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146화
[ 안녕!! 나는…… 트릭, 트릭!! ]
데뷔 초창기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드는 에르제의 어설픈 인사에 영상을 보고 있던 두 사람은 그만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날 이후로 틀리지 않았던 에르제였기에 아마도 추억을 잠시 회상하라고 일부러 연출한 모습인 듯했다.
그리고 시청자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 은우ㅋㅋㅋ 옛날 생각이 나네.
― 그때 첫 인사한 거였나? 아니지? ㅋㅋ 트릭! 트릭!!
― 트릭좌의 시작.
― 1주년 기념 짤 투척인가!!
그때는 서은우를 로드라고 알아보지 못했을 때였고, 때문에 실시간으로 보진 못했지만.
그녀는 장미영과 함께, 초창기 때부터 있었던 토트윈의 영상을 10번도 넘게 본 상태였다.
“이게 로드의 유명한 짤 중 하나군요.”
“맞습니다.”
세리나는 웃음기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1년이라니, 감회가 새롭군요.”
“그러게요.”
그렇게 뱀파이어와 서큐버스가 열심히 영상을 시청하고 있을 때, 그 옆에 앉아 있던 라하임은 상당히 언짢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팔짱을 끼고 고민하다가 세리나에게 물었다.
“혹시 로드가 인사법을 틀린 것은 의도된 건가?”
“그럴걸요? 로드께서 그 이후에 인사를 틀리는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대본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라하임은 인상을 팍 쓰며 말했다.
“가만두면 안 되겠는데.”
“……네?”
“감히 로드가 인사를 틀리도록 만들다니 용서할 수가 없다. 로드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고.”
“아, 아니.”
세리나가 황급히 라하임의 옷깃을 붙잡았다.
“뭘 어쩌시려고요?”
“내 역할을 할 뿐.”
라하임이 의지를 불태우며 대답했다.
이번에 토트윈의 새 매니저로 들어오게 된 라하임이 맡게 된 임무는 댓글과 라이브 영상 모니터링이었다.
전반적인 업무는 이윤이 하기로 되어 있었고, 아직 매니저가 된 지 얼마 안 된 라하임은 간단한 업무만 맡은 상태.
운전 실력이 뛰어났기에 운전은 그가 도맡아 하게 되었지만, 아직까지 모든 업무에 숙달된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그에게 내려진 임무는 댓글 반응을 살피고, 영상 모니터링을 통해 다음번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할 일을 하겠다니?
세리나가 고개를 갸웃했고, 라하임은 열심히 메모지에 무언가를 적었다.
세리나가 이를 슬쩍 보자, 라하임은 ‘토트윈의 멤버 서은우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행위는 대부분의 시청자에게 불쾌감을 선사한다.’라는 글을 적고 있었다.
‘……대부분이 아니라 이 정도면 혼자 아닌가?’
할 말은 많았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라하임이 저렇게 한다고 로드에게 피해가 가는 것도 아니고, 저 의견이 받아들여질 것 같지도 않아서였다.
‘난 또 PD나 대본 쓴 인간들을 보러 간다는 줄 알고.’
세리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장미영은 이쪽에는 관심도 주지 않고, 이미 영상을 집중해서 보고 있는 상태였다.
세리나가 그녀의 옆에 바짝 붙자, 장미영이 입을 열었다.
“어, 언니.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나 봐요.”
“그래?”
세리나는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장미영의 말대로, 이제 본격적으로 토트윈 데뷔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 그동안 토트윈이 1년 동안 걸어온 길을 한번 살펴볼까요? ]
한서연의 진행에 따라 화면이 갑자기 전환되었다.
오늘 라이브 영상을 찍기 전에 미리 만들어 둔 영상인 듯했다.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춤 연습을 하는 모습과 보컬 트레이너에게 혼이 나는 모습.
영상으로 남아 있는 데뷔하기 전 모습들과, 연습 도중에 찍은 단체 사진 등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고.
그 뒤를 이어서 데뷔 쇼케이스, 첫 음악 방송 무대 영상, 숙소에서 일상을 보내는 모습, 자체 콘텐츠 비하인드 영상 등등.
그동안 토트윈이 1년 동안 해 왔던 여정이 5분간의 영상에 모두 담겨 있었다.
짧아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지난 시간을 함께했던 팬의 입장에서는 몹시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아…….”
어느덧 양손을 모으고 이 영상을 지켜보던 세리나의 눈가가 붉게 충혈되었다.
그 와중에 라하임은 ‘영상 속에 서은우의 비중이 너무 적다. 5분이면 적어도 4분은 나와야 한다.’라고 적고 있었다.
영상이 끝난 뒤에는 토트윈의 소감과 함께 다른 주제의 스몰 토크가 이어졌고.
드디어 팬들이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 자, 이제 판타지 세계에서 넘어온 우리 토트윈 멤버들이 지구에서의 1년을 맞아 돌잡이를 하게 될 텐데요! ]
[ 오오! ]
[ 와!! ]
자체적으로 박수를 치며 호응하는 토트윈의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 아기들은 뭐가 뭔지 모르니 그냥 진행을 하겠지만, 여러분들은 이미 그게 뭔지 다 알고 있잖아요? ]
[ ……! ]
[ 그렇……죠? ]
[ 그래서! 제비뽑기를 하듯이! 상자를 검은 천으로 가려 놓고 뽑도록 하겠습니다! ]
[ !! ]
[ 매니저님! ]
마치 처음 듣는 내용이라는 듯이 토트윈이 반응하고, 곧 이윤이 바퀴 달린 책상을 밀고 들어왔다.
‘매형!’ 팬들이 채팅으로 반갑게 인사해 주었고, ‘습관성 삐짐 증후군’이라는 단어도 간간이 보였다.
이를 읽은 이윤이 “저는 삐지지 않아요.”라고 강하게 반발했지만, 그것조차 삐진 것으로 보인다며 채팅창에 ‘ㅋㅋㅋㅋ’라는 글이 도배되었다.
이윤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사라지고 난 뒤, 본격적으로 돌잡이가 시작되었다.
상자를 가리고 있는 검은 천은 멤버들 쪽만 볼 수 없게 제작되었지만, 팬들에게는 상자 속에 무엇이 있는지, 그들이 뭘 잡으려고 하는지가 훤히 보였다.
돌잡이라는 탈을 뒤집어쓴 물건 맞추기 게임이었다.
첫 타자로 나온 것은 윤치우였다.
[ 자, 리더부터! 과연 무엇을 뽑게 될지! ]
그래도 일반적인 것들이 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한 윤치우의 예상과는 달리 손에 만져지는 감촉은 아주 생경했다.
[ 읏……. 어? 악!! ]
물컹물컹하거나 끈적거리거나 했다. 윤치우가 기겁하는 장면이 그대로 송출되었고, 뒤에 앉아 있던 다른 멤버들이 웃거나 같이 놀라는 장면이 클로즈업되었다.
윤치우가 계속 상자에 손을 넣었다 빼는 것을 반복하자, 한서연이 웃으며 재촉했다.
[ 자! 시간이 없습니다! 이게 뭔지 맞추는 시간이 아니에요! 하나 뽑으셔야 합니다! ]
[ 아……. 제발……. ]
흉가 체험을 할 때도 은근 겁쟁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던 윤치우가 눈을 질끈! 감은 채 또 하나의 아픈 기억을 남기고 결국 하나를 뽑았다.
그나마 만졌을 때 딱딱한 것이 그래도 덜 이상하게 느껴지는 물체였다.
이윽고 윤치우가 상자 밖으로 그것을 꺼냈을 때, 그게 무엇인지 모두가 확인할 수 있었다.
렌즈 통이었다.
[ 아! 렌즈를 뽑았어요. ]
[ ……?? 돌잡이에 원래 이런 게 있어요? ]
[ 그럼요. ]
무슨 물건이 있는지, 그게 어떤 장래를 의미하는지는 토트윈에게도 알려 주지 않은 상황.
팬들 또한 물건은 볼 수 있었지만, 의미까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한서연이 빠르게 설명을 덧붙였다.
[ 앞으로 팬분들의 눈이 되어서 팬분들이 궁금해하는 소식과 일상 모습들을 전해 주게 되었습니다~! ]
[ ! ]
윤치우는 그렇게 소식을 전하는 담당이 되었고.
[ 아! 주혁 군은 메스를 뽑았어요! ]
[ ……의사 아이돌이 되는 건가요? ]
장난감 메스를 요리조리 뒤집으며 민주혁이 묻자, 한서연이 대답했다.
[ 주혁 군은 팬분들의 심장을 고쳐 주는 토트윈의 의사! ]
[ !! ]
민주혁은 의사가, 그리고 곰돌이 얼굴이 달려 있는 커다란 펜을 잡은 안단테는 훌륭한 곡을 뽑아내는 토트윈의 작곡가로 장래가 결정되었다.
원래 하고 있던 일이라서 안단테가 “와!!” 하고 함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제 남은 것은 태현우와 에르제 둘뿐이었다.
이제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어떻게 의미 부여가 되는지 대강 눈치를 챘기 때문에 태현우는 고심해서 물건을 고르기 시작했다.
안단테처럼,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뽑고 싶은 모양이었다.
한서연의 재촉에도 꿋꿋이 심사숙고하던 태현우는 ‘코주부 안경’을 골랐다.
태현우가 그것을 쓰자, 이를 보던 세리나와 장미영이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 팬들에게 늘 웃음을 선사하는 행복 전도사! 현우 군이 뽑은 것은 코주부 안경이에요! 정말 잘 어울리는데요? ]
한서연도 웃으면서 말했고, 그 기세를 몰아 태현우는 ‘FM’의 안무를 짧게 추었다.
우스운 코주부 안경과 격한 FM의 안무가 미스 매치가 되면서 다시 한번 그 자리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곧 태현우가 자리로 돌아오고, 이제 모든 시선이 에르제에게로 향했다.
[ 저는 처음 손에 잡히는 거 뽑을 거예요. ]
에르제는 당당하게 어깨를 펴며 그렇게 이야기했고, 말한 대로 처음 손에 잡힌 것을 그대로 들어 올렸다.
다른 멤버들처럼 이상한 감촉에 움찔하는 모습조차 없었다.
그렇게 에르제가 뽑은 것이 공개되었고, 채팅창은 다시 한번 ‘ㅋㅋㅋㅋㅋ’가 도배가 되었다.
그가 뽑은 것은 생당근이었다. 에르제가 고개를 갸웃하며 한서연에게 물었다.
[ 이건 뭐예요? ]
[ 당근은 멤버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요리사예요! ]
[ 아, 안 돼! ]
그 말에 태현우가 손에 들고 있던 코주부 안경을 떨어뜨리며 손을 벌벌 떨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채팅창은 웃던 분위기에서 어느덧 애도의 분위기로 전환되었다.
― 얘들아, 이승에만 남아 있어 줘. ㅠㅠㅠ
― 은우는 다시 뽑자! 너무 빨리 뽑았어! PD 양반, 뭐 해!! 갓기들 다 죽일 셈이야!?
― 앜ㅋㅋㅋㅋㅋㅋ 진짜 이 정도면 요리에 진심. ㅋㅋㅋㅋ
― 어떻게 거기서 당근을 뽑곸ㅋㅋㅋ
― 아이돌잡이는 그렇게 레전드로 마무리되었다. 괴식 아이돌 두두등장!
세리나와 장미영도 웃음을 참으며 이 장면을 지켜보았다.
“로드께서는 원래 요리 잘하시는데.”
세리나가 웃음을 다시금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엇, 그래요? 그럴 리가 없는데. 저 직접 먹어 봤다고요.”
장미영이 ‘알바 몬스터’의 첫 화를 떠올리며 질색했다. 그 모습에 세리나가 멋쩍은 얼굴로 에르제를 위해 변명을 했다.
“재료 때문이지 원래는 잘하셔. 그…… 자꾸 예전 세계의 맛을 재현하려고 고집하셔서 그렇지……. 조금 자부심을 내려놓으셔도 될 텐데.”
하지만 최근에 예능에 나와서 했던 요리를 생각해 보면,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기는 했다.
“괴식 아이돌 타이틀을 떼기가 쉽지 않겠다.”
세리나가 허허롭게 웃고 있으니, 데뷔 1주년 돌잡이가 슬슬 끝이 나려 하고 있었다.
말이 돌잡이지 사실은 팬들, 혹은 멤버들을 위한 의미 부여가 많이 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보는 입장에서는 흐뭇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채팅창의 반응도 마찬가지였고.
“역시 로드는 이 모든 것들을 노리고 계셨던 게 틀림없다.”
“?”
“처음 티즐 고크드르늘을 만드셨을 때부터 이 큰 그림을 그리고 계셨던 거겠지.”
라하임이 확대 해석을 했지만, 세리나는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진짜 그런가?’ 하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일부러 요리를 못하는 척을 해서 그걸로 캐릭터 연성을 한 거라면 정말이지 소름 돋는 일이 아닌가!
‘어디까지 내다보고 계신 겁니까.’
세리나는 양손을 모으고 감격 어린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이어진 한서연의 말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
로드의 위대함을 찬양하던 분위기가 순간 전투적으로 뒤바뀌었다.
“미영아.”
“예, 언니.”
“준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