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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42화 (142/307)

제142화

142화

새로 일할 곳을 알아보겠다고 하더니, 그게 매니저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에르제가 얼어붙은 채로 현관에 서 있는 동안, 다른 멤버들은 라하임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앗, 저희 새 매니저님 생겼어요?”

“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멀쩡한 모습에 에르제는 안도하는 낯빛을 띠었다.

하긴 자신보다 지구에 오래 있었으니 잘 몰라서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듯했다.

‘……그런데 매니저 일은 해 보지 않았을 텐데, 장 대표가 뭘 보고 채용했을까?’

설마 매혹의 힘을 썼나.

그런 생각에 조금 불안하기는 했으나, 이윤이 멤버들에게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이번에 너희 활동이 많아지면서 나 혼자 케어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장 대표님이 새로 뽑았다고 하시더라.”

그도 그럴 것이, 멤버들이 같은 날 다른 곳으로 각각 촬영을 갈 때면 이윤 혼자서 다 커버하기는 힘들었다.

데뷔 초반은 괜찮았지만,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만큼 새로운 매니저를 하나 뽑아서 미리 교육을 시켜 놓으려는 모양이었다.

“와, 근데 연예인인 줄 알았어요.”

“나도, 나도.”

물론 외모가 상당히 눈에 띄기는 했지만, 크게 상관은 없을 듯했다.

라하임의 옆에서 빙글빙글 돌던 태현우가 물었다.

“근데 이름이 왜 라하임이에요?”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그렇습니다. 한국 이름이 따로 있기는 한데, 라하임으로 불리는 편이 편합니다.”

“아하.”

그렇단다. 덕분에 이름을 부를 때 헷갈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에르제까지 숙소 안쪽으로 들어오자, 라하임은 멤버들과 가볍게 악수만 나눈 뒤에 이윤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오늘은 잠깐 얼굴을 비추고 인사만 하고 가는 모양이었다.

‘흐음.’

에르제는 둘이 나간 현관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럼 라하임이랑 같이 스케줄을 가게 될 수도 있다는 건데.’

그러려면 차도 운전할 줄 알아야 할 텐데…… 면허증은 있으려나?

에르제는 문득 든 생각에 고개를 갸웃했다가 윤치우의 말에 잡념을 지웠다.

“오늘은 다들 자기 전에 내일 회의할 내용 머릿속에 정리하고 자. 분명 우리 의견도 물어보실 거야.”

* * *

다음 날.

오후 4시 전까지는 특별한 스케줄이 없었기 때문에 토트윈은 점심을 먹고 소속사로 향했다.

어제 윤치우가 말했던 회의 때문이었는데, 어느덧 9월 중순이 넘어간 시점에서 약 한 달 뒤에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10월 31일. 그들의 데뷔 일이자 그들에게 아주 특별한 날인 핼러윈 데이.

아직 3집 활동을 이어 가고 있는 중이지만, 팬들도 분명 그날을 기대하고 있을 터.

그때까지 4집 앨범을 준비해서 또 활동을 이어 가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무언가 특별한 이벤트를 하자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

“…….”

때문에 회의실로 향하는 토트윈 전원은 침묵을 지키며 걸음을 옮겼다.

각자 구상해 온 아이디어를 한 번씩 점검하는 모습.

달칵―.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장 대표와 A&R 팀 등이 그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러나 반가운 인사도 잠시, 회의실의 분위기는 곧 무겁게 가라앉았다.

장 대표가 턱을 괸 채로 입을 열었다.

“너희들 오기 전에 아이디어들을 취합해 봤는데, 썩 좋은 것들이 별로 안 보이네. 괜찮은 생각들 있어?”

“음…….”

“어, 음.”

서로 눈치를 보던 와중에 윤치우가 가장 먼저 손을 들어 발언을 허락 받았다.

“저희 팬들에게 감사를 표해야 하는 날이라고 생각해서 팬송을 한 번 더 해 보는 건 어떨까요?”

“팬송?”

“네. 곡 하나만 만들면 되고, 뮤비도 만들 필요 없으니까 부담도 덜할 것 같고요.”

“음……. 이미 나온 이야기이기는 한데, 안 그래도 그거 물어보려고 했다. 단테는 괜찮아? 팬송을 만들게 되면, 작곡은 너한테 맡겨 보려고 하는데.”

“아……!”

안단테가 입을 벌린 채로 잠시 생각했다.

사실 바쁜 걸로만 치면, 지금이 역대로 가장 바쁜 시기다.

3집 활동과 더불어 멤버 전원이 출연하는 프로나 개개인이 따로 예능 촬영을 나가고 있었으니까.

“으으음.”

잠시 고민하던 안단테는 결연한 어조로 대답했다.

“해 볼게여!”

“괜찮겠어?”

“넵.”

안단테가 고개를 끄덕이자, 장 대표는 다른 멤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들 생각은 어때? 다른 의견 있으면 기탄없이 말해 봐.”

그 말에 태현우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희 데뷔 1주년이니까 파티 해요! 그거 영상으로 라이브로 해요!”

“파티? 라이브?”

장 대표가 미간을 좁혔다.

“너희 숙소에서?”

“네!”

신이 나서 말하던 태현우가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맛있는 것도 많이 시키고, 케이크에다가 초 1개 꽂아서 1주년 축하도 하고, 팬들이랑 실시간으로 같이 즐기는 거예요! 어때요?!”

“음……. 그건 그냥 네가 맛있는 걸 먹으려는 거 아니냐?”

장 대표의 말에 주변에서 가벼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도 라이브 영상 틀어서 팬들이랑 케이크 정도 놓고 축하하는 거는 괜찮겠네. 또?”

이어서 안단테와 민주혁도 각자 생각해 온 바를 말했지만, 지금까지 나온 의견과 큰 차이는 없었다.

애초에 다들 1주년 축하와 팬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췄기 때문이다.

이윽고 마지막으로 에르제에게로 사람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은우는?”

물어볼까 말까 고민하던 장 대표가 결국 입을 떼었고, 에르제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돌잡이해요.”

“?”

“돌잡……. 뭐?”

사람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스쳐 지나갔으나, 에르제는 꿋꿋하게 생각한 바를 말했다.

“지구에서는 태어난 지 1년이 됐을 때 돌잡이를 하잖아요. 그리고 저희는 다른 세계에서 온 판타지 캐릭터들이고요.”

“아!”

에르제가 하려는 말을 알아들은 몇몇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돌잡이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들을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그런 인간들 중 하나인 장 대표가 이마를 톡톡 두들기다가 입을 열었다.

“좋네. 라이브로 진행하면서 팬들에게 경품 형식으로 감사 선물도 드릴 수 있고, 1주년 의미랑 너희들 세계관도 담겨 있으니까.”

“맞습니다.”

장 대표의 깔끔한 정리에 태현우가 얼른 고개를 주억거렸다.

녀석의 것과 에르제의 의견이 비슷한 부분이 많으니, 어느 쪽이든 건져 가겠다는 의지로 보였다.

“저는 찬성!”

“저도 좋아여.”

“저희들도 그쪽을 기반으로 놓고 발전시켜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태현우를 시작으로, 다른 멤버들 그리고 다른 직원들도 에르제의 의견에 찬성표를 던졌다.

에르제의 의견이 ‘와, 대박!’까지는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나온 것들을 하나로 합칠 수 있는 그릇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곧 브레인스토밍을 시작하면서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고, 최종 시안이 결정될 때까지 쭉쭉 회의가 이어졌다.

“그럼 그날 의상은 이렇게 가도록 하겠습니다.”

“타이틀곡 위주로 짧고 가볍게 노래도 불러 주면 좋을 것 같고, 감사 선물로 뭘 드릴지는 저희 쪽에서 예산이랑 같이 잡아 보겠습니다.”

“팬송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A&R 팀장의 말에 안단테 대신 에르제가 손을 들었다.

“제가 안단테를 도와서 같이할게요.”

“아, 그러고 보니 이번 앨범 작업할 때도 은우가 도움 많이 줬다고 했지?”

“네!”

안단테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래서 안 그래도 이번에 작곡 쪽으로 정산금이 들어오면 분배하려고 했어여.”

그렇지 않아도 돈이 많이 필요했는데, 기특한 녀석.

에르제가 그런 눈으로 안단테를 바라보았다.

얼마 전 라하임이 조직 운영비니 뭐니 하면서 돈이 많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기도 했고.

동시에 라하임이 지금까지 찾아 둔 일족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지금 들어오는 정산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무엇보다도! 뱀파이어 로드로서 저런 갸륵한 마음을 무시하는 행위는 스스로 용납할 수 없기도 했다.

그렇게 에르제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으니, 장 대표가 팬송과 관련해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좀 진중하고 평범하게 가 보자. 오글거리는 콘셉트는 이미지가 많이 소모됐으니까 다르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이번 3집 앨범도 저희 색깔을 첨가하기는 했지만, 이전 앨범 같은 콘셉트는 들어가 있지 않으니까요.”

민주혁이 빠르게 분석을 마치고 장 대표의 말에 힘을 실었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인지 빠르게 의견들을 덧붙였다.

“곡이 완성되는 대로 보내 주면, 바로 믹싱 마스터링 작업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사는 어떻게 하죠?”

“최종 검수만 따로 하는 걸로 하자고.”

“그러면 팬송은 디지털 싱글로 내는 것으로 하고, 10월 31일 되기 전에 소속사 차원에서 홍보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종적으로 홍보 팀의 발언까지 듣고 나서야 회의가 종료되었다.

장 대표는 박수를 쳐서 분위기를 환기했다.

“오케이. 그럼 오늘 시안이랑 회의에서 나온 내용대로 진행하는 걸로 하고, 치우는 잠깐 나 좀 보자.”

“네, 대표님.”

한껏 열기가 올랐던 회의실 분위기가 식으면서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차례대로 가져온 것들을 챙겨 밖으로 빠져나갔다.

가장 마지막으로 나온 멤버들은 연습실로 향했고, 윤치우만 장 대표를 따라 방향을 틀었다.

“가서 먼저 연습하고 있어. 금방 갈게.”

“응. 이따 봐.”

멤버들은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윤치우와 헤어졌다.

장 대표가 어째서 윤치우를 불렀을까 궁금해할 법도 했으나, 크게 신경 쓰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그냥 토트윈에 관해서 따로 할 말이 있나 보다 생각했을 뿐.

그리고 그건 에르제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그쪽까지 신경 쓸 정도의 여력이 없기도 했고.

‘후우.’

라하임이 보호하고 있던 일족, 조직 그리고 뱀파리스의 수장 에이리스까지.

‘……에이리스도 신에게 선택을 받았다는 소리일 텐데.’

어째서 뱀파이어와 뱀파리스가 다른 종족으로 취급을 받아 둘이나 이곳에 오게 된 건지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면, 내가 남들보다 늦게 이곳에 오게 된 것과 연관이 있는 걸까?’

머리가 지끈지끈거릴 정도로 사고를 회전하며, 연습실로 향하던 에르제는 문득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혼자 고민할 필요가 없었어.’

지금 상황에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이가 가까이 있지 않던가.

에르제는 앞서 걸어가는 멤버들에게 말했다.

“나, 실장님한테 잠깐 다녀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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