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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47화 (147/307)
  • 제147화

    147화

    에르제의 생당근 돌잡이까지 끝나고 난 뒤에, 토트윈은 잠시 화면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잠깐의 공백을 한서연이 시청자들과 소통하며 노련하게 메우는 동안, 토트윈은 빠르게 인이어를 차고 무대 준비를 마쳤다.

    곧 오케이 사인이 들어가고, 한서연은 아주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은 여러분들이 돌잡이만큼 기대하셨을 순서인데요! 오늘 토트윈이 팬분들을 위해서 선물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선물이라고 말은 했지만, 팬들은 모두 ‘팬송’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모카 엔터테인먼트에서도 스트리밍을 할 수 있도록 미리 홍보를 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티저나 힌트를 일절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연 어떤 팬송일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 이번에도 약간 오글오글 콘셉트이려나?

    ― 후욱후욱.

    ― (눈알 튀어나오는 이모티콘) 어딨니, 얘들아. 언제 나오니?

    ― 와! 라이브!!

    팬들의 채팅 내용은 기대감과 궁금증으로 가득했다.

    곧 스튜디오에 MR이 깔리기 시작했다.

    잔잔하고 서정적인, 그러면서 AM과는 다르게 밝은 분위기의 반주였다.

    도입부에서는 피아노 하나만으로 음률을 이어 갔고, 아주 조금 고조되는 구간에서 다른 악기들이 하나씩 자리를 채워 나갔다.

    그리고 그즈음 토트윈이 무대 위로 밝게 웃으며 등장했다.

    의상은 아까와 다르지 않았다. 라이브 시작부터 무대 의상으로 입고 나온 모양이었다.

    ‘On Air’와 전체적인 느낌이 비슷한 캐주얼 착장이었으나, 오늘은 그보다 더 편한 차림새였다.

    티 하나에 면바지 혹은 청바지.

    색깔별로 나뉜 멤버들의 모습이 화사함을 더했다.

    중앙으로 모인 토트윈이 첫 벌스의 시작과 함께 발을 끌면서 옆으로 쭉 미끄러졌다.

    그리고 그중 민주혁이 빙글 돌면서 다시 중앙으로 몸을 돌렸다.

    ― 하루 전

    그대 맘처럼, 나도

    기다리고 있어.

    두 개의 세계가

    이어지는 그 순간을.

    ― 하루 전

    그대와 나의 거리는

    끝없이 멀었다가

    한순간–에

    이렇게 가까워지는 걸.

    카메라가 민주혁의 얼굴을 줌인 했다가, 다시 들어온 군무에 빠르게 멀어졌다.

    절도 있게 딱딱 맞아떨어지는 안무를 하는 가운데 안단테가 조그만 키로 사박사박 걸어왔다.

    뒷짐을 쥐고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를 띤 채.

    녹빛 머리카락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는 안단테를 따라 찰랑거렸다.

    ― 기다리던

    그 하루를 위해서

    어제 그리고

    또 어제의 어제도

    준비를 해.

    ― 지나갔던

    추억과 기억들은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의 내일을

    버티게 해.

    안단테의 파트가 끝이 나면서, 서정적인 분위기가 조금 더 고조되었다.

    탁, 탁, 탁, 탁.

    현을 잡고 있는지, 어쿠스틱 기타가 멜로디 없이 소리를 내었다.

    점점 커지는 그 소리는 마치 시계의 초침소리 같았다.

    그리고 그에 맞춰, 윤치우가 물기 가득한 목소리를 얹었다.

    ― 고요하게 흔들리는

    주황색 빛의 일렁임은

    서로를 향한

    눈빛 위를

    가로지르듯, 이곳을

    가득 채워.

    진성과 가성을 자유롭게 오가며, 한 발 멀찍이 오른발을 뻗어 윤치우가 뒤로 빠졌다.

    이어서 그 잠깐의 빈 공간을 채우려는 듯이, 바이올린 연주가 서서히 스며들었다.

    조금 더 격정적으로 변한 사비에서 에르제가 등장했다.

    무심하게 옆모습을 보이며 무대의 가운데로.

    저벅저벅. 반팔에 드러난 새하얀 피부가 조명에 반사되었다.

    이윽고, 가운데에 도착한 에르제의 시선이.

    위를 향했다가, 사선으로 정면을 향해 그어 내렸다.

    가볍고 산뜻한, 그러면서도 울림을 잃지 않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적막한 밤바다에 내려앉는, 달빛과도 같은 음색이었다.

    ― 그대의 세상에

    나를 그려 줘.

    꿈을 꾸듯

    달려간 그곳에

    오롯이 내가 존재할 수 있게.

    1절은 온전히 에르제가 다 불렀다.

    그 위로 태현우와 안단테의 화음이 켜켜이 쌓였다.

    ― 노래를 부르는

    그대의 목소리가 보여.

    나를 바라보는

    그대의 모습이 들려.

    다른 세계의 우리는

    오늘의 어제에서

    내일로.

    다시 옆으로 고개를 돌리는 에르제의 앞을 한 명씩 느릿하게 가려 갔다.

    이윽고 그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가 2절의 시작이었다.

    ― 하루 전

    그리고 다시 민주혁, 안단테, 윤치우로 파트가 이어지고, 이번에는 태현우가 핵심 멜로디를 불렀다.

    에르제의 목소리가 바다 위로 깔리는 흐릿한 안개 같았다면, 태현우의 목소리는 지평선 위로 그 안개를 걷어 내는 햇빛 같았다.

    따스하고 편안한 음색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에르제가 그 위로 화음을 쌓아 냈다.

    ― 그대의 세상에

    나를 그려 줘.

    꿈을 꾸듯

    달려간 그곳에

    오롯이 내가 존재할 수 있게.

    ― 노래를 부르는

    그대의 목소리가 보여.

    나를 바라보는

    그대의 모습이 들려.

    다른 세계의 우리는

    오늘의 어제에서

    내일로.

    에르제의 파트와는 조금 다르게, 마무리는 마지막 하이라이트를 위해 길게 늘어졌다.

    더 높아진 음을 태현우의 깔끔한 가성이 꽉 메웠다.

    그리고 강렬해진 텐션을 이어받아 안단테의 힘 있는 목소리가 쨍쨍하게 울렸다.

    ― 흐르는 시간을

    꽉 붙잡고 놓지 않을게.

    한순간이

    한순간에 머물 수 있게.

    기다리고 바라던

    찰나를 위해―!

    안무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필요할 때만 적절하게 들어오는 수준이었다.

    그저 온전히 노래와 가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든 구성이었다.

    그렇기에 마지막 하이라이트로 진입했을 때, 토트윈은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일렬로 섰다.

    가만히 정면을 본 채, 각자 지금 찰나에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며 위아래로 화음을 쌓았다.

    그리고 그 중심은 에르제와 태현우 둘이었다.

    낮과 밤처럼 상반되는 둘의 음색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스튜디오 안을 울려 퍼졌다.

    ― 그대의 세상에

    나를 그려 줘.

    꿈을 꾸듯

    달려간 그곳에

    오롯이 내가 존재하고 있어.

    ― 노래를 부르는

    그대의 목소리가 들려.

    나를 바라보는

    그대의 모습이 보여.

    같은 세계의 우리가

    오늘, 그리고 오늘

    다시 오늘로―!

    노래의 끝과 함께, 토트윈은 미소를 지은 채 가만히 정면을 응시했다.

    말없이 가만히 서서.

    화면 속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팬들과 시선을 맞추었다.

    오늘의 어제에서, 내일이 되어 다시 오늘이 된 지금.

    그 순간에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고.

    마지막 반주가 나오는 동안, 토트윈은 그렇게 눈으로 말했다.

    그리고 이를 알아챘을까.

    호박 이모티콘, 좌우로 흔들리던 (((, ))) 같은 채팅창이 아주 잠깐 고요해졌다.

    그리고 노래가 완전히 끝이 나는 순간, 다시 성난 파도처럼 채팅이 끝없이 밀려 올라왔다.

    ― 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오늘의 어제가 내일이 되면 그게 오늘이잖아. ㅠㅠㅠㅠㅠㅠ

    ― 곡 제목 ‘하루 전’=‘이브’, 진짜……. ㅠㅠㅠ

    ― 마지막에 가사 바뀌는 거…… 나만 소름 돋았어?

    ― 우리도 사랑해!!

    읽기 힘들 정도로 많은 채팅 양에 토트윈은 멋쩍게 웃다가 그냥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이어서 윤치우가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지난 1년간 저희를 응원해 주시고 또 사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힘낼 수 있었어요. 앞으로도…….”

    말하면서 갑자기 감정이 울컥했는지 윤치우가 빠르게 옆으로 마이크를 넘겼다.

    얼결에 마이크를 건네받은 안단테가 눈동자를 양옆으로 굴리다가 이내 눈을 꾹 감고 허리를 숙였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여!!”

    그러고는 느리게 상체를 들어 올리며 슬슬 눈치를 살폈다.

    옆에 서 있던 태현우가 그런 안단테의 머리를 한 차례 헝클어뜨리고는 마이크를 받아 입에 가져다 댔다.

    “저희들이 데뷔한 지도 벌써 1년이 됐는데, 계속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좋은 모습 많이 보여 드릴게요. 마왕 민주혁 씨도 한 말씀 해 주시죠.”

    태현우가 장난기 어린 웃음을 띠며 민주혁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민주혁이 잠깐 태현우를 쏘아보았고, 채팅창에는 ‘ㅋㅋㅋㅋ’가 올라왔다.

    “큼, 큼.”

    민주혁이 헛기침을 하고는 입술을 뗐다.

    “마…… 왕 민주혁입니다.”

    결국 그렇게 이야기하고는 다시 태현우를 째려보는 모습에 감동적인 분위기가 산산이 깨졌다.

    잠깐의 웃음 참기 챌린지가 지나가고, 민주혁이 차분하게 말을 이어 갔다.

    “감사합니다. 네. 그 말 말고는 더 드릴 수 있는 말이 없네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민주혁 성격대로 담백하고 깔끔한 소감이었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넘겨받은 에르제는 볼을 긁적였다.

    뭐, 에르제가 할 말은 언제나 정해져 있었다.

    이미 팬들도 알고 있는지 채팅창은 그가 하려는 말로 도배되고 있었고.

    ‘앞부분만 할까.’

    무대를 마친 직후라서 팬들도 잘 받아 줄 것 같았다.

    에르제는 씩 웃으며 마이크를 입에 가까이 댔다.

    “이지러진 달빛이.”

    그리고 카메라를 향해 마이크를 뻗었다.

    ‘그대의 마음에 깃들기를’이라는 채팅이 주르륵 위로 올라왔다.

    간혹 ‘이달그마’라는 말도 보였다.

    다른 멤버들이 옆에서 질색하는 얼굴로 바라보았지만, 뭐.

    이제는 팬들도 그냥 내려놓고 즐기는 모양이었다.

    한쪽에 서 있던 이윤도 허탈한 표정으로 그냥 웃고 있었고 말이다.

    그렇게 에르제의 소감까지 끝이 나고, 한서연이 정리를 위해 나섰다.

    “자, 이제 토트윈분들 자리에 앉아 주시고요.”

    그녀의 말에 토트윈이 주섬주섬 자리에 앉았다. 무대가 끝난 직후, 스태프들이 빠르게 뒤에 다시 배치해 둔 등받이 없는 의자였다.

    “이제 마지막 순서로 넘어가야겠죠?”

    한서연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돌잔치에 빠질 수 없는 경품 추천 시간,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 *

    같은 시각.

    지서후는 뱀파이어 친구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중이었다.

    그는 화면을 통해서 보는 것임에도 에르제의 변화를 빠르게 눈치챘다.

    ‘얘는 뭘 먹고 다니길래 힘이 더 강력해진 거야?’

    전에 봤을 때는 ‘그 에르제’가 맞나 싶었는데, 지금은 얼굴부터 때깔까지 더욱 뱀파이어답게 바뀌어 있었다.

    ‘노래는 좋네.’

    지서후는 방금 막 들은 팬송을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품 추첨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런 건 팬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지서후가 스마트폰을 옆으로 치우자, 그의 매니저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더빙할 때 친해졌다고 하더니, 데뷔 1주년 라이브 영상까지 챙겨 볼 정도야?”

    “잘하잖아.”

    “그건 그래. 걔네 그룹 전체가 다 난 놈들이기는 하더라.”

    지서후가 어깨를 으쓱하자, 매니저가 가까이 붙었다.

    “아무튼, 이번에 너 새로 들어온 드라마는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봤어?”

    “아, 그거.”

    “아, 그거? 대표님이 계속 나 쪼고 있는 건 아는 거지? 너만 태평하면 다냐?”

    “하여간 성격도 급해.”

    지서후는 투덜대는 매니저를 보며 웃고는, 소파에 몸을 깊이 밀어 넣었다.

    “퇴마사 드라마라…….”

    드라마의 스토리를 떠올리던 지서후가 다시 몸을 느릿하게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매니저를 향해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형.”

    “왜?”

    “이거 카메오, 배역 아직 다 안 정해졌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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