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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51화 (151/307)
  • 제151화

    151화

    D.D.와의 연습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생각하는 방향도 비슷해서 크게 부딪힐 일도 없었고, 다들 좋은 무대를 만들자는 동일한 목표로 잘 뭉쳤기 때문이다.

    곡을 선정한 이후, 편곡 그리고 개사, 안무까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진도 나가는 속도가 빨랐다.

    하여, 12월 초가 되었을 때엔 대부분의 것들이 이미 마무리되어 있었다.

    일주일에 1번 이상 만났고 그것이 5주 정도 되었을 시점이니, 다른 팀에 비해서도 분명히 빠른 속도였다.

    ‘남은 건 이제 연습뿐인가.’

    두 팀 다 아직 활동하는 상태였기에 모든 시간을 연말 무대에 쏟을 수는 없었으나, 이전 과정에서 막힘없이 진행되었기에 시간적 여유는 있었다.

    그렇기에 에르제는 D.D.와의 연습이 끝난 직후.

    오후에 자율적으로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먼 친척을 만나러 간다고 이야기를 해 두었고, 라하임까지 동행한 상태였기에 소속사에서는 순순히 허락을 해 주었다.

    물론, 둘이 한패였지만 말이다.

    에르제는 차창에 입김을 불어 박쥐 날개를 그리다가 운전석에 앉아 있는 라하임에게 물었다.

    “조직 개편은 잘되어 가고 있다고 했지?”

    “예. 바란의 주도 아래 무사히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바란. 그래, 바란이라…….”

    에르제가 그의 이름을 되뇌니, 라하임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 이후로는 로드의 명령대로 더 이상 아이들을 뱀파이어로 만드는 일은 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일족을 붙여 감시한 결과, 실제로 그렇게 진행되고 있고요.”

    “다행이네.”

    “예. 그전에는 세력을 늘리려고 한 일이라고 하니까요.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겁니다. 일단은 저를 믿어 주십시오.”

    “알았어. 네가 선택했던 뱀파이어니까. 그래도 감시를 소홀히 하지는 마. 그런 애들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몰라.”

    에르제가 자신의 관자놀이 근처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겼다.

    “뱀파리스의 사상에 쉽게 물들 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예.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라하임이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결국 본인의 안목이 바란을 선택한 것이다.

    그에 대한 책임감이 라하임을 무겁게 짓누르는 모양이었다.

    ‘그런 책임감은 스스로 지어야지.’

    그리고 에르제는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겼다.

    에르제 스스로도 에이리스에 대한 책임감을 아직까지도 지니고 살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에이리스에 대한 생각을 자연스럽게 떠올린 에르제는 심각한 표정으로 목덜미를 눌렀다.

    ‘……에이리스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자신이 지구에 없을 때에도 충분히 움직일 수 있었을 텐데.

    에이리스가 가진 로드의 힘이 온전하다는 것까지 알게 되니 그녀의 의도가 더욱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뒤에서만 암약하며 조용히 살아가고 싶은 건지, 아니면 에르제의 추측대로 어떤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

    ‘……그리고 신은 왜 에이리스까지 지구로 보낸 건지.’

    생각이 거기까지 넘어갔을 때.

    에르제는 근본적인 의문에 부딪혔다.

    ‘잠깐만!’

    만약 에이리스가 신에 의해 선택되어서 지구로 오게 된 거라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사실 하나가 모순이 된다.

    파르만, 지서후.

    드워프와 늑대인간은 신의 선택에 의해 한 종족당 하나의 개체만 지구로 오게 되었다.

    만약 뱀파이어와 뱀파리스를 다른 종족으로 보고…… 자신과 에이리스를 지구로 보냈다고 한다면.

    ‘그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데 캄과 그 외의 장로들은?

    그 외의 장로들까지는 직접 눈으로 보지 못했으니 그렇다고 쳐도, 데 캄은 확실히 카테이아 대륙의 뱀파리스였다.

    신이 뱀파리스에게만 특혜를 준 것이 아니라면, 한 개체 이상이 지구로 넘어왔다는 뜻이 된다.

    심지어는 뱀파이어조차 일단 알려진 사실로만 본다면 자신만이 신에 의해 지구로 넘어온 게 확실하지 않은가.

    에르제를 제외한 다른 뱀파이어 일족은 자신의 술법에 의해 지구로 오게 된 것이니까.

    ‘…….’

    생각을 하던 에르제는 라하임의 의견을 물었다.

    “내가 종족별로 하나씩 지구에 오게 되었다는 건 말해 줬었지?”

    “예.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에이리스와 데 캄은 어떻게 둘이나 지구에 와 있는 거지?”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라하임도 그런 생각은 미처 떠올리지 못했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심지어 제가 뱀파리스 쪽에 있었을 때, 1장로와 2장로도 같은 이들이었습니다.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 저희처럼 그 안에 든 것은 같았다는 뜻입니다.”

    “그래. 그러니까.”

    “……어쩌면, 제가 보았던 뱀파리스들 중에 카테이아 대륙의 뱀파리스들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라하임은 뱀파리스 진영에 속해 있었지만, 이용해 먹기 좋은 데 캄을 제외하고는 친분을 만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기에 다른 카테이아 대륙의 뱀파리스가 더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충분히 그렇게 추측할 만한 상황이었다.

    에르제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이 편애를 한다고 해도 뱀파리스를 편애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마족이 아니라면 몰라도…….”

    “음…….”

    운전대를 잡고 있던 라하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쩌면, 에이리스도 로드처럼 그 술법을 사용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서 일족들을 이곳으로 보냈다고?”

    “…….”

    에르제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라하임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 이야기하긴 했지만, 본인이 생각해도 에이리스가 그랬을 것 같지 않아서였다.

    에르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다른 일족을 희생시켜서 본인만 차원 이동을 했다면 모를까, 그 반대는 절대 아닐 것 같은데.”

    “실제로 그런 술법도 있습니까?”

    “내가 알고 있는 거로는 없긴 한데, 확신하지는 못해.”

    “……음. 실제로 있다고 해도, 로드께서 하신 질문에 대답이 되지는 않겠군요.”

    “그렇지.”

    에이리스가 일족을 희생시키는 술법으로 지구에 넘어왔다. 그리고 데 캄은 신의 선택을 받았다.

    이해할 수 있는 범위는 딱 거기까지.

    라하임이 본 것이 맞는다면, 1장로와 2장로 그리고 그 외의 뱀파리스들에 대한 설명은 되지 않는다.

    에르제가 답답한 표정으로 차창에 머리를 콕 기댔다.

    “후우, 에이리스가 지금까지 가만히 있는 이유도 그것과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려고?”

    “차차 생각해 봐야죠.”

    라하임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주차장에 차를 멈춰 세웠다.

    “도착했습니다. 로드. 물건들은 모두 안쪽 창고에 옮겨 두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응. 직접 확인해 볼 생각이니까 미리 연락 넣어 두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에르제는 차에서 내린 뒤, 새로 옮긴 근거지의 겉모습을 훑었다.

    그러고는 조금 뒤로 물러나 주차를 마치고 나오는 라하임에게 말했다.

    “이쯤에서 하면 된다고 했지?”

    “예, 로드.”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로드의 힘을 그대로 끌어올렸다.

    새로 옮긴 근거지가 숙소에서 너무 멀지 않도록 서울 쪽에 위치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이 결계를 치는 일이 반드시 필요했다.

    하여, 결계를 치는 것이 오늘 에르제가 이곳을 찾은 이유 중 하나였다.

    사각, 사각, 사각.

    검은 안개가 소름 끼치는 소리를 만들어 내며 에르제의 전신에서 서서히 피어올랐다.

    에르제의 눈이 붉게 변하고, 검은 기운이 에르제가 앞으로 펼친 손바닥에 진득하게 모여들었다.

    평소 넓게 펼친 것과는 다르게, 한곳에 모인 검은 기운의 농도는 더욱 짙어 보였다.

    매혹의 눈 또한 여러 개가 아니라 거대한 하나의 눈동자가 되어 뜨였다.

    꿈벅―.

    큰 만큼 느릿하게 깜박이던 매혹의 눈이 결계를 펼쳐야 하는 공간 전체를 훑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화아아아아악―!!

    검은 기운이 폭사하듯 근거지 전체를 뒤덮었다.

    잠깐 태양이 사라진 듯 주변이 어두컴컴하게 변했다.

    “달빛조차 잠드는 어둠은 모든 빛을 거부하며…….”

    술법을 중얼거리던 에르제는 결계를 겹겹이 쌓아 갔다.

    시선 교란, 착란 증가, 무의식적 거부감 등등.

    평범한 인간, 그리고 다른 종족은 이곳에 들어오거나 볼 수 없도록.

    빛을 굴절시키고 무의식적으로 발길을 들이지 않도록 하는 많은 술법들이 에르제의 손바닥 끝에서 퍼져나갔다.

    곧 어두웠던 근거지에 다시 햇빛이 들기 시작했다.

    언제 챙겨 온 것인지, 라하임이 에르제에게 마른 수건을 건넸다.

    “고생하셨습니다.”

    “고마워.”

    에르제는 수건을 받아서 이마에 삐질삐질 흐른 땀을 닦아 냈다.

    로드의 힘을 절반 이상이나 소모하며 만든 결계였다.

    카테이아 대륙에 있을 때 쳐 두었던 결계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

    “여전하시군요.”

    라하임이 잠깐 회상에 잠긴 듯, 물기 어린 목소리로 입을 떼었고.

    에르제는 그런 그의 등을 두들겨 주고는 근거지 안으로 향했다.

    새로 옮긴 근거지는 뱀파이어 수십 명이 지내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넓은 건물이었다.

    위로 높지는 않았으나, 옆으로 크고 넓었다.

    기존에 뱀파이어 진영에서 가지고 있던 돈과, 에르제의 정산금 등을 모아 구매했다고 하더니.

    이 정도면 웬만한 부자들의 거대한 별장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직 모든 짐들이 정리가 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훑어보시고 가시죠.”

    “그래야지.”

    뭔가 선거 유세를 하는 듯한 기분이 잠깐 들기는 했지만, 에르제는 익숙하다는 듯 발걸음을 옮겼다.

    넓은 주차장을 지나 건물 입구에 도착한 에르제는 유리문 앞에 가만히 섰다.

    건물 입구는 라하임이 설계한 시스템을 통과해야 문이 열리도록 되어 있었는데.

    정신 계통에 특화된 라하임이 뱀파리스에 의해 세뇌된 이들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만든 시스템이라고 했다.

    에르제가 소환하는 매혹의 눈과 비슷한 것이 유리문에 버젓이 등장해 둘의 위아래를 훑었다.

    ― 검색 중……. 등록된 뱀파이어임을 확인했습니다.

    “음성도 나오네?”

    “네. 지구의 문물까지 결합시킨 새로운 시스템으로 혁신적이고도…….”

    라하임이 매우 뿌듯한 얼굴로, 알아듣지도 못할 단어들을 섞어 가며 설명을 이어 갔다.

    바로 그때였다.

    ― 삐빅, 삐빅. 숨어들어 온 뱀파이어가 있습니다. 경고, 경고!

    갑자기 울린 경고음에 라하임이 전투태세를 갖췄다.

    “로드!”

    그러고는 황급히 에르제의 곁에 서서 힘을 끌어올리는 모습.

    그러나 에르제는 뭔지 알겠다는 듯이 자신의 그림자를 발로 툭툭 찼다.

    “나와.”

    “큼, 크흠.”

    순식간에 자라난 그림자 속에서 플랑이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나타났다.

    “놀랐잖습니까!”

    “미안하다. 아까 나오려고 했는데, 결계 치는 로드를 구경하느라.”

    “나도 까먹고 있었네.”

    에르제와 플랑 모두 허허롭게 웃고는, 다시 유리문 앞에 나란히 섰다.

    경고를 뱉던 음성은 어느덧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지이잉―.

    곧 통과가 되었는지, 세 뱀파이어는 열린 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건물 안의 답사를 이어 가려고 할 때였다.

    쿠웅―!

    유리문에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서, 세 뱀파이어는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

    유리문에는 무언가 부딪혔다는 것을 증명하듯 조그맣고 동그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침입자일 수도 있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물러나라, 로드.”

    라하임과 플랑이 다시금 경계심을 끌어올리며, 천천히 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곧 부딪힌 것의 정체를 깨달은 라하임이 미간을 좁혔다.

    “……박쥐?”

    문 앞에는 유리에 부딪힌 것인지 기절한 듯 보이는 박쥐 한 마리가 날개를 축 늘어뜨린 채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녀석의 날개는 박쥐와는 어울리지 않는, 소금기가 잔뜩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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