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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49화 (149/307)
  • 제149화

    149화

    장 대표와 이야기를 나눈 뒤, 에르제에게는 두 개의 미션이 생겼다.

    하나는 기억과 관련해 상담사를 만나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어워즈의 참석 및 가요축제에서의 공연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상담사를 만나는 일은 일정이 잡히면 장 대표가 알려 준다고 했으니 그냥 기다리면 될 듯했고.

    지금 중요한 것은 토트윈 멤버들과 함께 가요축제 공연 준비를 하는 일이었다.

    “가요축제 무대는 토트윈만 단독으로 올라가지는 않을 거야. 크리스마스에 방송되니까 다른 그룹이랑 같이 캐럴을 부르기로 결정됐어.”

    “편곡이나 그런 거는여?”

    안단테의 질문에 이윤이 잠시 천장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건 LAK 쪽 소속사 프로듀서가 하는 걸로 알고 있어. 아! 그리고 그거 말고도 또 무대에 서야 해.”

    “!”

    무대에 또 오를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만큼 준비해야 할 게 늘어난다는 의미였다.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멤버들의 표정을 보고 이윤은 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도 너희들이 다 같이 무대에 서는 건 아니고, 유닛 형태로 찢어질 거야. 라하임 씨.”

    “예.”

    이윤이 옆에 서 있는 라하임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동시다발적으로 코코아톡 진동이 울렸다.

    ‘?’

    에르제가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해 보니, 이번 가요축제에 관한 내용이 공지 사항으로 등록되는 중이었다.

    ‘나랑 현우, 단테가 묶였고, 나머지 둘이 다른 팀으로 묶였네.’

    유닛 형태로 찢어진다고 하더니, 그렇게 조합을 만든 모양이었다.

    ‘보컬이랑 퍼포먼스 쪽으로 나눈 건가?’

    일단 팀 내에서 메인 보컬이랑 서브 보컬을 맡은 두 명과 자신이 묶인 것으로 보아, 그렇게 추론하는 게 타당해 보였다.

    그리고 역시나, 덧붙이는 이윤의 설명도 같았다.

    “보컬 라인이랑 퍼포먼스 라인으로 나눈 거야. 문제는 같이하게 되는 팀인데…….”

    이윤이 흠, 하고 작은 헛기침을 뱉었다가 고개를 들었다.

    “퍼포먼스 라인은 선배 그룹인 ‘STARLIGHTS’랑 하게 돼서 큰 문제는 없을 테고, 보컬 라인은 ‘D.D.’랑 무대에 서자고 하더라.”

    “D.D.랑요?”

    태현우가 미간을 한껏 조이며 되물었다.

    “어. 뻔하지 뭐. D.D.가 우리 잡으려고 그렇게 애썼는데, 화제성만 잠깐 불러일으키고 그냥 훅 가라앉았으니까 이번에 다시 한번 우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것 같다.”

    이윤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런데 너희들도 알다시피 D.D.도 너희보다 그렇게 실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야. 걔네들은 서바이벌 오디션을 통해서 데뷔한 애들이니까.”

    그의 말에 윤치우가 동의했다.

    “저희도 같이 출연했었잖아요. 그때 저희도 느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한 거고요.”

    “그래. 무대 서기 전까지 자주 만나서 무대 연습하고 할 텐데, 절대 얕보이지 말고.”

    “네.”

    “최선을 다해서 얕보이지 않을게요.”

    에르제의 대답에 이윤의 눈동자가 떨렸으나, 이내 그는 고개를 흔들어 털었다.

    “그래, 최선을 다해라.”

    D.D. 쪽도 이쪽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을 테니, 오히려 에르제의 입이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이윤은 나가려는 것인지 겉옷을 챙기며 말했다.

    “곧 일정이 잡힐 거라고 하니까 잡히는 대로 바로 공지 올려 줄게.”

    “넵.”

    쿵―.

    이윤을 따라 라하임도 같이 나가고 난 뒤, 숙소에는 잠시 적막감이 감돌았다.

    다들 이번 가요축제와 시상식에 대해 생각하는 듯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안단테였다.

    “선배님들도 많이 오시겠져?”

    “아이돌 그룹도 많겠지만, 선배 가수들도 많이 오시겠지.”

    “잘해야 할 텐데여…….”

    잠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던 안단테는 예전에 에르제가 했던 충고를 떠올렸는지 이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최소한 D.D.는 꼭 이겨여!!”

    * * *

    의욕을 잔뜩 불태우며 D.D.와 합주실에서 처음 만나게 된 날.

    그들은 꽤나 당황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

    “와!”

    “반가워요!! 개인적으로 팬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D.D.의 보컬 라인 세 명의 태도가 예상했던 것과 완벽하게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네, 네! 가, 감사해여!”

    “저도요. 이번 무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단테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당황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못했고, 태현우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에르제가 보기에 안단테의 모습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에르제는 자신의 앞으로 불쑥 내밀어진 손을 맞잡고, 은은하게 미소를 지었다.

    “반가워요. 서은우예요.”

    “……!!”

    고혹적이고 오만한 미소에 상대편의 손아귀에는 절로 힘이 들어갔다.

    “안, 안녕하세요. 성태규입니다.”

    성태규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는 하하, 웃으며 손을 놓았다.

    억지로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려 애쓰는 듯한 태도였는데, 같이 온 두 사람과 달리 그는 조금 불안해 보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하지만 굳이 캐물을 이유도 없었기에 에르제는 잠깐 떠오른 생각을 밀쳐 두었다.

    그렇게 ‘이미 서로 알고 있지만, 예의상 하는’ 통성명 이후, 본격적으로 무대 준비를 위한 이야기가 오갔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으세요? 혹시 생각해 온 의견이 있을까요?”

    태현우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고, 이를 받은 것은 아육시 2위로 데뷔한 최선규였다.

    “일단 저희끼리 얘기한 걸 말씀드릴게요.”

    “네.”

    “일단 저희는 팝송이나 국내 선배 아이돌 그룹의 곡들 중 어느 정도 난이도가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게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보컬 라인으로 같이하게 되었으니 그 부분을 부각시키는 게 좋을 듯해서요.”

    “난이도가 있는 노래라고 하면 어떤 거 생각 중이세요?”

    “LAK 선배님의 2집 앨범 타이틀곡이나 ‘Nothing’ 같은 거요.”

    “아아.”

    태현우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이번에는 그쪽에서 물어왔다.

    “그럼 토트윈분들은요?”

    “저희는 매시업 생각해 보고 있었어요.”

    “매시업이요?”

    “네. 아무래도 우리들이 아직 신인 포지션이다 보니, 그렇게 곡을 간접적으로 홍보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요. 익숙한 만큼 준비하는 데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의 말에 최선규가 머쓱한 얼굴로 코 밑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그…… 건 저희도 생각해 보긴 했는데, 아무래도 각자 그룹의 콘셉트나 곡의 가사가…….”

    “아아.”

    그의 말에 토트윈 전원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최선규가 하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끼리 얘기할 때도 그 말이 나왔었지.’

    ‘D.D.’와 ‘토트윈’의 세계관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제이에게 이용당한 PD가 밀고 나갔던, 토트윈을 은근 저격하던 콘셉트가 그대로 유지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태현우랑 안단테와 같이 이야기할 때에도 그 말이 나왔었고, 나름 해결 방안도 준비해 왔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태현우가 에르제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네가 말해. 네 아이디어니까.”

    “그럴까?”

    에르제는 의자를 앞으로 당겨 앉았다.

    그러고는 셋이서 종합한 의견을 그들에게 말해 주었다.

    “일단 여러분들 노래는 모두 들어 봤어요.”

    싱글 몇 곡과 정규 1집이 나와 있어서 그리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니었다.

    “그중에서 ‘DAY BY DAY’랑 ‘우린 달라’가 저희가 했던 곡이랑 장르도 비슷하고 가사도 크게 튀지 않아서 괜찮을 것 같거든요.”

    에르제는 합주실에 비치되어 있는 스피커에 스마트폰을 연결해 두 곡을 차례대로 재생시켰다.

    그는 ‘DAY BY DAY’에서는 1분 35초, ‘우린 달라’는 1분 20초쯤에서 잠깐 멈췄다.

    그러고는 그 뒤에 이어 ‘On Air’를 흥얼거렸다.

    “A, A, B, B 이런 식으로 곡의 분위기가 변하는 지점이 이 구간인데, 여기서 두 곡 모두 저희 ‘On Air’랑 잘 섞일 것 같아요. 가사도 그렇게 신경 쓰일 정도도 아니고요.”

    “오……. 확실히 그러네요.”

    에르제가 키를 맞춰서 불러 주었기에 두 곡이 연결되는 과정이 상당히 자연스럽게 들렸다.

    최선규는 발로 박자를 맞춰 보며 흥얼거려 보았다.

    그러더니,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지 콧잔등을 찡그렸다.

    “그런데, 계절감이 조금 안 맞을 것 같아 걱정되네요.”

    그 말에 에르제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매시업이라 곡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는 많이 희석될 테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저희 쪽의 밝은 분위기와 그쪽의 강렬한 사운드를 잘 섞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어때요?”

    “그건 그렇겠네요.”

    이윽고 최선규도 괜찮겠다는 판단이 섰는지 양손으로 엄지를 세워 주었다.

    “역시. 신인 그룹임에도 토트윈의 음원 성적이 좋은 건 다 이유가 있었네요. 약간 선배님하고 대화하는 기분이에요. 안단테 님이 다 작곡하시는 줄 알았는데, 다들 기본기가 탄탄하시구나.”

    그가 놀랐다는 듯이 말하며 능글맞게 웃자, 괜히 옆에 있던 안단테가 사레들렸다.

    본인의 이름이 갑자기 언급되어서 놀란 모양이다.

    에르제가 그의 등을 몇 번 두들겨 주며, 저들끼리 논의를 하는 D.D.의 보컬 라인 세 명을 바라보았다.

    ‘흠…….’

    지금까지의 상황은……. 그래, 의외였다.

    토트윈을 저격하려고 나온 그룹 이미지와, 김지원과의 일도 있어서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그래도 이렇게 호의적인 분위기일 줄은 몰랐는데.’

    그렇다고 김지원 사건처럼 위화감이 드는 것도 아니었기에 에르제는 이들의 모습이 진심이라고 판단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경쟁자이긴 하지만, 한편으로 같은 직종에 근무하는 동료이기도 하지 않은가.

    타 그룹과의 사이를 좋으면 좋았지 굳이 나쁘게 만들 이유도 없었다.

    그저 토트윈과 LAK의 관계가 비정상적인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에르제는 어깨를 으쓱 올렸다가 내렸다.

    ‘오히려 이런 분위기면 더 좋은 무대가 나올 수 있겠네.’

    안단테와 태현우도 벌써 의욕이 넘치는 모양이었고, ‘같이’ 좋은 무대를 만들고 싶어 하는 열망도 언뜻언뜻 보였다. D.D.도 마찬가지였고.

    “그러면, 매시업으로 최종 결정하고 빠르게 편곡 부분으로 넘어갈까요?”

    D.D.는 매시업과 유명 곡을 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게 나을지 저들끼리 의논을 하고는 최종적으로 그렇게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아, 그리고 저희 생각에는 ‘DAY BY DAY’보다는 ‘우린 달라’가 더 잘 맞을 것 같아요.”

    “오, 저희도 같은 생각이에요.”

    그렇게 곡 선정까지 완료가 된 시점에서 에르제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 모르는 번호인데.’

    에르제가 고개를 갸웃하며 전화를 받자.

    [ 헉, 허억……!! 헉……!! ]

    스마트폰 스피커로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 사, 살려 줘!! 제ㅂ……!! ]

    이어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그 말을 끝으로 스마트폰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

    아무리 로드의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전파를 따라가서 전화를 건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능력은 없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앞을 바라보니, 다른 이들이 모두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중 태현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구야?”

    “몰라.”

    “모르는 사람이 살려 달라고 하는 것 같던데?”

    목소리가 커서 다 들렸나.

    에르제는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대꾸했다.

    “119에 전화해야 하는데, 잘못 눌렀나 봐.”

    목숨이 위험하다면 역시 119다.

    “아……닌가? 112인가?”

    잠시 고민하던 에르제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뭐, 일단은 얘기한 대로 한번 맞춰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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