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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52화 (152/307)

제152화

152화

문은 안쪽에서 나갈 때는 특별한 장치 없이 자동문처럼 열렸다.

라하임은 쓰러져 있는 박쥐를 양손으로 들어 올려 유심히 살폈다.

“일단 일반 박쥐는 아닌 것 같습니다. 로드.”

“그래?”

일반 박쥐가 아니라는 말은 동물 박쥐가 아니라는 뜻.

즉, 뱀파이어거나 뱀파리스라는 뜻이었다.

“먼저 확인부터 해 봐.”

박쥐로 변해 있을 때는 자신의 힘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누구인지 알기 어려웠다.

겉모습만으로는 차이점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저 일반 박쥐인지 아닌지만 알 수 있을 뿐.

하여, 에르제는 라하임에게 술법을 사용하도록 허락했고 곧 라하임은 박쥐를 바닥에 눕힌 채 그의 정체를 탐색했다.

“뱀파리스면 내가 처리하겠다.”

“아니.”

곁에 서 있던 플랑의 말에 에르제는 고개를 저었다.

만약 뱀파리스라고 한다면, 한 가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

“내 결계를 뚫고 들어왔잖아.”

자신이 조금 전에 쳤던 결계는 일반인들이 들어올 수 없게 해 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뱀파리스도 마찬가지.

뱀파이어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면, 절대 이 장소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일족이었지만 배신하고 자신의 손에 죽었던 레스터조차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뱀파리스가 결계를 뚫고 들어왔다면 이야기 정도는 들어봐야지.”

에르제는 박쥐 머리 위에 손을 얹은 채 눈을 감은 라하임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어쩌면, 우리 편일 수도 있으니까.”

“알겠다. 로드.”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플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대략 3분 정도 흐르고, 라하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 밖의 내용이었다.

“로드.”

그는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굽혔던 무릎을 폈다.

“일족, 일족입니다.”

“일족이라고?”

에르제가 빠르게 그쪽으로 다가가자, 라하임이 설명을 덧붙였다.

“예. 하지만 그 이상은 알아내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서.”

“그럼……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온 거지?”

“로드를 먼저 알아본 뒤에 이곳까지 저희 차를 쭉 따라왔습니다.”

“나를?”

에르제는 다행이라는 듯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아이돌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일족이 그를 알아보길 바라는 마음에 아이돌을 하겠다고 했던 거니까.

‘지금 와서는 그냥 노래 부르는 게 좋아서 그렇지만.’

그래도 자신을 알아봐 준 일족이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에르제는 라하임에게 빠르게 손짓을 했다.

“일단 먼 길을 날아온 것 같으니까 치료부터. 케일라한테 부탁하면 될 거야.”

“예, 로드.”

케일라는 과거 카테이아 대륙에 있을 때 뱀파이어들의 의사와 같은 존재였다.

그녀는 피를 이용한 치료 계통 술법에 능했고, 뱀파리스나 늑대인간과의 전쟁 때에도 많은 일족을 치료해 준 전적이 있었다.

해서 미친 황제에게 쫓기던 마지막까지도, 일족들의 곁에 남아 치료를 해 주고 있었고. 그렇게 자신의 술법에 의해 지구로 오게 된 녀석이었다.

라하임이 기절한 박쥐를 손바닥 위에 얹은 채 케일라를 찾아 떠났고.

에르제는 플랑과 함께 건물 내부를 구경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에르제는 밖에서 본 것보다 훨씬 넓은 내부를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화를 시킨 건가?”

내부의 용적을 던전화를 통해 3배 이상으로 늘린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던전화 된 건물은 마지막 관문까지 뚫고 들어온 침입자를 견제하는 역할도 할 터였다.

“바란의 머리가 잘 돌아가기는 하는 모양이네.”

일족이 아니기에, 그들이 카테이아 대륙 시절에 어떻게 생활했는지는 모르고 있을 텐데…….

언뜻 보면 새로운 근거지는 그때와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아니, 오히려 더 나을지도.’

에르제는 통제실처럼 보이는 방에 들어간 후 감탄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라하임이 자동문에다 술법을 걸어 둔 것처럼, 바란도 그런 방식을 채택한 모양이었다.

일족이 가지고 있는 술법들을 현대 문명과 융합해 적재적소에 잘 배치한 듯했다.

지금 이곳도 감시에 특화된 일족의 술법을 CCTV와 결부시켜 두지 않았나.

‘대충 청각과 시각이 합쳐진 CCTV라고 보면 되겠네.’

그렇게 에르제는 플랑을 대동한 채 건물 구석구석을 자세하게 살폈다.

새로운 근거지이자 앞으로 그들이 모든 일들에 대항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어느 곳 하나라도 허투루 되어 있는 부분이 없는지, 로드인 자신이 꼼꼼하게 시찰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게 1시간 넘게 돌아다니고 난 뒤에, 에르제가 내내 닫고 있었던 입을 열었다.

“엄청 넓네.”

던전화로 인해 훨씬 넓어진 내부는 치료를 맡기고 돌아온 라하임이 아니었다면 길을 잃을 정도였다.

“저도 지도가 아니었다면, 길을 잃었을 겁니다.”

라하임이 스마트폰을 조작하며 말했다.

바란이 톡으로 보내 준 이곳 지도를 확인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제 마지막입니다. 마녀들이 보내온 물건들만 확인하고 돌아가시죠.”

“그럴까.”

다른 일족들과는 이곳을 돌아다니며 대부분 마주친 상황이었다.

굳이 그들을 불러 모아서 저번처럼 연회를 열 생각도 없었기에 에르제는 순순히 그러자고 대답했다.

라하임의 뒤를 따라 창고로 가는 길.

“잠깐만요!!”

우당탕탕―!

복도 끝, 그들이 가야 하는 쪽에서 다급한 목소리와 누군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야!! 움직이면 안 된다고!!”

날카로운 고음에 멍하니 있던 셋은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약속이라도 한 듯 그쪽으로 빠르게 뛰어갔다.

그곳에는 오크통에 다리가 걸려 넘어진 케일라가 재빨리 일어나고 있었다.

“어? 로드?”

에르제를 발견한 케일라가 당황한 듯이 중얼거렸으나, 이내 고개를 황급히 털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로드! 그 환자가 도망갔어요!!”

“환자?”

“아까 라하임 님이 데리고 온 환자요!! 설명할 시간 없어요!”

케일라는 말도 제대로 끝맺지 않은 채 그대로 복도를 달려 나갔다.

“……저 방향은 창고인데.”

라하임의 눈이 빨갛게 변했다.

“설마.”

“창고를 노리고?”

“뛴다. 로드.”

빠르게 상황을 판단한 셋은 전속력으로 다리에 힘을 주어 달리기 시작했다.

“꺅!”

훅, 하고 앞서 달려 나가던 케일라가 금세 뒤로 멀어졌다.

“이쪽.”

라하임은 손가락으로 빠르게 방향을 지시했고, 플랑은 가장 앞서서 그대로 혈기를 연소시켰다.

“저곳입니다!”

도망친 녀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일단 창고가 무사한지부터 확인해야 했기에.

셋은 순식간에 창고 앞에 도착해 숨을 골랐다.

그리고 녀석의 목적 또한 이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손잡이가 비틀린 것으로 보아 강제로 열고 들어간 것이 분명합니다.”

이곳까지는 빠르게 쫓았지만, 일단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창고에 있는 물건 몇 개가 망가지는 것보다 에르제의 안위가 더 중요했으니까.

라하임과 플랑 입장에서는 안에서 기습적으로 날아올 수 있는 공격에 대비해야만 했다.

하지만 에르제는 고개를 저으며, 로드의 힘을 끌어올렸다.

“그럴 시간 없어.”

마녀들의 논의 시간이 길었던 것은 자신들을 도와줄지 말지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는 반증이다.

그런 상황에서 물품을 잃어버리거나 훼손한다면, 다시 충당하는 것이 어려울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해를 입힐 정도가 되려면 에이리스급은 되어야만 했다.

그런 자신감이 있었기에, 에르제는 열려 있는 문으로 빠르게 진입했다.

플랑이 곧바로 그의 앞자리를 차지해 날아올 공격에 대비했고, 라하임은 뒤와 양옆을 경계했다.

꿀꺽, 꿀꺽―.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들렸다.

‘……뭘 먹는 소리 같은데.’

에르제는 귀를 기울이며,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커다란 덩치의 뱀파이어 하나를 발견했다.

플랑보다는 작았으나, 그에 비견될 만한 덩치였다.

“……수혈팩?”

에르제는 녀석이 정신없이 먹어 치우고 있는 것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녀석의 옆에는 텅 빈 수혈팩이 벌써 5개나 쌓여 있었다.

“파하아아!!”

탄산음료라도 마시는 듯, 갈증을 털어 내는 시원한 소리가 녀석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Holly shit. This is the blood, I drink after a while.”

“이상한 언어를 쓴다.”

플랑이 인상을 팍 쓰며 다가가려는 순간, 에르제가 그를 붙잡았다.

‘이건 영언데.’

대충 해석한 결과, 이게 얼마 만에 먹어 보는 피냐고 하는 듯했다.

‘누구지?’

에르제는 플랑을 뒤로 당긴 후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영어로 물었다.

“누구냐, 넌?”

“……?”

에르제가 묻자, 그제야 이쪽의 기척을 느낀 건지 녀석이 고개를 돌렸다.

녀석의 눈은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곧 녀석의 입이 히죽 올라갔다. 입에 피가 묻어있어서 상당히 기괴한 장면이었다.

“지금이 제가 그토록 기다려 온 순간입니다.”

“……누구냐고 물었다.”

“저는 피터입니다. 지구에서는.”

“……피터?”

“그리고 로드를 뵙기 위해서 1년간 여행을 했죠.”

“그게 무슨…….”

그러나 둘의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자신을 피터라고 주장하던 녀석은 조금 전 수혈팩으로도 기운을 차리지 못했는지.

퍽―!!

갑자기 등장한 케일라의 수도 어택에 그대로 기절했기 때문이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로드. 지금은 환자의 안정이 우선이라 이야기는 나중에!”

“……응.”

피터가 누구인지 궁금했는데.

케일라는 기절한 ‘피터’를 질질 끌고 창고 바깥으로 나갔다.

“……수혈팩이 목적이었나 봅니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알고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라하임이 허탈한 표정으로 손바닥을 앞으로 뻗었다.

“일단 오신 김에 둘러보시죠.”

“……응.”

어떻게 하다 보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여유롭게 오지 못하고 아주 급하게 오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30분가량.

중요한 물건들 위주로 확인을 마친 에르제는 나머지 둘과 함께 창고 밖으로 나왔다.

“전반적으로, 이곳까지 오면서 손상된 물건이나 애초에 불량이었던 믈건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그러네. 마녀들도 신경 써서 보내 준 모양이야.”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여 라하임의 말에 동의했다.

도와준다고 결정을 내린 뒤라 그런지, 본격적으로 지원을 하려는 모양이다.

그렇게 이곳에 온 두 번째 목적을 달성한 뒤에, 에르제는 라하임에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녀석만 보고 가자. 시간 괜찮지?”

“조금 늦는 건 괜찮을 겁니다.”

“가자.”

에르제는 케일라가 일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얌전하게 치료를 받고 있는 녀석을 발견했다.

‘라하임이 일족이라고 하기는 했는데.’

도대체 수혈팩을 먹고 있었던 이유는 뭔지, 그리고 또 1년간 여행을 했다는 건 무슨 소리인지.

궁금한 것이 많기도 했고, 무엇보다 녀석의 정체를 명확하게 알고 싶었다.

“아! 로드!”

녀석은 해맑게 웃으며, 이번에도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

‘내가 로드인 건 이미 이곳에 오기 전부터 알아차린 상태라고 했었지.’

에르제는 미간을 좁히며 그에게 물었다.

“1년간 여행을 했다는 게 무슨 뜻이야?”

“아!”

녀석은 해맑게 웃으며 엄지척을 했다.

“저 캘리포니아에서 이곳까지 왔습니다.”

“……?”

“아하핫! 날고 헤엄치고 해서 오느라 조금 오래 걸렸습니다! 죄송합니다.”

“…….”

매혹의 힘으로 비행기를 몰래 타던가…….

그것도 아니면 무슨 일을 하더라도…….

“1년이면 비행기 값은 충분히 벌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아차, 그 생각은 못 했군요. 로드를 우연히 TV에서 본 순간, 바로 만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으하하핫.”

“…….”

플랑이 옆에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라하임과 에르제는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의 정체가 뭐가 됐든 간에 하나는 확실했다.

에르제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너, 설마 플랑 소속 경호대원이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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