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화
153화
녀석의 이름은 ‘이룸.’
에르제의 예상대로 플랑이 맡고 있던 경호대 소속 인원이었다.
대체로 에르제를 지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녀석들다운 행동 양식이었다.
그래서 예측하기도 쉬웠고.
헛헛한 웃음을 짓던 에르제는 녀석과의 짧은 재회를 마치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라하임도 이룸에 관한 생각을 떠올렸는지 운전을 하다 말고 입술을 꾹 눌렀다.
생각이 많아진 모양이었다.
“어쩌면…….”
“?”
“어쩌면 말입니다, 로드.”
라하임이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이룸처럼 바다를 건너오고 있는 미친 박쥐들이 또 있지 않을까요?”
“……글쎄.”
현재까지 발견된 경호대 소속은 총 5명. 그래도 플랑을 포함한 4명은 라하임에게 발견되기는 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멀리서 발견된 곳은 이집트였고.
“로드께서 지구로 보낸 경호대원이 몇이었는지 혹시 기억하십니까?”
“7명. 아직 2명 모자라.”
“……하아.”
라하임은 운전대를 잡고 있던 오른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아무래도 해외 쪽을 주시하고 있는 뱀파이어들의 시선을 좀 돌려야겠습니다. 바다를 건너오는 미친놈들이 있는지 확인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그게 낫겠다.”
설마 싶기는 했지만, 이룸 같은 녀석이 또 없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냥 비행기를 타고 왔으면 훨씬 빠른 시일에 그리고 더 편하게 자신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을 온전히 몸으로 해결하려고 하다니.
녀석이 자랑스럽게 읊은 고난의 길을 듣자마자 안쓰러워 꽉 안아 주기는 했지만, 뒷 목을 따라 찌르르 소름이 돋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기특하지 않습니까. 다들 로드가 돌아온 것을 보자마자 저렇게라도 달려오는 것을 보니.”
“날 찾아오는 방법까지 일러 줄 수 없다는 게 개탄스럽네.”
에르제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아직 자신을 찾지 못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나머지 둘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왔으면 좋겠다고.
* * *
어느덧 시간이 지나 12월 막바지에 이르렀다.
가수도, 팬들도 손꼽아 기다리던 연말이었다.
대학생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연휴에 거실 소파에 앉아 배달된 치킨을 세팅하고 있었다.
여자친구가 이브인 덕분에 함께하게 된 대학생의 오빠도 옆에서 같이 거들었다.
물론 몸은 움직이지 않고 그저 말로 거들었는데, 그러다가 여자친구한테 등짝 스매싱을 맞았다.
“아으, 아파. 손 진짜 매워.”
“네가 맵게 만들잖아.”
“언니, 쟤는 도대체 왜 만나는 거예요?”
“애는 착해.”
두 이브의 공격에 시무룩해진 대학생의 오빠는 나무젓가락 비닐을 벗기며 중얼거렸다.
“나도 이제 이븐데.”
“아, 그랬지.”
남돌의 남팬이라는 희귀한 포지션이라 둘은 빠르게 우쭈쭈를 해 주었다.
금세 기분이 풀어진 그는 세팅을 마치고 자리에 털썩 앉았다.
“시작하겠다.”
“앗, 기다려.”
대학생은 빠르게 냉장고로 달려가서 맥주까지 테이블 위에 둔 뒤에야 흡족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오늘 토트윈의 무대는 총 3개.
빠듯한 용돈으로 시킨 치킨이 아깝지 않을 무대 숫자였다.
가요축제가 시작되고, 대학생은 재빠르게 닭다리 하나를 집어 들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우리 애들 보컬 라인, D.D. 쪽이랑 한다고 하던데 괜찮을까?”
“설마~ 싸우거나 그러진 않았겠지.”
대학생의 오빠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애들도 아니고.”
“그렇기는 한데, 둘 다 경쟁심 불태웠을까 싶어서.”
D.D.의 콘셉트와 토트윈의 콘셉트. 둘의 콘셉트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걱정되는 부분은 둘 다 신인이라는 사실이었다.
연말에 있는 어워즈에서 신인상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기는 하지만, 앞으로의 행보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
토트윈도, D.D.도 계속해서 경쟁을 해 나가야 하는 위치에 있는 만큼 이번 무대에 그들의 모습을 얼마나 잘 보여 주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전에 두 팀이 개인플레이를 하며 각자 돋보이기만 하려다가 무대를 망친 경우도 있었고.
그 두 팀의 팬이 아닌 이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뭐라 하거나, 악플을 다는 경우도 있었다.
“괜히 걱정하는 게 아니야, 내가.”
이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며 대학생이 깨끗이 발린 뼈를 접시에 버렸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둘 다 같이 잘했으면 좋겠다.”
“이름부터 가요축제잖아. 그리고 토트윈 애들이 남을 짓밟고 돋보이려는 성격도 아니고.”
“그렇지. 우리 애들 착해.”
대학생도 그 부분은 격하게 동의하는 터라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애들 나온다.”
그러고 있으니, 어느덧 토트윈의 퍼포먼스 라인의 차례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타 아이돌의 무대를 보느라 지루했는데, 지루했던 감정이 금세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탁! 치이익―!
시원하게 맥주 캔 따는 소리가 들리고, 본격적으로 토트윈과 STARLIGHTS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퍼포먼스 라인도 어떻게 했을지 엄청 궁금했는데.’
대학생은 양손을 모은 채 두 눈을 반짝거렸다.
토트윈 퍼포먼스 라인의 실력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였고, STARLIGHTS도 마찬가지였다.
LAK보다 더 위라고 평가받는, 국내 두 아이돌 팀 중 하나이기도 했고, 벌써 7년 차를 바라보는 베테랑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STARLIGHTS에서 잘 이끌어 줬을 것 같은데?”
오빠의 여자친구가 무대 시작 직전에 그렇게 말했고, 대학생도 속으로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다.
파아앗―.
조명이 켜지며, 두 아이돌 팀의 합동 무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들이 준비한 곡은 1세대 아이돌의 곡이었는데, 예전에 나온 곡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위화감이 없었다.
“편곡도 잘한 것 같은데?”
또한, 요즘 유행하는 장르와 스타일에 맞추어 편곡해서 조금 더 트렌디한 곡으로 만들어 냈다.
STARLIGHTS에서 4명, 그리고 토트윈에서 2명.
부족한 인원수에도 불구하고 민주혁과 윤치우는 무대 위에서 그들의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탄탄한 기본기와 많은 연습량을 바탕으로 윤치우는 칼같이 군무를 맞추었고, 민주혁은 특유의 유연성과 높은 기술력을 유감없이 뽐냈다.
일부러 선배인 STARLIGHTS 쪽에서 후배인 토트윈을 조금 더 돋보일 수 있게 만든 안무 구성인 듯했다.
그리고.
― 난 MONSTER.
거침없이 부숴.
내게 한계는 없어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강렬한 퍼포먼스에 강렬한 가사.
그리고 카메라를 뚫을 듯이 노려보는 시선까지.
윤치우와 민주혁, 둘은 토트윈 멤버라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게 보컬과 표정 연기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크으, 뽕 찬다.”
“이거지.”
대학생의 집 거실은 무대 내내 감탄하는 소리로 가득 찼다.
“1, 2위를 하는 아이돌이랑 같이 무대에 섰는데, 이 정도면 말 다한 거 아님?!”
“그러니까요! 주혁이 춤은 진짜 쫄깃쫄깃하다……. 언니, 저 지금 바운스 타는 거 보이죠.”
“아까부터 어깨 고장 난 줄 알았어.”
둘은 신이 나서 필터링 없이 말을 내뱉었고, 대학생의 오빠는 말없이 치킨을 뜯었다.
‘난 치킨을 뜯을 테니 감탄은 너희들이 하거라’ 하는 마인드였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놓인 맥주가 미지근해지기 전, 가장 기대하고 있던 무대가 시작되었다.
“와 씨, 의상 미쳤다.”
“인정.”
D.D.와 토트윈의 보컬 라인이 환하게 웃으며 등장했는데, 얼굴보다 의상에 시선이 먼저 빼앗길 정도였다.
전반적인 색상을 청색으로 맞춰 온 그들은 마치 한 팀처럼 보였다.
안에는 하얀 셔츠, 그리고 겉에는 붉은색으로 라인을 따라 그린 청색 제복. 그 위로 은색 체인이 하나씩 늘어져 짤랑거렸다.
곧 한 팀처럼 보이는 두 팀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도입부는 D.D.의 곡 ‘나는 달라’였다.
묵직한 베이스 소리와 드럼이 초반부터 내달렸다.
― 오늘 하루는
여전히 평범해.
화창한 하늘과 맑은 구름
어제와 다를 것 없는
그저 그런 날.
― 하지만 왠지
조금은 다른걸.
똑같은 하늘과 같은 구름
오늘의 나는 어제와
분명히 달라.
D.D.의 보컬 라인 세 명의 순수하고 맑은 음색이 도입부를 순조롭게 이끌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에르제가 이어받았다.
― 너 때문일까
아니면 기분 탓일까
모르겠지만
뭔가 다른 오늘
나는 널 만나러 가―.
저번 예능 이후, 분위기가 달라진 에르제의 뇌쇄적인 눈빛에 대학생의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끈적함 한 스푼, 훅 들어온 에르제의 목소리가 다음 파트로 이어지는 발판을 놓았다.
‘On Air.’
매시업 한 곡으로 넘어가는 태현우의 보컬이 에르제가 만들어 놓은 선 위에 목소리를 얹었다.
― So, We are On air!
널 보러 가는
내 기분은 On air.
적절한 개사를 통해 ‘나는 달라’와 이어지는 연결 고리를 만들었고, 아무런 위화감 없이 곡이 자연스레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편곡, 개사 그리고 포인트만 잡아가는 안무.
두 팀의 팬들이 듣는데 불편하지 않게, 또 하나의 곡처럼 느낄 수 있도록. 두 팀의 고민이 얼마나 깊었을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 So, We are On Air―!
그리고 마지막은 안무 없이 마치 발라드곡인 것처럼 6명이서 합창하듯 불렀는데, 그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대학생은 팔에 오소소 돋아난 소름을 쓸어내렸다.
위아래로 쌓인 화음과, 그 중심을 탄탄하게 받치며 뚫고 나오는 에르제의 보컬이 TV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듯해서였다.
“아니, 비주얼 센터가 노래까지 저렇게 잘해도 되는 거냐고요.”
“은우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대학생 쪽 3인 파티뿐만이 아니라, 생방송으로 TV를 보고 있던 모든 이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괜히 걱정했네.’
대학생은 무대의 끝에 안도의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토트윈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장 대표의 일 처리가 간혹 이상할 때가 있긴 하지만, 실력을 알아보는 그의 안목만큼은 탁월했으니 말이다.
경쟁심 때문에 무대를 망칠까 걱정했던 건 그저 기우일 뿐이었나 보다.
[ 여러분! 메리크리스마스!! ]
TV에서 나오는 사랑스러운 토트윈의 목소리에 같이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소리치던 대학생은 문득 허전한 기분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
그 많던 치킨이 거의 없어져 있었다.
멍때리고 무대를 보는 사이에 그녀의 오빠가 모조리 먹어 치운 것이다.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학생이 소리쳤다.
“야!! 내가 산 건데!!”
입안에 가득 욱여넣은 채로 대학생의 오빠는 고개를 옆으로 슬쩍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