작곡 작사…….
이런 것들을 떠나서 그냥 팀이 하나로 굴러갈 수 있도록 자신의 역할을 다들 잘 해냈다는 뜻이었다.
에르제의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
‘옛날 생각나네.’
마을 구성원, 촌장, 경호대, 장로들, 참모 등.
그들의 모습이 토트윈 멤버들의 모습과 문득 겹쳐 보였다.
‘다 같이 이곳으로 올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자신이 오기 전까지 라하임이 힘을 써 준 덕분에 일족을 만났지만, 그 이전에 카테이아 대륙에서 죽은 일족들은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
지구에 온 뒤로 어느새 시간이 흘렀지만, 에르제에게는 여전히 커다란 상처로 남아 있었다.
‘……과연 에이리스만으로 끝이 나는 걸까.’
미친 황제가 이곳까지 쫓아오는 것은 아니겠지.
에르제는 눈을 꾹 감았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눈앞에서 도륙당하던 일족들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만약. 아주 만약.
혹시라도 미친 황제가 지구까지 찾아와 일족들을 죽이려 하고, 그것도 모자라 더 나아가서…….
‘나와 같이…… 있었다는 이유로 멤버들에게까지 손을 댄다면.’
어쩌면 신은…… 그때를 대비해 종족별 하나씩 지구로 보낸 것은 아닐까?
‘……아니.’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에 에르제가 고개를 털어서 날려 버렸다.
당장 고민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나중에 신이랑 이야기할 수 있게 될 때, 그때 물어봐야겠어.’
에르제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술을 짓눌렀다.
차창으로 오늘 개최되는 골든테이프 시상식 장소가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
* * *
골든테이프 시상식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진행되는데, 오늘 1부, 2부 모두 하루에 다 진행한다고 한다.
“5시간 이상 걸릴 수도 있어서 팬들도 지루해할 거고 너희들도 엄청 지치겠지만, 조금만 참자.”
이윤이 벌써부터 텐션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멤버들을 다독였고, 라하임은 맛있는 음료를 사 와서 그들에게 나눠 주었다.
에르제는 미친 황제 때문에 울적해진 기분을 달래기 위해 달달한 것을 주문했는데, ‘어서 오세요! 환상의 초코바나나 나라에’라는 음료였다.
라하임이 에르제에게 음료를 건네며 수치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로드, 이걸 주문하려면 춤을 추면서 음료 이름을 말해야 한다고 합니다.”
“?”
라하임이 “이렇게, 이렇게.” 하면서 작게 동작을 보여 주니,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고생했네. 다음에도 부탁할게.”
“로드?”
에르제는 그렇게 말하며 엄지를 세워 주었다.
“로드??”
“넌 최고야.”
“감사합니다.”
얼떨떨하게 칭찬을 받은 라하임이 선 채로 얼굴이 굳었다.
피식 웃은 에르제가 빨대에 압력을 가하고 있을 때였다.
달칵―.
갑자기 대기실 문이 열리면서 PD로 보이는 이가 안경을 올려 쓰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무심한 눈으로 안을 쓱 훑었다.
“오늘 토트윈이 2곡 하기로 되어 있었나?”
“네. 맞습니다.”
이윤이 자리에서 빠르게 일어나 대답했다.
PD는 흠, 하고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넘기더니, 고개를 들어 토트윈을 바라보았다.
“시간 너무 늘어질 것 같으니까 하나만 하자.”
“네?”
“위에서 내려온 결정이니까 나도 어쩔 수 없어. 다른 팀도 마찬가지니까 너무 섭섭해하지 말고.”
PD는 그 말만 남기고 다른 대기실로 떠났고, 문이 닫힌 대기실 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